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7화 (7/154)

7. 후백제가 백제다워지려면.

* * *

완산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운이 좋게도 이번에는 말이 미쳐 날뛰지 않았다.

“왔느냐.”

생각대로 신검의 얼굴이 아주 보기좋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 인간도 귀가 얇은 모양이다. 아마 능환이나 동생들로부터 나에 대해 안좋은 소리를 들은 거겠지.

예를 들면 패왕이라고 불린다는 소문을 동생들에 의해 듣게 되었다던가 말이다.

“신검형님. 대공을 세우셨다 들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너는 나주에서 공을 세웠다지.”

얼굴이 벌써부터 나에게 책임이라도 추궁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다 형님 덕이 아니겠습니까? 형님이 대야성에서 고려군을 묶어두지 않으셨다면, 저는 마음편히 일을 진척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녕 그리 생각하냐?”

이놈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하고 의심하는 시선이 영 곱지가 못하다.

역사에서 쿠테타를 일으킨 신검답다. 금세 히죽거리면서 좋아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귀 얇은 놈의 표본이다.

이대로 내가 매번 떡이나 줘서 왕위에 관심없다는 것을 넌지시 각인시키면 될 것이다.

“예. 솔직히 나주에서 백제파 호족군을 모으느라 뒤가 빠질 뻔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나주가 치고 올라왔을 것입니다.”

“음.”

“형님 그보다는 형님께서 아버님께 신임을 얻을 방법이 있습니다.”

“오, 그래? 말해보거라.”

그래. 네가 말하면 견훤이도 껌벅죽을 그런 제안이지.

완산주까지 올라오면서 머리를 쥐어싸메고 생각해둔 것이 있다.

이거라면 신검을 내 편으로 만들 묘안이 될 수도 있을 터. 나는 그의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 * *

나는 견훤의 부름을 받아 대전으로 갔다.

견훤은 물론이오 gn백제의 문무백관들이 좌우로 주욱 늘어서 있는 모습인 사뭇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었다.

“금강아. 네가 아주 잘 해주었다. 대백제국의 왕자로서 기가 막힌 일을 했구나. 천하의 왕건이의 콧대를 부러트려 주었어.”

“이것이 전부 폐하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폐하.”

어련할까. 지금 즘, 왕건은 부인 오씨에게 시달리고 있을 거다.

설마 나주를 그리 쉽게 빼앗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

“그것이 어찌 금강왕자 한명의 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대야성에서 신검왕자님의 선봉대가 고려군을 깨트려 왕건이 나주로 눈을 돌릴 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능환아.

“아찬의 말씀이 옳습니다. 어찌 제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대야성에서 형님이 고려군을 붙들어두지 않았다면 필시 나주에도 왕건이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그래. 너의 뜻대로 대야성도 먹고, 나주도 먹었다. 그럼 이제 우리 백제는 네 뜻대로 일본, 발해와 국교를 맺어야 하느냐?”

“일본과 발해. 두 나라를 다녀오겠습니다.”

“음.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나주의 민심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견훤이 미끼를 물었다.

나는 슬쩍 신검에게 눈치를 줬다. 판을 깔았으니, 저놈이 알아서 해야지.

“대왕 폐하.”

“그래. 신검이 네가 말해보겠느냐?”

“금강이가 나주를 탈환하였으니, 이제 백제는 다시 옛 강역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저희의 진심을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사실 견훤탓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주를 점령한 이상, 견훤도 어떻게든 민심은 수습해야 한다 여길 것이다.

내가 손보기는 했어도 나는 견훤의 아들이지 견훤이 아니다. 이 문제는 견훤이 나주의 호족들에게 진심을 보여야 풀리는 문제다.

“하여 소자는 이 나라가 정말 백제다워줘야 한다 생각합니다.”

“하고자하는 말이 무엇이냐.”

“아국은 현재 신라의 관직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참에 옛백제의 관직을 부활시키는 것이 어떻습니까?”

지금 백제는 나라의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 신라의 관직과 제도를 참고하였다.

그런데 그게 과연 진정한 백제일까? 아니지.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의 것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백제를 부흥시키겠다는 명분을 가진 후백제에게는 좋지 못하다.

“과연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신라의 제도를 참고하였으나, 언제까지 이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래. 파진찬과 아찬이 잘 합심해서 해보도록.”

“구백제의 것들을 연구하여 관직체제를 고쳐놓겠습니다. 폐하.”

좋아, 이걸로 신검이가 또 나를 의심하지는 않겠지.

