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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56화 (256/298)

256화. 앙갚음과 은혜갚음

팽호 제도에는 오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적을 간단히 쳐부수고 다음날 아침은 열란차성(熱蘭遮城, 젤란디아 요새)에서 먹겠다던 누군가의 예언이 틀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더 많은 전선을 소집해 단숨에 적의 숨통을 끊어야 합니다! 이래서는 도독님의 체면에 누가 됩니다!”

“지금 여기에 전선을 더 소집하면 장강과 북방의 바다는 누가 지킨단 말이오! 절대 불가하오!”

“그렇다고 지금 벌어진 전쟁을 그만두고 회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북방 오랑캐 놈들에게 허점을 노출하는 시간을 늘리느니, 최대한 빨리 배후의 적을 제거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러다가 놈들에게 양번(襄樊)의 거점이라도 잃으면? 장강을 오랑캐 놈들이 쉽게 건너게 허용하잔 말이오? 지금 우리 대명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것은 도독님의 수군이오! 어찌 그리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오!”

이 열도에서 가장 큰 섬, 팽호도에 설치된 정성공의 군막에서 열띤 토론이 오가고 있었다. 정성공의 휘하 무장들 사이에서 이리도 격한 말싸움이 오가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낮에 실행했던 작전이 먹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지금 놈들에게 휴전이라도 제의하고 철군하자, 이 말씀입니까? 대명의 도독께서 고작 조그마한 번국과 서쪽의 오랑캐 놈들을 상대로?”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작은 것을 탐하려다 큰 것을 잃어서는 아니 되는 법이오! 아, 도독님…….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극단적인 방책을 택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흥미로운 논쟁이군. 계속하도록.”

열띤 다툼 탓에 순간 이 자리가 어떤 자리임을 잊고 있었던 장수들도 정성공의 존재감만은 무시하지 못했다. 정성공은 명나라 수군에서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정성공은 이런 논쟁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실패는 병가지상사라, 전쟁에 있어 모든 작전이 성공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서 정성공은 전초전에 서 패배했다고 해서 대전략 자체를 수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놈들의 함대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커다란 전선이 한 척 보이긴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압도적인 숫자를 극복하고 전황을 뒤집을 절대적인 병기는 아니라 생각했기에, 정성공의 신경은 온통 다른 쪽에 쏠려 있었다.

그때, 밖에서 밤의 서늘한 바람 몇 자락이 불어오더니 달궈져 있던 전략 회의를 차갑게 식혔다. 모두의 시선이 활짝 열린 군막의 입구로 향했다.

“만례(萬禮)?”

“도독님, 별동대를 이끌고 적의 후방을 치러 갔던 좌군장(左軍將) 만례가 돌아왔습니다!”

순간, 만례라는 이름을 들은 정성공의 눈매가 순식간에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히 웃음까지 띠어가며 열띤 토론을 감상하던 그의 표정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주…… 주군!”

“어서 와라, 만례. 적을 상대로 꽤나 고전했다지?”

“그, 그것이……. 보고와는 달리 홍모 놈들의 함대가 만 안쪽에 매복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찰선을 보냈을 때만 해도 모습이 보이지 않던 놈들이…….”

“그래, 그래. 고생했다. 일단 들어와 자리에 서도록.”

냉혹한 표정과는 달리, 정성공의 입에서 흘러나간 말은 부드럽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중의 얼어붙은 분위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어느새 군막 안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왜 이리 떨고 있느냐, 만례. 아무리 처참하게 패배했다고는 하나, 네가 내 장수라면 맡은 일은 끝까지 마무리해야지.”

“주, 주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믿고 맡겨주신 함대를…… 제가……!”

“나는 분명 네 일을 마무리하라고 명했다, 만례. 변명을 하라는 명령은 내린 적이 없지 않느냐.”

“그, 그럼 작전 수행 중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보, 보고 드리겠습니다.”

