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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213화 (213/298)
  • 213화. 암스테르담을 떠나며

    그렇게 마지막 교섭까지 마치자, 암스테르담에 머물 시간은 정말로 며칠 남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 동인도회사와 경매장, 은행 등 암스테르담의 각지를 견학하며 세자를 비롯한 조선 사절단은 많은 것을 배웠다. 언젠가 이것들을 조선에 도입할 날도 올 것이다.

    “섭섭하군요. 저는 이제 장관과 조금 친분을 쌓았다 생각했는데, 암스테르담을 벌써 떠나실 때가 다 되었다니요.”

    “동쪽의 격언 중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기 마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아쉽지만 이 가르침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참아 보겠습니다.”

    “장관께서는 참으로 철학자 같은 말을 자주 인용하시는군요. 공화국에 태어나셨어도 훌륭한 지식인이 되셨을 텐데요. 아, 그러고 보니 조선의 관료들은 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임용될 수 없다 하셨던가요?”

    오늘도 요한 더 비트가 숙소로 찾아왔다. 그는 지난번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준답시고 매일같이 나를 찾아오곤 했다.

    사실 편지로도 충분히 전달이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별 것 아닌 일로 협상 파트너를 타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요한이 환영만 받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도 요한을 반기지 않는 녀석의 입이 댓발은 나와 있었다. 그가 찾아올 때마다 나와 있는 시간을 방해받는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참, 유학생이라……. 사실 저희 쪽에서 먼저 제안을 드리고 싶었는데,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네덜란드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소년이 있어서 말이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아이가 품은 동경을 잃지 않도록 귀국 측의 많은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물론입니다. 장관이 네덜란드와 조선 사이에 놓인 첫 번째 가교라면, 두 번째 가교는 그 소년이 될 테니까요. 양국의 친선이 걸려 있는 문제니, 저희도 많은 배려를 준비하겠습니다.”

    만중의 유학은 생각보다 쉽게 확정이 되었다. 대학 측에서도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유학생에게 기대가 큰 모양이었다. 덕분에 만중은 사절단이 떠나자마자 학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은 바타비아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이군요. 제가 바타비아 총독에게 소개장을 써 드릴 테니, 그쪽에서 구해가시는 것이 여러 모로 나을 것 같습니다.”

    “그 편이 나을 것 같군요. 아무래도 그것들은 살아있는 생물이니까요. 배려 감사드립니다.”

    “배려라니요. 장관님이 우리 네덜란드에 전해주신 지식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이지요. 바타비아의 동인도회사 지부에서는 이번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협력을 제공해드릴 것입니다.”

    “지속적인 협력이라……. 좋군요. 그리고 저번에 답변을 주시기로 약속했던 이야기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포모사 섬 건 말입니다.”

    농작물과 가축의 종자를 들여오는 일 역시 무난하게 끝맺었다. 사실 요한 더 비트가 이야기한대로 이런 것들은 네덜란드까지 와서 얻어갈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따로 있었다. 대만 개척을 위해서는 현재 유럽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의약품 공급 루트를 반드시 뚫어 놓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만 섬 개척에 협력해주는 대신 중요한 약재 묘목을 요청한 것이다.

    “‘예수회 나무껍질’이오? 장관께서 그것을 어찌…….”

    “정보의 출처는 묻지 않기로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아, 말이 나온 김에 말씀드리는 것인데,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적합한 지역에서는 신코나(Cinchona, 기나) 나무 역시 재배할 수 있을 겁니다.”

    “묘목이야 어떻게든 남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서 빼돌린다고 치고……. 그게 가능만 하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헌데 조선에서는 그것을 왜 원하시는 겁니까?”

    “포모사 섬에서 정체모를 열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열병에 특효인 그 나무껍질이 있어야 우리 백성들을 병마로부터 보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커피보다 더 필요한 것이 저 명약이었다.

