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163화 (163/298)
  • 163화. 황제의 선물

    유럽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발견하기 전,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먼 바다를 건너 미지의 세계를 답사한 위대한 탐험가가 있었다.

    정화(鄭和), 황제에게 성을 하사받기 전 본명은 마삼보(馬三寶).

    환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곱 차례에 걸친 대항해에 나섰던 위대한 명나라의 제독.

    그가 거느린 대함대는 동아프리카까지 족적을 남겼고, 황제에게 사바나 초원의 기린을 잡아 진상했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장거리 항해를 마무리했다.

    “이 서적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느냐?”

    “아주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위대한 사람이 남긴 기록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저를 위해 정말로 커다란 선물을 준비하셨군요.”

    하지만 정화의 기록은 현대에 전해지지 않았다. 그의 해상 원정은 철저히 황제 직속의 특사로 진행된 일이었고, 관청에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헌데 어떻게 지금 내 앞에 정화의 항해일지가 놓여있는 것인가. 그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황제는 말을 이어갔다.

    “이 기록은 남경의 서고에 남아있던 정화라는 태감의 일지다. 그가 타고 항해했던 보선(寶船)이 여기 남경의 보선창(寶船廠)에서 건조되었고, 대항해의 출발지 역시 남경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겠지.”

    “그렇군요. 헌데 그렇게 귀한 기록을 왜 제게…….”

    “어차피 이 서책은 필사를 마친 상태다. 내 은인에게 공유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겠느냐. 충효백은 그때처럼 국력을 낭비할 여유 따위는 없다며 별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너에게는 또 다를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숭정제의 말이 맞다. 여러 권의 책자 중 한 권에는 여러 선박의 설계도가 실려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 육천료선이라 적힌 배는 무려 육백 명의 선원이 탑승하는 거대 선박이었다. 길이만 해도 보통 판옥선의 네 배는 되어 보이는 거선(巨船).

    그것보다 작은 규모인 이천료선, 천오백료선 역시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성공은 강남의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단거리 국제 무역만 해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겠지만, 황제의 말대로 조선의 상황은 다르니까.

    하지만 플류트 건도 있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판단은 전문가들의 몫이다.

    “정말 커다란 선물이 되었습니다, 폐하. 황은이 망극하나이다.”

    “핫핫. 고작 먼 바다를 다녀온 이야기책에 네가 그렇게 기뻐할 줄은 몰랐도다. 천금을 줘도 표정 하나 변할 것 같지 않던 네가 이리 기뻐하다니.”

    “이야기책이요?”

    “네가 남경의 서점을 돌며 소설잡기를 수집한다는 정보를 충효백에게 들었느니라. 그래서 준비한 선물인데,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엥? 방금까지 오간 대화에서, 숭정제와 나의 인식은 크게 어긋나 있었던 듯했다.

    나는 정화의 항해일지와 선박의 설계도를 얻은 것에 기뻐하고 있었는데, 숭정제는 이 책들을 그저 동남아와 인도, 아프리카에 다녀온 여행기쯤으로 치부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정성공 역시 그러하려나.

    “아, 고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에게 전할 선물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모양이군요. 이 서책은 폐하께서 하사하신 은덕이라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아직 아이는 없다 했었으니 아내에게 주는 선물이더냐? 남경에서 스쳐간 인연 때문에 그런 선물을 장만할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핫핫.”

    너쯤 되는 사내도 아내에게 잡혀 살고 있냐며, 숭정제는 정말로 즐거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폭소를 터뜨렸다. 그 말에 멋쩍어 머리를 긁적이는 척을 하면서도, 나는 그의 말에서 뽑아낸 새로운 정보 덕분에 마음을 한결 놓을 수 있었다

    유여시가 정성공의 자택에서 말을 아꼈던 이유가 있었다. 정성공의 감시는 내가 남경에 있는 내내 따라다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감시의 눈길은 유여시의 기루 안까지는 파고들지 못한 듯했다.

