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요의 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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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압록부
대봉예는 상경에서 내려온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신덕장군이 죽어요? 반란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요왕이 방해한 탓입니다.”
요왕은 어째 늘 방해만 하는 것 같다.
대에 왜 매번 일이 이렇게 꼬일 수 있나.
“이제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아직 별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신덕장군 혼자서 죽은 모양이지만 폐하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신덕이 끝까지 서경의 일을 말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바보가 아니고서야 상경도 서경이 한 짓이라는 건 이미 알 것이다.
일찍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렇겠지요.”
“남경까지 우리를 돕고 있으나, 상경을 따르는 무리가 많습니다. 요왕이 가진 군세도 막강하구요.”
1만의 군사로 신덕을 무찔렀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단신으로 장군 신덕의 군대를 궤멸시켰다고 하니, 사실이라면 승부가 되지 않는다.
비록 거란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해도 지금 가진 힘으로 상경, 요왕과 맞서는 것은 무리가 있다.
“어쩌자는 말씀입니까?”
“세작의 보고로는 폐하께서 태자전하를 폐한다 하였습니다. 이제는 정말 독립을 선언할 때입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오흥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태자에 책봉될 수 있는 왕자는 대화균이라고 한다.
태자로 책봉할 후보까지 있는 마당에 대광현은 이제 서경에 그다지 중요한
“우리가 요왕과 상경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필패입니다.”
대봉예의 말에 측근 오흥이 일축했다.
신덕이 말갈을 선동한 작전도 실패로 돌아간다.
서경에 남은 군세로는 상경과 요왕의 군대를 이겨내지 못한다. 심지어 다른 부는 여전히 상경을 따르고 있다.
이제 태자가 새롭게 책봉되면 서경은 완전히 반란군의 본진이 될 것이다.
“다른 계책은?”
“다른 계책은 고려의 왕건과 힘을 합치시지요.”
고려라면 신라땅에서 일어난 왕씨의 나라가 아니던가.
“고려의 왕건과? 그 자와 힘을 합쳐서 어쩌라는 것입니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황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그러자면. 우방국이 필요합니다. 거란은 불가하고, 고려 밖에 없습니다.”
동맹. 확실히 지금은 동맹 밖에 타계책이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려에 사신을 보내보세요.”
“예. 전하.”
신덕까지 잃고 요왕과 대인선에 의해 고립되게 생긴 서경의 대광현에게 남은 방법은 고려와의 동맹 하나 뿐이었다.
* * *
상경임황부
“조선왕 그 건방진 자가 야율배를 지지하고 있으니, 이를 어쩐다는 말인가?”
요하 상류에 있는 요나라의 수도 임황에서는 한참 다음 황위문제를 두고 황실에서 논쟁이 많았다.
술율평은 거란의 대소신료들을 모아 이 일을 결단내고 싶었는데, 조선왕 탓에 영 지지부진했다.
조선왕이 가진 군세가 야율배를 돕는다면 상대하기 힘들다.
“그냥 형님을 죽여야 합니다.”
“으음. 그래도 어찌 형제인데 그리 쉽게 죽일 수 있겠느냐.”
야율배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한들. 어찌 쉽게 죽일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극단적이면 모를까. 아직은 아니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조금은 생각해봐야겠구나.”
그놈의 생각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가.
이대로 황위를 계속 비워둔다면 어떤 불온한 움직임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루라도 빨리 황제를 결정지어야만 한다.
“더는 안 됩니다. 황제의 자리를 비운지 이미 한참입니다. 소자나 형님 중 한 명은 황제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으음.”
황제라 황제. 맞는 말이다. 얼른 정해야지.
그런데 이렇게 파벌들이 서로 야율배와 야율덕광을 지지하는 탓에 나라는 순전히 자신의 주도로 돌아가고 있다.
그럼 굳이 황제를 결정할 필요가 있을까?
문득 술율평은 그런 생각을 했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도 여인으로서 황제가 되지 않았나.
중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여황제로 군림했다. 비록 그 끝은 좋지 않았으나, 천하를 쥐고 흔들었다.
자신이라고 못할 것이 무엇인가?