    대만 개척에서 헛되이 소모될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기도 했다. 말라리아 특효약, 키니네로 유명한 기나나무 껍질 이야기다.

    개똥쑥으로 임금의 목숨을 구하긴 했지만 한 사람을 살리는데 필요한 양이 상상 이상이었다. 한 명을 살리는 데 내의원의 개똥쑥 재고를 몽땅 털어야 했으니까. 다수의 개척민을 살리려면 반드시 키니네가 필요했다.

    “역시, 장관님께는 하나라도 숨길 수 있는 것이 없군요. 공화국 역시 열대의 섬을 개척하느라 그 약을 확보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미에서 확보한 물량은 바타비아로 상당수를 보내는 것이 사실이고요.”

    “그 약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들었습니다. 구하기 어려울 때는 같은 무게의 은으로도 거래가 된다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어떻게든 커피처럼 묘목을 빼돌려 재배를 시도하고 있었는데, 적합한 장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신코나 나무는 남아메리카의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나무입니다. 일단 비슷한 기후를 가진 지역에서 재배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이전에 커피 건으로 알려드린 지역이라든지…….”

    내 말을 들은 요한 더 비트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 듯했다. 자바 섬의 가치가 생각보다 엄청나단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원 역사에서 네덜란드가 20세기까지 인도네시아를 놓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네덜란드는 자바 섬에서 전 세계의 키니네 생산량의 80퍼센트를 생산해냈으니까.

    “이거, 인공 재배만 성공시킬 수 있다면…… 엄청난 자원이 되겠군요. 고작 기호식품에 지나지 않는 커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겁니다.”

    “알아채셨습니까? 말씀드린 보람이 있군요.”

    “그렇습니다. 강대국들은 점점 다른 대륙에 개척한 식민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행동반경은 더운 지방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고요.”

    “더운 지방을 개척하는 일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것이 열병이지요. 열병에 특효인 이 약은 앞으로 무궁무진한 수요를 창출해낼 것입니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입을 조금 벌린 채 나를 바라보는 요한 더 비트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기나나무의 재배는 쉽지 않다. 인공재배가 성공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조선 입장에서는 네덜란드에서 말라리아 약을 공급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만약 기나나무 재배가 성공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지 개척으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나나무 껍질은 나중에는 같은 무게의 금으로도 거래가 될 정도로 가격이 뛸 테니까.

    “이거, 조선과 장관께 우리 공화국이 너무 큰 빚을 진 것 같습니다.”

    “아직 발상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그 빚은 성공하고 나서 천천히 갚아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저희 쪽에서 너무 받은 것이 많게 됩니다……. 아, 제게 좋은 생각이 하나 났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니요?”

    “총독과 휴전 협정을 맺으면서 군비 축소를 일시 중지하기로 합의했지 않습니까. 헌데, 그 과정에서 붕 떠버린 녀석 하나가 있어서요.”

    요한의 말로는 그 잠깐 사이 네덜란드 해군에서 퇴역 결정이 내려졌던 배 한 척이 있다고 했다. 조선소에 들어가 해체 또는 판매가 결정될 때까지 대기 중인 선박인 모양이었다.

    “조금 연식이 오래된 전열함이긴 합니다. 허나 아직 쓸 만한 전선이고, 아예 해체하거나 타국에 처분하느니 조선 측에서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인수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전열함!

    아직도 네덜란드의 입구에서 영국 놈들에게 수모를 겪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놈들의 거대한 전선 앞에서는 나름대로 최신 기술이 담긴 조선의 벽란대선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었다.

    “그렇게 귀한 배를 저희에게 함부로 넘기셔도 되겠습니까?”

    “물론 의회에 제안을 넣고 한 번 이상의 논의를 거쳐야 될 사항이긴 합니다만, 아마 큰 문제없이 진행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 입장에서도 아직 수명이 한참 남은 녀석을 해체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지라.”

