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63화 (63/154)

63. 고려의 북진을 막아라3

고려군과 싸울 전략. 대인선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보다 상세하게 설명을 해야 했다.

“설갈산까지 유인할 생각입니다.”

“설갈산까지 유인하겠다고?”

“예. 폐하. 왕건은 지금 우리가 군을 이끌고 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여 유인만 해낸다면.”

그때는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왕건과 대광현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알겠네. 네 자네만 믿을 것이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네가 도와야 잡기가 쉬워진다.

“그런데 발해의 병력은 얼마나 있습니까?”

“이곳의 군대는 2만이네.”

지금 말갈군도 끌어내기 힘들다. 유목민족에게 무기를 내려놓게 했으니 말은다한 셈이다.

그럼 왕건의 군대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까.

대광현 이 미친놈도 잡아야 하는데. 그놈을 잡으면 왕건은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번 전쟁의 최우선 목표는 대광현의 생포. 또는 사살입니다.”

“왕건이 아니라?”

왕건도 중요하지만, 왕건을 잡기 어렵게 되었을 때 하는 말이다. 최우선 목표는 전쟁의 향방을 가를 대광현의 목이다.

“폐하. 왕건이 단순히 휴전협정을 위반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이번 전쟁에서 대광현이 이긴다면 그가 발해의 가독부가 되기 때문에 왕건은 발해의 가독부의 요청으로 군대를 낸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발해와 후백제의 동맹은 깨지게 될 것이고, 대광현의 발해는 고려와 동맹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휴전협정을 위반한 것은 후백제가 된다는 뜻.

“그렇군. 명분을 없애자는 건가.”

“예. 하여 폐하께 허락을 구할 것이 있습니다.”

“대광현을 죽이자는 것이로군.”

그렇다. 아무리 내친 자식이라고는 하나 피가 통하는 친자식이라는 말이다.

남의 손에 죽게 만드는 것은 그 입장에서는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예. 폐하. 그리만 하면 우리가 전투에서 좀 밀려도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네. 허락하지.”

이런 면에서는 강단이 있어서 마음에 든다.

“황공할 따름입니다.”

“이미 놈들의 군대가 부여성 올 것이 뻔한데, 이제 자네가 써먹을 계책을 한번 말해보게.”

계획이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이번 전쟁은 장기전으로 갈 것이고, 내가 먹어야 할 발해가 더 황폐화될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부여부에 곧 요왕이 올 것이라는 소문을 흘려주십시오.”

“적들의 진격을 늦추자는 건가?”

아니, 그 반대다.

요왕이 지원을 온다고 하면 그들은 더 빨리 올 것이다.

“아닙니다. 요왕이 온다고 하면 그들은 오히려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달려올 것입니다.”

“음. 하긴 우리가 군사를 구할 곳이라고는 자네 밖에 없으니.”

발해의 임금이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예. 폐하. 왕건은 이번 전쟁에서도 저를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니 제 군대가 합류하기 전에 끝내려 하겠지요.”

대인선을 잡느냐, 대광현을 잡느냐. 결국 그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내가 잡히고 대광현이 황위에 오르면 백제와의 동맹도 전부 없앨 테니 말이지.”

“예. 폐하. 그러니 이렇게 적들을 유인하여. 이곳 설갈산에 있는 제 군대를 써먹을 것입니다.”

설갈산까지 유인하고 나면 그때는 우리가 승기를 잡을 것이다.

고려는 이쪽 지형을 모른다. 대광현도 대인선을 잡을 수 있다 여기고 생각없이 달려들 것이 뻔하다.

그러나 만에 하나의 경우라는 것이 있다.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도울 것이 있나?”

“정말 참담하고 무례하지만.”

“말해보게.”

“폐하께서 직접 미끼가 되어주셔야 합니다.”

“이보시오. 요왕. 너무 무례하지 않소이까? 대발해의 폐하시오!”

대발해의 폐하고 뭐고 나랑 상관없다.

어차피 대인선이 직접 미끼가 될 일은 없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런 도박까지 할 생각은 없다.

