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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01화 (101/154)

101화

요나라 야율배는 장인정신으로 잘 키워낸 정예군으로 남하하고 싶었다. 그런데 신하들의 반응이 영 좋지 못했다.

"폐하, 중원으로 내려가시렵니까?"

"안 되겠나?"

"폐하, 송구하오나…… 아직 요군이 중원을 정벌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군사적으로나 군량으로나 몇 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전쟁을 할 만큼은 된다. 그러나 연방에서 요가 혼자 움직이는 것을 막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니, 백제 출신들은 야율배가 만리장성을 넘는 것을 막을 것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전쟁은 가능해도 만리장성을 넘어 중원을 정벌할 만큼의 힘은 아직 되지 못한다.

가까스로 점령한다 해도 중원 여러 나라의 반격을 받게 되겠지.

"정녕 방법이 없겠나?"

황제에게 계속 중원정벌의 의지가 있다면, 최소한 조금 미루기라도 해야 한다.

"그, 차라리 연방에 한 번 연합을 해보자 전하는 것이 어떠십니까?"

"무슨 말인가?"

연방과 연합? 설마 연합해서 중원을 노려보자는 소리인가.

"실은 연방의 총리께서는 중원정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가독부나 마한황제는 어찌하고?"

아무리 총리가 대단하다고 하나, 백제나 고려의 군주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까? 안 그래도 전쟁이란 전쟁은 다 치러 피곤할 연방이 아닌가.

"연방군은 연방이 우선입니다. 아마 총리 각하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연방과 함께 한다라. 연방과…… 흐으음."

확실히 금강이 자신을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연합을 하라 하면 조금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일단은 아버지를 죽인 자이기도 하고, 오늘날 요나라가 내부를 수습하느라 정신없어진 이유도 그 아니던가?

"연방의 총리와 폐하께서는 친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친분이라 해야 하나. 그래, 친하기는 친하지. 근데 계속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거란의 영웅인 아버지를 죽인 야율아보기가 아닌가.

게다가 금강은 매우 영악한 자이다. 마치 여우와 같다. 그런 자와 연합을 한다고 해도 중원에서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막상 생각해보니 이득이 크지는 않을 것만 같다.

뭔가 얻기야 하겠다만, 금강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기껏해야 땅 조금을 얻을 것만 같다.

"아직은 조금만 더 기다려보지."

"예, 폐하."

금강이란 두 글자를 가슴속에 새기다 보니 어느새 침착함을 찾았다.

지금 굳이 급하게 만리장성을 넘을 이유가 없다. 승리를 확신할 수도 없으니 딱 지금에서 만족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 *

후당.

한참 오대십국의 시대로 중원이 혼란스러울 시기.

당나라의 뒤를 이어 일어난 후당의 황제 이종가는 석경당을 천평군 절도사로 좌천시켰다.

천평군 절도사 석경당.

절도사의 직책만 봐도 일반 관직의 자리는 아니지만, 석경당이 지금껏 공을 세운 것을 생각하면 황제 이종가가 그에게 이럴 수 없다.

"빌어먹을! 내가 그간 이 나라를 위해 얼마나 헌신을 하였는데, 황제가 어찌 나에게 이럴 수 있는가!"

뒤통수도 이런 뒤통수가 없다. 차라리 정면에서 대놓고 칼질을 하든지. 천평군 절도사라니. 이전의 직책을 생각하면 이건 그야말로 대놓고 얻어맞은 격이나 다름이 없다.

근자에 저를 너무 의심하고 경계한다 했더니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황제가 되는 것이 낫지 않나?"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좌천은 곧 저를 믿지 못한다는 뜻. 게다가 아마 좌천만으로 끝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의심의 싹을 틔웠다면 언젠가 군사도 몰고 올 터. 이렇게 당할 수야 없지. 안 그런가?"

""예! 절도사!"."

충성스러운 신하들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황제가 되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군사를 일으키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황제가 신하를 믿지 못한다면, 그래서 부조리한 죽음을 요구한다면 석경당은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하지만 무작정 일어나기엔 황제의 세력은 강력하고 자신의 세력은 아직 약하다.

