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56화 (56/154)

56. 고려의 북진

* * *

내 군대를 보겠다고 보채는 야율덕광과 야율배에게 거란족 출신으로 채운 부여군의 훈련을 보여주었다.

“기병들도 참으로 강력해 보이는군.”

“당연하지. 북방의 말로 무장한 군대라네.”

심지어 거란에서 들인 말을 탐라로 보내어 크게 불리고 있다.

조만간 고려는 백제군의 군마에 아주 짓밟힐 것이다.

“과연 군사들의 사기는 높고, 무기와 군마도 좋으니, 조선왕이 강한 이유를 알 것 같소이다.”

내 군사를 확인한 야율덕광도 생각을 달리했는지 은근히 내게 호의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야율배에게 붙으면 지가 위험할 거라고 판단한 듯 싶다.

야율배와 야율덕광은 내 군대를 보고 나서야 확신이 섰는지, 혈서로 약조까지하고 나서야 요동성을 떠났다.

“시간은 조금이라도 벌 수 있으려나.”

너무 많은 것이 한 번에 몰려오고 있다.

당장 서경의 문제도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이다.

태자를 폐하게 되면 결국 대인선은 힘을 들여서 대광현을 토벌하려 할 것이다.

설마 거기서 군대를 또 빌려달라 하지는 않겠지.

최승우가 돌아온 것은 해를 넘겨 두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전하. 소신 상좌평 최승우가 요동의 각성을 둘러보고 돌아왔습니다.”

“잘하셨소.”

이제 그럼 말갈과 거란 애들 지능을 올려줄 때가 되었다. 경당을 세운다면 병사들도 통합시킬 수 있다.

“아무래도 비사성을 통해 중원의 난민들이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요동의 각성마다 경당도 세워 군사를 키우면서 비사성은 무역을 위한 거점으로 사용하심이 옳을 것입니다.”

중원은 한참 혼란기니까 뭐.

“그리 해야겠군.”

“또 진도 설치하시지요. 청해진 같은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미 나주에 수군기지가 있지 않습니까?”

굳이 수군기지를 또 늘릴 필요가 있나?

“난민이 발생하고, 비사성이 무역거점이 된다면, 결국 해적들도 출몰할 것입니다. 신라구와 왜구만이 해적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겠지만, 지금 그럴 만한 여력이 없는데.”

“결국 비사성을 통해 우리는 중원과 계속 교역해야 합니다.”

그렇기는 해야 하는데. 그럼 군사도 필요하고. 그런데 인구가 그리 넘쳐나는 게 아니다. 당장 요와 발해탓에 육군 몰빵을 했는데.

“댈 군사가 없는데?”

“왜 없겠습니까? 발해의 수군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다를 잃어 압록강 포구에서 훈련하는모습은 참으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군사를 빌리자는 건가.

“요왕으로서 본국의 수군을 받자?”

“예. 가독부도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나쁘지 않지.

“이왕이면 저 북쪽의 부여성까지 얻어 요동을 전부 우리 것으로 얻고 싶습니다만.”

“그렇기는 하죠. 지금 우리가 가진 땅이 너무 작습니다.”

요동의 일부 밖에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완산주 조정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습니다.”

“본국과 너무 떨어져 있으니 독립적인 관부를 만들자?”

“네.”

그건 좀 무리다.

아무리 내가 출세하고 있다고 해도 엄연히 이 나라에는 견훤이 있으며 신검이 태자다. 괜히 긁어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

“일단 폐하와 논의를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독단으로 부를 만든다면 반란으로 의심될 수 있습니다.”

“완산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하루빨리 통일을 해야 한다.

고려 때문에 육로가 막혀있으니, 매번 해로로 돌고 돌아 움직이는 것이 매번 문제다.

일단 고려의 함대는 건재하다. 그래서 언제든 반격당할 위험도있으니, 함부로 고려 근처로 항해할 수는 없다.

“그때 휴전협상 때, 이번 일도 논의했어야 했는데.”

“지금 와 다시 협정을 하는 것도 무리니. 후일 고려를 쳐 통일하는 것을 우선하시지요. 어차피 요의 일이 남지 않았습니까?”

고려를 치는 것은 결국 요를 취한 다음인가.

자리가 좋은데 사방에서 도와달라고 하니 이것도 귀찮다.

“그리고 발해의 서경도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고려의 왕건과 연락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쪽도 세작을 파견해야겠습니다.”

이곳이 마냥 좋은 땅은 아니다.

