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반란군 수장 신덕
* * *
“일단 완산주에서 뭐라고 하기 전에 완산주에 이 국서를 보내시지요.”
연왕사건을 견훤이 알게 되면 그 성격에 대노하겠지. 당장 완산주에 가지 않고 다이렉트로 이곳에 온 거니까.
그렇다고 그 양반이 가만히 있을 양반도 아니다. 아마 일본 조정에 엄청 화를 내겠지. 당연히 일본과 백제의 관계는 파탄.
안 봐도 비디오다. 나와 아내가 예상한 대로 전개가 될 것이다.
장인이 화가 나 백제와 전쟁을 할 수도 없다.
군사가 없는데 뭐로 전쟁을 하나. 다시 군을 일으키려고 하면 귀족들이 아예 반란을 일으킬 거다.
“그런데 아이는 잘 크고 있습니까?”
아내의 배는 어느새 부풀고 있었다.
저 안에 내 자식이 있는 거다.
“소온이 무서울 거 같다며 자기는 훗날 회임을 하지 않겠다 했습니다.”
싫어하면서도 내 부인과는 제법 친분을 가진 것 같다.
“아이가 볼 때는 신기하게 보이긴 하겠지.”
“그런데 이 와중에 또 전쟁을 나가시겠다니. 장수들에만 맡기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어. 음. 미안합니다.”
조선왕이 직접 발해를 돕는다. 그 이미지라는 게 있지.
게다가 내 휘하에 넣을 군대가 거란군까지 있다. 조선왕이 몸소 나서서 자기들을 이끌어준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금은 군사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니까.
“쿡쿡. 괜찮습니다. 어차피 금방 끝낼 전쟁이 아닙니까. 흑수부 토벌이라고 하셨지요?”
“네 다 잡아들이고 금방 올 테니 아이를 낳을 거 같더라도 참으셔야 합니다.”
“허. 그걸 지금 아내한테 할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참 사과를 한 후에야 성을 나설 수 있었다.
* * *
관흔의 모은 1만의 군사를 지휘하면서 동진을 시작했다.
거란과 백제의 군사 1만이다.
거란군들과 백제군의 갑옷은 북방계 갑옷으로 했다.
일단 요동의 주력도 기병이고, 요동이 후백제에서 보면 북방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북방의 갑옷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깃발은 매가 그려진 황색바탕의 깃발.
정말 언뜻 보면 그야말로 유목민족의 군대와도 비슷해 보인다.
“전하! 곧 부여부입니다.”
정찰병의 보고를 받은 관흔이 말했다.
이대로 부여부에 잠시 들를까 했는데, 일본의 일을 생각하면 한시가 급하다.
“부여성에는 들르지 않을 것이다. 병사들을 재촉하라. 상경까지 갈 것이다.”
“예. 전하.”
흑수말갈은 발해-요 전쟁이 끝난 이후, 꽤 광범위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숫자는 많지는 않지만 발해가 당장 지방행정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저지른 일이라 발해 전역이 자칫하면 또 내란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었다.
하필이면 청야전술로 인해 백제에 식량을 빌릴 수밖에 없는 처지기도 했다.
“과연 이번에 말갈을 통합할 인물이 있을까.”
말갈족은 당나라가 거란의 이진충을 토벌할 때, 고구려유민들을 도와 발해를 세웠고, 여진의 완안부는 요나라의 약해진 틈에 들고 일어나 금나라를 세웠다. 만주족은 명나라의 영향력이 줄었을 때 들고 일어났고.
발해가 약해진 지금 말갈족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도 결국 그럴 만한 인물이 존재할 때 가능한 일이다.
“관흔 장군. 지금 말갈족들은 얼마나 돌아다니는 것인가?”
“예. 전하. 흑수부를 중심으로 상경까지 내려와 약탈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흑수부가 사람을 귀찮게 한다. 발해 무왕시절에도 발해를 귀찮게 만든 것이 바로 흑수부였지.
발해입장에서는 최악일 것이다. 그런데 그 덕에 백제에게만 좋은 일이 되었다.
이번 말갈을 처리하는 것도 내가 맡게 된다면, 발해 내부에서의 내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부여부 쪽은?”
“부여부에도 간간이 말갈군이 나타나 노략질을 부린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럼 상경에서 부여부. 발해 북부는 지금 흑수말갈의 천하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두고 볼 대문진 장군이 아닐 텐데.”
