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97화 (97/154)

97화

"전하, 황궁이 완전히 전소하였다고 합니다."

황궁이 불탔다라, 그걸 제시간에 끄지 못한 것인가.

"그게 정상이지. 그렇게 기름을 부었는데. 소문은?"

"소문은 그대로 흘렸습니다. 이제 일본의 백성들은 그 누구도 호족군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흐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걸로 호족들이 정말 개자식들이라는 것이 알려졌을 것이다.

"잘 되었군."

"전하, 이제 공격의 때가 아닙니까?"

확실히 지금이라면 화약을 퍼부어도 된다.

호족들이 먼저 헤이안쿄를 망쳤으니, 이쪽이 무슨 수를 쓰든 정당화되기 마련이다.

와아아아아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전하! 헤이안쿄에서 호족 놈들의 군대가 튀어나왔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놈들이 정녕 미친 짓인가? 스스로 튀어나왔다고? 놈들을 잡아라! 화포를 쏴 기선을 제압한다."

쾅! 콰아앙!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놈들의 병력이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계속 돌격했다.

이탈하는 병사가 생기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덤비고 또 덤벼들었다.

화총과 화살 세례에 정신을 못 차리고 다 죽어가는데, 호족들은 무슨 생각인지 군을 물리지 않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저 멍청이들이 그냥 꼬라박는다는 말인가."

근접전에서도 적들은 밀렸다.

일당백의 연방군이 칼을 휘두르자 무수히 많은 호족 연합이 무너졌다.

"혹시 전부 포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저리 무작정 돌격한다는 말인가?"

이상하다. 그냥 죽으러 오는 건가? 정말 다 포기하고?

싸운다 해도 저런 건 좋지 못하다. 차라리 헤이안쿄에서 결사 항전하는 편이 나았다. 그게 아니라면 야습이라도 시도한다던가.

역시 머리에 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그냥 그런 호족들이라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상해. 심지어 병력이 생각보다 적은 거 같기도 하고."

굳이 하려면 병력을 나눠 사방에서 우리를 쳐야 옳았다.

우리 병력은 적에 비해 훨씬 열세. 그러니 굳이 맞을 각오로 나와서 공격할 거라면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옳았다.

그리하면 조금이라도 피해는 더 봤을 텐데.

대체 놈들은 무슨 수를 생각하는 건가?

"사, 사람 살려!"

"나는 더 못해! 도망칠 거야!"

호족 연합군의 병사들이 일본말로 뭐라 외치며 이탈한다.

이미 전쟁이 끝났다 여기고 그냥 들이박는 건가, 정말?

이대로 전부 들이박으면 나쁘지 않지. 전쟁도 최소한의 피해로 끝장을 볼 수 있으니까.

저놈들이 가진 병력만 전부 제압하면 결국 일본열도에는 연방군에 저항할 세력이 더는 남지 않게 된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한바탕 쏟아붓고 나서 호족 연합군의 지휘부는 다시 남은 군대를 이끌고 헤이안쿄로 들어갔다.

저게 정말 뭐 하자는 거지?

그냥 수적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정말? 그 정도로 무식해?

"대체 놈들이 노리는 것이 무엇이지? 정말로 없어?"

"허허허. 저놈들은 제대로 된 전쟁 한 번 치러보지 못한 놈들입니다. 섬에만 처박혀 있으니 뭘 알겠습니까?"

상귀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다.

뭔가 감이 좋지가 않다. 분명 뭔가가 있다. 답답해서 쳐들어온 것 치고는 생각보다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나.

적당히 얻어맞았을 때 도망쳤어야지. 군사들 상당수가 이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까지 싸웠다.

"안 되겠다. 기분이 이상해. 정찰병을 풀어 주변을 샅샅이 뒤지게 하라."

"예?"

"그냥 무시해서는 안 되겠어. 이상하지 않나. 혹시라도 대군이 움직인 적은 없는지 알아봐야 한다."

"예. 급히 정찰병을 풀겠습니다."

그리고 내 불안한 예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전하! 백성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지난밤 헤이안쿄에서 군대가 나왔다고 합니다."

"군대가?"