만례 또한 전 좌군장 시랑의 밑에서 부장 역할을 하며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런 베테랑마저 찬바람이 다시 돌기 시작한 정성공의 말 한마디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고요해진 군막 안에는 만례의 떨리는 목소리만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란 연합함대를 상대로 겪은 전황을 늘어놓는 만례의 얼굴은 점점 핏기를 잃어갔다.

“……그래서, 네가 지휘하던 함대의 절반 가량을 그 털끝만도 못한 좁은 바다에 가라앉히고 돌아왔다?”

“예, 예! 주군!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적이 입은 피해는 내해(內海)에 남은 잔병들이 최후의 발악으로 백병전을 실시해 입힌 것이 전부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스르륵.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정성공이 표범 가죽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옮겨진 그의 걸음은 좌중 한가운데에서 몸을 떨고 있는 좌군장 만례에게 향했다.

“만례, 내 새로운 선봉장. 너는 어떻게 시랑을 밀어내고 좌군장 자리에 임명받게 되었지?”

“그, 그것은…… 시랑이 주군의 신뢰를 잃어서 저를 대신…….”

“잘 알고 있군. 저런, 왜 이리 떨고 있느냐. 아, 지금까지 이런 무거운 갑옷을 걸쳐 입고 있어서 힘이라도 빠진 것이냐?”

“주, 주군?”

어느새 만례의 곁으로 다가선 정성공은 천천히 그가 입고 있는 갑옷에 손을 뻗었다. 이윽고 어깨가리개부터 시작해 요대까지, 갑옷의 각 부위들이 떨그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굉장히 뜬금없는 행동이었지만, 정성공의 이런 행동에 아무도 딴죽을 걸지 못했다. 그만큼 정성공의 위치는 명 수군 내에서 절대적이었고, 부하들 역시 절대적인 복종을 그에게 바치고 있었다.

번쩍. 정성공의 손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빛난 것은 그때였다.

“주, 주군?”

“좌군장이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돌아와서 그런지, 입고 있는 옷 중에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여봐라! 어서 그에게 어울리는 의복 일습을 대령하라!”

“이……이 무슨…….”

만례가 당황하는 이유가 있었다. 정성공의 손에는 그가 숭정제로부터 하사받은 보검이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허공을 가른 정성공의 보검은 만례가 갑옷 속에 받쳐 입고 있던 윗옷에 수직선을 그리며 옷깃과 옷섶을 단숨에 절반으로 베어놓았다.

정성공의 칼이 조금만 더 깊숙이 들었다면, 만례의 몸통은 지금 반으로 갈라져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윗도리와 같은 처지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맨몸에 와닿는 찬바람 때문인지, 벌거벗겨진 만례의 상반신에는 소름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도독님, 부르셨습니까? 옷 한 벌을 대령하면 되겠는지요.”

“아, 그래. 여기 웃통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옷을 한 벌 가져오도록.”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이, 밖에서 시종 하나가 들어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정성공의 부름에 대답했다. 정성공 역시 아무렇지 않게 칼끝을 내리더니, 평소의 말투로 시종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옷 한 벌 말씀이십니까? 금방 대령합지요. 여기 이분은 좌군장이셨던가…….”

“아, 잠깐. 내가 말하려다가 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도독님?”

“이 자는 이제 좌군장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전 좌군장 만례를 일개 수군으로 강등하며, 내 배에서 돛줄을 당기고 포탄을 나를 것을 명한다.”

“예, 예?”

“알겠습니다, 도독님. 여기 말단 병사에게 병사의 의복 일체를 대령하겠습니다!”

시종이 바람처럼 군막을 빠져나간 후, 좌중에는 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정성공은 천천히 뽑았던 칼을 검집에 꽂더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만례에게 등을 돌리며 몇 마디를 씹어뱉었다.

“만례, 내가 너를 시랑 대신 그 자리에 임명한 이유를 대신 답해주지. 나는 성미가 급해서 내 신뢰를 잃은 자를 중요한 자리에 두지 않거든.”