“하지만 지금 부여부가 대대적으로 말갈족을 토벌할 상황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거란과의 전쟁에서 많은 피해를 보았으니 그럴 만하겠지.
“이 지도대로라면 상경이 위협받는데?”
지도는 흑수말갈군의 경로가 세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상경까지 걸쳐져 있는 말갈의 활동범위.
발해와의 교역도 어려운 처지가 아닌가. 그야말로 고려말 왜구의 침공같다.
이거 우리가 발해를 먹어도 감당 안 되는 거 아닐까?
회원부, 철리부, 동평부, 안원부이 주 활동지에 부여부까지 움직였다고 하면 거의 전국이라는 뜻이다.
“예. 그나마 수도가 있으니 용천부가 버티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작 말갈의 약탈인데, ‘버티는’정도로 끝나면 안 되지. 내가 어떻게 살려둔 발해인데. 합병할 때까지는 부탁인데 국력은 어느 정도 보존해야 한다.
“상경에 있는 3만의 군대는 어디로 간 건가?”
“1만이 패퇴한 후, 상경에서 버티는 것으로 압니다.”
정말로 이 나라가 엣고구려의 뒤를 이은 것이 맞나.
“아룁니다! 일개 말갈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럼 뭐 누르하치가 있는 여진족이라도 되나?
“말갈이 군대를 꾸렸습니다! 대군입니다!”
“대군이라니?”
그놈들이 대군을 꾸리면 얼마나 꾸린다고?
“말갈을 중심으로 발해에서 이탈한 말갈들이 대군을 꾸렸다는 첩보입니다!”
“뭐?”
“최소 2만으로 파악 중입니다!”
싸운다면 피해를 조금 감안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발해군의 지원은 확실히 필요하다.
“아무리 그래도 말갈의 군세가 2만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예. 그 정도의 힘이 있었으면, 거란과의 전쟁 도중에 발흥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뒤에 누군가 있을 것이다.”
원 역사에서는 이 무렵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말갈인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 2만이나 되는 군대를 구성할 정도라면 최소 정규군을 이끄는 장수는 될 것이다.
“짐작이 가시는 곳이라도?”
관흔이 조심스레 물었다.
“거란이 예전에도 말갈이나 발해 내부의 거란인들을 선동한 적이 있었지. 거 란이 적대국이니 가장 가능성이 높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발해를 약화시키려고 해도 굳이 지금 상황에서 발해까지 신경 쓸 만큼 요나라의 상황이 여유롭지 못하다.
“다른 자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직은 그냥 가능성일 뿐이네.”
“태자 대광현이로군요.”
2만이면 지금 상경을 공격할 수준이 아닌가.
대광현이 지원한 것이 아닐까.
“확신할 수는 없으니, 일단 적진을 살펴보도록 하게.”
“상경에 전령을 받기 힘듭니다.”
연락이 힘들다니, 요나라의 침공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째서인가? 말갈 때문인가?”
“예. 말갈군이 상경을 포위하고 있으며, 일부 발해의 지휘관들도 가담한 모양입니다.”
그놈의 상경은 맛집인가. 거란도 찾고 말갈도 찾고, 반군도 찾고.
“그럼 발해에서도 반란군이 일어난 건가.”
“그럴 만도 합니다. 듣자하니 녹봉을 받지 못한 장수들이 부지기수라 합니다.
뿐만이 아니라 저번 거란족 학살 때 찔리는 자들이 있던 것이겠지요.”
거란말고도 발해인 중에서도 거란과 동조한 자들이 있어서 그렇겠지.
딱 지금 발해꼴을 보면 반란이 일어날 법도 하다. 안 나는 것이 이상하겠지.
더군다나 말갈이 들고 일어났으니 발해의 반란군이 그 뒤를 후원해주면 일은 크게 어려워진다.
그런데 서경은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여전히 대광현은 요지부동이다. 지 아비가 위험하다. 그럼 지금이라도 군대를 내야 하는데, 이번에도 내지 않는다.
“아룁니다. 발해의 반란군 수장은 신덕이고, 그 자가 말갈을 선동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병력은 5천입니다.”
다음에 올라온 보고는 또 새로운 정보다.
“발해군 5천에 말갈군 2만이라.”
