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53화 (53/154)

53. 흑수말갈을 토벌하다.

* * *

“어쩌라는 건지. 그럼 항복할 뜻이 없다고?”

흑수말갈이 이런 상황에서 항복할 뜻이 있다면 그것도 웃기겠지만.

“이미 상경을 포위한 반군들이 제압되었다면 이제 우리에게도 갈 길은 없소이다! 어차피 발해군들은 오합지졸! 우리가 죽기를 각오한다면 물리치지 못할 것도 없소!”

“그렇게 꼭 피해를 봐야 하나?”

되는 대로 군사를 아끼고 싶기에 여기서 설득이 가능하다면 추장들 목을 자르는 데서 멈출 것이다.

“그렇소이다! 이미 우리 군에는 살기 힘들어 나와 뜻을 같이하려는 발해인들도 있으니, 발해의 천명이 다했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나라가 망하는 것은 결국 안에서 시작된다.

흑수말갈이 그저 자기들 힘만 믿고 나댄 것은 아니다.

신덕을 믿고 따른 말갈군처럼 결국 놈들에게 발해백성이 붙었으니 가능한 것이다.

“발해인들은 얼마나 있지?”

“무려 1만 5천이오! 절반이나 우리들의 대업을 함께 하고 있소!”

흑수부에서도 통일된 것이 아니라 여러 추장들이 있다.

완안부와 같은 통일된 여진족이 아니다.

애초에 흑수부 하나로 들고 일어난 것부터 나라를 세울 여력은 없다는 증거다.

지금은 우리와 맞서 싸우고 있으나 서열정리를 하지 않으면 흑수부가 설령 우리를 격파한다해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 안에 있는 발해군들이야 흑수부가 망하면 금방 나가 떨어질 군사들이다.

이 싸움에서 말갈군의 피해를 늘려야 한다.

그래야 남은 놈들이 나에게 의지할 것이 아닌가.

“그럼 결정났다.”

굳이 우리 백제군의 피해를 볼 필요가 없겠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말갈족들을 내밀어도 될 것이다.

“무슨.”

“선빵필승!”

나는 검을 들어 그대로 추방의 목을 쳤다. 협상결렬은 이쪽에서 먼저 선포한 격이다.

하지만, 저 멀리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놈들은 다르겠지.

“이게 대체 무슨!”

“요왕을 죽여라!”

죽은 전우를 봐서 그런지 추장들이 분기탱천하여 일제히 나를 죽이기 위해 창과 검을 휘둘렀다.

“흑수말갈의 추장들이 나에게 검을 휘둘렀다! 나의 군사들이여! 감히 위아래도 모르는 것들에게 천벌을 내려라!”

“비열한 흑수말갈 놈들이 요왕전하를 시해하려 했다!”

“놈들을 죽여라!”

흑수말갈족들이 당황하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지금이다. 먼저 선공을 해야 한다.

“거란과 말갈의 기병은 나를 따르라! 백제의 포병들은 지원을 아끼지 마라!”

“““예! 전하!”””

펑! 퍼벙!

포병들의 지원까지 받는 이때, 나는 기병들을 몰고 가 단숨에 남은 추장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다.

“요왕의 군대를 막아라!”

“끄아아아아악!”

추장들 한 둘이 살아남아 겨우 본진에 도착했으나, 그 뒤를 나는 집요하게 뒤쫓기 시작했다.

“단숨에 들이쳐라! 흑수말갈을 박살내라!”

대규모 혼전이 벌어졌다.

백제인들로 이루어진 포병들은 뒤에서 포만 쏘아대고 거란과 말갈족들을 중심으로 하여 흑수부토벌을 하게 했다.

흑수말갈은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저항했다.

그 속에 있는 발해군들은 어느새 이탈하거나 항복해왔는데, 말갈족들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맞서 싸웠다.

바보들이 그냥 동평부성에서 우리와 싸웠으면 유리했을 텐데. 바보들이 군세를 보이겠답시고 나온 것이 컸다.

나는 말갈과 거란족을 이끌고 흑수말갈 본진으로 쳐들어갔다.

지휘부의 추장이 죽어 혼란에 빠진 흑수말갈은 남은 추장들이 어떻게 혼란을 수습하려 하였으나, 일찍이 전투준비를 마친 내 기병들은 아주 옆구리에 칼을 쑤시듯 흑수말갈의 본진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난장판이 따로 없군.”

흑수말갈의 목을 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가관도 아니다.

