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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62화 (62/154)

62. 고려의 북진을 막아라2

막상 또 전쟁준비를 하려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아. 발도 편히 못 뻗고 잤는데.”

“고려군은 요왕에게도 위험하지 않겠나.”

그렇지. 고려군은 나한테도 너무 위험하다.

좋게 생각하자. 저 한반도 중남부에서 고려랑 피터지게 싸웠다가 피해를 보면 곤란하다.

발해가 후일 내 땅이 될 거라고 해도. 이왕 피해입은 지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낫겠지.

"그러니 군대를 끌고 가겠다만.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지요. 대광현 그 작자가 미친 것이 아니고서야.”

나도 상대가 고려가 아니었으면 꽤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상대가 고려고, 왕건이다.

이제 요동이 좀 안정되었다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는다.

“대광현. 그놈을 이번에 잡는다면 가독부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것이네.”

발해가 줄 만한 것이 지금 뭐가 있을까.

없다. 아무것도. 그냥 말 뿐인 거겠지.

내 병력은 임황부에서 고생 참 많이 했다.

그걸 또 발해와 고려의 전쟁에 밀어넣어야 하다니.

신검이 이 자식은 뭐하고 있는 거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금 고려가 움직인 것은 백제도 알고 있을 텐데.

나를 제외하고 백제 조정은 발해와의 공수동맹에 대한 조항도 있고, 고려의 휴전협정 위반인데 가만히 있을 건가?

대화균을 숙소로 보내고 장수들을 소집했다.

“왕건 그 작자가 드디어.”

“이번 전투에서 작정하고 고려놈들을 죽여야겠습니다.”

장수들은 왕건의 휴전협정 위반이 분개했다.

상좌평 최승우만이 조용했다.

“상좌평은 왜 아까부터 조용하십니까? 발해의 새로운 태자가 말할 때도 가만히 있던데.”

“왕건의 노림수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설마 왕건이 그럴 줄이야.”

왕건이? 그놈이 직접 친정한 것이 노림수가 있어봐야 뭐가 있을까. 끽해야 삼한의 천명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 정도 아닐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번에야말로 전하께서 패왕답게 왕건을 무찌르셔야겠습니다.”

패왕답게 무찌르라고?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검태자는 일을 처리하는 것이 허술하니 지금 일본과의 일만으로도 바쁠 것입니다. 고려를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고. 우리도 요나라에 군대를 보낸 일로 꽤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때에 딱 밀고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그야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내가 왕건이라도 지금 타이밍에 밀고 올라올 것이다.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닐 텐데.

“이것은 단순히 발해를 노린 것이 아닙니다. 전하를 피해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 천하의 왕건이 말입니다.”

“나를 피해가?”

“예.”

“굳이 나를 피해갈 이유가 있다는 말이오? 물론 우리가 임황을 치는 사이 북진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만.”

명색이 왕인 왕건이 나를 피해갈 리 없다. 그 인간은 오히려 전면전 스타일이 아닌가. 대광현이 앞잡이노릇도 하고 있으니, 좋은 터를 잡고 나를 기다렸다가 전투를 하려 들었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승우는 고개까지 저으면서 일축했다.

“아닙니다.”

“그럼?”

“왕건은 한 나라의 군주가 될 정도로 인망이 있는 자입니다. 당연히 천하의 정세도 알고 있는 인물이 왕건이 아니겠습니까. 전하의 말씀대로 전하의 군대가 임황으로 들어간 사이 왕건이 잘해주었으나, 훗날을 보면 결국 요가 전하의 뜻대로 움직이는 하수인이 될 것이니 고려에 결코 이롭지 못합니다. 고려 입장에서 상책은 왕자님의 군대를 나누는 것입니다. 시기를 조금 더 앞당겨서 임황으로 올라가기 전에 왕건이 군대를 움직였다면 전하께서는 어찌하셨겠습니까?”

“군대를 나눴겠지요.”

요나라의 내분도 가만히 두고 볼 처지도 아니었고, 발해도 그냥 둘 수 없었을 것이다. 최악 요나라는 포기했을지도 모르지만, 발해는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을 터.