“굳이 폐하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셔도 될 일입니다. 복장이라던가 깃발만 써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게 또 문제인데.”

“무슨 문제라도?”

“폐하의 용안을 고려군들이 알고 있네.”

아니, 그렇다고 해도 문제없지 않나. 어차피 면상보고 추격할 것도 아니고.

그냥 적당한 체격의 병사를가독부로 둔갑시키면 그만이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직접 가겠네.”

“폐하! 폐하께서 친히 미끼가 되시다니. 아니 될 말씀입니다!”

맞다. 괜히 위험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물론 본인이 미끼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

“태자. 지금은 적들을 무찌르는 것이 더 중요하네. 요왕. 내 직접 미끼가 되어야 월척을 낚을 수 있지 않겠는가?”

“예. 폐하.”

대인선도 제법 고려에 대한 한이 맺힌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고려도 북진한 이유가 발해의 말갈족들에게 상당히 시달렸으니, 보복이라는 명분도 있을 것이다.

서로 뒤엉킨 실타래나 다름이 없다.

“요왕. 반드시 성공을 해야 하네. 우리 발해의 국운이 걸린 일이야.”

나도 그러고 싶다. 니들이 살아남느냐 아니냐에 따라 앞으로 내 갈 길이 평탄 해지니까.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대문진 장군께서 도와주십시오.”

“그리하겠소.”

대문진은 대인선의 명에 따라 요왕이 지원군을 보낼 거라고 천명했다.

이 소식에 고려군의 공격으로 전운이 드리우던 부여부의 병사들과 백성들은 모두 안심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려군이 어떤 반응을 할지가 기대가 된다.

이미 발해남부를 싹 점령한 고려와 대광현은 구태여 장령부나 막힐부로 올라올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그곳에서 병력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부여부부터 점령하고 대인선을 포획한 뒤에 정당하게 대광현이 발해의 군주가 되는 것이 군사적 손실도 좋고 전쟁도 빨리 끝내 좋을 테니까.

“어디 왕건. 당신은 어떻게 움직일까.”

왕건이 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을 텐데. 하긴, 지금 고려에서 3만이나 되는 군대를 일개 장수한테 맡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왕건을 잡을 수 있으면 잡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고려가 흔들리고 분열될 것이다.

제 아무리 신검이라도 고려에서 나가 떨어진 호족들은 주워먹을 수 있을 것이다.

* * *

이 무렵, 막힐부까지 진군하던 고려군 본진에도 부여부의 소식이 전해졌다.

요왕 부여금강이 대인선을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는 소식이. 심지어 이미 백제의 장수 효봉이 군사 수천을 끌고 부여성에 합류했다고 한다.

왕건에게 있어서 지금의 상황은 좋지만은 않았다.

“금강이 가독부를 돕겠다고 지원군을?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그럼 요나라에서 회군했다는 말인가?”

“그것이.”

왕건의 물음에 요하의 사정을 알아보던 장군 복지겸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답답하니 빨리 말해보게. 대체 그게 어찌 된 일이야? 우리는 그간 요하에 사람을 수시로 파견해 사정을 알아보지 않았나?”

왕건은 속이 답답했다. 다 된 밥이 이게 무슨 꼴인가.

장군 복지겸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고개를 숙였다.

전전긍긍하며 침묵을 유지하던 그때. 무언가 떠오른 왕건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니면 뭐야, 금강이 그 사이 요나라의 내분을 끝내고 회군하였다는 말인가?”

금강이 그냥 회군했을 리가 없다.

그리도 계속 요하의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는데, 금강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보고가 늦었다.

아니, 조금 안심해서 방심했다고 봐야 한다.

“예. 폐하. 부여금강이 야율덕광의 목을 베고, 임황에서 요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던 술율평을 끌어내리고 야율배를 새황제로 올렸다 합니다.”

대체 금강이란 놈은 무슨 수로 한 나라의 수도를 그리도 쉽게 점령했다는 말인가.

요나라의 20만이 넘는 군대를 무찌른 것도 놀라운 일이거늘 기어이 요나라의 수도까지 취하다니.

