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발해-요 전쟁
* * *
완산주 저잣거리, 한 주막에서 두 남자가 신세한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 두 인물은 최근 왕실에서 줄기차게 까이는 인물들이었다.
병관좌평 능환. 왕자 용검.
안 그래도 대야성일로 힘든데, 신검도 어느새 금강의 편에 돌아섰으니, 정치에서 완전히 도태되게 생겼다.
“병관좌평! 이러다 태자 자리가 금강이에게 넘어가겠습니다. 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이번 전쟁도 막아야 합니다. 승산이 불확실한 전투에 백제의 장정들을 보낼 수는 없는 일.”
정확히 말하면 능환은 금강이 공을 세우는 것을 두 눈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
“그렇지. 그 화약국은 어떻겠습니까?”
“화약국을 없애자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화약국을 없애면 신무기는 끝장날 것이고, 다시 재건하는 동안 발해와 거란의 전쟁은 끝날 것이 아닙니까?”
금강이 믿는 것은 결국 신무기. 그러니 20만이 넘는 대군에 도전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젊은 혈기를 믿고 어리석게 구는 걸 수도 있다. 그러나 용검이라면 모를까.
능환은 금강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으니 그 대군에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그 무기는 중요한 것이겠지.
그렇지만 괜히 그 무기를 선보여 발해를 구한다면 점점 더 자신과 신검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다.
더군다나 백제가 돕지 않는다고 해서 발해가 멸망한다고 볼 수도 없다.
저 무기가 확실히 백제의 도움이 된다면 발해와 거란의 전쟁이 끝나고, 그때 다시 만들어도 늦지 않는다.
“좋은 계책입니다.”
용검의 제안을 수락한 능환은 제 수하들과 함께 용검과 합류하여 화약국에 은밀히 잠입했다.
대부분의 화약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전시키거나, 새로 만드는 중이고, 이곳에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남은 화약들은 능환과 용검에게는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새로운 무기?”
“흠. 이게 무기라니.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고 마고 할 것이 있는가. 일단 다 태우고 볼 일이다.
능환은 수하들을 시켜 횃불을 들게 했다.
“뭐 일단 불이나 붙이지요. 불태워서 싸그리 다 태워버려야 합니다.”
“불을 붙이거라!”
“예! 좌평어른!”
능환과 용검. 그 수하들이 불을 붙이자 삽시간에 불길이 화약국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콰앙!
화약국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끄아아악!”
“뭐,뭐야. 이건!”
펑! 콰앙!
신무기를 없애고자 했던 능환과 용검에게 화약국이 무너져내리면서 불길이 덮쳤다.
* * *
오늘도 후백제의 아침은 뜨거웠다.
“대체 이른 아침부터 이건 무슨 소란이야?”
밖에서 병사들이 난리도 아니다.
“왕자님! 전 화약국이 지난 밤에 불타 전소되었습니다.”
“뭐라고?”
일단 남모르게 전부 이전시키기는 했는데, 그게 그 사이 불타?
“지난 밤, 조정좌평과 용검왕자님이 화약국에 불을 지른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거 미친놈들 아닌가? 일단 계속 감시하다가 뭔 짓을 저지르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체포할 생각이었는데, 불을 질렀다고?
확실히 화약이 남아있으면 터질 만하겠지. 본의 아니게 일이 쉽게 풀리고 있다.
그 둘에게는 미안하기는 하지만, 결국 자업자득이 아닌가?
결국 견훤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금강아. 자초지종을 알고 있느냐?”
“네. 화약국을 지키던 병사가 하는 말이 지난 밤 화약국에 누군가 숨어들어 찾는데, 갑자기 화약국이 불타오르고 그 주변에 부상을 입은 병관좌평과 용검형님이 있었다 합니다.”
양검이 없다했더니 능환이 나서서 양검 포지션을 맡은 것이다.
멍청하고 한심하다.
“원인은 불이겠지?”
“예. 알아보니, 병관좌평의 수하들이 화약국에 불을 붙인 모양입니다.”
능환 본인도 불 붙이다가 몸 한쪽이 아예 깔려버렸지.
그러게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해서는. 에잉 쯧쯧.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 금강아. 이럴 줄 알았으면 모든 신료들에게 다 말할 걸 그랬다. 안 그러냐?”
“설마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리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에휴. 그런데 그 무기들이 확실히 효과가 있겠느냐? 능환과 용검의 꼴을 보니 아주 말이 아니게 되었어. 저러다 죽는 건 아닐지 모르겠구나.”