“그렇습니다. 전하의 군대가 강군이라는 사실은 왕건도 알고 있습니다. 아예 반으로 나누어 요에서도 어쩌지 못하고 전하가 발해를 지원하기 위해 보낸 군대도 끊어먹고, 왕건에게는 좋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헌데 그래서요?”

“그러나, 전하께서는 왕건도 승산을 점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변수라는 것이 있으니 아마도 왕건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입니다.”

말은 그럴 듯하다. 하긴 왕건은 지금 내 화약무기에 대항할 방법도 찾아야 할 것이다.

굳이 나와 국운을 건 싸움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만큼 지금 고려의 사정이 좋다는 것도 아니다. 대광현을 돕는 선택지도 어쩔 수 없어서 한 번 저질러본 것이겠지.

그리고 왕건은 챙길 것은 챙기려고 하는 것이다.

“후퇴하는 김에 챙길 것은 챙기겠다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내가 더 빨리 돌아온 것이겠지요.”

왕건이 제법 머리를 썼지만, 딱 그 정도라는 거다.

확실히 군사적 손실은 있었으나, 임황을 점령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나라의 수도를 공략하는 일이다.

심지어 북방의 패권국인 요나라. 고려는 아마 내가 내전에 끼어들어 피해를 보거나 한동안 요동성으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겠지.

“네. 소신은 요동에 있어 임황의 사정을 알지 못하였으나, 한 나라의 황도를 점령하고 황제를 새로 세운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설령 요가다 무너졌다고 해도 명색이 황도가 아닙니까.”

“그렇지요.”

포위한 시간이 더 길었지. 정작 전투한 시간만 따지면 그리 길지도 않다.

“그것이 왕건과 고려가 놓친 것입니다. 아마 임황을 점령하는 것이 늦었다면 발해는 끝장났을 테고. 지금이 하늘이 내린 기회입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하.”

위기는 곧 기회. 발해가 망하고 요동이 고립될 수 있는 지금. 왕건은 내 사정을 알지 못하니 한 번 해볼 만하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 딱 적당이라는 건가.”

“예. 전하. 오히려 적들은 지금 여전히 전하의 존재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많은 군대를 모을 필요가 없다.

속전속결로 끝내기 위해서 왕건에게 요동의 사정이 알려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

유인전. 이번에 왕건을 쓰러트릴 전략이다.

“효봉장군은 군사 5천을 끌고 부여부로 올라가야하네.”

“예. 전하!”

“그리고 나는 본대 1만 5천의 병력을 끌고 지원에 나설 것이다.”

“전장은 어디로 보십니까?”

나는 벽에 걸린 발해의 지도에서 부여부 쪽의 산 하나를 가리켰다.

“설갈산으로 하지. 단 한 번의 전투로 큰 피해를 입혀야 하네. 질질 끌 수는 없어. 내가 설갈산에 진출하면 때에 맞춰 서신을 보낼 테니 효봉장군은 고려 군을 유인해야 할 것이네. 남은 장수들은 모두 나와 함께 진을 칠 것이고.”

설갈산에서 고려군들을 두드려잡고, 대광현의 모가지를 따야겠다.

“예!”

“이번에 발해에서 고려의 주력군을 궤멸시킬 것이니, 모두 그리 알아듣고, 맡은 바 소임에 힘을 다하도록”

“““예. 전하!”””

임황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제외하고, 함께 전투에 나설 수 있는 군사들을 추렸다.

그 중, 말갈군도 동원하기로 했다.

[요나라의 황성을 점령하였습니다!]

[원 역사의 요태종 야율덕광을 사살하였습니다!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요나라 2대 황제 야율배를 옹립하였습니다!]

[업적이 갱신됩니다.]

[당신에게 관심이 많은 신이 당신에게 큰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요동성 화약국의 최화총이 조총을 닮은 기이한 물건을 개발했습니다!]

왜 정산 안 되나 했다. 보상은 바로바로 해줘야지. 그런데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어? 조총을 닮은 기이한 물건?”

뭐 조총을 닮은 기이한 물건은 무엇인가.

최화총이라는 인물도 모르는 인물이다. 화약국의 일은 상좌평이 관리하고 있었으니, 화약국에 들인 관리 중 하나 같은데.

