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호포대, 집합!
그러나 두 군관을 구해준 대선배들의 흥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군관 황건철과 김악기는 군막을 마저 세우는 대신, 화려하게 치장된 지휘관 막사로 두 대선배를 따라가야 했다. 한양에 주둔 중인 총통위의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이유였다.
“……흐음, 그 말대로라면 지상에서 벌이는 대규모 회전 경험은 없다 봐야 하나?”
“총통위는 기존 착호갑사의 임무를 기본으로 하여 이것저것 특수한 임무를 죄다 맡고 있지비. 최근에 조선에서 벌인 전투는 수전이 대부분이라 당연한 일임메.”
“그래서 대장이 명령서를 내리며 일선 사정에 맞게 검토를 해보란 이야기를 했구먼. 대장 말대로 타스하 잘안에서 데려온 조총수 위주로 방진을 구성하는 것이 맞는 듯허이.”
“어차피 수전과 유격전에 익숙한 병사들은 따로 임무가 주어지지 않았나? 두쇠 자네는 현지 청나라 병사들 사이에서 방패를 들릴 쿠투러(보조병)를 선발하는 일에 집중해야지비.”
황건철과 김악기의 복무경력을 쭉 들은 두 장수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금군에 들어오기 전, 황건철은 맹수 사냥과 산적 토벌 위주의 소규모 작전에 자주 투입되었고, 김악기는 서자 신분으로 자원한 수군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읊은 후였다.
“대장이 어떤 작전을 구상하는지 대강 알 것 같구먼, 귀돌이 자네는 어떤가?”
“두쇠 자네가 알아챘는데 내가 모를 것 같음메? 우리 대장의 지략에 휘말린 나선 놈들이 피똥을 싸는 모습이 눈앞에 선한 것 같지비.”
두 군관이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대선배들 사이에서 수차례 지나갔다. 작전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황건철과 김악기는 얼이 반쯤 빠져 날아오는 질문에 계속해서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래, 세자, 아니 전하께서는 잘 계시고? 금군이라면 그분의 가장 가까이에서 임무를 수행하지 않나.”
“얼마 전에 성저십리에 잠행을 나가셨을 때 저희가 호위를 맡았습니다.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총기를 개량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시거나 새로운 음식을 드시고 기뻐하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대장뿐만이 아니라 전하께서도 그대로시구먼. 그렇다면 아랫사람을 아끼는 마음도 변하지 않으셨을 것이 분명허이. 그렇지 않은가, 귀돌.”
“두쇠 자네도 아직 기억하고 있음메? 노예 출신 사냥꾼이라 손가락질 받던 호포대에서 첫 전사자가 나왔을 때, 시신을 감싸라며 웃옷을 바로 벗어주셨었지비. 그런 분이 임금 자리에 오르셨으니 조선이 이토록 변할 수 있었던 것임메.”
“그립구먼……. 그동안 청국의 팔기로 살아가며 부족한 것은 없었으나, 굳이 아쉬운 것 하나를 꼽으라면 그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게야. 나도 귀돌 자네처럼 전하를 따라 귀국할 것을 그랬었나.”
호포대 시절 입던 줄무늬 전투복 대신 청나라 갑주를 몸에 걸친 방두쇠의 입에서는 아쉬움이 가득 담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마 지금은 방두쇠라는 이름보다 청나라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을 사람이다.
“허허, 안사람이랑 싸우기라도 했음메? 두쇠 자네가 나처럼 조선으로 돌아왔으면 그 청나라 각시랑은 영영 안녕이었을 것이지비?”
“차라리 그럴 것을 그랬어. 빌어먹을 혼인 같은 것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슨 소리임메? 자네 처가 덕이 없었다면 자네가 니루 장긴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을 것 같음메?”
“그놈의 니루 장긴이 뭐라고. 훈련 빼먹겠다고 고려피자점 일손을 돕는 것이 아니었지.”
“지금까지 각시 덕은 볼 대로 다 봐 놓고 딴 소리는. 그러고보니 그 피자점에서 대장이 황녀님이랑 놀아났었지비. 무쇠 같던 대장 표정이 녹아내리던 것이 참으로 볼 만 했슴메.”