    “……폐하께서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충효백의 보고에서 들었지. 접대 받는 자리에서는 기녀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가, 충효백과 교섭에서 벽에 부딪히자 기루를 찾았다고? 이해한다. 가끔은 그렇게 위로를 받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

    “아…… 그게…….”

    멋대로 착각하라지. 차라리 정성공이나 황제가 그렇게 알고 있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난감한 척 표정을 꾸미는 나를 앞에 두고 숭정제는 한참을 웃어댔다. 그 상황이 정말로 즐거웠는지, 웃음이 진정된 후 황제는 또 하나의 선물을 언급했다.

    “그나저나 네가 정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나를 구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되새겨지는구나. 원체 서책을 좋아하는 것이냐? 서책 옆에 있던 물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구나.”

    “서책 옆에 물건이라니요?”

    그러고 보니 웬 도장처럼 생긴 물건이 함에 같이 들어있긴 했다. 원기둥 모양의 손잡이 끝에 넓적한 정사각형 판이 달린 도장.

    “황제의 명이다. 너를 지금 이 시간부로 대명의 도독동지(都督同知, 종1품 부사령관)로 임명한다.”

    “그 말씀은…….”

    “당황하지 마라. 너에게 직접 군사를 맡기겠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물론 너를 당장에라도 조선에서 빼오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긴 하다만.”

    내가 조선과 명의 관계에 이바지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황제는 말을 덧붙였다.

    충무공께 만력제가 도독인을 내렸다는 야사가 있듯, 자신을 살려준 공에 대한 보답으로 내린 명예직인 듯했다.

    “원래는 만조백관의 앞에서 수여해야 마땅할 물건이긴 하나. 이 사실이 새어나가면 너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 굳이 이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불만은 없으렷다.”

    “어찌 불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폐하. 세세한 배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청에 이 사실이 알려질 것을 감안해 내가 거부할 수도 있으니, 숭정제는 굳이 이런 식으로 내게 명예직의 감투를 씌우는 방법을 선택한 건가. 언젠가 유교탈레반들이 반기를 들었을 때 써먹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앞으로는 네가 조선에서 무역선을 숱하게 보낼 터인데, 혹여나 도중에 오만한 놈을 마주치거든 이것으로 찍어 누르라는 내 배려기도 하다. 부디 적절한 곳에 사용하도록.”

    숭정제의 말로는 회수를 기점으로 청에게 물러나지 않게 되면서, 주제를 잊고 대륙을 주름잡던 과거에 빠진 놈들이 신하 중에서 몇몇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하긴 재상인 사가법조차 황제의 앞에서 내게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는데, 그저 장삿배를 상대로 교역 과정에서 갑질을 당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었다. 그때 이 도장을 써먹으라는 얘기겠군.

    정성공이 무역 문제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던 탓에, 특권을 내려준 숭정제가 오히려 내게 마음의 빚을 지기라도 한 걸까.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이 처음도 아니었다. 어쩌다가 청과 명, 대륙의 운명을 두고 다투는 두 나라의 장군직을 둘 다 받게 된 것인지. 나 참.

    좋은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그때였다.

    황제에게 내려받은 새로운 권력 때문일까? 내 머리에 들어있던 17세기 동북아 정세와, 마침 타이밍 좋게 도착했던 도쿠가와 막부의 국서 덕분에 좋은 생각 하나가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폐하, 대명의 도독동지로서 한 가지 주청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저 개인의 소원이 아닌지라 폐하의 판단과 허락이 필요할 듯합니다.”

    “소원이 아니라 주청을 올린다? 또 너를 위한 선물이 아니라 조선을 위한 선물을 받아가려 하는 것이냐? 허어, 너 같은 사람이 중원에서 태어났어야 했거늘.”

    “과분한 평가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허나 굳이 제가 대명의 도독동지 직을 언급한 것은, 앞으로 올릴 말씀이 조선뿐만 아니라 대명에게도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감히 주청을 올리는 것입니다.”