“주, 주군! 아무리 그래도 이것은……!”

“썩 꺼져라, 병사. 여긴 네놈 같은 잡졸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

며칠 후.

북방 수로 방어를 위해 분리했던 함대를 다시 재편한 조선 함대는 정박을 마치고 외해로 나아갔다. 정성공이 이끄는 적 수군이 팽호 제도를 빠져나와 다시 젤란디아 요새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웅장하군요. 이만하면 본국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규모의 함대입니다. 물론 이 거대한 함대에 전열함이 단 두 척 뿐인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만…….”

“네덜란드나 엥겔란드처럼 함대의 주력을 전열함으로 채울 여력이 조선에는 없습니다. 나라의 온 힘을 기울여도 어려운 일인 데다, 민생을 제치고 군비에만 모든 것을 쏟을 수도 없으니까요.”

“하긴, 이쪽 동네에서는 스쿠너를 넘을 만한 배도 보이지 않긴 합니다. 흐흐.”

이런 긴박한 와중에 빌트가 내 옆에서 실실거리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 배에 미친놈과 내가 타고 있는 전선은, 빌트가 매번 입에 달고 다니던 그 전열함이었으니까.

‘뭐, 나쁘지 않은 이야기 아닙니까. 안 그래도 새 전열함을 인수한 것은 고작 일 년 남짓. 새로 임명받은 돌격장도 아직 배를 다루는 솜씨가 완전하지 않은 모양인데, 전열함에 익숙한 사람이 돕는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 의견 교환도 채 하기 전, 이완이 웃으며 이런 말을 꺼낸 덕분이었다. 하기야 아주 꾸며낸 말도 아닌 것이, 저 이유 때문에 이완이 정성공과 대치할 때 최전방에는 전열함이 한 척만 나가 있었다고 했다.

이완이야 전열함에 관해서 빌트가 어떤 광기를 보였는지 모르니 저리 쉽게 말을 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빌트의 전열함 탑승을 막을 명분을 잃고 말았다.

하.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에 이마를 싸잡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나를 부르는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본 자리에는, 이 전열함의 선장 격인 돌격장 자리에 올라 있는 무관이 서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좌상 대감. 혹시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아……. 신임 돌격장이군. 기억하고말고. 내 자네가 내 처남과 함께 왜선을 상대로 공을 세우고 전하 앞에 선 날이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게다가 자네는 내가 세운 군관도감의 첫 생도가 아니던가.”

“하하. 저 같은 일개 무관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다니. 영광입니다, 대감.”

조선 최초의 전열함 지휘관 자리는 신무(愼懋)의 차지였다. 내가 어찌 그를 모르겠는가, 임금과 함께 그를 이 자리에 낙점한 사람이 나였는데.

라위터르가 처음 조선에 당도해 수군을 육성하던 시절, ‘그 학당’의 생도였던 신무는 서얼로 받는 차별을 극복하고자 수군에 자원해 큰 공을 세웠었다. 그 덕에 수군과 인연을 맺어 군관도감의 1기생으로 입학까지 했었지.

임금이 서얼 차별을 단계적으로 철폐할 수 있었던 것은, 신무를 비롯한 학당의 서얼들이 수군에 자원해 명분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칠반천역으로 여겨지던 수군은 이제 신분 극복과 출세의 길로 여겨졌고, 원양 수영 입장에서도 그 덕분에 인재를 빠르게 수급할 수 있었다.

“군관도감을 수석 졸업해 지금까지 수군에서 수많은 공을 세운 자네 같은 인재를 가만히 놀려서야 쓰겠나. 역시 진위장군을 지내신 조부님과 오위장을 지낸 아버님의 피가 어디 가지는 않는 모양이야.”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저 전하께서 내리신 은혜를 갚고자 분골쇄신했을 뿐입니다. 저 같은 서얼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신 성은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은혜에 엎드려 눈물 흘리던 20대 청년은, 어느새 늠름하게 성장해 수군의 기둥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눈부셔, 나는 신무의 감격어린 대답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아, 이 분이 전열함의 선장이십니까? 반갑습니다!”