견훤도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화약들이 터진 것이 그 정도입니다.”
“그러니 더 위험하지 않느냐. 아, 천지를 쥐어뜯는 소리가 아니냐 이 말이야.”
이 인간도 따지고 보면 무식하다.
“저 천지를 쥐어뜬는 힘이 아군이 아니라 거란의 대군에게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음, 호오라. 그렇구나. 그 힘을 거란놈들에게 쏟아낼 수 있다. 이 말이렸다.”
“예.”
“대인선과 거란의 가한이 놀라겠구나.”
“예.”
거란이 주화와 구포를 보면 어떤 반응을 할까.
“요동에서 승전보가 올라왔습니다.”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할 무렵. 요동에서 급보가 도착했다.
“그래. 어떻게 되었는가?”
“압록강 북쪽의 거란족들을 털고, 거란의 보급로를 끊었습니다.”
좋아, 나쁘지 않아.
견훤도 기뻐하는 눈치다.
“호오, 그것이 참인가?”
“예. 폐하. 그리고 지금 요나라 황제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20만의 대군이 발해로 진군 중입니다.”
이건 원 역사와 다르다.
원래 적당히 발해를 잡다가 동평부 함락 후에 20만의 대군을 증파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총공세라 대인선이 제법 준비하는 것 같으니 이런 상황이 연출된 것인가.
“얼른 지원을 가야한다는 뜻인가.”
“예. 수군총사께서는 곧 요군이 살갈산까지 진출할 것이라 합니다.”
여기서 보급로를 끊었다는 것은 결국 거란군이 우리를 적으로 의식하게 만들 것이다.
상귀장군이 최대한 요동에서 날뛰어줘야 하는데.
확실한 것은 발해의 현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와의 동맹 때문인지 몰라도, 대문진은 부여부에 남았고, 노상을 척살하고 발해 자체 내분은 이제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본래 부여부가 함락당한 것은 대문진이 없던 탓일 수도 있다.
“슬슬 가야겠지. 금강아.”
“예. 폐하.”
“신검이와 함께 가거라.”
“그리할 것입니다. 폐하.”
그래도 20만이다.
어디 신검의 능력을 볼 때가 되었다.
양검과 용검에 가려진 그 능력. 어디 내 눈으로 똑똑히 봐주마.
“폐하, 그럼 소자는 북쪽으로 가보겠습니다.”
“너와 신검이가 이끌어야 할 병력이 6만이 넘는다. 꼭 승리를 해야 할 것이다.”
“예. 폐하.”
드디어 시작된 요나라와 발해의 전쟁. 그리고 백제-일본연합군.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 * *
부여부
부여부 도독 대문진은 얼마 전 올라온 장계를 보고 입술을 떨었다.
“백제왕자의 말대로구나. 20만의 군대가 우리나라로 올 줄이야.”
대문진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거란 도적들이 결국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만일 내분이 일어나던 시기였다면, 발해는 거란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계속해서 적들에게 정찰을 보낸 끝에 적의 진격로를 얼추 알 수 있었다.
정확히 거란의 가한인 야율아보기의 군대가 부여부로 진격 해오고 있었다. 부여부를 함락시킨 후 그대로 상경으로 갈 생각인 것이다.
“다른 군의 진격로를 보니 막힐부, 장령부 쪽으로 가는 것은 결국 한쪽은 5경의 협력체계를 붕괴시키고 상경에 모이기 위함인가.”
즉, 각 군의 진격로에 있는 성들을 빠르게 접수하고 상경으로 대군을 모아 포위할 셈인 것.
아마 속전속결일 테니, 예상외로 고전하고 백제군이 요동을 약탈하여 보급로를 끊는다면 그때부터 거란은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부여부의 군대는 정예화되었으나, 상경 쪽은 역시 말갈의 문제도 있고, 왕권 다툼 탓이 길었던 탓에 과연 상경이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때문에 비밀리에 분조도 결정한 것 같지만.
“결국 백제로군.”
부여부와 상경은 적군을 막는 수성전을 벌여야 한다.
그럼 야전에서 활약해야 하는 것은 백제군이다.
백제가 과연 어디까지 활약할 지는 모르겠지만, 저 신라땅에서 삼한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는 나라다.
아마 전투력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전국시대의 국가니 믿을 수 있겠지.
‘잘 만하면 전쟁이 금방 끝나겠어.’
