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69화 (169/298)
  • 169화. 잔칫날

    네덜란드인 수군절도사와 미래인 도승지가 이마를 맞대고 군사계획을 한참 짜고 있을 무렵, 파주행궁의 바깥 공터에서는 왕의 포상을 하사받은 군사들이 왁자지껄하게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조금 거친 멍석 탓에 엉덩이가 조금 배겼지만, 훌륭한 술과 음식이 내려졌으니 멍석 따위를 신경 쓰는 군사는 없었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끔 행궁의 담장을 넘어갈 정도로, 잔치 자리는 흥에 겨웠다.

    “한 잔 받으시오, 박 포도관(捕盜官)! 그리고 피터르 화포장!”

    술자리를 즐기는 수많은 군사들 사이, 눈에 띄는 세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전형적인 베테랑 조선 수군이었으나 나머지 둘의 모습이 독특했던 것이다.

    기패관이라 불린 수군 장교에게서 술을 내려받는 두 사람은 조선에서 보기 어려운 서구적인 외모를 띠고 있었다. 한 명은 그래도 조선인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었으나, 나머지 한 명은 완연한 서양인 그 자체였다.

    “저도 한 잔 올리겠습니다. 기패관(旗牌官) 나리. 그리고 여기 화포장이 술을 더 달라고 해도 되냐고 묻는데, 괜찮겠습니까?”

    “전하께서 열어주신 연회 자리요. 술이 모자랄 리가 없지. 취하지만 말라고 전하시오.”

    그렇게 잔에 넘치게 술을 따른 셋은, 서로의 잔에 술이 넘칠 정도로 술잔을 맞부딪치더니 그대로 내용물을 쭉 비워냈다. 상관과 부하가 어울리는 자리였음에도 그 분위기는 친구 셋이 모인 자리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내 여기 두 사람이 아니었으면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눈앞이 깜깜하다오. 신설된 수영으로 배치 받은 것도 모자라, 타야 하는 배는 처음 보는 물건이지, 거기다 이 배를 지휘하는 수군절도사 영감은 조선 분이 아니시지…….”

    “홍이포를 전선에 올린 것도 처음이 아닙니까? 그것도 여기 피터르 화포장같은 하란타 사람들이 없었다면 목표를 맞추기는커녕 배가 뒤집혔을지도 모르지요.”

    “맞는 말이오. 아, 화포장이 지금 무어라 하는 게요?”

    “고작 일 년 남짓한 시간 만에 이렇게 하란타식 뱃일에 능숙해진 것을 보면 조선 사람들도 대단하다고 하는군요. 자신도 숙달되는데 몇 년은 걸렸던 일이랍니다.”

    와하하!

    대화는 통역을 통하고 있었으나 두 군인은 마음이 통했다는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술이 그들의 입술 사이로 사라졌다.

    “그래도 기패관 나리 정도 되는 분이니 원양수영에 배치 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듣기로는 삼도 수군 중 우수한 군관을 전부 이 원양수영에 모았다 하던데요.”

    “하하,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 이렇게 모두가 단기간에 수사 영감의 손발처럼 움직이는 걸 보면 수사 영감의 능력도 뛰어나시지만 휘하에 있는 수군들도 정예만 모은 것이 분명하오.”

    “하란타에서도 이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선은 드물다고 합니다. 화포장도 가끔은 신이 날 정도라고 하는군요.”

    군사들 사이를 오가는 관비에게 술 한 병을 더 받아 잔을 가득 채우는 네덜란드인 화포장을 옆에 두고, 술이 조금 오른 것이 분명한 세 사람은 서로를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윽고 다시 술잔이 채워지고,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독한 술이 세 사람의 목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크으! 레커 드랑케! 후트, 후트!”

    “하란타 사람들과 배 위에서 그렇게 굴러대서 그런가, 나도 이제 하란타 말을 조금은 알아듣겠구먼. 지금 화포장이 술맛 좋다고 한 게 맞소?”

    “훈련이 지옥 같긴 했지요. 맞습니다, 기패관 나리, 하하.”

    “나 훈련 싫다!”

    화포장에게서 갑자기 터져 나온 어설픈 조선말 덕분에 술자리에는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고는 기패관과 화포장은 서로가 알고 있는 짧은 기초 단어들을 나열해가며 박장대소를 시작했다.

