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임황부 포위
* * *
2만의 군사를 다시 출정시켰다.
그나마 말갈놈들을 제대로 정착시킨 후라 천만 다행이었다.
야율배와 야율덕광은 내가 끌고 온 군대를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체 뭘 그리 바리바리들고 오셨소?”
뒤에서 한가득 가지고 온 수레들 저것들 챙기느라 늦었다.
화약국에서 애들 장난감으로 만든 것을 가득 넣었다.
“알면 다치네.”
“허.”
“어쨌든 임황 앞에서 무력시위를 할 것이니 그리들 알게.”
“믿어도 되는 것이오?”
나는 놈들이 끌고 온 병력을 보았다.
암만 봐도 니들이 데리고 온 애들보다 내 군사가 나은 거 같은데.
“아, 글쎄 나만 믿으래도. 내가 이래 보여도 하늘 아래 왕자로 자라서 조금의 거짓없이 살아온 인물이네.”
“본인이 말하고도 웃기지 않소?”
야율덕광이 태클을 걸었다.
원래 오랑캐에게 들어줄 신의 따위는 없다.
“닥치게.”
“저게 신무기라는 것같은데 어디 한 번 믿겠소.”
진지하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야율배와 야율덕광. 둘의 군사를 몰살시키고 요나라를 끝장내고 싶다.
문제는 지금 요나라 조정에서 나를 돕는 자가 없다. 후일 내가 요를 흡수하려면 지금 박살내서 거란족 전체를 분열시키는 것보다는 천천히 술율평부터 끌어내리고 백제인을 넣어 입지를 키우는 것이 낫다.
시간을 들여 야율배와 야율덕광. 그리고 내 군대는 임황을 철저히 포위했다.
“그럼 무력 시위를 어떻게 할 참이오?”
“요렇게. 관흔장군.”
“예. 전하.”
내 명령에 관흔은 휘하 포병대를 선봉에 세웠다.
이번에 화약국에서 만든 새로운 무기를 선보이기로 했다.
작은 통 같은 것을 든 병사들이 앞으로 나왔다.
언뜻 보면 총통같지만, 저건 조금 다르다. 저 안에서 내뿜는 것은 살상용이 아닌 다른 용도니까.
쉬이이익-파바앗!
하늘에 흩뿌려지는 저 불꽃을 보라.
그래. 더 말해 무엇할까.
“어? 저건 대체 뭐요?”
“소온에게 보여주려고 만든 것인데. 일단 저게 신무기지.”
아주 아름다운 신무기. 현대의 불꽃놀와는 다르지만, 제법 그럴 듯한 모습을 갖춘 것이다.
“잠깐, 저게 뭐요? 아니, 대체 저게 무슨 무기가 된다는 말이오?”
“무기가 없는 건 아닌데. 작정하고 성이라도 공격할까?”
그래서는 피해가 너무 크다.
야율배와 야율덕광도 알고 있으니, 내가 내뱉은 말을 찬성하지 않았다.
“끄응. 이런 식으로 어머니가 나오겠소?”
술율평은 나오지 않겠지. 그런데 백성들은 동요할 것이다.
“요의 백성들은 동요하지 않겠나?”
“이 불장난질으로 백성들의 동요를 만들어 어쩌자는 거요?”
그렇겠지. 이 정도로는 임황을 함락시키지 못한다.
지금 구포를 비롯한 각종 화약무기들을 써야 함락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그렇지. 그래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거다. 너희들 어머니는 몰라도 백성들이 말이지.”
“그렇다 해도 이런 애같은 짓거리로.”
“애 같은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겠지.”
며칠이 지나자 임황이 시끌벅적했다.
아마 불꽃놀이 때문인 것 같은데. 아직까지 임황 매부에서 술율평은 어떠한 반응도 하고 있지 않았다.
이게 뭐하는 장난인가 싶겠지.
하지만 백성들은 밤하늘에 터져오르는 저게 뭔지 점점 궁금할 거다.
어쩌면 불길한 징조로 여기지 않을까.
“안에서는 어떤가?”
“백성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바깥에는 대군이 있는데, 그것만이 아니라 이상한 불꽃이 자꾸 떠오른다. 슬슬 불길할 것이다.
“술율평에게 보낸 사자는?”
“거부당했습니다.”
“우리도 사기가 떨어지기 전에 뭔가 일을 해야지.”