말을 타고 매섭게 부딪치면 놈들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지고 나한테 짓밟혔다.

당연히 그 사이에 검을 휘둘러 말갈족들을 베고 나면 놈들은 나를 두려워하며 도망다니기 바빴다.

그래. 세상에 이런 미친놈은 처음 봤겠지.

대뜸 추장들을 죽이고 돌진해오는 놈이 얼마나 무서울까.

“으.으으. 오.오지 마!”

“갈 건데?”

“끄아아악!”

지금까지 말갈놈들을 얼마나 베었는지 모르겠다.

흑수말갈군의 병력도 상당한 덕에 우리 군의 피해도 늘었다.

포병이 없으면 아마 꽤 큰 피해를 보겠지. 하지만 포병의 덕을 톡톡히 보는 우리 군은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전열이 무너지는 흑수말갈들을 치기 수월했다.

“전하. 중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흑수말갈이 좌우로 흩어졌습니다.”

“이대로 양쪽의 흑수말갈군들을 모조리 제압한다!”

“네!”

결론만 말하자면 흑수말갈은 중심이 무너지자 쉽게 와해되었다.

도망치는 흑수말갈들은 모조리 죽었고, 살아남은 흑수말갈들은 결국 항복하는 것이 답이었다.

이미 추장들을 잃고 중심을 잃은 흑수말갈이다.

이대로 가만히 둬도 북방에서 스스로 자멸하겠지만. 내가 먹을 발해의 북방이 혼란스러운 것은 봐줄 수 없다.

“전하! 대승입니다!”

“흠. 우리 피해는?”

“말갈과 거란에서 피해가 좀 났습니다만. 기세 좋던 흑수말갈들이 전하의 위엄에 놀라 자멸한 탓에 쉽게 토벌할 수 있었습니다.”

“이참에 흑수말갈 전지역을 싹 쓸어버리지.”

흑수말갈의 돤전한 토벌. 그리고 남은 백성들은 전부 요동으로 데려갈 것이다.

“동평부가 지금 흑수말갈의 세력권이라 그랬지?”

“예. 전하.”

동평부 인근 말갈족들을 싹 쓸어버리기로 했다.

“발해에 저항하는 흑수말갈들을 모두 끌어내라!”

“사.살려주십쇼! 저희들은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저희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잡힌 말갈놈들은 억울하겠지만, 뒤를 찝찝하게 둘 수 없다.

“그렇다해도 쉽게 믿을 수 없다. 전부 요동으로 데려가겠다.”

이참에 요동으로 흑수말갈들을 이주시키는 것. 요동에 분산배치하여 최대한 인구수를 확보할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신무기가 개발되었다지.”

“예. 전하. 진천뢰입니다. 흑수말갈을 상대로도 아직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진천뢰라. 나쁘지 않지.

“구포로 성안에 쏘아 올려라.”

“항복은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미 말갈에 빌붙은 놈들이 아닌가. 필요없다. 이럴 때는 좀 강단있게 나가야 한다.”

원역사에서도 동평부는 거란에 너무 빨리 떨어졌다.

그렇다는 것은 아마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않았다는 뜻. 항복을 했다는 의미겠지.

흑수말갈따위에 항복할 정도면 말은 다한 집단이다.

그렇다면 함락하는 편이 낫겠지.

이미 명분은 있다. 흑수부에 항복한 성. 그 자체만으로도 저 성을 뽀갤 기회가 생긴 것이다.

“동평부 성을 공격하라! 항복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죽여라!”

“제기랄 흑수말갈이 패배한 건가! 항복. 항복하라!”

“필요없어!”

쾅! 콰광!

동평부성에 포격이 쏟아졌다.

“성능확실하구만.”

나는 영웅도, 선인도 아니다. 그러니 후일 방해가 될 만한 요인들은 미리 다 제거해둬야 한다.

어차피 삼한을 평정하면 인구는 늘 것이고, 일본도 백제에 병합하면 중원이 통일해도 함부로 못할 인구와 경제력을 갖춘 나라가 될 것이다.

“어찌 상경의 군대도 아닌 요왕의 군대가 이곳 동평부를 무너트린다는 말이오!”

“들을 가치도 없다. 목을 베어 가독부께 보낼 것이다.”

“예 전하!”

동평부에 이어 회원부까지 나아가 완전히 흑수말갈을 소탕하여 반란을 평정했다.

다만 이번 일로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지금 발해는 천지가 너무 혼란스럽다.