    지금 이곳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

    네덜란드 선원 여럿이 조선인 군사들 사이에 끼어 술잔을 나누는 모습은 이 술자리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혼성어들이 계속해서 주위를 울렸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박 포도관은 어쩌다가 수군에 지원한 거요? 아무리 사무를 전담하는 자리라고는 하나 몸이 고되기는 칠천(七賤, 일곱 가지 천한 일)에 속하는 수군이 아니오.”

    “뱃일이 고되기는 하더군요. 하란타에서도 수병이나 선원은 험한 일이라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수군을 천역이라 부르고 세습시키는 이유를 여기 와서야 알았습니다.”

    “그러니 말이오. 내 듣기로 포도관은 생원시까지 통과한 양반이라면서? 그런 사람이 이런 험한 자리에는 왜 온 게요? 하란타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어명이라도 받은 게요?”

    “상감마마께서 그런 사소한 일로 어명을 내리실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

    포도관 박요운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다시금 술잔을 비웠다. 그는 옆에 멀뚱거리며 앉아있는 네덜란드인 화포장에게 대화를 요약해 설명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단 아버님께서 판관으로 원양수영에 근무하고 계신데 어찌 자식이 편하게 글줄이나 읽고 있겠습니까. 그것이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포도관의 아버님이 하란타 출신이었던가? 헌데 아무리 그래도 소과 급제자는 군역이 면제되지 않소? 무관의 자식이라고 군역을 지는 경우는 내 본 적이 없소.”

    “그것이……. 두 번째는 제자로서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함이었습니다.”

    “나, 요운 스승 안다. 덩치 크고, 몸 단단한 사람.”

    기패관도 그 사람을 알고 있다. 아니, 요운의 스승을 모르면 한양 사람이 아닐 것이다. 여기 하란타인 화포장도 그를 아는 마당에.

    임금의 최측근이자 젊은 나이에 도승지 자리까지 오른 총신, 마령서를 들여와 백성들을 굶주림으로부터 해방시킨 목민관, 여러 나라의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 있는 외교관.

    심지어 원양수군의 주력함과 주포에도 그의 손길이 닿아있으며, 홍이포 제작자인 박 판관의 사위기도 하단다. 원양수사도 그의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왔다고 피터르가 덧붙였다.

    “우리 마누라도 아는 분이긴 하지. 신보에 연재되는 그놈의 소설 이야기로 귀에 못이 박일 지경이라오. 사실 나도 그 호랑이 어사 이야기를 즐기고 있긴 하오만.”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라 하여 저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주상께서 즉위하신 직후에 황해도로 출두를 나갔던 실화라고 하더군요.”

    “허어, 그럼 그분이 봉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조선 제일이라는 말이 사실인가 보구먼. 헌데 그분은 지금 문관이시지 않은가? 그분을 따라가려면 대과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오?”

    화포장에게 호랑이 어사 이야기를 한참 설명하던 요운이 싱긋 웃음을 흘렸다. 꽤나 복잡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기패관께서는 총통위의 유래를 모르고 계신 모양이군요. 전하께서 심양에 볼모로 가 계시던 시절, 제 스승께서 조직한 정예군인 호포대가 총통위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모르셨습니까?”

    “아, 우리 배에도 총통위 출신 군관이 몇 있소. 두정갑에 줄무늬를 그려 넣은 사람들, 맞나? 확실히 훈련받는 태부터 다르긴 하던데. 정예는 정예더라고.”

    “총통위 최고참들은 심양에서부터 스승님과 동고동락한 사이입니다. 청국의 팔기군이 산해관을 넘어 북경성을 점령할 때도 최전선에서 스승님의 지휘 아래 전투에 임했다 들었습니다.”

    “뭐? 종군한 수준이 아니라 일선 지휘관이셨다고? 그분, 내가 알기로 장원급제자 출신 아니셨나?”

    “예. 그러니 스승님의 발자취를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힘이 드는 것입니다.”

    요운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한 태도였다.

    “아니 하란타 말에, 소과 입격에, 수군 일까지 거뜬히 하는 걸 보면 포도관도 보통 인재가 아닌 것 같소만. 지금 자리엔 만족을 못 하는 게요?”

    “하지만 저는 그분의 첫 번째 제자입니다. 이 정도는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스승님을 닮고자하는 사람이 저희 성근학당에 한둘이 아닌지라…….”