* * *

신검은 견훤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다.

평소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던 신검이 간만에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식이라고 해도 장자다. 장자이기 때문에 기대한 것이고, 장자라 실망도 하는 것이다.

아파도 더 아픈 자식이라는 거지.

그 장자가 오늘 제법 그럴 듯한 안을 내놓았다. 그것도 백제가 백제다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내놓은 거니 백제왕 입장에서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정말이지. 금강왕자께서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경천동지할 일이 아닙니까?”

“또 뭐가 말입니까?”

“신검왕자님께 백제가 백제다워야 한다는 것을 알린 것이 왕자님 아니십니까.”

당신은 눈치가 너무 빨라.

“글쎄올시다?”

“일본으로 가실 참이시라면. 빨리 준비를 해야 할 줄 압니다.”

일본과 발해를 오가려면 꽤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확실히 빨리 갔다오는 게 좋겠지. 일본의 헤이안쿄. 그리고 발해의 상경용천부. 그 거리만 따져도 증기선조차 없는 이 시대에 어마어마한 시간을 소비할 것이다.

그래. 그리고 그 중에 내가 탈주해도 아무도 모를 터.

“일본의 경우에는 헤이안쿄만 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스오국이라는 곳에 백제의 임성태자 후손이 가문을 열어 영지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패망 이후, 왕족들이나 유민이 일본으로 건너가 가문을 열었다.

물론 임성태자는 백제가 존속하던 당시에 일본으로 건너온 부류라서 유민들이 세운 가문들과는 다르다.

“설마 그들을 포섭할 생각이십니까?”

“성공만 하면 저 열도땅에 우리의 땅이 생기는 겁니다. 게다가 지원을 받을 수도 있구요.”

일본 조정과의 직접적인 국교는 할 수 있으면 좋지만 임성태자쪽도 손을 써둬야 한다.

역사 기록상 후백제가 일본과 옛 백제 일본의 관계 비슷하였다면, 일본은 후 백제를 지원하였을 텐데. 후백제는 국가 역량만으로 10만을 동원했다. 일본이 지원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일본이 혼란스러울 때였나? 아니, 그러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이 무렵은 이미 일본이 국뽕취해서 지들도 중화처럼 황제국 행세를 하기 시작한 시절이라 백제를 우습게 보았을지도 모르고.

일단 확실한 것은 후일 오우치씨라고 불리는 임성태자의 후손들은 지금은 다 타라씨다.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도 않은 시기의 성씨다.

일본으로 가는 것도 나주를 이제 막 정리하였으니, 수군을 동원해야만 한다.

한동안은 쥐죽은 듯이 있으려는데, 견훤이 나를 불렀다.

“금강아.”

“예. 폐하.”

“백제가 더 백제다워지려면 어찌해야 한다 생각하느냐?”

눈썹을 찡그렸다.

척하면 척이다. 견훤이 내게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은 신검이 뇌까린 말들이 본래 내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거나, 신검이 그 정도니, 예뻐하는 넷째아들은 어떻게 말할지 궁금한 것이겠지.

나는 지금 견훤의 아들이 아닌 신하로서 이 자리에 있다. 탈주를 할 때는 하더라도 지금은 견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이미 관직체제는 정비하는 줄로 압니다. 굳이 더 있다면, 국호와 왕족의 성씨가 아니겠습니까?”

“국호와 성씨?”

“예. 폐하. 백제에는 여러 국호가 있습니다. 남부여가 있고, 일본이라는 국호도 본래 백제의 것이었습니다. 또 왕실의 성씨는 부여씨이니, 백제를 계승한 우리도, 진정 백제 의자왕을 잇고자 한다면 바꿔야 한다 생각합니다.”

언제나 탈주를 생각하고 있는 나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백제는 남부여로 불렸으며, 일본도 본래 백제의 국호 중 하나였다가 왜가 가져가 사용한 것이다.

성씨의 경우에도 이미 견훤은 자기 성씨를 견으로 바꾼 사례가 있었다. 부여 씨로 바꾸지 못할 이유도 없다.

“호오라.”

“어디 까지나 이 모자란 아들의 머리에서 나온 잔꾀일 뿐입니다.”

“나는 괜찮다.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예? 예.”

이걸 그냥 받아넘긴다고?

“또 묻고 싶은 것이 있느니라.”

"예 폐하.”

“내 듣자하니, 네가 나주의 호족들에게 크게 우대를 해주었다고 들었다. 지금 당장 백제에 이는 복이겠으나, 결국 호족들의 힘이 커지는 것은 좋지가 못하다. 아니 그러하냐?”

