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동방의 명의
“말도 안 됩니다! 어찌 동맹국의 귀하신 몸께 그런 위험한 일을 허락하겠습니까?”
“잠깐, 한수 네놈, 내게는……?”
잠시 조선말로 대화에 끼어들려던 봉림대군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말이 반쯤 입 밖으로 튀어나가고 나서야 체통을 지켜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자국인인 대군과 타국인인 헨리에트를 동일 취급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일로 기분을 상한 것을 보니 대군은 아직도 심양 시절 그대로였다.
“원래 지위는 그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는 법이라잖아요? 게다가 이것은 세자 저하께 도움이 되는 일이고요. 얼마든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어려운 일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외교관입니다. 조선과 네덜란드 사이에 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은 시도할 수 없습니다.”
“오라버니를 걱정하시는 것이라면, 걱정 마세요. 어차피 오라버니는 제 말 한 마디면 꼼짝도 못 하거든요.”
“이 미지의 방법이 두렵지는 않으신 겁니까?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녀님의 몸에 시험하기에는 조금…….”
헨리에트는 내 만류에도 그저 밝은 태도만 보이고 있었지만, 대군의 표정은 계속해서 심히 언짢아질 뿐이었다. 공작 저택에서 구해낸 이후로 점점 내게 감정을 숨기지 않더니, 이제는 숫제 왕족의 체통까지 내려놓으신 모양이다.
어쨌건 옆에서 계속해서 불만 가득한 눈빛을 쏘아대는 대군을 뒤로 하고, 나는 일단 헨리에트부터 돌려보내야 했다. 이런 중대한 일을 그녀의 말만 듣고 곧바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내게는 저 고름을 당장 놓으려 안달을 하더니, 공작의 영애에게는 그렇게 심사숙고를 해? 안한수, 이건 왕실에 대한 능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저번에도 건빵과 염장고기로 나를 협박하더니…….”
“왕실을 능멸하다니요. 그런 끔찍한 소리는 농담으로도 하지 마십시오, 대감. 이미 제 몸으로 먼저 시험한 결과를 보셨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아니면 침을 맞는 일이 불안하기라도 하신 겁니까? 대장부라면 용기 있게 맞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정 불안하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불안? 내가?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 당장 맞겠다! 바로 침을 대령해라!”
***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아주 작은 해프닝이.
그러나 결국 세자와 헨리에트의 등장이 일을 쉽게 풀어준 격이 되고 말았다. 대군이 조금 감정을 상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일단은 헨리에트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하고 자리를 파했던 다음날, 의외의 사람에게서 연락이 날아들었다.
공작부인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란 말씀이십니까?”
“동방의 지혜와 서방의 경험을 융합해봤습니다. 일단 제 몸에 시험해본 결과 위험성은 없는 것 같고, 동인도회사에서 모아들인 정보가 틀리지 않다면 천연두 예방에 분명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흠……. 장관 설명을 들으면 그럴듯한 말이긴 한데……. 뭐, 이 아이는 어차피 조선 왕실로 시집보낼 아이니까요. 헨리에트만 좋다면 마음대로 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오라녜 공작부인 메리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삼켰다. 그녀의 배는 헤이그를 떠날 때보다 확실히 부풀어 있었는데, 그것이 원인인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헌데 ‘다만’이라 하심은…….”
“괜찮습니다. 다만 장관을 직접 제 방까지 부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치료법, 효과가 있다면 당연히 네덜란드에도 공유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둥글둥글 순하게 생긴 공작부인의 눈가가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확실히 단순무식한 빌렘을 상대할 때보다 부인 쪽이 더 까다롭다. 아이를 가진 상태였음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종두법은 단순한 시술이기도 하고, 시술 자체의 난이도보다는 백성들에게 드는 거부감을 줄이는 것이 더 어려운 방법이니까.
“물론입니다. 조선 왕실과 오라녜 공가의 친선을 위해 흔쾌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관. 제 남편이 멋대로 행동했음에도 예전과 같이 저희를 대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를 느끼고 있답니다.”
“그럼 허락도 받았으니 바로 시술을 시작할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공작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대군은 그것을 보더니 장갑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히익……!”
“잘 보십시오. 저희 예판이 제게 한 짓의 결과물입니다.”
헨리에트가 짧게 경악을 표한 이유가 있었다. 대군의 두꺼운 가죽 장갑 아래에는 도넛 모양의 수포가 여러 개 올라와 있었으니까. 대군은 당장이라도 그것을 벅벅 긁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꾹 참아내고 도로 장갑을 착용했다.
“사실 이렇게 보여도 큰 증세는 없습니다. 천연두에 걸리면 몸이 펄펄 끓어올라 운신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데, 지금 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보실 거라 생각합니다.”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저는 왕제께서 이미 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공작부인. 다만 몸에 조금 열이 오른 상태고, 수포가 올라온 곳이 간지러운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이것이 정말 효과만 있다면야…….”