    “아, 설마 우리 배에 하란타어를 하는 수군들이 한둘이 아니더라니, 전부 그쪽 출신이었소?”

    “우리 배 조선 사람, 홀란트 말 잘한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피터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설픈 조선어를 중얼거렸다. 그 역시 배에 타고 있는 동안 의사소통으로 불편함은 없던 터였다.

    원양수사 라위터르가 지휘하는 대장선에는 하란타 출신 선원들도 상당수 탑승하고 있었다. 돛 조종부터 화포술까지 하란타의 항해술을 전부 전수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국적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끼리 섞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조선 수군과 하란타 선원 사이에 말이 오갈 일이 있으면 꼭 주위에 하란타 말을 하는 군사가 한 명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원래는 하란타 사신이나 상인을 대할 때 쓰려 익힌 말인데, 수군에서 쓰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아니, 잠깐. 그럼 우리 배에 타고 있는 사수(射手) 중에 본래는 유생인 사람들이 섞여 있단 말이오? 아무리 평소에 활을 꾸준히 쏘았더라도 뱃일은 쉽지 않을 텐데?”

    “수군 일이 아무리 고되다 하나 스승님이 하셨던 일들에 비기겠습니까. 더구나 스승님께선 늘 나라를 자신의 피와 땀으로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 강조하셨습니다. 기패관께서도 신보에서 읽으시지 않았습니까?”

    “아, 탐관오리들을 묶어놓고 매타작을 할 때 그분이 입에 담으셨던 말씀 말이오? 허어…….”

    기패관의 입이 딱 벌어졌다. 유생이란 놈들은 책이나 읽으며 놀고먹는 줄만 알았는데, 앞에 앉은 박 포도관이 유생이란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니, 게다가 배에서 활을 잡고 수군 일을 하는 군사들에도 유생이 섞여있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의 눈앞에서 편견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아직 군역을 지고 있는 학도들은 소수긴 합니다. 그래도 꽤 많은 학도들이 적어도 스승님께서 심양에 머무셨던 세월 정도는 군역에 종사하기로 뜻을 모았고요. 전하께서도 마침 하란타어를 구사하는 인력이 부족했다며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허나 군역은 보통 백성들도 군포만 내고 넘기는 일이오. 참으로 대단한 각오가 아닐 수 없소. 어쩐지 원양수군의 기강이 늘 바로 서 있더니 그런 연유였구려.”

    “선원 일 힘들다. 아무나 못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지만 그것은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즐거운 술자리에서 꺼낼 이야기가 아닌지라.”

    한참 감탄을 늘어놓던 기패관에게 요운이 말없이 술잔을 권했다. 기패관은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 싶었으나, 조금 굳어진 요운의 눈초리를 보고 묻기를 단념했다.

    다시 술잔 세 개가 부딪히는 맑은 소리에 뒤이어 꿀꺽거리는 소리가 자리를 울렸다.

    “크……. 생각해보니 원양수영이 수군 치고 대우가 좋아진 것도 당신들 덕분이었구려. 식사도 의복도 충실히 보급 받았고, 이번에는 별급으로 동전까지 지급해 주던데?”

    “저번에 대군께서 통신사로 왜국에 다녀온 이후로 구리 수급이 원활해졌다 들었습니다. 덕분에 새 전선에 실을 화포도 제작하고, 상왕 전하 시절에 중단했던 동전 주조도 가능해진 것이지요.”

    “매번 무얼 사러 갈 때마다 쌀이나 포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불편하긴 했소. 헌데 이 동전, 정말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오? 받아주는 데가 있을지 의문이오만.”

    기패관이 동전을 눈높이로 들어 올려 조선통보(朝鮮通寶)라는 네 글자를 눈에 띄게 했다. 사각형 구멍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빛에 의구심이 살짝 서려 있었다.

    “이미 육의전과 운종가에서는 동전으로 대금을 치를 수 있다 들었습니다. 그밖에도 삼개나루 상단 소관인 곳에서는 전부 동전을 받는다고 하던데요.”

    “오, 그렇소? 삼개나루 상단이면 시전뿐만 아니라 웬만한 난전에서도 다 받는다는 이야기겠군. 반가운 말이오.”

    “도성과 성저십리에 한해 전세와 대동미를 동전으로 받는다고도 했습니다. 어디보자, 올해는 조선통보 한 푼에 쌀 두 홉 반이었던가…….”