자식들이 있으나, 야율덕광을 지금 앉히기에는 너무 이르고 형제만 죽일 생각으로 가득찼다.
그렇다고 야율배를 선택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러면 조금만 더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
“솔직히 형님은 황제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아버님을 시해한 그 조선왕의 지원을 바라다뇨!”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인물이 조선왕이기는 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야율배를 처단하기에는 자식이기도 하고 그 조선왕의 군대도 걸린다.
“그렇다고 해도 형제를 어찌. 그리고 내 아들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거라.”
지금은 조금만 더. 이 손에 쥔 권력을 놓고 싶지 않다.
아마 조선왕도 군세가 막강하다고는 하나 야율배를 돕겠다고 제 군사를 초원에서 낭비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 속에서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차피 권력은 내 손에 있고 중원도 지금 멀쩡하지 못하다. 지금 이대로 굳어진다면 황제가 될 수도 있겠어.’
조금은, 조선왕을 이용해서 이 상황을 유지하다가 여제로 군림하고, 다음 황위는 손자나 조카에게 넘겨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처소로 돌아온 야율덕광은 화병을 내던졌다.
“젠장. 어머니도 분명 지금의 상황에서 만족하고 있을 뿐이야.”
야율덕광도 내심 어미인 술율평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술율평은 현재 요나라의 권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야말로 측천무후나 다름없는 상황. 그런 마당에 자신이 어떻게 황위에 오를 수 있을까.
이러다 정말 어미인 술율평이 여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명분은 결국 형님이라는 건데.”
지금 당장은 어머니를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역시 형제를 처단하는 것이 답인가.
야율배를 잡아야 어머니도 더는 아무 말 못하고 황위를 내릴 것이다.
“아무래도 형님을 도모해야겠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하루빨리 야율배를 처리해서 황위에 올라야 복수든 중원으로 나아가든 할 것이다.
“만일 들키면 태후께서.”
야율덕광의 측근들은 술율평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야율덕광을 술율평이 황제로 지목하고 있다고는 해도, 지금 거란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술율평이었다.
만일 야율덕광이 일을 그르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술율평과도 척을 질 각오를 해야한다.
“저지르고 봐야 한다. 이미 죽고 없는 형님을 가지고 어머니가 어찌하겠느냐?
증거만 남기지 않고 형님을 처단하라.”
“예. 전하.”
야율덕광은 측근들을 보내 야율배를 암살하려했다. 그러나 야율배라고 가만히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전하! 야율덕광이 살수들을 보냈습니다!”
야율덕광을 수시로 살피던 야율배는 야율독광이 살수를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젠장. 조선왕에게 지원을 요청하라!”
이미 임황에 자신의 세력이 적음을 알고 있던 야율배는 측근들과 함께 임황부를 탈출하여 요동으로 도주했다.
* * *
요동성으로 돌아오니 끌고 온 말갈 놈들이 걸린다.
일단 흑수말갈들을 분산시켰으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신검 태자가 일본에 항의사신을 보낸 모양입니다.”
상좌평이 내가 없는 사이 있던 일들을 보고했다.
“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아, 상좌평 내 청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이번에 요동의 각성에 분산시킬 생각인데. 아무래도 백제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요동각지에 태학과 경당같은 것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그 일을 맡아주십시오.”
같은 문화, 언어, 풍습에 흑수말갈을 교화시켜야 한다. 그러니 학교와 같은 것은 요동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자면 신이 태학과 경당의 설립을 위해 잠시 요동을 순행해야 할 것 같은데. 허락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리다.”
최승우에게 교육에 대한 것을 일임하고 사저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시지요. 너무 늦으셨습니다.”
“미안하오. 북쪽까지 더 올라가느라 바빴소. 그런데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배가 홀쭉이인 것을 보니 이미 내 자식이 세상에 나온 모양이다.
그럼 당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봐야지.
“아들입니다. 후일 천황과 마한황제가 될 아이지요.”
“부인 참 욕심도 많으십니다.”
그래도 그 정도라면 이제 욕심을 내도 되지 않을까?
