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대마도.
"저곳이 대마도인가."
상귀는 저 멀리 섬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다지 별 볼 일 없는 섬이기는 한데. 그래도 저 섬이 일본의 경략 교두보라고 하면 나쁠 것이 전혀 없다.
저 대마도를 시작으로 일본열도로 들어가야 한다.
"장군. 방포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대마도에서도 백제군을 맞이하러 나오기라도 했는지, 백제군에 비하면 한참 질 떨어지는 무기를 든 왜소한 체구의 군사들이 보였다.
저것도 군사라고 데리고 있는 건지. 장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생각이 없는 놈이 틀림없다.
아니면 역시 일본은 고작해야 백제 밑에 있을 나라에 불과한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생각보다 전투는 쉬울 것이다.
"쯧쯧, 한심한 놈들 같으니. 저걸 병사라고……. 안 되겠다. 우리 백제군의 힘을 보여줘야겠다. 화포를 방포하라!"
펑! 퍼버버벙!
배에 설치된 화포가 쇠 포탄을 날렸다. 대마도의 해안가를 방비하던 대마도의 수군들은 쇠 포탄이 떨어지자 허둥지둥하더니 모래알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고작 저 정도로 우리 연방에 맞서려 한다는 말인가. 쯧쯧쯧. 신무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승리를 할 수 없는 마당에 저 난리라니."
그렇다면 어쩌겠는가. 연방군으로서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결과다. 신무기에 대한 정보 때문에 괜히 막겠다고 설치는 것보다는 덜 귀찮을 테니까. 다만 장수로서 싸울 맛만 나지 않을 뿐이다.
"저건 도대체 무슨 무기냐?"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퇴각! 퇴각하라!"
대마도 병사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확인하던 상귀는 안 그래도 흩어지고 있는 군사들이 점차 해안가를 버리려고 하자 상륙을 준비했다.
"호족군들은 상륙하라! 수군들은 호족군이 상륙할 수 있도록 엄호한다!"
"예! 전하!"
퍼버버벙!
포탄들이 다시 해안의 대마도 군사들을 포격했고, 대마도 병사들은 급하게 섬 안쪽으로 숨어 들어갔다.
이 틈에 대마도 정벌에 참가한 호족군들이 일제히 상륙을 개시했다. 그 수만 해도 무려 3천에 달하며, 조총을 익힌 수군과 부여군들도 함께 상륙을 했다.
아직 남은 대마도의 병사들은 연방군의 상륙을 막고자 맞서 싸우려 하였으나, 후삼국 분열 시대를 겪으며 단련되어있던 호족들의 군대나 정예훈련을 받아 전투력이 상당한 부여군들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연방군이 대마도 군을 격파했다.
탕! 탕탕탕!
화총이 총탄을 쏠 때마다 일본 병사들이 힘없이 쓰러져 갔다.
"대체 백제군은 무슨 무기를 사용하는 건가!"
"사람 살려!"
그나마 맞서 싸우던 대마도의 병사들 역시 뿔뿔이 흩어졌다.
이래서야 싸울 맛이 안 난다. 일본 본토도 이 지경일까.
"전하께서 은광을 확실히 얻어두라 하셨지."
대마도에 존재하는 은광. 그것을 반드시 얻으라 하셨다. 그러니 대마도의 병력을 다 집어삼키고 속전속결로 잡아야만 했다.
단순무식한 상귀는 오로지 금강의 명을 따라 대마도를 얼른 점령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상륙한 연방군은 일제히 대마도 각지를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다.
워낙 좁아터진 섬이기도 했으며, 인구수도 적어 애초에 대마도가 연방군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장군, 놈들이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고 있습니다!"
"이 기세를 늦추지 마라. 추격하여 모조리 도륙해야 한다! 호족들께서 총리께 잘 보이려면 공을 세우셔야 할 것이오!"
"예! 장군!"