본래는 상경의 군대와 협공할 생각이었는데. 또 우리보다 배 이상은 많은 군대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신덕이라. 그런 장수가 있던가.”
“신덕이라면 분조에 속한 발해의 장수가 아닙니까?”
서경에 속한 장수가 어떻게 반군의 수장이 되어있는 건가?
감이 딱 올 거 같은데 오지 않는다.
“그 반군이 서경의 군대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만.”
뭔가 찝찝하다. 서경의 장수가 대광현의 명령없이 벗어나서 반란군에 합류했다고? 반군이나 말갈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갑자기 나타난 서경의 장수에게 지휘권을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덕 그 자와 한 번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야. 나 혼자 만날 테니 그리 알도록 하게.”
“예. 전하.”
이제 내 측근들도 나 혼자 움직인다고 뭐라하지 않는다.
이미 내 힘을 충분히 옆에서 보았으니 안죽을 걸 뻔히 아는 거다. 어쨌든 가서 무슨 일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쁠 건 없지.
일본의 문제가 있는데, 만일 발해가 뭔 일 터진다면 곧바로 개입해서 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일단 일본과 발해는 백제의 동맹국이 아니던가.
최악 단순한 국익이 아니라 반대로 국력을 날려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번 연왕사건이 있다고 해도 장인은 내 장인이며 일본의 천황이다. 절대 내 란에 휩싸여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 * *
반란군 진영
백제의 금강이 요동에서 군사를 일으켜 상경의 조정을 돕는다는 소식은 이미 반란군에도 알려졌다.
“요왕이 군대를 보냈다? 그 수가 1만?”
반란군 수장 장군 신덕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당황스러웠다.
거란을 막는 최전선에 있어야 할 군대를 1만이나 빼오다니. 대체 요왕의 노림수가 무엇인가?
물론 요왕의 군대가 거란군을 깨트린 강군이라고는 하나 솔직히 소문으로만 그렇지. 과연 실상은 어떤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자신이 있으니 군사를 끌고 온 모양인데. 하필 상경점령을 앞두고 이것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아예 반군이 아니라 분조의 장군이라고 해야 하나. 말갈을 잡기 위해서 온?
아니다. 그리하면 말갈군만 잃게 될 뿐이다. 그리고 분조의 명령을 어긴 서경은 태자를 비롯하여 그 신하들이 모두 죽고 말 것이다.
“곤란하게 되었군.”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나 다름이 없다.
하필이면 상대가 요왕이라니.
“아니, 장군 어찌 그러십니까?”
“요왕이라는 자가 그리 대단한 인물입니까?”
야율아보기의 목을 땄으니 보통의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은 과장된 것도 있겠지. 야율아보기의 목을 그가 직접 베거나 화살로 잡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렇다해도 어쨌든 그가 부린 신묘한 힘으로 전쟁을 끝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된 이상,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장군! 요왕이 찾아왔습니다.”
“당돌한 자로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나봐야 하는가? 일단 찾아온 것을 보니 협상을 하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면 설득을 해보거나, 스스로 반군이 아니라고 속여야 한다.
일단을 만나보는 것도 좋겠지. 기왕이면 협력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 *
신덕이 꾸린 본진은 발해군들이 있었는데 갑옷들이 다 다양하다.
제법 반란군의 행세를 꾸린 모양이다.
그래놓고 병사들은 반군치고는 제대로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것이 신덕이란 놈이 장수라는 것을 새삼 증명했다.
“백제국의 요왕전하를 뵙습니다.”
아주 대놓고 자신은 배운 놈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다.
발해의 장수들 중에서 나름 엘리트라는 건가.
“신덕이라. 신덕.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혹시 서경의 장수가 아니시오?”
“나는 지금의 가독부가 천명을 잃어 의롭게 일어난 장수이올시다.”
“장수라.”
보통 반군이라 하면 천하를 꿈꿀 텐데 스스로 장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배후가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개떡같은 놈이라고 해도 반란군을 이끌어 나라를 뒤엎겠다는 놈 보면 최소한 장수가 아니라 무슨 왕이라던가, 존재하지 않는 높은 관직을 스스로 자칭한다던가. 그래야 하는데 이놈은 그런 것이 없다.
“왜 그리 보시오?”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말이야. 분명 서경에 신덕이란 장수가 있지 않은가?”
“한때는 태자 전하의 신하였소.”
한때는?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