    “저도 이런 문제는 함께 온 분들과 상의가 조금 필요하겠군요. 약간의 비용이라 표현하셨지만 배를 인수하는데 드는 비용은 적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이 정도로 협력을 받았으니 비싼 값은 받지 않을 것이라며, 요한 더 비트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훨씬 헐값에 전열함을 사갈 수 있을지도.

    “사실 이 제안은 트롬프 제독님의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동맹국에 제대로 된 전열함이 한 척도 없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하시더군요.”

    “그런……. 제독님은 군축 반대파가 아니셨습니까?”

    “사실 그 배는 너무 초창기에 건조된 전열함이라 다른 전열함에 비해 덩치도 작고 실을 수 있는 포 역시 적습니다. 그래서 해군 입장에서도 군축의 제물로 먼저 내놓았던 모양인데, 이렇게 되니 제독님의 마음이 바뀌신 모양입니다.”

    그래도 덩치가 작다는 것은 유럽의 전열함 기준이다.

    조선 수군에서 대장선으로 쓰는 벽란대선에는 구경이 작은 작은 현자총통까지 합쳐봐야 포 스무 문을 겨우 실을 수 있다. 허나 설명을 들어보니 엔호른(Eenhoorn)이라 불린 이 배에는 포를 무려 서른 문이나 실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벽란대선에 겨우 두 문을 실을 수 있었던 홍이포로만 서른 문이다. 라위터르는 단 두 문으로도 가고시마의 성벽을 온통 흔들어 놓았었는데, 그것이 서른 문이라.

    “사실 동방의 바다에서는 그것만으로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화력을 뿜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해전이 드물었던 탓에 동방의 조선 기술은 상당이 뒤떨어져 있거든요,”

    “그 이야기도 미힐이 제독께 전부 말씀드렸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래서 제가 제독께 불려갔을 때는 이미 어떻게든 조선소 독에 대기 중이던 엔호른 호를 넘길 방안을 찾아보라 발을 구르시던 상태셨습니다.”

    “제독께서 어떤 상태셨을지 짐작이 가는군요.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고생은요. 이런 기회를 빌려 조선에 좋은 선물을 드릴 수 있으면 동맹국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내게 진 빚을 제대로 갚을 수 있게 되었다며, 요한 더 비트는 입가에 띤 웃음을 더 짙게 했다.

    이런 것까지 바라고 네덜란드에서 온갖 일을 벌인 것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이 일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어쨌건 저희 공화국이 조선의 유능한 해군 제독을 한 명 빼앗아버린 셈이 되었으니까요. 이것으로라도 손해를 벌충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통제사 이야기군요. 계산이 그렇게 되다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과분한 선물 탓에 주어졌던 부담이 줄어든 기분입니다.”

    “미힐이 말하길, 전열함과 자신이 키운 수군만 있으면 동방의 바다에서는 상대할 적이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예판’께서 이 선물을 받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의 세키부네는 이미 조선 함대 앞에서 가랑잎에 지나지 않음을 해전으로 증명했고, 정성공의 근거지 복건성에서 만들어지는 복선(福船) 역시 전열함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기뻐야 할 상황인데,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한 구석이 콱 메여왔다.

    전열함은 라위터르가 조선에게 남기는 이별 선물이라도 된다는 건가. 안 그래도 덴 하흐 습격 이후로는 점점 해군 기지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간 라위터르 탓에, 마지막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눈 것도 꽤 오래 전 일이었다.

    “……미힐의 말이 맞군요.”

    “예?”

    “장관께서는 정이 많으신 분이라며, 분명 그런 표정을 지으실 거라고 미힐이 미리 일러주었습니다. 고작해야 선장 하나를 잃은 일로 그리 낙담하지 말라고 전해 달라 하더군요.”

    “선장 하나라…….”

    “장관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 친구가 원래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요. 아마 그 친구만의 이별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알고는 있다. 이제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란 사실을.

    그래도 무언가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칼같이 정을 떼려 들 줄이야.