백성들이 혼란에 빠졌으니, 술율평도 뭔가 반응을 할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마침내 성에서 술율평이 보낸 사자가 도착했다.
“대체 조선왕과 태자전하와 황자님께서는 이게 무슨 짓들이오? 저 밖에 떠오르는 불들은 대체 무엇이고!”
오 우리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아무리 술율평의 위세가 대단하다해도 일개신하는 아닐 것이다.
“댁은 누구시오?”
“조사온이오!”
조사온이라면 지금 술율평의 측근으로 있는 것인가.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뭐 때문에 나오셨소?”
“그걸 내게 묻소이까? 왜 이런 해괴망측한 짓을 하는지 이유를 밝히시오!”
해괴 망측이랄것까지 있나.
“뭐 별 이유가 있나. 남편이 죽었는데도 황위를 새로 올릴 생각을 안 하는 황후가 야율배든 야율덕광이든 황제로 올릴 때까지 계속할 것인데.”
“뭐라! 설마 두 황자들도.”
“그렇소.”
조사온의 얼굴이 배신감으로 물들었다.
원래 정치란 그런 거지. 부모자식도없는 것이 결국권력이란 거다.
“이 무슨 철없는 행동들이오? 어찌 대요의 황자란 작자들이 이런 멍청한 짓들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보아하니 저놈도 지금은 술율평에게 붙은 모양이다.
“뭐라! 한족 주제에 그게 무슨 소리오!”
“지금 민족을 가르는가? 대요가 지금 거란족들로만 이루어진 줄 아시오?”
지금 요나라는 한족관리도 상당수일 거다.
본래 북방의 민족들은 그 수가 적으니, 중국식 제국을 건설하려면 한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자, 그 즈음 하도록 하지.”
나는 중간에서 조사온의 말을 가로막았다.
“조선왕은 어찌할 셈이오.”
딱히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냥 술율평 떨구는 역할만 맡지 않았나. 나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는 야율덕광까지 나한테 의지하려는 꼴을 보니 답이 없다.
어쨌든 지금 가진 병력 중 2만이 내 군대니까. 결국 내 의지라는 거지.
“황제도 없는데 태후로서 권력을 차지하여 요나라를 망치고 있는 황후가 권력을 내려놓고 황위를 태자든 덕광이든 둘 중 한 명에게 계승시키기 전까지. 나와 백제군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허.”
임황에서 발 한발짝도 빼지 않겠다.
거란이 백제가 삼국통일할 동안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병신으로
“할 말 있으면 마저 하시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오? 조선왕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조선왕이오. 요나라 황실의 여인과도 혼인한 몸이고. 안 그렇소? 왜 나에게 발언권이없다 그러나?”
일단 나도 따지고 보면 황실의 일원이니까.
“뭐요? 우리 대요는 공정한 절차를 거쳐서.”
그러면서 아직도 황제를 안 세우나.
“그것이 지금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아시오? 아무튼 우리의 의견은 하나요.
군대가 물러나기를 바란다면 당장 황후가 정치에서 물러난다는 각서를 쓰는 것”
“그걸 뚫린 입이라고. 그래. 쓰지 않는다면? 저 둘이 아닌 다른 황족을 황위에 올린다고 하면?”
아예 반군으로 규정하고 야율배와 야율덕광을 처리한 후에 다른 황족?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네. 술율평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여자다.
임황을 군대로 포위한 이상 야율배나 야율덕광 둘 다 믿기 힘들겠지.
“그때는 전쟁이지. 하루 안에 결정짓지 않는다면 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오.”
“시간을 조금 주시오. 황후를 설득해야 하지 않겠소.”
“그 정도 시간은 내어주지.”
조사온을 돌려보냈다.
어차피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겠지만, 지금은 걸려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으니까.
“시일을 끌자는 것이 아니오? 그런데 저걸 그대로 돌려보낸다고?”
“그럼 붙잡고 있으면 뾰족한 수라도 생기나?”
“돌려보내는 것보다는 낫지. 생각이 있소?”
생각이 있지. 오히려 임황을 떨어트리기 위한 확실한 생각이.
아마 술율평은 권력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황자들이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으니 외부에서의 지원을 바라겠지.
아니면 임황의 군대로 끝장을 내려 할 수도 있고.
“이보시오. 조선왕.”
“말해보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그러다 전쟁이라도 나면 어쩔 것이오?”
야율덕광이 불만섞인 목소리를 내면서 나를 노려본다.