    황제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빠져나갔다. 내 말투가 변한 것을 숭정제 또한 민감하게 감지한 듯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일본 살마주(薩摩州)의 침공을 받았던 유구국(琉球國)에 관련된 건입니다, 폐하.”

    ***

    정성공이 황제의 호출을 받고 밀실로 들이닥친 것은 잠시 후였다. 그는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나와 황제가 나란히 앉아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혹시 신을 부르신 이유가 조선국 도승지와 합의한 사안을 다시 논하라 명하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앉아라, 충효백. 너는 지금 나를 그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졌다 여기는 것이냐.”

    “아닙니다, 폐하. 제가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숭정제에게서 전에 없던 분위기가 풍기는 것을 보고, 정성공은 바로 태도를 바꾸어 납작 엎드렸다. 중대한 상황임을 바로 감지한 듯했다.

    “내 너를 급하게 부른 이유가 있다. 우리가 장강 너머 오랑캐들에게 집중하는 사이, 번국 하나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째서 조선의 도승지도 아는 사실을 너는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유구국이 살마주 왜병(倭兵)의 침공을 받고 그들의 속국으로 전락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것이냐?”

    정성공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을 나는 이 자리에서 처음 볼 수 있었다. 그동안 정성공이 내게 먹였던 고구마가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수십 년 전 유구국이 왜병의 침공을 받고 구원을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유구국의 왕이 포로로 잡혔다 풀려났으나, 유구국은 곧 평화를 되찾았다 들었고 보내오는 조공에도 지금까지 이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조선국 도승지의 말에 따르면 이미 유구국은 왜국 일개 주의 속국이 되어버린 상태가 아니냐. 어째서 해상을 주름잡는 네가 이러한 사실에 어두웠단 말이냐.”

    “폐하, 신이 모르는 정보라면 이 남경에, 아니 이 중원에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정녕 신은 억울합니다.”

    그 정성공도 유구국이라 불린 류큐(오키나와)의 지금 상황은 모를 만했다. 류큐가 살마국, 그러니까 사쓰마 번의 침공을 받고 그들의 봉지(封地)로 전락한지 사십 년이 흘렀지만, 사쓰마 번 측의 철저한 은폐로 그 사실은 어디에도 흘러나가지 않았다.

    류큐의 뒤에 숨어 이 년에 한 번씩 오가는 조공무역에서 오는 이익을 사쓰마 번이 모조리 빨아먹기 위함이었다. 그 때문에 류큐인들은 일본식 복장과 두발을 금지 당했고, 조선인이나 중국인이 류큐에 표류했을 때는 접촉조차 하지 못했다.

    대륙에서 온 책봉사가 류큐를 방문했을 때도 류큐 제도 안의 일본풍 물건과 풍속을 은폐하게 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인 지침서까지 배포했을 정도로 사쓰마 번의 은폐는 치밀했다. 그러니 정성공쯤 되는 자도 뒤통수에 망치를 맞은 표정을 할 수밖에.

    “억울해 할 필요는 없다. 여기 도승지가 알아온 정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 허나 이 자리에서 확실히 정해야 될 것이 생겼지 싶다, 충효백.”

    “그것이 무엇입니까?”

    “내 평소 같았으면 유구국 관련한 일을 모두 너에게 일임했겠으나, 이번에는 다른 황명을 내리려 한다.”

    “폐하, 그 말씀은…….”

    숭정제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마치 정성공 때문에 한 마음고생을 황제가 대신 갚아주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유구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조사와 처분을 조선에 위임하겠다. 정보를 가장 먼저 알아온 것도 조선일뿐더러, 이미 많은 것을 맡고 있는 너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다른 결정을 내리겠느냐.”

    “폐하, 조선이 아닌 신에게 유구국 건을 맡겨주셔야 합니다. 유구국은 대양 한가운데 위치한 요충지로써, 신이 부담을 받아가며 처리할 가치가 있는 땅입니다.”

