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61화 (61/154)

61. 고려의 북진을 막아라

* * *

요나라의 황제 야율아보기는 위풍당당했다.

“이제는 황제 폐하라 불러드려야겠구려.”

“뭐 그렇게 거창하게 부를 필요가 있겠소?”

내가 올렸다고는 하나 이제는 황제고 나는 일개 왕이다. 그 정도 예우는 갖춰야지.

“황제는 이제 거란족 모두의 황제요. 무상가한이지. 그러니 공적인 자리에서는 이러는 것이 맞소이다.”

“하지만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소. 일단 군사를 풀어 임황을 수습하고는 있는데. 피해가 워낙 커야지.”

“흠. 그럼 내가 좀 지원해줄 수 있소.”

내가 바라는 게 그거였다.

요나라에 지원하여 은혜를 입히는 것. 야율배가 완전히 나한테 코가 꿰어 아무것도 못하는 것.

게다가 요나라가 당한 것을 생각하면, 당장 야율배 제위기간에만 나라를 수습하는 것이 한참 걸릴 것이다.

“정말이오?”

“그렇소. 군마까지 내주는데, 내 황제를 지원 못하리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오?”

“음 어지간한 건 다 필요하오. 문방구라던가.”

그래. 문방구라면 지금 거란에 필요하겠지.

“가능하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것 말고도 필요한 것은 전부 내어주겠소.”

“임황의 군사도 많이 죽었으니, 임황을 단속하기 위해 병사들이 더 필요할 것 같소이다.”

“내 휘하 부여군들을 두도록 하겠소.”

하나도 둘도 나한테 의지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조만간 요나라 전체가 내 손으로 굴러들어올 것 같은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없는 사이 발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 * *

상경용천부

발해의 수도 상경은 지금 고려와 대광현 연합군에 의해 함락 위기에 있었다.

아니, 이미 성벽을 넘어오는 고려군과 대광현의 반군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고려군만이면 모른다. 그런데 대광현이 문제 아닌가. 대광현의 반군이 계속해서 성을 넘어오려고 한다.

“이런 찢어 죽일 놈!”

대인선은 죽어가는 발해의 병사들을 보면서 못난 자식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다.

황후와 궁인들은 미리 부여부로 대피시켰으나. 이 분함은 삼킬수가 없다.

고작 신생국 고려한테 이꼴이라니.

“폐하! 피난하셔야 합니다!”

“젠장. 이런 멍청한 자식놈 같으니라고!”

“폐하! 서문이 뚫렸습니다!”

상경이 포위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문이 뚫린다는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방심하지 말아야 했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이냐!”

“부여부로 가시지요! 지금 말갈군이 밖에서 폐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다. 가자!”

대인선은 상경을 뒤덮는 고려와 대광현의 군대들을 뚫고 겨우 서문 밖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이미 그 앞은 대광현이 막고 있었다.

“아버님! 어디 가십니까! 소자가 모시러 나왔습니다! 아버님!”

“이놈아! 네놈이 어떻게 아비에게 이럴 수 있다는 말이냐! 어찌 고려와 손을 잡고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느냐!”

배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하다 못해 분조를 거두고 상경까지 올라왔다면 죽이 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는 아예 나라를 멸망시키려고작정을 했다.

“잘 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하는 것입니다. 아버님! 소자는 결코 반역에 뜻이 없고, 불온한 무리들에 둘러싸여 있는 아버님을 구하기 위해 친척의 나라인 고려에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뭐 친척의 나라?

진짜 자식 하나 잘못키워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말은 번지르르하구나! 그래서 고려에게 무엇을 주기로 약조하였느냐? 결국 너는 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이번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더냐!”

어디서 감히 잘 못된 것을 바로 잡겠다는 막말을 하는 건가. 저것이 한때발해의 태자였던 놈이 지껄일 수 있는 소리인가.

“어찌 그리 말씀을 하십니까? 서운합니다! 당초 아버님이 분조의 명만 거두지 않으셨더라면!”

결국에는 그놈의 분조다. 전쟁에서 나라가 패망할 때를 대비하여 분조를 해둔 것인데. 그 분조로 나라를 반으로 가르려는 멍청한 짓을 벌였다.

“더 말해 무엇하느냐! 썩 비키지 못할까!”

“뭣들 하시오? 얼른 불순한 무리들로부터 폐하를 구하셔야 하오!”