그렇다면 뭔가 자신을 지원해줄 세력을 찾아야만 한다.

"이왕이면 군사가 강한 나라가 좋겠지. 그렇다고 남쪽의 나라들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기에는 그들도 튼실하지 못하고."

그렇다면 지원 세력으로 삼을 만한 나라는 요나라와 부여연방이다. 요나라는 북방 오랑캐 거란족이 세운 나라다. 유목민족 특유의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러나 거란의 요나라는 부여연방이 성립되기 전 백제와 고려에게 패배하였으며 백제의 왕자이자 연방의 총리인 금강에 의해 지금의 황제가 옹립되었다.

"요가 우리를 지원할 수 있나?"

어쩌면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 다만, 세력이 적은 만큼 요를 설득하기란 어려울 것이며 그만큼 요에 내줄 것도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부여연방이라는 나라는 어떠한가.

2국가 연합체제다. 고려의 여제인 대연화와 백제의 황제인 부여신검의 승인 아래에 금강이 설립한 2왕조 연합국가.

유목제국 같은 고려와 강력한 신무기 보병군단을 가진 남방계 국가 백제의 연합체.

강하기는 강할 것이다.

얼마 전 금강은 저 일본까지 정벌해 연방에 흡수하였다고 하니 연방의 기세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볼 수 있다.

상인들로부터 들어온 소식으로는 그러했다.

연방이란 기이한 나라가 지금은 천하의 강국이라고.

"심지어 고려의 가독부를 아내로 두고 백제의 황제가 형이라고 하지."

요동과 조선반도, 왜까지 통합하였다면 그 인구는 지금 중원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상당한 수준일 터.

"심지어 저 삼한 놈들은 유일하게 중원의 천자국들과 싸워 수차례 승리한 자들이다. 이제 저들의 세가 더 강해졌으니, 군세도 상당할 것이다."

삼한도 결국 중원의 천하질서에서 볼 때는 오랑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중원을 조금이라도 모방하는 민족인 만큼 저 야만스러운 거란 같은 족속과 다르게 그래도 말이 통할 것이니 야율배보다는 금강과 연결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백제의 신무기는 무시할 수 없다고 들었다. 백제가 연방을 이루고 그리 세를 키운 것은 결국 무기 탓도 클 것이다.

더군다나 중원이 한참 뒤엉키고 싸울 때 금강은 부를 축적해왔다.

석경당 본인도 은근히 그 덕을 봐서 세를 키웠다.

"그런데 그 총리란 지위는 대체 어떤 지위인가. 고려와 백제의 황제라는 자들 역시 상징으로 남지 않았나."

오랑캐의 국가들이 어느새 칭제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 연방의 기세를 보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총리라는 지위는 두 나라의 황제를 아래에 두고 있는 있는 자리라는 뜻인가.

"오랑캐들이 잘도 그런 자리를 만들어냈군."

황제보다 높은 자리라.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뭔들 못하랴. 총리에게 무릎 꿇을 수 있다.

"좋다. 한 번 해보자. 내 직접 연방의 수도인 평양으로 갈 것이다."

어차피 여기서 가만히 있어도 죽을 것이 뻔하다. 차라리 황제가 미쳐서 군사를 보내기 전에 발리 평양으로 가 연방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 * *

평양이 이제 그럴듯한 구조를 갖췄다.

옛 고구려의 안학궁이 있던 자리가 총리부 건물로 새롭게 발돋움하였다. 평양에는 연방 최정예군이 있으며 평양에 사는 백성들 역시 연방에서 나름 잘사는 집안들이다.

"각하, 현재 연방은 전하께서 개발하신 문자와 한문을 섞어 쓰고 있으며 다민족연합체라 언어의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흠. 그럼 연방의 명으로 전국 각지에 문자를 반포하도록 하지."

"예, 각하."

조선보다 앞선 한글 반포를 하여 한글 아래 열도와 반도 북방이 모두 통합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의외의 소식이 총리부로 흘러들었다.

"각하. 당나라의 석경당이 사신으로 당도했습니다."

"석경당이?"

석경당이라면 분명 후당의 천평군 절도사가 아닌가.

