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73화 (73/154)

73. 신고려와 태봉

* * *

본국이 엉망이니 나라도 처신을 잘해야 한다.

일단 가정문제도 제대로 매듭을 지어야겠지.

그래서 내 정실을 찾았다. 명색이 일본의 황녀니 챙겨줘야 하니까.

소온이야 아직 꼬맹이고.

“잘나신 남편께서는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독수공방시키지 않구요?”

“어, 음. 질투하십니까?”

아니,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아니, 물론 소녀가 정치적인 이유라면 괜찮다고 하였으나, 상대가 가독부라면 너무 높지 않습니까?”

상대가 가독부라서 발해를 먹기 더 쉬운 건데.

“백제와 발해를 하나로 합치기 위한 방책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일본은요?”

“일본 이전에 삼국통일부터 합시다.”

당장은 삼국이 우선이다.

“그래도 일본과 지금 백제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부인의 말대로 일본은 지금 백제를 도모할 힘도 없는데, 심상치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일본이 불만이 많아도 백제를 어쩌지 못한다.

“왜구가 발흥할 것을 염려하셔야 합니다.”

일본은 항상 살기 어려운 시절에 해적들이 극성을 부렸다. 그 해적들이 바로 왜구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와 중국에서 약탈이나 하는 족속들로 유명하지.

분명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는 호족들이 개판싸움을 하고 있다.

“음, 그러고 보니 일본의 사신이 있다고 들었으니 그를 불러서 국서를 전달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군.”

아무래도 최근 고향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이고. 일말의 상의없이 대연화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 미안했는데, 일본일은 제대로 처결해야지.

대내상의 권한은 막대하다.

나는 일본의 사신을 현덕부로 마련된 처소로 따로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그래. 불렀지. 일단은 일본을 돕는 일을 하기 전에 확실히 해둘 것이 있다.

“장인께서 내게 연왕으로 임명한 일에 대해 늦게 나마 따져보려고 하네.”

“전하, 그것은 저.”

일본의 사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사신으로 온 네가 무슨 잘 못이 있겠냐. 다 윗놈들 잘 못이지. 그런데 말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천황이 살고자 그런 수를 쓴 것은 백제를 너무 자극하고 말았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뭐 장인도 뜻이 따로 있으셨겠지. 묻겠네. 사신은 귀족파인가 아니면 장인의 파벌인가?”

“외신은 후지와라의 가신이며 천황폐하의 신하입니다.”

“흐음.”

후지와라는 지금 천황파인가?

애초에 연왕에 대한 제안을 한 것도 후지와라로 알고 있으니. 천황이겠지.

“연왕전하. 아국의 사정을 살펴주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호족들이 지금 천황께 반역을 저질러 각지에서 독립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요동이 일본땅이라 천명하여 잠시 입을 다물게 했으나, 백제에서 온 항의사신 탓에 요동의 일이 다시 호족들의 입이 닳도록 흐르고 있습니다.”

“음.”

이건 신검에게 눈치없다고 못하겠군.

연왕일은 나도 어이가 없었으니까. 견훤이 주도해서 사신을 보냈을 테고, 그 결과 일본은 분열 직전이라는 건가.

“아국을 돕다가 지금 일본의 처지가 말이 아닌 지경이 된 것이로군. 그래. 내가 어찌 도우면 되겠나?”

“일본에서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청컨대 새로운 가독부를 설득하시어 지원군을 내주십시오. 아니면 백제군이라도 청합니다.”

바로 얼마 전에 내전을 겪은 국가에 대놓고 병력지원을 바라다니. 호족들이 군대라도 일으킨다는 건가?

안 그래도 무너지는 왕권이 이번 일로 완전히 박살날 수도 있다는 건데.

“아직은 아니지 않습니까?”

“전하. 천황폐하께서는 전하의 장인이십니다. 이렇게 모른 척 하시면 안 됩니다!”

“누가 모른 척한다고 했나.”

그냥 설마하니 천황가가 무너지겠나. 이런 생각이다.

원 역사도 보면 천황가는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이 정도로 무너질 거라 여겨지지는 않는데.

“발해. 아니, 고려와 일본의 거리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부터라도 미리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귀족들의 사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하께서 백제 본국에 지원하실 수 있다면 그쪽도 나쁘지 않습니다.”

