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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58화 (58/154)
  • 58 뒷치기

    * * *

    임황부

    술율평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손에 잡히는 물건은 무엇이든 내던졌다.

    “조선왕. 그자가 진정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구나! 감히 임황까지 군대를 끌고 와서 나를 협박해!”

    선황제를 죽인 그 조선왕이 이제는 군사를 끌고 임황부를 압박하고 있다.

    임황부가 어디인가. 바로 요나라의 수도다. 제국의 중심지라는 말이다.

    감히 백제출신인 조선왕이 그곳을 탐하려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건방진 행동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수도다. 방비가 되어있으며, 황제를 속여 전쟁에서 승리한 치졸한 조선왕이 점령할 리가 없다.

    “하지만 조선왕의 군대가 위험한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괜히 자극하다가 정말 임황이 불바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사온이 술율평의 눈치를 보다 그렇게 말했다.

    조선왕이 신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요나라의 요직에 앉아있는 관리들이라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물론 술율평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해도 이곳 임황을 뚫을 수 있을까.

    자신도 직접 경험해봤으니, 알고 있다.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면 조선왕의 군대는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이다.

    “불바다가 되기는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임황에도 수만의 군대가 있네. 제아무리 조선왕이 강해도 임황을 넘볼 수 있을 거 같은가?”

    “가장 큰 문제는 태자와 황자 야율덕광이 조선왕과 합류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탓에 군사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군사의 수가 많고 적고는 문제가 아니다.

    무려 태자와 황자가 동시에 조선왕의군대와 합류해있다는 사실. 그게 중요할 뿐이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일단 달래는 것이 옳습니다.”

    “어떻게 달래자는 건가?”

    그 무지막지한 악귀가 달래진다고 달래질 놈이던가?

    달랠 방법은 있나? 이미 요동도 얻었고, 그땅을 기반으로 어마어마하게 부를 키워내고 있는 조선왕이다.

    “조선왕에 한해서는 아예 조선왕이 다스리는 땅을 독립시켜주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봉한 지위를 없애고, 조선왕은 대요의 신하가 아니라고?”

    “예. 그렇게 하면 조선왕은 독립적인 세력이 되어 좋을 것이고, 요의 신하도 아니니 감히 우리에게 간섭할 수도 없습니다.”

    그건 좋은 방법이다. 요동을 온전히 부여금강의 땅으로 인정하는 꼴이라, 배가 조금 쓰릴 뿐. 요나라의 신하가 아니라면 이렇게 내정간섭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그래도 소온이 있다.”

    “소온이 별 영향이 없다는 것은 태후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으음.”

    어차피 소온은 버림말이다.

    그냥 적당히 형식적으로 보내 국혼을 치른 것일 뿐.

    “차라리 덕광황자에게 이번 일이 끝나면 황위 물려준다고 하고 협상을 하시지요.”

    “그리고 뒤에서 야율배와 조선왕을 배신하게 하자?”

    “예.”

    “음.”

    그보다 역시 조선왕이 걸린다.

    조선왕은 그 무력이 남다른 인간이다. 활과 칼, 창.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항우와 같은 인물이다.

    설령 덕광을 포섭한다고 해도, 과연 그 자를 이길 수 있을까.

    “아니면 차라리 조선왕을 암살하고 혼란스러운 사이에. 백제군을 잡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게 또 문제네.”

    암살을 생각했으면 벌써 했을 것이다.

    이미 일전에 금강의 무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술율평은 암살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지금도 약간 허세를 부렸다.

    만일 그 금강이란 놈이 작정하고 단신으로 임황으로 쳐들어와 황실을 학살하려고 하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무슨 문제가 있으십니까?”

    “조선왕은 보통 인물이 아니네. 선황제도 눈앞에서 똑똑히 보았지. 그 자는 검, 창, 화살이 통하지 않는 인물이네.”

    술율평이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에 조사온은 제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개뼈다구같은 소리인가.

    “그런 인물이 있습니까?”

    “그렇지. 보통 인물이 아니야. 좋은 수가 없는가?”