안 그래도 권력다툼과 내분으로 힘든 전쟁일 뻔 했는데, 부여부와 상경에서 조금이라도 거란군을 붙잡아둔다면 상륙한 백제군이 쉽게 거란군의 뒤를 칠수 있다.
그럼 전쟁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발해는 여전히 위태롭다.
따지고 보면 요동도 내분탓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그때, 한 병사가 급하게 대문진을 찾았다.
“도독! 거란놈들이 몰려왔습니다!”
“지휘관은 누구인가.”
뻔할 뻔자지만, 어디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요 황제 야율아보기입니다!”
“시건방진 놈이 이곳이 어디라고 오는 건가.”
우선 지금은 야율아보기란 놈과 한바탕해야겠다.
* * *
압록강까지 얼만 남지 않았다.
슬슬 여기서 전략을 수정하든 이대로 진행하든 해야 한다.
“금강아.”
“네. 형님.”
“문득 내가 궁금한 것이 생겼다.”
기껏 대규모 함대가 북으로 올라가는데, 무슨 궁금증이 든다는 건가.
“말씀하시지요.”
“일본과 연합한 우리군이 6만이 넘는다. 그것도 본국의 수비병력을 제외한 병력이다. 안 그러냐?”
“예.”
“이 군대로 고려를 밀어버리고 삼국통일도 가능하지 않겠느냐?”
이 사람 또 이러네.
욕심이 지나치면 곤란하다.
“······형님. 신라의 삼국통일이 왜 욕을 처먹는지 아십니까? 다름아닌 외세의 힘을 빌어 통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탓에 백년이 2백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신라는 고구려, 백제인들의 민심을 신라에 통합하지 못하였습니다.”
“허나 일본은 우리의 혈맹이다. 당과 신라의 경우와는 다르지 않느냐.”
백제입장에서 볼 때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런데 고려나 신라 입장에서는? 그리고 사람이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이다. 일본도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발해는 지금도 불안정하다. 권력다툼은 이제 안정되었다고 해도 전쟁이 끝난 후, 공을 논하게 될 때 또 어떻게 되겠는가.
“예. 다르지요. 그러나 통일 후에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신무기에 일본군에 솔직히 전병력을 끌어내면 10만으로 북진도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통일 후에 민심을 다독이고 백제 아래에 통합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일이 걸릴 것 같습니까?”
암만 봐도 이놈은 대가리가 무능하다.
일단 삼국통일 시켜주면 정말 내가 재상으로 이것저것 해야겠다.
생각보다도 너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인물이다.
이러다가 전투도 말아먹는 거 아냐?
“확실히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지금 고려 측에 붙은 호족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굳이 전투를 치르지않아도 고려는 알아서 힘이 약화될 겁니다.”
물론 일본의 군대가 전부 내 밑으로 왔기 때문에 현재 신라를 약탈하는 것은 신라출신 해적들 말고는 없다.
문제는 그 해적들 막는 것도 지금의 신라로서는 많이 힘든 처지다.
우리 함대를 보고 도망쳤다던 그 군대들 조차 다시 일본군과 신라해적들에 죽어나갔다고 한다.
이제 그쪽 동네는 정말 끝이구나.
지금 상태로 고려가 신라를 병합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흡수하려 해도 뭐 흡수할 게 있어야지.
“음. 그럼 다행이다만.”
“형님. 슬슬 이 즈음에서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냐?”
“현재 요군은 군대를 3군으로 나누어 진군하고 있다고 합니다.”
3군으로 나누어 진격하니 각개격파라는 것도 가능은 하다. 22만이 그대로 상경 직공을 강행한다면 한방싸움으로 끝내야 할 것이다.
“음. 계속해보거라.”
“1군은 야율아보기가 이끄는 군대로 부여부쪽으로, 2군은 막힐부로, 3군은 장령부로 진격하여 발해 전체를 들쑤실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발해 사방을 들쑤시는 전략.
“이 지도대로라면 결국 상경에서 포위를 할 생각이구나.”
“예.”
“발해가 많이 힘들어지겠군.”
“예. 만일에 전부 점령당할 경우에는 말이죠. 심지어 이렇게 진격하면 발해는 5경이 힘을 합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로 지원군을 보낼 틈이 없이 사방의 길이 막힌다.
심지어 지금 발해 내부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해지겠지.
“그래 너는 무슨 생각이냐?”
“군을 나누어 요동을 점령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군을 나누어 요동을 점령한다라.”
신검도 요동을 점령하는 것은 꽤나 끌리는 매력적인 요소일 것이다.
최소한 빈집털이로 요동을 먹을 수는 있게 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