당연하지. 군주제 국가에서 귀족이나 지방 호족들의 세력이 강하다면 왕권강화는 이루어질 수 없고, 그만큼 나라는 단합되지 못한다.

“예.”

“방법이 있겠느냐?”

“호족들의 힘을 제어하기 위하여 그들의 자식들에게 관직을 준다는 명분으로 완산주로 들여 인질로 삼으시거나, 그들의 여식들과 대백제국 왕실이 혼인을 맺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왕건의 정책을 떠올렸다.

왕건은 호족들을 곧게 회유하기 위해서 호족들의 딸들과 혼인을 하고 자식들을 인질로 삼기도 하였다.

물론 왕건의 정책은 후일 광종 대에 이르러 피의 숙청작업에 깊게 관여된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행위가 결국 왕권강화로 이어졌다.

결국 지금 삼한 판도는 호족들을 누가 더 많이 가지느냐에 따라 패권이 갈리게 된다. 그리고 훗날 고려든 백제든 삼국통일을 하게 되면 호족들은 일등공신이 될 것이고 그만큼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숙청은 결국 그런 호족들을 단절하고 통일된 국가의 기틀을 왕권을 중심으로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다만, 지금 견훤에게 그것까지 말할 이유는 없다.

나는 왕자. 신하로서 백제의 왕인 견훤에게 충언을 올리는 거지만, 고려가 통일하고 나면 이런 내 의견도 묵살될 것이다.

견훤이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나서 생각했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결국 역사를 바꾸는 것이 아닐까?”

결과적으로 백제는 나주를 얻어 더는 고려에게 후방을 내어줄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잠깐, 나는 정말 그럼 미친 짓을 벌인 건데.

나주가 너무 쉽게 함락되어버렸다. 발굽하나 망가졌다고 미친년 널뛰듯 난리 친 말이 저지른 공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빡치네.”

역사가 바뀔 것이다. 그래도 지금 왕건의 장수진은 여전히 굳건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박술희나 유금필 및 기타등등.

공산전투급 피해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지금 상황도 고려가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나만 아니라면 말이다.

발해의 경우에도 이왕이면 멸망은 막아보고 싶다. 신이라는 여자가 하는 말로는 대리자는 많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데, 나와 동시대에 신의 대리자들이 스타트를 끊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무수히 많은 평행세계가 존대한다는 말씀. 내가 있는 이 시간대의 역사가 어떻게 되든 내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그 여신만 힘들겠지만.

“문제는 역시 발해다.”

발해를 어떻게 해야 멸망시키지 않을까. 발해가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반도에 생길 남쪽의 통일고려든 통일백제든 안전할 것이다.

무엇보다 발해는 내가 망명하고 싶은 나라 중 하나기도 하다.

그야 그렇잖아. 한민족이 요동을 잃고 그 땅을 거란, 여진족들이 취했다. 21세기 한국은 한반도 조차도 사상으로 갈라져 있는 처지에, 가뜩이나 기록도 적은 발해를 현실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전공을 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 누구나 한 번 쯤 보고 싶지 않을까.

발해의 가독부 대인선이 그래도 거란에 반격을 가했던 기록을 보면 당시 발해는 군사력은 충분했다.

다만, 역시 고구려처럼 내분이 있는 것이 컸다.

한동안은 상인들을 통해 발해의 사정을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 * *

다음 날, 나는 견훤에게 아무렇게나 내뱉은 것들을 크게 후회했다.

대전에서 견훤이 왕성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폐하, 그게 어인 말씀이십니까? 왕성을 부여씨로 고치시겠다니요?”

“이찬. 흥분하지 말게. 짐만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견훤이 대놓고 내 뜻을 밀어붙인 것이다.

“하오나 이미 견씨로.”

“견씨로 바꿨으니 부여씨로 바꾸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일본이나 발해와의 외교에도 큰 도움이 될 걸세.”

아니, 그야 그런데. 다들 어이없어한다.

“음, 그렇기는 합니다마는.”

“이는 금강이의 외교에도 도움이 될 걸세. 아, 생각을 해봐. 금강이가 일본으로 가서 견금강이라고 하는 것이 효과가 좋겠는가. 아니면 부여금강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느냐 이 말이야.”

너무 논리적이라 반박할 것이 없다.

틀린 말이 조금도 없다. 일본이나 발해 입장에서 견씨의 백제를 백제로 인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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