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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98화 (98/154)
  • 98화

    호족 연합군의 회의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금강이 다타라에서 죽어주면 그보다 좋은 일도 없으나, 설령 다타라에 보낸 연합군을 무찌르고 돌아온다고 해도 그 안에 애술과 상귀의 군대를 뚫어버리면 그만인 문제다.

    "아니, 잠깐. 신중히 선택해야 할 문제요."

    "아직 수는 우리가 더 많소이다! 지금 치면 분명히 적들을 몰아낼 수 있소이다!"

    연방군은 오로지 금강이 중심이다. 아무리 신무기를 들었다 해도 약점이 있다. 기병을 보낸다면 그 신무기는 무력화시킬 수 있다.

    "군량도 좋지 못하니 뭔가 해야 하오."

    "맞소이다. 여기서 더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오. 이미 지나간 일, 군량이 떨어지기 전에 뭔가를 이루어야 하오."

    결국 몇몇 반대를 무릅쓰고 헤이안쿄의 호족 연합군은 금강이 빠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호족 연합군은 총병력을 이끌고 헤이안쿄를 나와 애술과 상귀의 군대를 향해 공격을 명했다.

    "자랑스러운 일본의 남아들아! 외적인 연방군을 격퇴하고 일본을 지키자! 전군! 총공격하라!"

    그렇게 호족 연합군의 자살 공격이 시작되었다.

    * * *

    "장군, 놈들이 헤이안쿄를 나왔습니다!"

    애술은 부하의 보고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총리의 군대가 빠진 지금을 노리다니. 앞뒤로 포위 공격을 못 한 것은 칭찬해줄 수 없으나, 이번에는 저 멍청이들이 기회는 잘 잡았다.

    일단 연방군은 여전히 수가 적다. 지난 전투에서 호족 연합군의 피해가 컸다고는 하나 한번 노려볼 만하다.

    밤에 몰래 빼낸 병력으로 연방군을 포위섬멸 못 한 것은 욕을 먹어도 마땅하지만, 이번 공격은 제법 승산이 있는 공격일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평범한 군대였다면 먹힐 만한 전략. 딱 그 정도다.

    "화총수와 포병들은 준비하라!"

    "예, 장군!"

    호족 연합군의 군대가 사방에서 공격을 해온다. 대략 2만에 달하는 군세. 지난 전투로 구주 호족군의 피해가 있던 연방군은 수비태세를 갖췄다.

    가만히 보니, 그래도 괜히 맞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꼴에 본 것은 있다 그건가."

    탕 탕탕!

    "끄아아악!"

    호족 연합군의 병력은 연방군에 닿기도 전에 총과 화포로 큰 피해만 입고 있었다.

    애술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정말 답이 없다고 여겨졌다.

    "처음에는 그래도 기회를 잘 잡았구나 싶었는데, 너무 상대를 높이 봤던 것 같소이다."

    "저 꼴을 보니 그냥 처박혀서 굶어 죽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소이다."

    대체 저 어리석은 것들은 무엇인가. 몇 번이나 공격해서 통하지 않으면 가만히 처박혀 있을 일을 굳이 나와서 피해를 더 보고 있다.

    전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다. 호족 연합군의 총공세는 연방군에게 닿지 않았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생각 외로 피해 커져 버린 호족 연합군은 다시 헤이안쿄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야말로 꽁지가 빠지게 도망친다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인물들이었다.

    "이대로 추격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괜히 추격하다 아군의 피해만 늘 수 있소이다. 딱 이 정도에서 끝내고 전하께서 오실 때까지 지키면 되는 것이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이대로 몰아붙이다가 물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호족들이 뺀 군대가 1만이라 들었습니다. 전하께서는 고작 1천만 데려가셨는데, 되겠소이까?"

    구주의 호족이 헤이안쿄로 후퇴하는 호족 연합군을 바라보면서 애술에게 물었다.

    "허허허. 구주의 호족들은 뭘 모르는군. 그 정도로 가실 분이셨으면 진즉에 가셨어야 했을 뿐이오. 북방에서는 단신으로 말갈군 수만 명을 회유하였으며 단신으로 반란도 평정한 인물이 바로 전하요."

    그런 사람이 이런 곳에서 죽을 리가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믿고 보낸 것이다. 만일에 금강이 아닌 신검이었다면 싫다고 해도 군사를 더 데려가라 했을 것이다.