    “이것도 살 수 있어? 맛있다.”

    세 가지 크기가 다른 엽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 보던 기패관이 뜬금없이 말을 걸어온 피터르 탓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조선인만큼 젓가락질이 능숙해진 피터르는 연신 안주를 주워먹고 있었다.

    조선인인 요운과 기패관의 입맛에는 너무 기름져 술 한 잔에 반 젓가락씩을 먹고 있었으나, 피터르의 입맛에는 잘 맞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요운이 네덜란드어로 무어라 속삭이자,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만지작거리는 피터르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방금 화포장에게 무어라 말한 것이오?”

    “패미건(敗味乾)은 한양에서 사사로이 구하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건 의주의 공방에서 청의 가축들을 사다 가공해 수군에 납품하는 것이거든요.”

    “거 이름값대로 박살 난 맛의 건육이긴 한데, 어째 하란타 사람 입맛에는 맞는 모양이오?”

    “아무래도 하란타 사람들은 고기 기름의 맛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님도 이 맛을 좋아하시는 눈치던데요.”

    다시 페미컨을 한 젓가락 입에 가져간 요운이 맛을 보고는 진저리를 쳤다. 기름기 없는 고기 부위를 말린 것을 다시 지방으로 반죽한 음식이니 조선인 입맛에 맞지 않을 만도 했다.

    한 입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두 입부터는 힘든 맛이다. 요운은 사실 이것이 원양수군의 보존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오늘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차라리 시큼한 김치라도 있으면 더 먹을 만할 텐데.

    기패관의 젓가락은 옆에 놓여있는 부침개로 향했다. 이것 또한 낯선 맛이지만 그의 입맛에는 이쪽이 훨씬 나았다.

    “이건 마령서로 만든 부침이라 했소? 그동안 찌거나 구운 것만 먹었었는데, 이렇게 먹으니 또 별미구려. 속은 포슬포슬하고 겉은 바삭한 것이.”

    “이것도 스승님이 만드신 요리입니다. 마령서를 어떡하면 백성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신 결과라 하셨습니다.”

    “허어, 도승지쯤 되는 분께서 직접 요리까지? 박 포도관이 스승님을 그리 동경하는 이유를 알 것 같소. 정말로 어디 한 군데 모자란 곳이 없는 분이구려.”

    “지금 간장에 찍어 먹는 것도 맛있지만, 스승님 댁에서 대접받은 마령서전에는 남만시로 만든 양념이 뿌려져서 나왔었습니다. 그것 또한 별미입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화포장 피터르는 아예 머리를 처박고 자신의 상에 올려진 감자전을 탐닉하고 있었다. ‘파네쿡(팬케이크)’이라고 연신 중얼거리는 피터르를 보며 요운이 웃음을 애써 숨겼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요운의 뒤로,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서쪽 하늘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잔치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직감한 기패관이 술병을 들어 빈 술잔들을 아쉬움과 함께 채웠다.

    “매일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구려. 주상 전하의 용안도 뵙고, 이렇게 포상과 함께 좋은 주안상도 대접받고 말이오.”

    “이번이 끝은 아닐 것입니다. 전하의 관심이 원양수영에 쏠려있는 만큼, 앞으로 저희가 전하의 기대를 충족만 한다면야 이런 자리가 한 번으로 그치겠습니까.”

    “크, 조선 문트 술. 너무 좋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세 사람의 목구멍으로 넘어간 감자 소주가 취기를 한껏 더했다. 이윽고 그들의 대화는 주위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지는 것을 본 다른 술자리에서도 연신 건배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셋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이런 연회가 벌어지리란 사실을.

    그리고 그 연회는 먼 거리를 출진하는 수군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될 것임을.

    ※ 작가의 말

    원래 이 시기에 보급이 시도되었던 화폐는 상평통보가 아니라 조선통보였습니다. 이 시도는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갔지만, 대신에 후대 숙종 시기에 상평청에서 주조한 상평통보가 유통에 성공해 엽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당시 상평통보를 처음 유통하는 과정에서 상평통보 400푼에 은 1냥, 쌀 10말을 교환해줌으로써 그 가치를 설정했습니다. 화폐 유통을 장려하기 위해 조세를 돈으로 내게 한다던가,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에 무이자로 화폐를 대출해 준 것 역시 당시에 시행된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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