일단 병력을 모으기 전에 화약국의 관리인 최하총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이건 무엇인가?”

“예. 전하. 이것은 구포를 소형화 하다 보니 만든 것으로.”

최화총이 뭐라고 말은 하는데 나는 그런 것보다 지금 이 기이한 물건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이한 물건은 무슨. 그냥 조총과 빼박이라고 해도 다를 바 없다.

한 번 실험을 해보니, 확실히 이것은 조총이라 할 만하다.

“이건 총통 수준을 넘었는데.”

“예?”

그 여신이 작정하고 나를 돕고 있는 건가.

그도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뭐 아무튼 나야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런 물건을 주면 나한테는 땡큐다.

사격연습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게다가 한 자루 뿐이라서 쓰려면 나 혼자 써야한다.

연습은 본래 실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좋아, 나한테 이런 선물을 준 신에 대한 보답으로 왕건의 머리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신만이 아니다. 나한테 조총을 바친 이놈도 내게는 굴려먹을 인재로만 보인다.

"소형화시킨다고 이걸 만들어? 정말인가?"

"실은 얼마 전부터 머릿속에 이것을 만들라는 듯 천지신명께서 일러주신 것 같습니다."

천지신명은 무슨. 뭐 신이기는 하겠지.

“최화총이라고 했나?”

“예. 전하.”

“내 너의 식솔들을 책임질 것이고, 되는 대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니, 이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만들 수 있겠나?”

단기간에 조총 미스무레한 것을 만든 미친놈이 아닌가. 분명 시간만 더 있다면 더 좋은 것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신이란 놈이 그런 버프를 걸었으면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맡겨만 주신다면 신명을 다해 만들어 바치겠습니다!”

최하총의 대답에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이 조총과 철환들은 내가 따로 챙겼다.

* * *

효봉이 먼저 발해로 떠나고 내가 이끄는 1만 5천의 백제군이 그 뒤를 이었다.

구성은 요나라로 들어갈 때와는 다르다. 지난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들과 부상병을 제외하고 새로운 애들로 채웠다.

“효봉은 먼저 부여성으로 잘 갔나?”

“예 전하. 아군은 전하의 계책대로 이대로 밤길에 설갈산까지 가야 합니다.”

밤중에 설갈산까지 이동한다.

정말 내가 생각한 거지만 정말 미친 방법이다. 가는 동안 고려군의 공격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무리였을 거다.

“나는 그럼 그럼 단신으로 부여성으로 들어가겠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자네들 나 모르나? 나 금강이야. 그리고 혼자 움직이는 것이 놈들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고.”

이번 작전의 생명은 왕건에게 내 존재를 들키지 않는 것이다.

밤중에 이동하느라 아주 힘들었는데. 왕건에게 들킨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니까.

딱 시간도 적당하다. 밤중에 말을 타고 계속 달리면 부여성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착할 것이다.

“아닙니다. 전하.”

“그럼 다녀오겠네. 설갈산에 잘 주둔하고 있게. 내 직접 가서 대인선과 대화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예. 전하.”

부여성까지 가는 길에 고려군은 보이지 않았다.

뭐 여기서 고려군이 보일 정도면 부여부도 끝났다 봐야 하니, 없는 것이 정상 이기는 하다.

그리고 나는 경계가 삼엄하기 짝이 없는 부여성에 도착하자마자 대인선을 찾았다.

“폐하! 요왕 부여금강입니다!!”

“어서 오게! 정말 잘 해주었네! 군사는 얼마나 데려왔나?”

가끔 보면 이놈들은 나에게 군사를 맡겨놨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이 들 때가 있다.

“효봉이 끌고 온 군대까지 합하여 2만입니다.”

그 마저도 지금 지치고 부상당한 인원을 제외하고 소집가능한 애들은 죄다 빼왔다.

“끄응. 적들을 잡을 방법은 있겠나?”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여신은 거란만 아니었으면 대인선이 발해를 잘 다스렸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영 아니다.

나한테 너무 의존하느라 군주로서의 가치가 한없이 떨어졌다.

발해를 먹는 것도 서둘러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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