연방군은 대마도의 남은 숨통을 끊어내기 위해 패잔병들을 추격하여 섬멸하였다.
특히 호족들은 이참에 공을 세우겠다고 열심히 대마도를 물어뜯었다.
심지어 대마도로 도망쳐 살던 신라인들을 포로로 잡는 전공을 세웠으며, 해적질하던 대마도인들도 붙잡았다.
"항복할 테니 그만하시오! 백제에 항복하겠소이다!"
"뭐라는 거야? 남은 무리들을 베고 섬을 완전히 장악해야겠다!"
"예!"
연방군이 휘몰아친 대마도는 너무도 쉽게 떨어지고 말았다.
저항하지 않는 자는 살아남았으나 신라인과 일본인 포로들이 무수히 많았으며, 대마도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본의 관리도 잡아 죽였다.
그리고 이 소식은 일본열도 전체에 알려졌다.
* * *
헤이안쿄.
대마도가 연방군에게 떨어진 사실을 알게 된 호족들은 각자 힘을 기르다가도 다시 헤이안쿄에서 만남을 가졌다.
"연방군이라는 군대가 대마도에 상륙하여 대마도인들을 잡았다고 합니다! 이제 이 일을 어찌합니까?"
"우리가 연방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태봉, 신라를 흡수하여 거대해진 백제와 북방의 대국인 고려의 연합이 바로 연방이며 그 군대는 연방군이다.
"그렇다 해도 하필 이럴 때 백제군이 침공해오다니요!"
한참 서로 독자적인 힘을 기르고 있는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백제군이 아니라 연방군입니다. 연방군은 고려군까지 있다는 말입니다. 쓰시마가 순식간에 점령당했다는 것을 보면 연방은 대군을 이끌고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듣기로는 상륙하고 수 시간 만에 대마도 전체를 장악했다고 하니,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대마도가 너무도 빨리 연방에 떨어진 탓에 호족들은 고려군 역시 대마도 침공에 참여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찌한다는 말입니까?"
"항복을 하거나……."
"항복을 하다니요. 우리들의 주권을 백제에 넘기자?"
그것이야말로 개소리가 아닌가?
아무리 백제가 대국이라고 한들 호족들의 이권을 백제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다. 애초에 항복한다고 해도 금강이 살려주기나 할까?
아닐 것이다. 어쨌든 명분으로는 천황을 돕겠다고 나선 금강 왕자이고 연방일 테니까. 그렇다면 천황에 반기를 들고자 했던 자기들은 죽게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남는다 해도 최소한 밀려나겠지.
"어차피 일본의 호족이었다가 백제의 호족이 되는 것인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고 있소? 천황의 자리도 비어있는데?"
"연방군은 나라 버린 천황이 요청하여 온 군대가 아니오?"
호족들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분열하게 되었다.
연방군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강경파. 어차피 천황이 백제에 가서 군사를 요청한 것이니 순종하자는 온건파. 아예 따로 독립적인 행보를 하려는 중립파.
갈라진 호족들은 도무지 단합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인가. 흥! 이 땅이 연방이라는 놈들에게 짓밟혀도 어디 그리들 떳떳할 수 있는지 두고 보지!"
"흥! 사람은 현실을 봐야 하는 법이오!"
"쯧쯧쯧, 그냥 적당히 틈을 보다 대세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인데. 답이 없군."
결국 그렇게 분열한 호족들은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대마도에 주둔하던 연방군은 다타라에 상륙했다.
* * *
대마도가 연방의 밑으로 떨어졌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전하, 대마도가 마침내 전하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상좌평 최승우가 주름살 가득한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기뻐했다.
벌써? 참 빠르지 않은가. 참으로 속전속결로 끝낸 것을 보니, 상귀는 원 역사에서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을 뿐 어쩌면 명장으로서 이름을 날릴 만한 인물은 아니었을까?
신무기가 있다고는 해도 지휘관이 바보라면 의미가 없다. 장수들의 능력이 좋으니 만족스럽다.