대광현의 명령에 고려군들이 대인선의 병력을 포위했다.

“저. 저저 못난 놈이!”

바로 그때 대인선을 잡기 위해 몰려들던 고려군을 향해 화살이 쏟아졌다.

“어디서 날아오는 화살이냐!”

화살을 쏘아올린 군대는 부여성의 군대. 대문진의 군대였다.

대문진은 고려와 대광현의 군대가 상경으로 진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여부의 모든 병력을 끌어모아 상경구원에 나섰다.

대문진은 고려군이 당황하는 사이 군사를 몰고 대인선을 호위했다.

“폐하! 소신 대문진입니다! 부여부의 군대가 폐하를 모실 것입니다!”

“대문진. 그대가 진정한 충신이로다.”

“가라! 대발해의 군사들이여! 고려놈들을 막아라!”

대문진이 이끄는 발해군이 고려와 대광현 연합군을 공격하면서 시간을 번 대인선은 부여성으로 피난했다.

“이제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상경이 못난 자식놈과 고려의 손에 넘어가 버렸으니.”

이런 시대에 자신이 발해에서 태어난 것이 원망스럽다.

하다 못해 왕족으로 태어나지만 않았더라면, 나라가 풍전등화에 빠져도 책임을 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폐하!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소리냐. 태자.”

“소자가 요동성으로 가겠습니다. 가서 요왕에게 지원을 요청할 것입니다.”

요왕. 분명히 요하를 넘어 요의 내분에 끼어든다고 했었다. 잘 만하면 요동의 국경이 평화로워질 것이라고.

“아서라. 지금 요왕은 거란에 가있다고 들었다. 아직 그곳의 일이 끝나지도 않았을 터인데. 어찌 우리를 도울 수 있겠느냐.”

대인선이 한탄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일찍이 요하의 사정을 주시하던 대문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폐하.”

“무슨 뜻인가?”

“바로 얼마 전에 세작으로부터 들어 온 보고로는 요왕의 군대가 임황부까지 쳐들어가서 야율덕광을 죽이고 임황부를 점령하여 야율배를 황위에 올렸다 합니다. 이제 회군하여 요동으로 온다 했으니, 지원을 요청하면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요나라를 그렇게 무너트렸다고?

황제를 금강이 세웠으면 요나라는 사실상 금강의 괴뢰국이나 다름이 없다.

발해에서 거란군이 그리도 많이 죽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허. 정말 요왕이 난 놈은 난 놈이로군.”

설마하니 그 요나라를 무너트리고 새 황제까지 본인이 정했다니. 실로 믿기 힘든 위업이었다.

“폐하, 놈들이 부여부로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지방의 성에 군사를 부여부로 올라오게 하고 요왕에게 지원을 요청하셔야 합니다.”

부여부까지 오는 길목을 틀어막았으나, 대문진의 병력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아직 요나라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잃은 병력을 복구하기란 지금까지 어려웠다.

“암. 그래야지. 고려는 요왕의 본국인 백제와도 적이 아닌가. 당장 요동성에 사람을 보내게. 어서!”

“예. 폐하.”

이번에야말로 국운이 위험하다. 거란족은 요왕의 활약으로 패퇴시켰으나, 상대는 대광현이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고려다.

이건 마치 고씨의 고려가 망할 때와 비슷하지 않던가.

어떻게든 이기지 못하면 나라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요왕 부여금강의 도움이 절실한 대인선이었다.

* * *

이 무렵. 천계에서는 금강이 바꾸는 역사 스트리밍이 여전히 인기있었다.

아니,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스타트를 끊은 나라나 시대, 금강 본인의 지식 수준도 생각하면 우수한 대리자는 훨씬 많았다.

그러나 많은 대리자가 그저 정복전쟁과 기술발달에만 매진하다보니, 신들은 지루해졌고, 적당히 치고 박으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금강의 후백제가 인기가 있었다.

“이야~금강이란 애 진짜 재밌는데.”

“아니, 저거 사기잖아. 왜 맨날 일을 어렵게 만들면서 힘들게 몰아서 처리하지?”

“네 대리자인 선조는 조선을 되찾을 생각은 안 하고 왕의 지위를 바리고 칸의 자리를 가졌으니, 마이너스 점수가 많아.”

선조가 대리자였던 신은 얼마 전, 선조란 놈이 조선이 아닌 금의 대칸으로 만족한 탓에 그것이 민족적 배신이라는 이유로 마이너스 요소가 되어 점수가 크게 떨어졌다.