귀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서 시험해주어서 감사하다며, 공작부인은 대군에게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방금까지 대군의 얼굴에 감돌던 불안감은 그 인사를 받고 조금 누그러든 듯했다.
“동인도회사에서 모아준 정보에 따르면, 이 쿠포켄(Koepokken), 그러니까 우두에 걸렸던 농촌 여자들 중 천연두에 걸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대군이 멀쩡한 것을 보면 이 시술을 받는다고 사람이 소로 변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호호, 장관은 농담도 잘 하시는군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헨리에트, 준비되었니?”
“예, 언니……. 저, 해볼게요!”
대군의 손에 부풀어 오른 수포를 보고 헨리에트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지만, 그것이 그녀의 의지를 꺾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헨리에트는 세자를 향해 한 번 시선을 보내고는, 고개를 끄덕여 시술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문 앞에 서 있던 여인 한 명이 장갑을 낀 채 자리로 다가왔다. 시술도구를 든 채 대기하고 있던 요안이었다.
“오랜만이에요, 공녀님. 공녀님의 시술은 제가 담당하게 되었답니다.”
“요안? 당신, 설마 손에 낀 장갑은…….”
아무래도 내가 감히 세자빈 후보의 몸에 손을 댈 수는 없었던지라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실 본인까지 우두 고름을 맞을 필요는 전혀 없었지만, 요안은 공녀를 안심시키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끝까지 우겨댔다.
‘그리고…… 남편이 몸으로 스스로 시험한 결과를 아내가 믿지 않으면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제게도 그 침을 놓아주세요. 부탁이에요.’
그 애처로운 눈망울을 나는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그렇게 요안은 대군과 함께 우두 접종을 받았다.
내 경험 상 손이 꽤나 간지러울 텐데, 언제까지나 아이인줄만 알았던 요안은 지금까지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심지어 대군보다 더 얌전해 보일 정도였다.
“아얏…….”
“괜찮으세요? 불로 달궜던 침이 뜨겁지는 않으시고요? 이걸 몇 방 더 맞으셔야할 텐데.”
“괜찮아요.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고름 묻힌 침을 맞은 헨리에트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공작부인 역시 옆에서 헨리에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시누이에게 힘을 전해주고 있었다.
세자가 먼 타지에서 불장난을 한 줄만 알았는데, 이렇다면 생각보다 괜찮은 신붓감이 아닌가.
이미 대군과 이야기를 나눈 바처럼 헨리에트가 조선의 세자빈이 되려면 꽤나 높은 장애물들을 첩첩이 넘어야겠지만, 그녀에게 힘을 빌려줄 보람은 있어 보였다.
“저…… 장관? 조선에서 이렇게까지 모범을 보이신 것을 보면 정말로 가능성 높은 시술인 것 같은데, 저도 받는 편이 좋을까요?”
“아닙니다. 부인의 태내에는 지금 후사가 있으신데, 이런 상황에서는 섣불리 어떤 병도 접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아, 공작부인께는 제가 다른 선물을 드리지요.”
“다른 선물이요?”
헤이그로 막 돌아와 환영을 받을 때,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행복해하는 공작부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무심코 그 위에 하연의 모습을 겹쳐보았었다. 빌렘에게 목줄을 채우는데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하니 출산 선물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 잠깐.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선을 떠나올 때 하연도…….
“장관? 괜찮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부인. 몇 달 후면 출산을 겪으실 텐데, 그 때 부인에게 도움이 될 의술을 몇 가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보통 전근대의 출산에서 산모와 아기의 목숨을 가장 위협했던 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균이 산모나 아이에게 감염되는 일이었다. 그것만 방지해도 산모나 아이가 분만 과정에서 절반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증류한 고농도 알콜이나 끓였다 식힌 물로 환부를 닦아내고, 출산을 돕는 인원들더러 손을 깨끗이 씻게 하라는 조언을 공작부인에게 전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정말로 유용한 정보군요.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전해주신 축복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그 아이가 네덜란드 화합의 상징이 되길 빌겠습니다. 저는 아이가 태어날 때 네덜란드에 없겠지만, 공작부인께서 제 축복을 대신 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장관. 헌데 무언가 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갑자기 평정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조선을 떠나던 날 무언가 평소와 다르던 아내의 행동이 이제 이해가 가고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하연에게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죄를 또 지은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전해들은 공작부인도 잠깐 미간을 찌푸리고는 그 추측에 동의했다. 남편인 빌렘도 똑같았다 했던가, 남편처럼 눈치 없는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 또 있을 줄은 몰랐다며 메리는 내게 잔뜩 타박을 날려댔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닙니다. 안사람을 이리도 오래 혼자 둔 것은 제 잘못이 분명하니,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나마 반성할 줄은 아시니 제 남편보다 조금 나으십니다. 그래도 조선으로 돌아가시거든 부인께 사과 정도는 전하셔야 할 테지만요. 아, 마침 이제 시술이 끝난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부디 공녀님 몸에 이상이 없으시기를.”