그런 감격의 와중에 눈치 없게 산통을 깬 이가 하나 있었다. 옆에서 물끄러미 오가는 대화를 듣던 빌트였다.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해 답답했던 건가.

“예, 그렇습니다. 하란타에서 오신 함대를 총지휘하시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제 배에 탑승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 네덜란드어가 훌륭하시군요. 어디서 그렇게 배우셨습니까?”

“처음 수학했던 학당에서도 배우고, 수군에서 하란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더 능숙해졌지요. 아, 동인도회사와 관련이 있으시다면 혹시 피터르 판 슈타우텐부르그라는 분을 아십니까?”

“슈타우텐부르그……? 조선에서 귀환했다던 동인도회사 설립자의 손자 분 말씀인가? 압니다, 알아요. 더 라위터르 제독님과 그분이 내게 조선행을 적극 추천하셨거든요.”

엥? 접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두 사람이 어째서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것인가.

하지만 당황한 나를 옆에 두고, 선장 두 사람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 그분이 조선에서는 더 라위터르 제독님 배에서 화포장으로 일하셨다고요? 그거 참 잘 됐군요!”

“무엇이 잘 되었다는 말씀이십니까?”

“화포장이란 자리는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늘 모자란 자리가 아닙니까. 제 부족한 솜씨를 이 훌륭한 배를 위해 쓰게 해주십시오!”

글렀다. 이미 전열함 광신도에게 시동이 걸려버렸다.

왜 서로 공유하고 있는 지인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는지는 둘째치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으음……. 틀린 말씀은 아닌데, 전선 여러 척을 지휘하시던 분께 고작 화포장 자리는 조금…….”

“괜찮습니다! 저는 이 배에 타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소원을 성취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빌트의 말은 점점 빠르고 거칠어지고 있었다. 조선에서 네덜란드어를 배운 신무는 이맛살을 찡그려가며 겨우 그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 듯했다.

“간단합니다! 제 말을 거역하는 수병을 언제든지 돛대에 거꾸로 매달아도 된다는 허락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제 배에는 감히 상관의 명령을 거역하는 병사 따위는 없습니다. 상관이 갑자기 끼어든 하란타인이라도 말이죠. 그리고 병사를 돛대에 거꾸로 매다는 형벌 또한, 제 배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 참. 선장께서는 네덜란드어를……. 아니지, 제가 실수했군요. 또 흥분해서 그만……. 아무튼 제 말뜻은, 수병을 제 방식대로 독려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돛대 운운한 것은 비유에 불과하고요.”

“정말로 우리 병사를 돛대에 거꾸로만 매달지 않는다면야. 하란타 선원들이 보통 그러하듯 엉덩이 몇 대 걷어차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 정도로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장!”

큰일 났다. 누군가 최신형 전열함에 미친개를 한 마리 풀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사실 조선말도 못하는 놈이 날뛰어봐야 얼마나 날뛰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문제는 이 전열함은 수군 중에서도 엘리트만 배치되는 곳이라, 말단 군관까지도 군관도감이나 학당에서 네덜란드어를 필수로 배운 군관들이 득시글하다는 것.

아, 저기 배의 한 구석에서 종군기자라도 된 것마냥 함대가 전진하는 모습을 열심히 스케치하는 하멜 놈도 있구나.

언어의 장벽도 무너졌으니, 저 미친개가 날뛰는 것을 막을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부총리님? 괜찮으십니까? 혹시 안 어울리시게 뱃멀미라도 갑자기 온 건 아니시겠죠?”

누가 봐도 신이 잔뜩 난 빌트의 모습을 보자,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저 멀리 점으로 보이기 시작한 적 함대 때문이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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