태자문제가 빨리 정리되지 않은 것도 있으나, 그냥 그 뿐일까? 아니겠지. 결국 발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전쟁만 없었으면 어떻게 대인선도 해볼 만 했겠지. 하지만 결국 거란과의 전쟁은 이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태자와 신덕 탓에 흑수말갈이 들고 일어날 틈도 생겼고, 무엇보다 고구려계들가지 섞여사는 동평부에서 이 난리라면 말은 다했지.

그나마 막힐부, 장령부, 부여부는 아직 상경의 조정을 받들고 있다.

저 서경 쪽의 분조는 남경이 지원하는 것 같고.

“아무래도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군.”

“전하 왜 그러십니까?”

“우리는 상경의 조정을 지지하고 있네. 하지만 서경과 남경은 분조 쪽이지.

무려 남부는 전부 서경을 지원하고 있어.”

지금은 완전히 살얼음판이다.

이렇게 가다가 정말 북발해, 남발해가 나올지도 모른다.

“정말 반토막이 났군요.”

“아직은 상경의 조정이 더 낫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네.”

“그러할 것입니다.”

조만간 발해가 갈라지면 그때는 정말로 내가 가져야 한다.

“어쨌든 상경으로 가지. 승전을 보고해야 할 것이네.”

“예.”

발해를 향한 전략도 수정할 때가 되었다.

“요왕. 어서 오게. 말갈의 반군을 격파했다 들었네.”

상경으로 개선하자 대인선이 신료들까지 끌고 나와 크게 환영했다.

“예. 폐하. 흑수말갈에 항복한 동평부와 회원부의 성도 탈환하였습니다.”

“참으로 잘해주었네. 그대야말로 진정 발해의 신하라고 할 수 있네.”

“황공할 따름입니다. 폐하. 흑수말갈은 다시 준동하지 못하도록 요동으로 분산시킬 생각입니다.”

가만히 보니 대인선의 말에 뼈가 조금 담겨있다.

공을 세우는 건 좋지만, 필요이상으로 나대서는 안된다.

이런 건 미리 말해두지 않으면 의심할 수도 있다.

“음. 그럼 요동이 거대한 감옥이 될 수도 있겠군.”

“그렇다고 또 뒤통수를 칠 흑수말갈을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껏 흑수말갈놈들이 한 행동을 보면 명분은 충분하다.

“그렇겠지. 수고가 많았네. 네 이 공을 어떻게 치하해야 한다는 말인가.”

“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요동이라는 과분한 상을 받았는데,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아마 지금 요동이 상경보다 더 잘 살고 있을 텐데. 그리고 이번 일로 말갈을 손에 넣었으니 결코 군사적 손실만 본 것은 아니다.

“정 그렇다면야. 한동안 머물다 가는 것이 어떠한가.”

살짝 대인선 주변의 신료들을 보았다.

다들 얼굴이 씁쓸해 보인다.

발해인도 아닌 백제인이 심각하게 공을 많이 세웠으니 발해의 신료들 입장에서는 마냥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오늘 상경에서 머물다가는 암살자를 볼지도 모르겠다.

“송구하오나 명을 거두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보시오. 요왕. 폐하의 명을 받들지 않겠다는 말이오?”

"공을 좀 세웠다고 기고만장한 것이 아니오?"

기다렸다는 듯이 발해의 관료들은 나를 뜯었다.

“이유가 있는가?”

“실은 제 장인인 일본의 천황께서 제게 연왕의 지위를 내렸습니다.”

대인선의 의문에 나는 적당한 핑계거리를 댔다.

발해 입장에서도 연왕사건은 항의할 만한 일이다.

“군왕의 자리를 내렸다?”

최근 분열된 나라를 수습하느라 지친 대인선 조차도 눈썹을 찡그렸다.

요동은 본디 고구려와 발해의 땅이다. 그런 마당에 열도에 박힌 일본이 감히 요동을

“예. 한마디로 요동을 일본땅으로 삼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일을 해결지으려면 군사를 돌리고 백제 본국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알겠네.”

당장 백제 본국이 문제인데 상경에서 팔자 편히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갈족의 충성맹세를 받았습니다!]

[흑수말갈 토벌에 성공하셨습니다!]

[신들이 당신의 업적에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어쩐지 발해의 민심이 당신에게 향합니다! 이 기회에 북방의 패권을 쥐어보세요!]

오 벌써 업적이 정산되었나.

발해의 민심이 내게 향하고 있다면 요동으로 백성들이 알아서 기어들어 올 것이다.

당분간은 요동에서 내치를 다스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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