    “그럼 암살도 불가능하겠군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세상에 그런 인간이 어디 있나. 선황제가 20만을 말아먹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왕을 너무 높게 취급하는군.’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인물이 세상에 어디 있나. 정말 그런 인물이 있다면 하늘이 내린 인물일 것이다.

    진정한 천자. 중원도 정복할 수 있는 인물.

    보나마나 술율평이 거짓을 내뱉은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현재 북방의 대국인 요의 군대를 20만이나 패퇴시킨 인물이다.

    또 그중 수만의 병사가 조선왕을 따르고 있다고 하니 더 말해무엇할까.

    ‘확실히 나랑 대화를 하면서도 여유가 넘쳤지.’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인물. 그리고 적진 한복판에서 너무나도 용감하다고밖에 표현이 안 되는 인물.

    그렇다해도 죽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덕광황자에게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역시 그 방법 밖에 없나?”

    “태후폐하. 지금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닙니다.”

    권력욕에 물들더니 어리석어진 건가. 지금은 최악 야율배까지 포섭해서 조선 왕을 쳐야할지도 모르는데.

    조사온은 이 요나라의 장래가 어디로 갈지 참으로 눈앞이 깜깜했다.

    “그럼 이번 일은 전부 자네에게 전부 일임하겠네.”

    * * *

    야율덕광의 막사로 임황에서 나온 한 사자가 은밀히 찾아왔다.

    사자는 전에 찾아온 조사온이었다.

    “참 대단하군. 이곳에 은밀히 찾아오다니. 목이 몇 개나 되시오?”

    이러다 조선왕에게 걸리면 죽을 것이 뻔한데. 무슨 생각으로 또 찾아와 목을 내밀고 있는 건가.

    “황자께서는 황제가 되셔야 할 분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무슨 말이지?”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걸까.

    이제 어머니의 말은믿을 수가 없으나, 일단 들어 나쁠 건 없을 것이다.

    “태후께서는 조선왕과 야율배의 뒤를 쳐 무찌르면 황위를 넘기겠다 약조하셨습니다.”

    “나보고 지금 조선왕과 형님의 뒤를 치라고?”

    황위를 넘긴다는 약속을 어찌 믿고, 5천의 군사로 조선왕과 야율배를 친다는 말인가?

    “예. 때에 맞춰 임황에서도 군대를 보내 적들을 조선왕의 군대를 칠 겁니다.

    협공하여 적들을 격파하시지요.”

    “음.”

    이건 고민된다. 조선왕의 군대를 무찌르고 황제가 된다라.

    확실히 이참에 선황제의 원수를 제거하면 그보다 더한 공은 없을 것이다. 제아무리 어머니인 술율평이라고 해도 황위를 안 줄 수는 없다.

    심지어 조선왕은 지금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아군으로 보고 있다는 뜻.

    이 뒤통수를 친다면 충분히 조선왕의 군대를 무찌를 수 있다.

    ‘그래. 가능해. 애초에 조선왕은 적이다. 이번에 놈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대요를 반으로 갈라야 한다.'

    나라를 반으로 가를 바에는 차라리 제안을 받아들이고 조선왕과 야율배의 뒤를 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 나에게 황위를 준다는 것이냐?”

    “황자께서 조선왕을 무찌르시면 무엇이 불가능하겠습니까? 황자님. 조선왕은 거란족이 아닙니다. 백제인입니다. 거란족의 일은 거란족이 끝내는 것이 맞습니다.”

    “거란족의 일은 거란족이.”

    “이대로 조선왕의 뜻대로 움직인다면, 대요는 조선왕의 손에 넘어갈 것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그럴 것이다. 결국 어머니를 끌어내려도 나라는 반으로 갈라진다. 그 와중에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조선왕이다.

    나라가 반으로 갈라지면 다시는 요하를 넘을 힘을 찾기 어려워진다. 아니, 반대로 조선왕이 대요를 노린다면?

    “분명 조선왕이 전부 가져가겠지.”

    “그렇습니다. 형제싸움에서 득을 보는 것은 결국 조선왕. 그리고 요동에 강군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두 번째라고는 하나 부인으로 우리 황실의 여인도 있지 않습니까?”

    설마, 그 소리는 황위까지?