귀족들이 군사라도 일으키겠다고?

“그렇게 급하다는 말인가.”

“심지어 귀족들은 연왕께서 이미 일본의 황녀를 부인으로 맞아들이셨으면서 이번에는 발해의 가독부를 아내로 들였으니, 지금 내친왕전화를 버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연화와의 혼인은 일본에는 알리지 않았다. 듣지 못한 일본의 귀족들 입장에서는 일본의 황녀와 혼인한 나에 대해 의심을 할 것이 자연히 연왕은 그냥 단순히 천황이 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고 붉어졌겠지.

그러게 왜 하필 연왕으로 임명해서 일을 이렇게 만들어.

“고려에서 사신을 보내겠네. 군사는 지원 못하지만 적당히 수작질은 부려줄 수 있지.”

“전하. 부디 병력지원을.”

이거 생각이 없는 친구로구만.

“얼마 전에 고려군을 격파했고, 서경과 남경을 탈환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일본을 지원해야 할 상황으로 보이나?”

사람이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야지. 당장 고려는 군사를 정비해서 태봉이 빼앗아간 남경과 서경을 탈환해야 한다.

“끄응.”

“적어도 일본열도가 신라나 고려에 뜯긴 것도 아니지 않은가. 좀 기다리게.

내 부마의 위치를 이용해서 고려의 국운을 기울게 할 수는 없다.”

설령 호족들이 들고 일어난다해도 일본은 섬나라다. 즉, 누가 정권을 잡던 그 나라는 일본인의 나라라는 뜻이다.

반도도 따지고 보면 삼한이라는 틀에 묶을 수 있으나, 고려와 태봉은 철천지 원수이며 말갈계가 섞인 고려가 신락녜인 태봉을 같은 민족으로 보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일본으로 돌아가서 고려가 보낼 사신을 기다리게.”

“예. 전하.”

후지와라 쪽이라. 그럼 그쪽 사정도 좋지 못하다는 증거겠지. 지금껏 천황과 함께 권력을 잡아온 후지와라였으나, 호족들이 들고 일어나면 사정이 급해진다.

지금까지 찍힌 이미지가 있으니 호족들에게 붙기도 어려울 테고, 심지어 연왕은 후지와라가 주도한 것.

“그간 나라가 많이 피폐해졌으니, 개혁해야 하오. 나는 고려의 대내상으로서 교량사업을 할 생각이오.”

“교량사업이라 하시면.”

음, 그냥 말 그대로다.

특히 지금 이 만주의 사정을 생각하면 교량을 설치하여 조금이나마 길이 잘통하게 해야 한다.

“신라도는 끊겼으나, 역참을 비롯하여 교량을 설치하고 요와의 국교를 정상화할 것이며 저 비사성을 통해 해로를 개척하여 중원과의 교역을 확장해서 나라의 부를 채워야 할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결국 전부 내가 하겠다는 의미. 귀족들은 한숨 덜 것이다.

“대내상. 그러나, 지금 고려는 그럴 처지가.”

“댁들 돈으로 하는 것이아니라 그간 요동에서 모은 내 가산을 털 것이니 염려 놓으시오.”

태봉과 신라를 무너트리고 나면 통일된 백제와도 길을 설치해야 한다.

대연화가 내 뒤통수를 치겠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인물로 보이지 않고, 군권까지 내가 쥐고 있는 마당에 과연?

“요와 국교회복은 괜찮습니다. 하오나 대내상께서는 저희 처지도 생각해주십시오.”

“무슨 말이오?”

“지금 남은 고구려계 귀족들은 모두 거란과의 전쟁에서 가산을 내놓고 맞서 싸웠으며, 지난 대광현의 난 때는 요와의 전쟁에서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대광현에게 맞서기 힘들었습니다. 그 이후 상경이 몰락하면서 저희들 역시 몰락했습니다. 헌데 이런 상황에서 적대국과의 국교회복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지 않습니까? 다음에 전쟁이 나면 우리는 병사를 낼 수 없습니다.”

“음.”

이건 좀 무리인가?

생각보다 거란에 대한 반감이 너무 심하다. 전쟁까지 생각하다니.

“심지어 중경에서 새살림을 시작하는 것도 버거운데, 거란과의 국교에서 교량사업을 통해 옛 거란도를 다시 설치하게 되면 거란놈들이 다시 몰려올 때, 좋은 길을 터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길이 뚫리고, 그 길로 유목민족의 기병들이 몰려온다?