그간 대마도는 조선도 단순히 복속시켰을 뿐, 점령하지는 않았다.
"어찌 내 수중이겠소? 연방의 수중이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권신 같지 않나. 나는 권신이 아니다.
"그게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은광이면 한동안은 써먹겠군."
은으로 은화를 만들어도 되고. 아무튼 일본열도를 전부 장악하면 은광은 물론이오 막대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슬슬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요. 어디 한 번 일본의 호족들에게 사람들을 풀어봅시다."
대마도가 철저하게 박살이 났으니 몇몇 호족들은 항복할 것이다.
"예, 전하. 틀림없이 항복할 것입니다."
"서신으로는 적당히 압박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데 사자를 보내려는 내 예측을 비웃듯이, 대마도를 통해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다.
"전하, 구주의 호족들이 부산진에 당도하였습니다."
아직 사신들을 보내지도 않았는데?
"구주의 호족들이? 일단 들여보시게."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데리고 온 구주의 호족들이 차례대로 내 앞에 무릎 꿇었다.
음, 이놈들이 왜 찾아와서 무릎을 꿇는 건가.
아직 사자도 보내지 않았는데?
"전하, 부디 아량을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무슨 소리인가?"
"전하께서 대마도를 점령하신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것들이 참. 소식 하나는 빠르군
아마 연방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겠지. 그 탓에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다.
다음에는 자기들 차례가 될지도 모르니까.
"나는 너희들 말을 전혀 모르겠는데. 무슨 뜻인가?"
"전하, 소신들은 전하의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길잡이? 그렇다면 일본 공략을 돕겠다는 소리인가?
이놈들 이거 아주 나한테 붙어살려고 발버둥 치는구나.
이렇게 솔직한 놈들 싫지 않지.
"그렇습니다. 본디 구주는 옛 백제가 패망할 때 수많은 유민들이 넘어와 터전을 일구었으며, 지금도 백제인 피가 이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전하! 저희는 연방과 결코 척을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말 한번 잘한다.
"음, 그래?"
"전하! 청컨대 소신들을 굽어살펴주시옵소서!"
굽든지 삶든지 내 마음이기는 한데, 그래도 따질 건 있지 않은가.
어쨌든 이놈들도 장인을 압박한 놈들이 아닌가?
결과적으로 천황이 백제로 오게 한 것은 상좌평의 공이지만 원인 제공은 이 귀족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지원한 군대의 절반이 너희들의 것이 아니었나? 그것으로 장인을 겁박한 주제에 이제 와서?"
"그, 그것은……."
게다가 그 군대의 피해를 입힌 것은 다름 아닌 나다.
"뭐, 너희들도 다 먹고살려고 그런 것이겠지. 지금이라도 스스로 복종해서 다행이네. 그렇다면 일본열도 경략을 너희들이 도와줄 수 있겠지?"
정말로 순수하게 우리를 도울 생각이라면 그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예, 전하. 그럴 것입니다."
"부디 소신들을 이끌어주십시오!"
"그럼 다타라에 서신을 보내둘 터이니 다타라에서 모이도록 하지. 병사들을 모아 지원을 하게."
"예, 전하!"
고분고분해서 아주 마음에 든다.
"이렇게나 빨리 항복해오다니. 이건 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구주의 호족들이라면 핑곗거리가 있으니, 가능성은 있지요."
구주는 연방군이 출정하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을 지역이다.
다타라에 상륙한 연방군이 후방의 구주를 가만히 둘까? 야니다. 다타라에 상륙하기도 전에 제일 먼저 구주를 칠 수도 있는 일이다.
저들의 항복은 졸렬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저들을 앞세울 생각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쨌든 이것은 꽤 괜찮은 수확이 아니겠습니까?"
"예. 이것으로 병력 부족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호족들이 준비를 마치고 출정하면 될 것입니다."
그래. 이제 때가 되었다. 더 미룰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