발해는 말갈의 반란을 진압은 했는데,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고. 요나라 일을 처리하는데 고려에서도 문제가 터지면 곤란하다.

그동안 내치도 제법 다스렸다.

문제는 서경의 사정인데, 기어이 대인선이 대화균을 새로운 태자로 세우고, 대광현을 폐하였다.

이때 대광현은 독립을 선언했다.

그야말로 정신나간 짓. 발해를 양분하겠다는 발언이었다.

나를 포함한 발해의 대부분의 주현은 서경 조정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남경은 서경을 지지했다.

“그나저나 남경은 무슨 생각이지?”

“남경은 언제부턴가 발해 조정에서 도태되었습니다. 하여, 서경에 태자가 온 시점에 태자와 일을 도모하고 싶었던 것이죠.”

내 의문에 관흔이 대답했다.

관흔이 이제는 제법 정치도 볼 줄 아는 모양이다.

“남경이?”

아, 대인선 시대에 권력다툼 때문인가.

그러면 남경도 뒤집어 엎어야 하나.

“전하. 최악 고려와 군사연합을 할 가능성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음 그렇기는 하지만. 설마 이번에도 우리가 군대를 내어야 하는 상황이 오겠는가?”

가독부가 우리 군사력을 필요로 하느냐, 안하느냐가 걸린다.

요나라의 사정도 심상치 않은데, 요동의 병력으로 요와 발해를 동시에 지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요왕의 지위에 있으니 이번에 가독부가 명을 내린다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경이 그렇다고 군사를 일으킨 건 아니다.

지금 서경의 대광현은 스스로 가독부라 칭하고 있으나, 정작 상경과는 싸울 생각이 없다.

하긴, 군사적으로 싸우고자하면 아예 상경만이 아니라 나도 잡아야 하는데, 서경은 그럴 처지가 못된다.

그래서 고려와 붙은 것 같은데.

고려와 붙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고려가 서경을 지원할 힘이 있나?

아니, 없을 텐데.

동맹국이 공격받는데 신검 형님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요동에 있는 대장간들은 잘 돌아갑니까?”

“예. 말갈들로부터도 무기를 계속 들이고 있으며 발해의 철광도 독점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발해의 모든 철을 우리가 독점하는 형국입니다.”

발해의 철광도 내가 독점했다.

이건 나름 명분이 있었다.

현재 발해는 빈곤한 천지다. 그러니 식량을 보급하겠다는 핑계로 철광으로 무기를 생산하고 중원에 팔아넘기는 식이다.

“군량도 무기도 충분하고. 신무기 확보는?”

“언제든 요나라든 고려든. 다 때려부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시험에서 효과가 좋다고 해도 실전에서 형편없으면 곤란하다.

“당장 실험할 곳이 마땅치 않군.”

그 무렵이었다.

“전하, 요의 태자 야율배가 군사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 잘 난 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때에 맞춰 사건이 터졌다.

적절한 때다. 서경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일을 하나라도 처리해두려면 역시 요나라를 끝내두는 것이 형편에 좋다.

어느 한쪽을 끝내야 한다면, 가장 위험한 요나라부터 끝내야 한다.

술율평을 끌어내릴 때, 내가 보통놈이 아니라는 것을 야율덕광과 야율배의 머리에 이식시켜야 내 뒤를 치지 않을 거다.

“임황에 있는 늙은 여우에게 신무기 실험도 해봐야겠어.”

* * *

고려

대인선이 대화균을 새로운 태자로 올리자, 고려의 왕건은 발해 서경의 대광현과 동맹을 맺었다.

딱히 예뻐서가 아니다. 그나마 대광현이라도 아군으로 있어야 써먹을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광현이 상경을 도모하자고 군사를 청했다.

“발해의 대광현과 힘을 합치면 상경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불가한 것은 아닙니다. 서경과 남경을 제외하고 현재 발해의 군대는 정비가 되어있지 않고 무기를 요동을 통해 중원에 팔아넘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발해 스스로 자국을 지킬 병력을 해산시키고 있다는거나 다름없는 행동이 아닌가.

대광현이 믿는 구석이 있다 했더니 그것이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건가?”

“다만 변수는 요동에 있는 부여금강이 아니겠습니까?”

“부여금강이라. 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로군.”

지금은 백제의 부여왕이자, 발해의 요왕, 요나라의 조선왕으로서 요동을 다스리는 인물.

왕건은 부여금강이란 자를 남모르게 질투했다.

자신은 이루지 못한 요동정벌을 이룩한 자.

비록 요동의 일부라 하나, 그 대륙 진출의 교두보를 점령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위업이 아닌가.