슬슬 필요한 정보는 다 빼먹었는지, 두 장수는 까마득한 후배들을 앞에 두고 추억을 더듬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불편한 자리를 견디던 와중에 김악기의 귀에 쏙 들어온 단어 하나가 있었다.
“저, 나리. 실례지만 대장과 황녀님이라니, 그거, 안 대감님 이야기 맞습니까?”
“우리 대장이 두 사람은 아니지비? 이거, 처음 듣는 얘기임메?”
“세상에, 파총 나리, 그거 실화였습니까? 소관은 세책점에서 지어낸 얘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지어낸 얘기는 무슨? 옳아, 대장이 예전 일이 어지간히 부끄러우신 모양이로구마. 여기 두쇠가 그 이상한 음식만 만들지 않았더라도 아무도 몰랐을 일이긴 한데.”
어느 미친놈이 달달한 과일을 짭짤한 음식 안에 넣느냐며, 총통위 함경지대 파총 김귀돌은 옛 동료에게 거친 눈길을 날렸다. 그리고 타박을 받은 타스하 잘안 장긴 대리 방두쇠는 지분을 댄 피자점에서 일하던 마누라의 발상이었다며 변명을 이었다.
“나리, 그렇다면 조선에 도는 안 대감 이야기는 전부…….”
“그래, 아새끼들아. 우리 대장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음메? 두쇠, 이것 보아. 우리 후임이라는 놈들은 빠져가지고 누구 덕에 이렇게 먹고 사는지 모르게 되었지비.”
***
“스테파노프 님, 정찰 나갔던 카자크 분대가 돌아왔습니다.”
“정찰? 뭐, 여기 야만인 놈들 상대로 필요도 없는 것을 굳이?”
러시아 원정대의 우두머리, 오노프리오 스테파노프는 심기가 조금 불편해 보였다. 보고를 핑계로 갑자기 들이닥친 부관 때문에 정사를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쯤 그의 선실 이불 밑에는 포로로 잡힌 반반한 원주민 여자가 떨고 있을 것이었다.
“이 멍청한 자식아. 화기는 손에 꼽을 정도에, 우리 함선을 상대로 조각배로 들이박는 미개한 놈들 상대로 무슨 정찰이 필요하단 말이냐?”
“그래도…….”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야만인 부락을 습격해 모피를 털고,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겁탈해 노예로 삼으면 된다. 저 미개인 놈들이 무슨 방해가 될 거라 생각하는 게냐?”
“그, 순서가 조금 바뀐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스테파노프 님, 적에게 새로운 군세가 합류했다는 첩보입니다. 앞으로 전황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스테파노프의 이마에 핏줄이 불뚝 솟았다. 부관이란 놈은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건가.
“부관, 그럼 놈들이 우리 함선만 한 배를 몰고 아무르 강을 따라 올라오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것은 아닙니다만……. 놈들의 배는 여전히 작고 볼품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우리는 배에 탄 채로 이 크렘네보예(кремневое) 총으로 야만인 놈들의 대갈통을 쏘기만 하면 되는데?”
쾅 소리가 나게 탁자를 두들긴 스테파노프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방아쇠 상단에 화약접시와 그것에 불을 붙일 부싯돌이 장착된 권총이었다.
그가 자신감을 보일만도 했다. 러시아 원정대 전원은 당시 최신기술이 반영된 플린트락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새로 나타난 적의 군세에 짐승 머리를 한 병사들이 합류했다는 보고도 같이 들어왔습니다.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요?”
“짐승 머리? 모피로 허세를 부리는 전형적인 야만인 습성이 아니냐. 그게 무엇이 문제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하바로프가 경고했던 수두인(獸頭人)이 그것이 아닌가 해서…….”
“하바로프? 예로페이 하바로프는 모스크바로 잡혀간 퇴물 아니냐? 지금 놈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냐?”
“아니, 그것이 아닙니다. 스테파노프 님.”