왕건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한 인물이 고려에 있었다면 진작에 삼한을 통일하고 국운이 기울 발해를 집어삼켰을 텐데.

“허. 정말 대단한 놈이로군. 그래서 금방 회군하여 가독부를 돕겠다고? 그래도 피해를 봤을 것이 아닌가?”

물론 대광현이 발해의 군주가 되는 순간, 금강은 요동에 고립되는 형편이니, 피해를 봤더라도 급하게 군대를 끌고 오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다.

“피해가 적어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금강의 직속 부여군은 정예 중에서도 정예이며 신무기로 무장된 백제군과, 거란족출신의 기병들도 막강하다고 하니 그들이 부여성을 지원하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기껏 일이 잘 풀리고 있었는데, 그놈의 금강이란 놈이 무엇인지. 이렇게 자꾸 고려가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는 것인가.

백제 입장에서는 정말 훌륭한 왕자지만, 고려의 입장에서 볼 때 금강이라는 왕자는 그야말로 대역적이었다.

여기서 발목이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금강이 오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어차피 화살은 시위를 떠났습니다. 아예 이대로 발해를 반으로 잘라 현상유지를 하거나 또는 작정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상유지. 고려가 아무런 득도 보는 일이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가장 최악의 선택이다.

“놈들과 정면으로 싸우자?”

“예. 폐하. 어차피 금강도 우리가 점령한 상경을 탈환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발해에 대한 영향권을 두고 금강과 싸워야 합니다.”

어느 쪽이든 결국 승부를 봐야만 한다. 왕건의 신료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네. 그렇게 되면 우리 군사만 손실난 꼴이 되지 않는가. 심지어 땅도 받지 못하네.”

왕건 역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군사만 피해를 입고 돌아가면 기껏 수습한 호족들이 또 난리가 날 거다.

“송구합니다. 폐하. 소장이 요하의 사정을 더 살폈다면.”

“복장군이 알아봤어도 늦었을 것이네. 우리가 요나라로 갈 수 있던 것도 아니고. 어차피 예견된 거야.”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그렇다면 금강이 오기 전에 공격하면 그만이 아닌가.

그래. 그러면 된다. 어차피 지금 고려와 대광현 연합군의 최대 목표는 대인선이지 금강이 아니다.

이미 부여부의 군대도 한차례 격파하였으니, 이대로 단숨에 부여성까지 진격하면 전쟁은 끝이다.

“군사를 정비하게. 그리고 발해의 새로운 가독부가 될 대광현에게도 발해군을 정비하라 일러두게. 단숨에 부여성으로 달려야 할 것이야.”

“예. 폐하.”

하지만, 정작 서경의 반군을 이끌던 대광현은 생각이 달랐다.

“아무리 봐도 이거 왕건에게 너무 주는 것 같은데.”

전쟁을 자신이 아닌 완전히 왕건이 주도하고 있었다. 이것은 다음 발해의 지존자리를 노리는 대광현에게는 최악이었다.

“예. 전하. 왕건은 지금 필요 이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라면 우리가 승리한다 해도 가져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부여성도 왕건의 군대가 함락한다면, 그때는 백제에게 요동땅을 좀 떼준 것보다 더 떼어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곤란하다.

발해가 고려와 백제의 땅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만으로도 가능하지 않겠소?”

“왕건에게 모든 공을 넘긴다면 자칫 발해 백성의 민심마저 그에게 향할 수 있습니다.”

민심마저 잃으면 그때는 끝이다.

“음.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차라리 먼저 움직이시지요.”

먼저 움직이라니. 그건 무슨 말인가.

“먼저 움직이라니요?”

“전하. 미리 군대를 빼내어 적들의 가독부의 퇴로를 차단하는 겁니다. 전하께서 직접 가독부를 잡는 것이 전후 왕건의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흥이 그럴 듯한 전략을 내놨다.

지금까지 왕건이 한 일이 너무 많았다. 정작 내전을 주도해야 할 자신이 아니라 타국의 왕인 왕건이 말이다.

그걸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내 직접 가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이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얼른 끝내고 하루빨리 가독부의 자리에 올라 하나된 발해를 이루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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