원래 공을 세울 만큼 세우고 후당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결국 황제 이종가에 의해 좌천당하고 신경전을 벌이다가 거란의 도움을 받아 당을 무너뜨리고 후진을 건국하는 양반이다.

뭐 결국 거란의 도움을 받은 만큼 비참한 말로를 걷게 되지만, 오늘 보니 적어도 이 역사에서는 아닌 듯싶다.

"게다가 오히려 시기가 빨라졌지."

원래대로라면 936년에 들고 일어나는데, 지금은 935년이다.

아마 내가 요동에서 중원과 교역하며 또 뭔가 바뀐 것 같다.

어디 한 번 석경당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지.

나는 총리부 연방국회장에서 석경당을 맞이했다.

후당의 사신이라 칭하고 평양에 찾아온 석경당은 그림에서 나오는 대로 꽤 중후하게 생긴 편이었다.

석경당은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부여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그런데 그 주둥이에서 나온 소리는 참으로 듣기 민망한 소리였다.

하늘 아래 고려와 백제의 황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신에게 황제라 불린 것이다.

"부여제국의 황제 폐하라니. 대당의 천평군 절도사께서는 소식이 느리신가. 제국이 아니라 연방이지. 황제 폐하가 아니라 총리 각하라 부르시게."

내 말에 석경당이 얼굴을 찡그렸다.

내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라 뜻을 잘 몰라서겠지.

총리에 각하라니, 아마 석경당 입장에서는 기이한 말일 것이다.

"허허, 이 외신이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외신이라니. 네놈이 왜 왔는지 내가 뻔히 아는데.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이종가와 사이가 안 좋다던데?"

내 말에 석경당이 깜짝 놀랐다.

그럴 만도 하지. 지금껏 연방을 만드느라 중원에 신경 쓸 틈이 없을 텐데 잘도 자기 사정을 알고 있으니까.

"그것을 어찌……."

"그래서 군사를 일으키려는데 막상 일으키려고 보니 세가 부족해서 당을 이겨 내는 데 실패할 거 같다, 이것이 아닌가?"

원 역사에서도 그래서 거란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군사원조에 대한 대가로 연운 16주를 그대로 거란에게 바치고 만다.

그러니까 나도 그 정도는 받아야겠지.

"각하께서는 어찌 그리도 제 사정에 밝으십니까?"

이놈이 각하라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황제라고 부른 거네.

"중원이 돌아가는 사정쯤이야 잘 알고 있지. 당나라는 어쨌든 우리 백제를 패망시켰던 나라가 아닌가."

지금의 후당이 황실과 이전의 당 황실이 다른 핏줄이라 해도, 어쨌든 후당은 당을 계승했다. 지금 백제가 부여씨 백제를 계승한 것처럼 말이다.

한마디로 당은 백제에게 있어 철천지원수다.

"그, 그렇습니다."

"의자대왕께서 당나라 소정방에게 그 굴욕을 당하고 하늘 아래 위대한 부여족의 수장으로서 선비족이 섞인 당 황실에 무릎을 꿇었으니 천년의 한이로다. 당은 고려에게 역시 원수의 나라니 연방에게 있어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나라. 그 나라의 사정에 밝은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명분은 충분하다. 당나라는 씹어먹어도 부족하지 않은 국가. 이 정도만 들어도 석경당은 나를 설득하려 들 것이다.

"이미 다 알고 계시다 하니 굳이 더 이야기를 돌리지 않겠습니다. 군사를 지원해주십시오. 이 천평군 절도사 석경당은 총리 각하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석경당이 내 앞에 무릎까지 꿇었다.

원래 이렇게 아부를 잘하던 성격이던가. 그러니까 자기보다 나이가 한참 적은 야율덕광에게도 아버지 황제라 한 것인가.

"일어나시게."

"예?"

"결국 당 황실을 뒤엎겠다는 뜻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뜻. 그 말인즉, 새로운 황제가 되겠다는 의미지. 안 그런가?"

실제로 원 역사에서도 석경당은 당 황실을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운다. 아마 지금 그의 마음속에는 황위에 대한 꿈이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나한테 저리 깍듯하게 굴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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