스테파노프가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하바로프는 그의 전임자로, 증원군으로 파견된 지휘관과 말다툼을 벌인 끝에 모스크바로 체포되어 압송된 사람이었다. 말다툼의 원인은 적군과 마주쳤을 때 하바로프가 너무 쉽게 후퇴를 결정했다는 것.
하지만 하바로프가 소극적인 행동을 핑계로 잡혀간 후로도 모스크바에서 날아오는 실적 독촉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에 시달려 스테파노프는 늘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였다.
“하바로프가 수두인에 관해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육안으로 겨우 보이는 거리에서 아군 카자크를 맞추었다고요.”
“우연이었겠지! 변변한 총기도 소지하지 못한 지방의 야만인들이 우리 소총으로도 못 하는 일을 해낼 리가 있느냐? 애초에 그 짐승 가죽으로 치장한 놈들을 첫 전투에서 짓밟아놓지 않았나!”
“그래도 저번에 이긴 병력은 머리에 모피를 뒤집어쓰진 않았습니다.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조심하시는 것이…….”
“그럼 운 나쁜 총알 몇 발에 놀라 쿠마르스크 요새로 후퇴한 겁쟁이를 그대로 답습하란 말이냐? 애초에 그것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을 했을 텐데?”
부관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사실 주어진 정보 안에서 스테파노프가 내린 판단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미 러시아 원정대는 첫 전투에서 몇 안 되는 전사자만을 내고 적병 수백을 쓸어버렸으니까.
다만, 스테파노프는 승리에 취해 야만인이라 무시하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 방심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하늘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기 배로 철수하면 문제가 없지 않나?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야만인 놈들의 조각배로 우리 함선을 침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그럼 이 일로 더는 나를 귀찮게 하지 마라! 안 그래도 위에서 쪼아대는 것 때문에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나 더 추가할 셈이냐!”
탁자를 다시 쾅쾅 두들긴 스테파노프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곧바로 붙잡힌 노예가 있는 선실로 돌아갈 생각인 것 같았다.
“걱정과 근심은 할 일이 없을 때 생긴다는 속담과 딱 맞는 상황이군. 그럼 할 일을 만들어 줘야지.”
“스테파노프 님, 그 말씀은…….”
“전 원정대에게 전투준비를 시켜라! 며칠 안으로 야만인 놈들의 군세를 깨부수고 전리품을 가득 얻을 수 있게 해 주겠다!”
***
“구사 어전, 왼쪽을 보십시오.”
“…….”
이제 포기했다. 머이런 장긴은 괜히 말이 길다며 내게 대리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끝까지 거부했다. 이런 일은 덜 질긴 사람이 져줄 수밖에.
“지시하신 대로 타스하 잘안 병력에 총통위 함경지대 인원을 더해 육전용 니루 두 개의 편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머지 병력은 암반 장긴의 지휘에 따라 적들을 참호가 설치된 곳으로 유인할 것입니다.”
“암반 장긴은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입니까?”
“첫 전투에서 철저히 패한 데다, 상부에서 새 지휘관까지 내려 보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도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나 일이 잘못되었을 때, 어전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면 철저히 명에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불길한 소리를 잘도 하시는군요.”
이 와중에도 머이런 장긴은 보고에 농담을 섞고 있었다. 입가에 쓴웃음이 서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차피 샤르후다가 맡은 임무는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니다. 함선에 타고 있을 적을 유인해 아군이 참호를 파고 대기 중인 곳으로 끌어오는 간단한 임무. 실패하기가 더 어렵다.
“그럼 나머지 총통위 병력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지시한 대로 매복을 위해 강의 상류로 우회하고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적의 눈을 피해 강 건너 수풀에 매복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어전께서 내린 임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잘 해낼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나선인들보다 더 나선인의 함선에 익숙할 것이거든요.”
총통위 병력 중 수전에 익숙한 병사들을 데려오길 잘했다. 나선 정벌은 대강 조선 조총수들이 막대한 전과를 올린 전투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강 위가 주요 무대가 될 줄이야.
기본적으로 러시아 원정대가 가지고 온 범선은 전형적인 유럽식 범선이다. 수군 출신의 총통위 병사들은 벽란선과 예성선을 숱하게 다루며 비슷한 종류의 배에 이미 이골이 난 상태였다.