“우리 고려를 약화시킨 원수 중의 원수입니다. 호족들을 수습하느라 힘들지 않았습니까.”

지난 대야성 전투로 잃었던 호족들을 조금이나마 수습했다.

그나마 태자가 된 신검이 무능한 탓이 한몫했다.

“하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박술희장군. 그게 무슨 말이오?”

“지금 요동의 사정으로 보아 부여금강은 거란의 내분에 끼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요동에 수없이 세작을 보내면서 알아낸 정보다.

금강은 지금 발해에 군사를 보낼 처지가 되지 못한다.

“거란이라. 그 요나라 말인가?”

“예. 폐하. 요동의 군대가 아무리 강군이라 한들. 거란에서 힘을 쓰다 보면 우리와 싸우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역시 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발해의 태자 대광현은 상경을 점령할 시 지원만 하면 남해부의 땅을 고려에 준다는 약속을 했다.

고려는 그 약속을 믿고, 휴전 탓에 막힌 남쪽으로의 팽창보다 북쪽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병력은 아무리 내도 백제가 있으니 2만 이상은 무리네. 심지어 실패할 경우를 생각해야 해.”

“금강왕자만 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흐음. 금강이라.”

왕건은 턱수염을 쓸며 눈을 가늘게 떴다.

굳이 금강을 피해가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든다. 마치 이건 자신이 금강이 두려워 일부러 그를 피하고 발해를 노리는 거 같지 않은가.

“폐하, 어찌 그러십니까.”

“왜 금강을 피하려 하는가?”

왕규에게 묻자 왕규는 왕건이 느끼지 못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폐하. 금강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강은 요와 발해로부터 관직을 받은 인물이라 휴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가 이끄는 군대가 자그마치 2만이 넘는다고 하니,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흐음. 계속 말해보게.”

어디 그 핑계가 얼마나 될지 두고 봐야겠다.

“금강의 군대 2만이 가독부의 군대에 합류하면 큰일입니다. 피할 수 있는 전쟁은 피해야 하는 법입니다. 금강과의 전투를 굳이 치르지 않고도 상경을 도모할 수 있는데, 어찌 그러십니까.”

“말은 그렇게 하나. 결국 금강이 두려워 피하자는 것이 아닌가.”

신료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금강에게 겁을 먹은 것이 뻔히 보인다.

말만 들으면 그럴 듯한데. 왜 이리 겁쟁이처럼 보일까.

“그것은.”

“왜, 승리를 확신할 수 없나?”

“폐하. 실은 금강왕자가 가진 신무기가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그 무기가 파악되는 대로 금강왕자를 이길 필승의 전략을.”

필승의 전략은 무슨. 어떻게든 피할 생각이겠지.

이런 겁이 많은 인사들을 보았나. 어쩌다 고려의 신료들이 이토록 겁만 많아졌다는 말인가.

“하, 되었네. 우리 고려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휴전도, 전쟁도 대광현이 발해의 가독부가 되기만 하면 전부 해결되는 일입니다. 휴전이 끝나기 전에 우리 고려도 땅을 넓혀야 합니다.”

그건 그냥 괜히 백제와의 경쟁심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금강과도 싸우지 못하면서 땅덩어리만 넓힌다고 다 되는 건가.

“그 조금의 땅을 얻는다고 우리가 백제보다 강해질수 있겠는가?”

“그것은.”

“우리가 삼한을 통일할 방법을 말해보라.”

금강 하나를 못 잡으면서 삼한을 통일할 수나 있을까.

“폐하. 요동에 세작을 파견하여 신무기에 관해 알아보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그래. 그렇다치자. 그게 얼마나 걸리겠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놈의 시간. 그러다 휴전이 끝나면 위에서는 금강이란 놈과 아래에서는 되다만 신검이 위아래로 공격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신무기를 개발할 때까지는 절대 금강과 싸워서는 안된다. 이 말이지.”

“폐하. 우리가 초조해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래. 참지. 그럼 언제 북진을 하는 것이 좋겠는가?”

초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신하들은 참으라고만 하니 참았다.

그럼 이제 북진을 할 때라도 정해야 하지 않나.

“예. 금강이 요나라로 출정한 사이에 대광현과 합류해야 합니다.”

“박술희 자네를 총사로 임명하겠네.”

유금필을 쳐낸 지금, 총사는 박술희가 나을 것이다.

“반드시 상경을 점령하여 고려의 영광을 되찾겠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주게. 금강의 얼굴이 무너지는 꼴을 꼭 보고 싶네.”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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