    "그런 영웅이란 말입니까?"

    "괜히 마한패왕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지."

    금강이란 사람이 괜히 마한패왕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이한 힘을 가지고 있다. 모두들 쉬쉬하고 있으나, 마한황제조차도 금강이 보통 인물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는 호족군을 포섭하려 하겠지."

    "그럴 것이오. 뻔하지. 돌아오실 때는 몇 배로 불어난 병력을 끌고 오실 겝니다."

    그리고 이제 그 패왕의 힘이 일본열도에도 미쳤으니 앞으로의 일이 연방의 장수들로서는 기대가 되었다.

    * * *

    다타라의 일을 정리하고 헤이안쿄로 돌아왔더니 전장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전투는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여전히 연방군은 밖에 있었다.

    "음, 아직 헤이안쿄에 남아있나?"

    "예. 전하. 놈들은 거듭 패배한 뒤 헤이안쿄에 꽁꽁 숨어 있습니다."

    그랬으면 헤이안쿄를 점령하지 않고 뭣한 건지 모르겠다. 다타라에서 호족들을 제압하고 급하게 올라온 내 꼴이 말이 아니다.

    "장수들의 성격이 참 좋지 못해. 이거야말로 그냥 굶겨 죽이겠다는 뜻이 아닌가? 그냥 적당할 때 끝내버리지."

    "전하께서 계시는데, 소장들이 어찌 그러겠습니까?"

    어차피 전쟁은 끝이 났다. 헤이안쿄의 귀족들도 이제는 지쳤겠지. 그렇다면 마지막 공격으로 끝을 내야 한다.

    "그럼 슬슬 헤이안쿄로 들어가지."

    "예, 전하."

    나보고 마지막을 장식해달라니 해줘야지.

    "이제 더는 봐주지 않겠다. 투석기와 화포를 동원하라! 헤이안쿄를 끝장내서 반군들을 진압할 것이다!"

    콰앙! 퍼벙! 퍼엉!

    회회포와 화포를 동원해서 본격적으로 헤이안쿄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화약을 아끼지 않고, 오로지 헤이안쿄 하나만을 없애기 위해서, 일본이란 나라가 백제에 흡수될 것이라는 걸 알리듯이.

    "항복! 항복하겠소이다! 그러니 여기까지만 해주시오! 부탁이오!"

    "웃기고 자빠졌군. 뭣들 하느냐. 계속 쏴라!"

    그렇게 한참 날리다 보니 헤이안쿄는 완전히 박살이 났다.

    하나하나 전부. 뭐 성한 곳이 없었다.

    전투는 끝이 났다. 헤이안쿄에서 있는 대로 포격을 당한 호족 연합군은 이제 싸울 의지를 완전히 잃었다.

    병사들이 별로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죄다 도망간 모양이다.

    호족들을 잡아다 내 앞에 무릎을 꿇렸다.

    "어찌 천황이 머무시는 곳을 이렇게 부술 수 있다는 말이오! 부여금강이란 작자는 폐하의 사위가 아니오?"

    사위? 사위기는 하지.

    다만 내가 일본의 황족이라면 모르겠는데, 단순히 사위기 때문에 굳이 일본의 수도까지 봐줄 생각은 없다.

    애초에 백성들도 죄다 나가버린 도시다.

    끽해야 호족들이 병사들을 주둔시켰을 뿐이지.

    자, 그럼 지금부터 책임을 전가할 시간이다.

    "어차피 도시야 새로 지으면 될 일. 그리고 헤이안쿄를 부순 것이 어디 우리의 잘못이냐? 너희가 먼저 불태웠겠지?"

    내 말에 호족 연합이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 나를 노려본다.

    그래, 그래. 억울하겠지. 그런데 꼬우면 이기라 그 말이야.

    "우리가 언제 불태웠다는 것이오? 우리는 불태운 적이 없소!"

    "진짜 없을까? 있을 텐데? 그러니 불이 그리 확 타올랐지. 아니야? 자꾸 이렇게 우기면 호족으로서의 체면도 말이 아니지 않아?"

    내 말에 호족들은 눈에 핏발을 세웠다.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소!"

    "적어라. 이 자들은 전투 중에 천황에 대한 불만으로 헤이안쿄를 무너트렸다, 라고."