신검도 슬슬 알겠지. 내가 없으면 나라 굴리기가 힘들다는 것. 상원부인도 마찬가지고. 그렇다면 내가 굳이 가지 않아도 그놈이 알아서 부를 거다.
“부부는 닮는다하지 않습니까? 그럼 일본의 일은 이제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당분간은 요동에서 내치를 다스려야지요.”
요나라의 문제도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야율배와 야율덕광이 후계자 다툼 구도가 되었다 한다.
“아, 그리고 야율배가 서신을 보냈습니다. 상좌평을 대신해 신첩이 받았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어디 보여주시지요.”
그 불청객 놈이 또 뭘 보내?
-야율덕광이 내게 칼을 겨눴소. 아마도 어머님의 묵인이 있었겠지. 이렇게 된 이상, 황제의 자리를 둔 내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소 내 조선왕의 힘이 필요 하니, 부디 군사들을 지원해주시오.
“아무래도 내전이 예상된다라.”
군사지원을 요청하는 글이다.
당장 전투는 아니라도 야율덕광 파벌과 무슨 일이 터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또 다시 전운인가.”
아직은 안 되는데, 흑수말갈들을 분산시켰다고 하나 한동안은 다스려야 할 때다.
설마 야율덕광이 벌써 그런 무리한 수를 쓰다니.
“설마 바로 출정하십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일단 요의 사정을 알아봐야지요.”
부디 야율배가 쉽게 패배하지 않았으면 싶다.
설마하니 야율덕광이 야율배를 바로 제압할 만한 군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드니, 전투가 일어난다해도 야율배가 바로 당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임황에 거란출신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야율배의 서신은 사실이었다.
야율배는 임황에 별다른 세력이 없었다.
“술율평이 요의 권력을 쥐고 있으며 그 아들인 야율덕광이 야율배에게 자객들을 보내다 일이 실패하였다고 합니다.”
관흔의 보고에 고개를 저었다.
“아예 갈라졌겠군.”
그랬으면 형제간이 서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된 격이다.
원 역사와 달리 야율배가 계속 거란에 남아있으면 이렇게 되는 건가.
“야율배가 계속해서 군사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군사지원이라.”
거란의 수도는 요하 상류에 있다.
군사를 보낸다면 금방 보낼 수 있겠지. 아마 야율배도 수도 근처에서 야율덕광과 한판 붙으려고 할 테고.
솔직히 말해 내가 그 멍청한 촌놈을 위해 군대를 내야 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전쟁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흑수말갈도 이제 막 요동에 분산시킨데다가, 아직 교육사업도 남아있고, 어찌할까 머리를 굴리는데, 아내가 할 말이 있는지 눈짓을 했다.
“그렇다면 둘은 중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휴전말입니까?”
“네. 지금 현재 술율평은 요의 전권을 쥐락펴락하면서 두 아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렇네. 분열을 막으려면 아들들을 말려야 하지 않나?
“지금 현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서 건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그렇고. 그런 이유일 수도 있다는 건가.”
“확실할 거에요. 아마 술율평의 손바닥 위에는 제 남편도 있을 테고.”
“내가?”
“예.”
하긴, 술율평 그 여자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자기 남편이 죽은 사이에 황위를 결정짓는 자리에서 요의 권력을 잡고 휘두르고 있다. 충분히 권력욕에 빠질 만하다.
원역사에서 자기 팔까지 잘라가면서 살아남았던 여자답다.
그렇다면 쉽게 자기 아들들에게 황위를 주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고 한 사람을 곧바로 황제로 올리기에는 권력이 떨어질 까봐 걱정이 될테고. 딱 두 아들의 세력이 적당히 유지되는 지금을 바랄 거다.
그때 조선왕이란 내 존재는 야율배에게 힘을 실어주고 균형을 맞출 테고.
“하여간 여우로군.”
“우리도 이곳에서 더 힘을 키우려면. 지금이 좋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나는 술율평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내가 왜 그 여자 손에 놀아나야 해?
그 요사스러운 늑은 여우에게 휘둘릴 바에는 군사를 일으켜서 쳐들어가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이참에 요를 아예 반으로 갈라둡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