그럼 끝장이다. 그런데 그건 야율배가 나를 배신했을 때나 가능한 전제다.

“내가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은가?”

“본래 대내상께서는 백제인이 아니십니까? 가독부께서 부마로 맞아들이셨다고는 하나 말갈계는 대내상을 따를지 몰라도. 우리 고구려계는 대내상을 온전히 믿지 못하겠습니다.”

이거 참. 결국 고구려계가 문제인가.

아마 그들 입장에서는 그냥, 대단한 백제인 하나가 고구려계가 오를 승상의 자리를 꿰찬 것이 불만이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현덕부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거란이 우리를 넘보지 못한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게 승상께서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증거를 보여달라라.

“다른 고구려계도 비슷한가?”

저 한놈이라면 모르겠는데, 다른 놈들도 비슷하다면 이것은 달리 처결해야 할 문제다.

“대내상. 우리는 대고구려의 후손입니다. 백제와는 형제지간이고 대내상이 백제인이라 경계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정을 헤아려주시기를 청합니다.”

한마디로 돈 좀 내놓고, 거란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을 보여달라는 것이로군.

“후우. 그럼 어째야 하나.”

고구려계가 억울하기는 할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간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가산을 댔을 테고, 말갈계와의 분열에서도 꽤 피해를 입었을 터.

징징거리는것도 있겠지만. 어쨌든 충분한 보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단 요동에서 중원과 거래할 권리를 주고, 현덕부에서 귀족으로서 다시 부상할 수 있을만큼의 지원을 해주면 먹고 살고 귀족으로서 다시 일어서는 것도 어렵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조총수들을 보여줘야 하나?

이제 막 생산 중에 있는데. 지금 보여줘야 그놈들이 안심하려나?

“그나저나 왜 정산이 안 돼?”

[와 이제는 뻔뻔하네.]

문득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다.

[세 나라의 황녀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니, ‘고귀한 하렘’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전쟁에서 고려군 수만명을 패퇴시키는 백전백승의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천하가 왕자의 위엄에 벌벌 떱니다!]

[최화총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였습니다!]

[중원의 나라들이 새롭게 탄생한 고려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 나라들은 왕자의 호의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보상은 좀 짜지 않나?

아니면 독신인 신들이 질투하는 건가?

“아무려면 어때. 이럴 때 중원과도 열심히 관계를 맺어야지.”

훗날 중원으로도 진출할 수 있으면 그럴 각을 잡거나, 그것이 아니라도 친선 관계를 맺어두면 좋을 것이다.

일단 후당이 어떨까? 지금 반도에 있는 고려는 부당한 나라이며, 유일무이한 고려는 오로지 대씨의 고려뿐이라고.

이거 나쁘지 않은데? 상좌평 오면 시켜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곁에는 검쓰는 놈만 많지 딱히 머리가 좋은 문신으로 쓸 사람은 없다.

“우선 신무기부터 봐야겠군.”

솔직히 화약이 그렇게 남아돌지는 않을 텐데.

유황이 있다고 해도 화약을 만드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과연 최화총이 내가 마음에 드는 것을 만들어냈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화약국에만 가둬두고 무기 만들게 시켜야겠다.

“최화총. 무엇을 만들었나?”

현덕부에 마련한 화약국으로 쳐들어가 보인 것은 그럴 듯하게 생긴 대포였다.

“맞춰 오셨습니다. 전하.”

“오 이것은. 자세히 말해보게. 음?”

다발화전인가. 조총에 다발화전이라. 조금 미묘하군.

이 시대에 질 좋은 무기는 곧 힘이다.

나 자신도 강력하다 자부할 수 있지만, 삼국통일을 빨리 하기 위해서는 군사들의 정예화가 필요하다.

“이것은 투석포를 개량해본 것입니다.”

“대포라는 건가.”

설마 대포가 나오는 거는 아니겠지.

물론 대포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시대에 제대로 된 걸 만들 리가 없지. 다만, 이 초기적인 건 둘째치더라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다른 것이었다..

“이건 회회포? 대충 느낌이 오는 투석기인데.”

딱 보니 그런 느낌이 든다. 솔직히 화약이 부족한 지금 회회포는 좋은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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