“결과가 성공적이라면 저도 출산을 마치자마자 시술을 받을 생각입니다. 조선의 지혜를 나눠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장관님.”
공작부인이 말을 마치자마자 접종을 마친 요안이 도구를 정리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헨리에트 공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내 앞을 가녀린 손바닥 하나가 막아섰다.
“잠시만요, 장관님. 저 얼마나 보기 좋은 장면입니까.”
“부인, 하지만…….”
공작부인이 가리킨 자리에는 세자와 헨리에트가 따스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무심한 척 손에 난 상처를 소독하라고 알코올을 적신 솜을 건네는 세자의 손길에서는 설렘이 묻어났다.
다른 눈들이 있는 곳에서 이 정도니, 단둘이 있을 때는 도대체 어디까지 갔단 이야기인가. 네덜란드를 떠나기 전 반드시 대군이 아는 정보를 캐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헨리에트가 조선의 프린세스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일단 정해진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통과한다 하여도 머리색과 눈동자색이 다른 세자빈을 조정에서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제 부인이 그 산 증인이지요.”
“헨리에트를 잘 부탁합니다. 양국의 친선도 그렇고, 저 아이는 분명 조선에 도움이 될 존재가 될 겁니다. 그러니 부디…….”
공작부인이 내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시누이를 아끼는 그 마음이 절절히 전해져와, 나도 모르게 맞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네덜란드와의 관계만 생각해 헨리에트를 세자빈으로 고려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조금 다르게 먹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곧 조선으로 따라갈 자신은 전혀 우두 접종을 받을 필요가 없었음에도 세자를 위해 서슴지 않고 나선 것을 보면, 그녀는 분명 세자빈의 자격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무언가에서 나온 행동이었으니까.
***
하지만 그날의 우두 접종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추가로 벌이고 말았다.
의도치 않은 희생자가 나와 버린 것이다. 그것도 둘이나.
“저하! 손에 웬 붕대입니까? 어디 다치기라도…… 아, 설마.”
“스승님, 그것이…….”
이틀 후 아침이었다. 아침 문안 자리에 나타난 세자는 손에 웬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이제 충분한 정보를 가진 두뇌가 재빠르게 회전했다.
이 자식이 국본의 체통을 지키라 하였거늘 또……!
“저하? 이 건은 본국에 돌아가거든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하의 체통과 건강은 생각지도 않으시고 환자와 몰래 접촉하신 모양인데…….”
“아닙니다, 스승님! 그것이……! 그것이……!”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찾는 세자였으나 적절한 변명거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손이 징그럽게 변했다며 방에서 두문불출중인 대군에게 옮은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렇게 내가 세자에게 막 불벼락을 떨어뜨리려던 찰나였다. 갑작스런 외침과 함께 세자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여기 있다고 들었소! 외무장관!”
문 앞에는 서 있는 것은 상상도 못한 사람이었다. 어제 출타에서 돌아온 이 저택의 주인이 울상을 하고 방 안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공작 각하? 여긴 어떻게……?”
“내 손, 내 손이 이렇게 되어버렸소! 나는 죽는 것이오?”
아침에 일어나보니 손에서 수포와 발진이 올라와 있었다며, 빌렘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애원해댔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일단 진정부터 하십시오! 죽다니,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메리가 그랬소!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장관뿐이라고! 조금만 더 늦게 대처하면 천연두로 바뀌는 병이니 어서 무릎이라도 꿇고 치료제를 받아오라고 했소!”
그제서야 빌렘의 뒤에서 웃음을 잔뜩 품은 공작부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에 나도 모르게 이마로 손이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하, 나는 여기서도 높으신 분들 뒤치다꺼리를 골라 해야 하는 것인가.
“공작 각하, 설마 어제 헨리에트 공녀님과 접촉하신 일이 있습니까?”
“어떻게 알았소, 장관? 헨리에트가 무슨 병에 걸렸다기에 나는 조금 간호를 도왔을 뿐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든 앞뒤 상황이 이해가 갔다.
이 동생 바보가 미열이 올라 앓아누워있는 동생을 직접 간호한답시고 나섰다가, 상처 난 손으로 어딘가에 묻은 고름을 만지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메리 여사님은 평소에 쌓였던 감정을 이번 기회에 푸신 모양이고.
“장관! 살려주시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소!”
하, 이 인간까지 접종을 해주다니…….
원 역사의 빌렘은 분명 천연두로 때 이른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내가 대군에게 우두를 접종하면서도 그에게 딱히 우두를 접종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빌렘을 살려서 바꾼 역사가 조선에게 어떠한 이득으로 작용할지 아무런 계산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헌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이젠 적어도 빌렘이 병으로 요절하는 역사는 지워질 것이다.
보이지 않는 나비가 알 수 없는 날갯짓을 펄럭이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