    "예! 전하."

    "뭐라 하는 것이오? 대체 무엇을 적고 있는……."

    "뭐긴 뭐야. 너희들이 증언한 대로 헤이안쿄를 부쉈다고 적었지."

    어차피 승자는 연방이다. 이놈들은 죽을 운명이고. 그러니 역사를 기록하는 승자로서 이 정도 왜곡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늘이 두렵지 않으시오? 어찌 거짓으로!"

    "천황에게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키려 한 것은 잘하는 짓이고? 시발 것들아?"

    "그, 그건……."

    결국 모든 것은 너희들의 반란 탓이다. 그런 주제에 누구한테 책임 전가를 하는 것인가? 우리는 정의롭게 일어나 반란군을 평정한 연방군일 뿐. 우리로 하여 황궁을 불태우게 만들고, 헤이안쿄의 몰락을 초래한 호족 반군과는 다르다 이 말이다.

    "그건 뭐? 설마하니 면죄부를 달라고? 어차피 너희들은 목이 떨어질 운명이다. 장인께 반기를 든 죄는 똑똑히 치러야지."

    "자, 잠깐만…… 잠시만!"

    꼴에 살고는 싶은가 보지? 그래도 어쩌냐. 살려줄 마음 자체가 없는데.

    "잠시만은 무슨 잠시만. 자, 뭣들 하느냐. 목을 베라. 완산주에 있는 장인에게 갖다 바칠 것이다."

    "예! 전하!"

    호족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것으로 훗날 호족의 난이라고 기록에 남을 역사적 사건이 하나 종결된 셈이다.

    본격적으로 망가진 헤이안쿄를 수습해보려 하는데, 건질 만한 것이 너무 적다. 장안성을 본떴다는 헤이안쿄는 도무지 복구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다 치우고 인력을 투입해 다시 개발하는 것도 큰 문제겠지.

    어쩔 수 없이 항복한 병사들과 더불어 인근 백성들을 불러 모아 헤이안쿄를 수습하게 하였다.

    "이제 다타라에서 가능한 많은 군사를 징집해서 열도의 치안을 확보해야 하니 호족들은 나를 잘 따라야 할 것이네."

    다타라만이 아니라 구주 호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하겠습니다."

    "소신들도 연방의 질서를 따르겠습니다."

    구주의 호족들도 이때랍시고 사병을 더 내놓는다더라.

    나쁘지 않지. 스스로 고개를 숙이겠다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땅을 떼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애술과 상귀에게 군사를 나눠주어 헤이안쿄 인근 지억의 치안을 확보했다.

    그리고 나는 최승우를 따로 불렀다.

    오랫동안 일본 공략에 힘을 들인 그다. 따라서 이번에는 좀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전하, 그러나 천황께서 기거할 곳이 없는 것이 문제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장인이 돌아왔을 때 맞이할 것은 다 타버리고 백성들조차 사라진 헤이안쿄가 될 것이다.

    당장 지금도 멀쩡한 건물만 몇 채 사용하고, 관아로 쓰일 건물만 포로들을 이용해 건설하고 있을 뿐이다.

    "뭔가 방법이 있습니까?"

    "애초에 이제 이 헤이안쿄는 수도로서 기능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차라리 수도를 천도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천황이 떠난 시점에서 헤이안쿄는 그 운을 다했다.

    일본의 천명 자체가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천도할 곳이 마땅치 않을 텐데."

    "아예 이참에 새로운 수도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답안이다.

    어차피 땅이 늘어나면 그만큼 수도를 두는 것이 맞다. 발해가 그러했으니까.

    "새로운 수도라. 그거 나쁘지 않군요."

    "예. 일본을 백제의 품으로 온전히 들어오게 하려면 일단 무늬만이라도 수도가 남아있어야 합니다."

    "그리합시다."

    한동안은 천황을 대신하여 일본을 좀 주물러야 하니 일본에 머무르기로 했다.

    일단 반란을 진압은 했어도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수도도 낼름 다른 지역 선택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적어도 보험은 들어둬야 했다.

    "우선 완산주와 중경, 연방정부에 사람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예.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잔당들을 처리해야 합니다. 본국에 군대를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주력군은 몰살시켰지만, 지방 전부를 통제하려면 지금보다 많은 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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