그렇다면 오히려 앞뒤로 우리를 쳤어야 할 일이 아닌가. 우리가 대응한다 해도 포위당하면 전투는 호족군이 더 유리해졌을 텐데. 오히려 헤이안쿄에 남은 군대만 대패를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아니지. 그것도 솔직히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전쟁 한 번 안 해봐서 서로 손발이 안 맞아도 얻어맞는 아군을 보고 가만히 있을 바보는 없다.

"잠깐만, 그럼 설마……."

"혹시 군사를 따로 빼 다른 곳을 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한 곳밖에 없지."

다타라다. 다타라. 저놈들이 이미 말아먹은 전쟁이니 뭐라도 해보겠다고 마지막에 내던진 것이다.

그리고 공격하는 것이 바로 다타라. 연방군이 상륙하도록 내버려 두고 연방군과 연합을 한 다타라를 치려는 것.

이미 다타라로 상당히 진군했을 것이다.

전투를 한참 치를 동안 다타라로 가는 것을 낌새도 몰랐으니 이거 큰일이다.

"지금 다타라에 수비 병력이 얼마나 있지?"

"수백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젠장! 군을 나눈다. 다타라로 향하는 호족군을 막아야 한다!"

설마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그 멍청한 놈들이 그냥 양쪽에서 우리를 치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다타라를 친다면 연방국으로서 지켜야만 한다.

"소장이 군사를 끌고 가 놈들을 도륙하겠습니다."

"내가 부여군을 이끌고 가겠다."

이건 내가 가는 것이 맞다. 헤이안쿄는 애술의 군사들이 적당히 포위하고 화포 시위만 해도 제대로 공격도 못 할 것이다.

"전하께서 친히 말씀입니까?"

"오히려 이건 기회기도 하다. 나는 그놈들보다 많은 말갈 놈들을 단신으로 무릎 꿇렸다. 그러니 불가능하지 않아."

말갈 놈들도 내 앞에 무릎 꿇었는데, 일본이라고 다를까.

오히려 이 시기의 일본은 말갈보다 훨씬 약하다.

임진왜란 때도 여진족에게 맞은 게 일본군이었고. 그러니까 호족들만 제압하면 군사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예. 전하."

"기병으로 추격하면 놈들이 다타라에 닿기 전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자 부여군들은 모두 나를 따르라. 애술 장군은 이곳에 남아 혹시 모를 놈들의 도발을 원천 봉쇄하시오. 군이 빠진 것을 알면 놈들이 군을 나눠 다시 칠 가능성이 크니."

"예, 전하!"

부여군을 이끌고 한참을 달렸다.

다타라는 꽤 세력을 확장한 상태였다. 놈들이 작정하고 군사를 보냈다면 연방이 일본을 흡수하기 전에 다타라의 세력권이 흔들릴 수 있다.

한참 달리자 다타라 근처에서 놈들을 조우했다.

"네 이놈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오는 것이냐!"

지금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그, 금강? 금강이다!"

"놈은 혼자다! 금강을 죽여라!"

얼씨구? 주제도 모르고 덤벼드네. 내가 장수들이 없으면 약해 보이나?

호족 연합의 병력들이 무기를 아무렇게나 뽑아 달려드니, 부여군들이 그 앞을 막았다.

"감히 이놈들이 어디라고! 전하를 보호하라!"

"화총수들은 총을 쏴라!"

탕! 탕탕탕!

총탄이 호족 병사들을 잡을 때마다 호족 병사들이 주춤했다.

"놈들의 무기는 한 번 쏘고 나면 준비를 해야 한다! 얼른 쳐라!"

무기의 성능을 어느 정도 파악한 호족이 공격을 명해도 지레 겁을 먹은 병사들이 저항할 리가 없었다.

"아주 그냥 내가 물로 보이지? 이 왜놈들아!"

콰직!

부여군들이 뒤에서 엄호사격을 하고 나는 앞으로 달려다가 호족군에게 말을 들이박았다.

보군이 중심인 호족군은 기병이 주력인 부여군의 공격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훈련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호족들의 질 떨어지는 보병과 험난한 북방과 삼한에서 전투 경험이 풍부한 기병 특수부대. 당연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저, 저 미친 작자가! 막아라! 놈을 죽여라!"

너희들이 나를 막을 수 있다고? 퍽이나.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라! 내가 바로 금강이다! 부여군들은 뒤를 따라라! 엄호사격을 하라!"