그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던 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허 참! 내 점수가 떨어진 이유가 저거였냐? 에이 씨. 때려 쳐. 내 대리자한테 줄 거 저 금강이란 놈에게 주겠어. 금강 담당하던 애는?”

“하계에 잠시 간다는 것 같은데.”

“뭐 잘됐네. 규정상 문제없잖아?”

“뭐 문제는 없지. 그 기술이 좀 성능 떨어져서 나오겠지만.”

“금강아. 잘 받아먹어라.”

선조에게 실망한 담당신은 금강에게 선물을 내렸다.

그리고 이 선물은 금강이 바꾸어가는 역사에 큰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 * *

요동성으로 돌아온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사건 하나가 또 터졌다.

“전하! 부여부에서 가독부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요나라에 보낼 상단들을 알아보던 차에 일어난 일이었다.

“왜 상경이 아니라 부여부에서 온다는 말인가? 그 양반이 나들이라도 나왔다는 말인가?”

“설마 그렇겠습니까?”

-왕자 대광현이 반란을 일으켜 고려군과 함께 대진의 황성을 범하였으니, 대진의 천명이 바람 앞의 등불이다. 요왕은 백제의 왕자로서, 백제와 대진의 동맹절차에 따라 대진을 돕기를 바라노라.

“에라이 미친.”

이거 믿을 수 있는 소식인가?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아?

“이 서신을 누가 가져왔다는 말인가?”

“새로운 태자가 된 대화균이라는 왕자입니다.”

새로운 태자? 허. 그렇다면 일이 꼬여도 단단하게 꼬였다.

기어이 멍청이 같은 대광현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대진의 태자 대화균이네.”

“대화균이라.”

대인선의 아들 중 한 명인가. 그래도 대광현과는 달리 제법

“지금 나라가 너무 위급하네. 대광현. 그 미친놈이 고려군을 끌고 왔어!”

“소상히 이야기해주십시오.”

듣자듣자하니, 아주 고려와 대광현이 작정을 한 것 같다.

이전부터 주시는 하고 있었는데, 설마 대광현이 고려에 지원요청을 해서 군사를 끌고 올 줄이야.

고려가 보낸 군대는 3만. 대광현의 군대는 2만이다.

전쟁과 반란으로 인해 피해가 심한 발해가 그만한 군사를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수도 상경은 함락당하고, 대문진이 겨우 대인선을 구출하여 부여성까지 피신 했다고 한다.

“고려가 팔자에도 없는 북진을 했군.”

심지어 원역사의 고려조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원 역사보다 힘든 시기의 고려가 지금의 고련데. 이걸 대광현과 손잡아서 커버한다고? 왕건이라는 놈이 운이 좋기는 좋구나.

여기서 왕건의 행보가 제법 재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가 요나라의 내분에 끼어들자마자, 곧바로 대광현과 룰루랄라 손잡고 상경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래도 꽤 버텼군요.”

“이제 장령부와 부여부만 남았네 제발 요왕이 도와줘야 하네.”

“백제 본국에도 북진하라 하겠습니다. 일단은 장수 효봉에게 군사 5천을 주어 부여성으로 보내지요.”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

“5천으로 되겠는가?”

안 되지. 5천은 일단 백제군이 대인선을 돕는다는 분위기만 연출하면 그만이다.

“급히 더 모아서 가겠습니다. 실은 임황에서 한바탕 하느라 아군의 피해가 좀 있어서. 그래도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지금 왕건을 상대할 병력은 남아있습니까?”

왕건이 끌고 온 군대가 3만에 육박한다고 대인선이 막을 수 없을까.

물론 대광현이 연남생급 활약을 해주고 있다만. 대인선도 거란에 선빵을 날린 인물이고 남은 병력도 거란과 싸워 살아남은 정예군이다.

“안타깝게도 수비군을 제외하고 부여부의 군대가 끝이네.”

하긴 무기를 전부 내가 사들이고 있고, 말갈족도 나를 따르면서 이미 무장을 해제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그렇다해도 나한테는 잘못이 없다.

차라리 잘 되었지. 이참에 고려주력군을 개박살내면 제 아무리 바보같은 신검이라고 해도 고려는 먹을 수 있을 거다.

어차피 터질 전쟁이다.

삼국통일 전쟁을 끝내기는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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