    “충분히 황위도 노릴 수 있다는 소리인가?”

    “역사를 보면 절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조선왕부터 잡아야 합니다. 조선왕이 황자님을 아군으로 생각하는 지금이 기회입니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조선왕이 강하면 얼마나 강한가. 그때도 선황제를 속여서 대요의 대군을 무찌른 것이다.

    고작 그 뿐이다. 기죽을 필요가 없다.

    이참에 조선왕을 잡는 것이 요나라에 이득이다.

    “조건이 있네. 어머님은 권력을 내려놔야 할 것이야.”

    조선왕을 잡기는 잡더라도 어머니가 권력을 그대로 잡고 있으면 황제가 되어도 권력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조사온도 그것은 받아들였다. 애초에 술율평이라는 여인은 딱 황제를 옆에서 보필하며 돕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술율평을 끌어내리고 한족관리인 자신이 야율덕광을 황제로 올려 대요가 중원까지 나아가 북방의 패권을 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 *

    “전하의 말씀대로입니다. 야율덕광의 막사로 술율평이 보낸 사자가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야율덕광의 막사를 감시하던 관흔의 보고에 나는 박수를 쳤다.

    “기어이 그놈이 자기 죽을 길을 찾아 들어갔군. 아무래도 오늘 밤은 피를 봐야 할 것인가.”

    이번에도 단신으로 밀고 들어가 봐? 야율덕광은 전부터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이었다. 뒤통수를 치기 전에 잡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직 확신은 이르지 않소?”

    “아닙니다. 지금 야율덕광은 조사온과 협상을 마쳤습니다.”

    야율배의 물음에 내 대신 관흔이 한심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뭐라고?”

    “정말인가?”

    “예. 야율덕광 수하에 우리 군 출신이 있습니다. 조사온은 전하와 태자전하를 반군으로 규정해서 토벌하고 그 공으로 황제가 되는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여기에 야율덕광은 태후가 내려오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습니다.”

    “그렇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놈들을 가만히 둘 수 없지.

    “이제 어찌할 것이오?”

    “야율덕광을 쳐야지.”

    조사온과 협상을 할 정도면 야율덕광은 언제든 내 뒤를 칠 놈이라는 뜻이다.

    나라를 반으로 가른다고 해도 야율배를 설득해서 내 뒤를 칠 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당장 야율배를 보면 주위에 휘둘리는 인물이다. 야율덕광이 자기 뒤를 치려 했다해도 조금만 설득하면 넘어갈 놈이다.

    이참에 덕광을 완전히 잡아야 한다.

    “그럼 지금 바로?”

    “아니지. 우리가 공격하는 틈에 하지.”

    “그럼 덕광에게 뒤를 내어주자는 것이오?”

    내 대답만 생각하면 그야말로 뒤통수를 내어주자는 개소리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말이다. 결국 결과가 말해주는 거다.

    야율덕광의 군대부터 죽인다면 임황에서는 군대가 나오지 않을 것이고,

    “임황의 병력도 끌어내서 잡아야 하네. 그래야 자네가 무사히 황위에 오를 수 있어.”

    임황의 병력도 두들겨 잡아 술율평의 세력을 온전히 작살내야 한다.

    “전하. 하지만, 뒤를 내어준다면 우리 군도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뒤를 야율배가 치면 되는 거야. 복수를 해야지. 안 그런가?”

    은근슬쩍. 저 새끼가 네 뒤를 치지 않았냐고 어필했다.

    아무리 형제라해도. 아니, 형제기에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어떤 동생이 제 형을 죽이려 할까.

    역사를 뒤지면 그런 사례는 많다고 해도 그 당사자가 되면 생각이 달라지는 법이다. 야율배는 야율덕광을 경쟁에서 떨어트리기 위해서라도 작정하고 야율덕광을 처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겠소.”

    “뒤를 내주더라도 우리가 준비해두고 있으면 괜찮겠지. 관흔 장군은 군사들에게 단단히 이르게.”

    야율덕광의 군사는 5천. 후미를 친다면 확실히 귀찮을 병력이다.

    “예. 전하.”

    “아주 끝장을 보자.”

    이참에 요나라를 반 병신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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