탕! 타탕탕!

부여군의 총병과 창기병의 공격에 다타라에 쳐들어온 호족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나는 창을 들고 단숨에 호족군 사이로 파고들어 창을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이 나가떨어진다.

"이런 미친놈이!"

"야, 이놈들아! 그게 전부냐? 다 함께 덤비지 못하고 무얼 하느냐? 너희들이 직접 덤벼 보아라!"

"오냐, 그리도 바란다면 해주마!"

호족들이 내 도발에 넘어가 무기를 빼고 달려들었다.

병사들의 대오가 다 무너지고 나서 덤비는 주제에 나를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건지 기세 하나만큼은 대단했다.

"내가 니들보다 젊다고 약할 거 같냐?"

상식적으로 왕족이 단신으로 나와 싸우는데 뒤에 수하들이 엄호사격만 하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이지 않나?

왜 그런지 놈들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순식간에 검으로 호족 한 놈의 목을 베자 다른 호족들의 검이 내 몸에 쇄도했다.

당연히 그게 통할 리가 없었다.

호족들의 검과 창은 기세 좋게 내 몸에 닿았다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콰직!

이유는 늘 그렇듯 내가 금강이기 때문이며 놈들의 무기는 우리 군의 무기에 비해 한참 질이 떨어진다.

내 몸에 닿아 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뭐 저런 말도 안 되는…… 저게 사람이라는 말인가! 검과 창이 통하지 않는다니."

"말도 안 돼. 이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놀라는 호족들을 향해 발로 차 쓰러트렸다.

이쯤 되자 당연히도 말단 병사들은 회의감이 들었는지 딱히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타협점을 볼 수 있다.

"자, 남은 병사들은 어찌할 것이냐! 너희들이 죄를 인정하고 항복을 청한다면 특별히 나 부여금강의 이름을 걸고 살려줄 것이니라!"

어차피 호족들을 제외하면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말단 병사들 뿐이다.

이미 잡을 만큼 잡았으니, 겁을 주는 정도로 괜찮을 것이다.

"항복하지 마라! 싸워라!"

"이대로 싸워 반란군으로 죽겠느냐. 아니면 고향으로 내려가 농기구를 들고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 것이냐!"

결국 호족의 병사들은 하나둘 항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헤이안쿄의 전장이다. 저쪽은 과연 어떻게 돌아갈까.

* * *

헤이안쿄.

호족 연합군 수뇌부는 연방군의 병력이 눈에 띄게 줄은 것을 보고 회의를 소집했다.

"놈들의 군대가 좀 줄은 듯하오."

반 토막 난 수준은 아니지만 군대가 확실히 줄어든 모습은, 호족 연합군에게 약간이나마 희망을 주었다.

"그래봤자 우리가 지난밤 놈들에게 바친 병력만 하겠소?"

병사들을 뒤로 빼 다타라를 잡겠다고 헤이안쿄의 호족 연합군 본대가 시선을 끌었으나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 컸다.

너무 상대를 얕보고 있었다. 설마하니 그 잠깐의 공격으로 그만한 피해가 나올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왜 또 그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오?"

"안 나오고 배깁니까? 피 같은 내 군사들이 다 죽었는데. 차라리 그때 앞뒤로 쳤으면 조금 더 사정은 좋아졌을 겁니다."

호족들은 각기 후회하는 자들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정말로 다타라로 빼지 않고 아예 앞뒤나 좌우에서 쳤으면 적들을 헤이안쿄에서 몰아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승리를 확신할 수도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오?"

"다타라를 치면 뭐라도 되는 줄 아오? 우리 군대가 빠져나간 것도 연방 측은 모르고 있었소. 그때 앞뒤로 후려쳤으면 적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오. 우리가 다타라를 공격한 것은 그다지 소득이 없었다 이 말이오."

연방이 알아챌 것을 대비해 앞에서 시선을 끌기 위해 군사를 낸 것이었는데, 의미가 없어졌다.

"그럼 지금이라도 치던가."

"그렇소. 알아보니 금강이 빠졌다고 하오. 지금이라면 적들을 칠 수 있소."

"맞습니다. 금강이 빠진 연방군은 아무것도 아니오!"

금강과 최정예 부대가 빠졌다.

그 수만 해도 1천이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