    “그래도 장관께서 공화국을 떠날 때는 배웅을 나오지 않겠습니까. 아니, 적어도 그전에는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러 나오겠지요.”

    “아마 그렇겠지요. 허나 통제사는 이제 네덜란드를 위해 일할 사람입니다. 굳이 전 동료가 그에게 간섭하는 것도 좋지 않아 보일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래도 장관께서는 이번 일로 암스테르담에 조금 더 머무셔야 할 테니, 그 사이에 미힐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또 있겠지요.”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전열함 인수 정도의 일이 갑자기 끼어들었으니, 지금 진행되는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암스테르담을 떠나려 했던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아마 헤이그로 향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세자만 가슴이 타겠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연애는 쉬운 일이 아닌 법이다.

    헌데 내게 암스테르담에 더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낸 요한 더 비트는 아직도 입꼬리를 실룩거리는 중이었다.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슬슬 웬델리아와 결혼식 날짜를 잡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거든요. 제 약혼녀 말입니다.”

    “그거 참 좋은 소식이군요. 축하드립니다. 역시 결혼은 해 봐야 그 진가를 알게 되지요.”

    “장관의 말에 묘하게 가시가 돋쳐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금방 보내게 될 줄만 알았던 장관을 더 오래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제 말을 끝까지 전부 들어주시는 사람은 장관밖에…… 아니, 새로운 지식들을 남은 시간 동안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그렇게 또 업무와 관련이 있을 법한 기나긴 잡담을 나누다가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끝까지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였다.

    “아니, 선생님이랑 같이 오붓하게 아침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요한 더 비트가 떠난 직후, 방 밖에서 기다리다 문을 벌컥 열고 쳐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요안이었다.

    다음에 만나는 자리에는 만중을 동석시켜달라는 요한의 말을 한참 곱씹고 있던 도중이었는데, 마치 뿔난 송아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콧김을 씨익거린 요안은 결국 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우……. 저 사람은 뭐 그렇게 할 말이 많대요? 하는 일도 없나?”

    불평을 토하는 요안의 볼은 평소보다 두 배는 부풀어 있었다. 얼레, 그러고 보니…….

    무심코 눈길을 돌린 창밖에는 어느새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분명 요한 더 비트가 찾아온 것은 이른 아침이었는데?

    ***

    그러나 그 수다쟁이의 예상은 들어맞지 않았다. 암스테르담 체류가 연장된 동안에도 나는 라위터르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열함은 조선소에서 수리가 완료되는 대로 네덜란드 측에서 바타비아로 보내주기로 결정되었다. 건조된 지 오래된 배라 그런지 강도 높은 정비를 통과한 후 조선에 넘겨줄 생각인 듯했다. 게다가 원래 전열함은 비교적 느린 배였기 때문에 직접 타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만중의 유학 역시 순조롭게 처리되었다. 의회에서도 조선인 유학생을 쌍수를 들고 환영한 모양이었다. 유학비용 일체를 네덜란드 측에서 부담하기로 했다는 희소식을 전해 받은 만중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동인도회사에서 전달받아야할 마지막 물건을 인편으로 받으면서, 길었던 암스테르담 체류가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승님, 이 누렇고 끈적한 액체는 무엇입니까? 동인도회사에서 보내온 것인데, 이런 역겨운 것을 대체 왜…….”

    “아, 제대로 약속을 지켜주었군요. 혹시나 덴 하흐로 돌아갔을 때 생길지도 모를 문제를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문제요? 이걸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신단 말씀이십니까?”

    세자는 이 역겨운 액체를 어디에 쓸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이 물건을 별로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은 세자와 마찬가지였던지라, 똑같이 역겹다는 표정을 짓고는 얼른 유리병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런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모든 일을 끝마친 후, 암스테르담을 떠나 몇 시간 동안 마차를 달려 도착한 헤이그에는 좋지 않은 소식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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