물론, 배 위의 싸움 역시 익숙하다.
“그럼 기본적인 것들은 확인을 했고……. 참, ‘그 배’들은 상류에 잘 대기하고 있습니까?”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요. 당연합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자피선의 원 주인들은 순순히 배를 내줬습니까?”
“조선에서 무역할 기회와 함께 식량으로 넉넉히 보상해준다는데, 거절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런 자피선이야 저들 기준으로는 몇 주일이면 금방 만드는데요.”
모든 조건이 문제없이 준비된 모양이었다. 조용하던 가슴이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번 전투는 도르곤이 나를 북경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포석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대충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기왕 병사들의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좋습니다. 준비가 충분히 완료된 모양이군요. 철저한 승리를 위해 모자람이 없습니다. 머이런 장긴.”
“사실 어전께서 이토록 치밀한 전략을 짜시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적의 군세에 비해 우리 군세가 거대하고 솜씨 좋은 조총수도 다수니, 정면으로 승부하실 줄만 알았거든요.”
“발본색원, 저런 부류는 뿌리를 한 번에 끊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환이 남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놈들이 저지른 짓들은 그대로 갚아 주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어전은 몸에 흐르는 피만 고려의 것이지, 천생 우리 만주족과 다른 것이 없으시군요. 선대 카간께서 버이러 칭호와 만주족 이름을 왜 내리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농담을 섞은 칭찬일까, 아니면 착각일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송화강으로 내려오며 목격한 처참한 광경들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으니까.
학살, 약탈, 방화.
내가 있는 곳에서 그런 짓거리를 저지르다니.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놈들은, 나도 사람 취급을 해줄 생각이 없었다.
“허나 출진 전부터 벌써부터 그렇게 심력을 쓰시면 안 됩니다, 대장. 그냥 저처럼 지금 상황을 즐기십시오.”
그러나 그런 더러운 기분에 휩싸였던 것도 잠시였다.
내 눈치를 본 머이런 장긴이 한 발 뒤로 물러서자, 한쪽에서 대기 중이던 타스하 잘안의 장긴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심양 시절에는 니루 하나를 맡고 있다가, 내가 조선으로 돌아간 후로 쭉 잘안 장긴 대리를 맡아온 사람이다.
“십여 년 만의 호포대 완편이 아닙니까. 물론 저는 대장이 타스하 잘안으로 돌아온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완편이라고 하기에는 당시에 비해 병력도 적고, 세상에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니루 장긴 한 사람은 조선에 있고 말이야.”
“그래도 김 갑사님과 김귀돌 장긴까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납니다. 정말로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
“중원 남방의 지옥 같은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보람이 있군요. 팔기의 다른 장긴들은 어찌나 사납기만 하던지……. 그동안 만나본 상관 중엔 대장 같은 장수가 없었거든요.”
도르곤의 팔다리가 묶이기 전까지 타스하 잘안은 아마 명나라와의 전선 중 가장 험한 전장만을 골라 투입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점령지 학살 같이 손을 더럽히는 일에도 우선적으로 밀어 넣어졌겠지.
청에서 그동안 들어온 것들은 단편적인 정보에 불과했지만, 원 역사의 흐름을 생각하면 이 추론은 분명 옳을 것이다. 나 없는 곳에서 나머지 호포대원들이 했을 고생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동안 해주지 못한 격려를 한껏 담아 방두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제 오랜만에 같은 갑주를 입고 있구나. 팔기군 양백기의 흰 갑주 말이다.
“좋아, 방 장긴. 덕분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헌데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되었다 하니, 타스하 잘안에게도 예전 그대로의 활약을 기대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대장. 깜짝 놀라지나 마십시오.”
“부디 나를 놀라게 해 주게. 그럼, 바람이 잦아드는 대로 작전을 개시하도록.”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이제는 조선말보다 만주어가 더 익숙해진 옛 부하를 보며, 나는 입맛이 조금 씁쓸해졌다.
그 와중에 옆에서 만주어로 오간 대화를 들은 머이런 장긴이 전군에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뛰쳐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피의 복수를 벌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