“하면 그만 아닌가.”
전쟁이 별건가.
어차피 현지에서 보급하면 그만이다.
당장 요나라 땅에서 일어나는 내전이니까. 요나라도 약화시키고 나쁘지 않다.
“말이 쉽소. 이렇게 시일만 끌다가는 병사들에게 군살만 생길까 두렵소.”
야율덕광. 나는 이놈이 좀 수상하다.
술율평을 떨어트린다해도 이놈이 세 명이서 한 약속을 지킬까?
내가 회군하자마자 칠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곤란하지.
거란말로 욕을 한바탕 퍼붓던 야율덕광은 그대로 막사를 뛰쳐나갔다.
“조선왕. 대체 무슨 생각이오? 무력시윈지 뭔지 통하지 않는데?”
야율배도 불만이 많아 보였다.
“통하니 조사온이라는 남자를 보낸 것이지.”
“그것으로 되겠소? 정말로 전쟁이라도 난다면?”
“전쟁이 난다면 해야지.”
적어도 지금 우리 군이 질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끽해야 임황이다. 임황을 먹는 건 어렵지 않다. 점령 후 각 지역에서 몰려올 요군이 문제긴 하지만, 요동으로 도망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야율배가 그리는 그런 미래는 없다.
“아니, 그게 그리 간단하게 내뱉을 문제요?”
“사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네.”
조사온이 돌아가고 수십초 동안 생각한 것이다.
이참에 우리 입지도 늘리고 야율배에게 거란을 주는 완벽한 방법.
“무슨 말씀이시오?”
“야율덕광 말이네.”
“야율덕광이 왜?”
“태후가 야율덕광과 연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지금 사정을 보게. 태후는 지금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야.”
그 늙은 여우가 과연 어떻게 나올까. 그게 궁금하기는 한데. 아마 야율덕광을 포섭하려고 시도할 것이 뻔하다.
“그렇소.”
“이 상황에서 야율덕광과 함께 나를 노리지 않을까?”
술율평이 협공하자고 제안하면 야율배도 처리하고 나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
야율덕광은 좋아할지도.
“흐음. 확실히.”
“그 대신 황위를 확실히 약속하는 거지. 야율덕광은 살기 위해 황위를 노리는 자네와 달리 황제가 되어 정복욕을 꿈꾸고 있으니까.”
야율배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황위를 노린다.
야율덕광은 요나라를 팽창시키기 위해 황위를 노린다.
그리고 나는 선황제를 죽인 몸. 나를 죽이면 야율덕광은 더할 나위없는 공을 세우는 격이고, 순장당하지 않은 선황제의 신하들은 덕광을 황위에 올릴 것이다.
야율덕광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겠지.
아니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때문이고.
“그래서 그걸 이용해서 태후가 야율덕광을?”
“그래. 그래서 내가 일부러 야율덕광에게 포위를 맡겼지.”
술율평이 접근하기 쉽도록 말이다.
“음. 만일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네에게 묻겠네. 야율덕광을 잡고 내가 태후를 몰아내주면 요하를 넘지 않을 거라고 약조를 할 수 있겠나?”
나는 그게 중요하다.
이놈들이 요하를 넘어 요동을 공격하지 말아야 삼국통일도 하고 발해도 먹는다. 만일 요하를 넘는다면 그때는 정말로 거란부터 먹어야지.
“무슨 소리요?”
“자네가 황제가 되어야지.”
나는 야율배를 손가락으로 떡하니 가리켰다.
그러니까 너한테 은혜를 입힐 거다.
“원래 약속을 무시하고 덕광이를 치자?”
“어차피 자네를 죽이려고 칼도 먼저 뽑은 놈이 아닌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동생놈을 내버려 둘 것인가.
나라면 절대 못하지. 솔직히 신검이 그랬다면 나는 후백제도 적으로 삼을 수 있다.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황제가 되고 싶다면 결단을 해야 하네.”
내 꼭두각시 인형이 되어야 한다.
술율평에 물들어버린 임황을 싹 갈아엎는다는 이유로 수뇌부를 싹 다 처단하고 백제의 관리들을 파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음. 좋소. 대신. 확실한 증좌가 있어야 할 것이오. 만일 덕광이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원래 계획대로 어머니를 끌어내고 그 후에 요를 반으로 나눠야 하오.”
“그리하지.”
야율배는 이렇게 점점 내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