    “그럴 가치가 있는 땅의 정보에 그토록 소홀했단 말이냐.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충효백은 뜻을 접도록 하라.”

    “폐하!”

    숭정제는 미리 작성해놓은 문서 하나를 정성공에게로 밀어놓았다. 두루마리를 펼쳐 읽는 정성공의 낯빛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입안이 개운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일본국의 정이대장군에게 보내는 국서입니까? 이런 중요한 문서를 어찌하여 벌써 작성하신 것입니까?”

    “마침 일본국에서도 조선국왕의 즉위를 축하하며 통신사를 보내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마침 상황이 알맞게 돌아가고 있지 않느냐. 조선에서 통신사를 보내는 김에, 유구국에 관한 일도 함께 처리하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폐하, 굳이 조선에 이 일을 위임하지 않더라도 신 또한 충분히……”

    “그럼 충효백이 저 멀리 일본국까지 다녀오겠단 말이냐? 조선에 다녀오는 일도 한 달이 넘게 걸렸는데, 저들이 새로 터전을 옮긴 강호(江戶, 에도, 도쿄)까지 다녀오기에는 네 자리가 너무 오래 비어 있게 될 것이다.”

    정성공이 입술을 씹었다.

    정성공쯤 되는 자가 자리를 비우면 당장 남경의 나랏일부터 차질이 생길 게 뻔했으니, 숭정제의 말은 이치에 맞았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잊지 마라. 너 스스로도 내게 보고를 올리며 무어라 했더냐. 회수를 사이에 두고 적을 마주하고 있으니, 조선에 교역 건으로 자비를 베풀 여유는 없다 분명 말했을 텐데.”

    “폐하, 그것은 소신이…….”

    “시끄럽다. 적이 급조한 함대가 영파를 노리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아니더냐. 우리가 적을 경계하는 사이 조선이 우리의 배후를 편하게 해 주겠다는데, 어찌하여 그 호의를 거절하려는 것이냐.”

    독선적인 숭정제의 태도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게다가 황제의 주장은 논리적인데다, 그 충성심 가득한 정성공이 감히 황제의 말에 반기를 들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역시 사람은 줄을 잘 타야 하는 모양이다.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정성공의 뜻을 따라주던 숭정제가 건수를 잡자마자 정성공을 몰아치는 것을 보면, 조금 쌓였던 것도 있는 듯했고.

    “게다가 나는 방금 조선의 도승지에게 도독동지 직을 내렸다. 충효백, 너와 같은 관직이지.”

    “폐하!”

    “이제 대명의 조정에서 너와 여기 도승지의 주청은 같은 무게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마음을 정했다. 더는 짐을 흔들려 하지 말라, 충효백.”

    “…….”

    “그리고 추가로, 전선(戰船)을 건조한 경험이 있는 조선공과 수병들을 훈련시킨 경험이 풍부한 교관을 선발해 조선으로 파견하겠다. 충효백은 신임 도독동지에게 그 건에 대해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말도록.”

    조선 수군의 주력인 판옥선은 원양항해와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선박 기술을 탐냈고, 네덜란드에서도 조선공은 몇 명 보내겠지만 부족할 것이 뻔하니 남경에 와서도 조선공을 확보해가려 애를 썼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남경에서 확보한 조선공들은 상선으로 쓰는 작은 선박을 주로 다루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류큐 문제를 언급하던 도중 이야기를 꺼내 본 것이었는데, 숭정제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흔쾌히 요청을 수락해주었다.

    이제 전선으로 쓰는 큰 선박들을 다루던 조선공을 확보했으니, 원양 함대를 구성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잘만 하면 밀무역 루트를 확보한 것보다 이쪽에서 얻은 성과가 훨씬 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오랑캐놈 들의 수군은 껍데기에 불과하니, 그 정도를 조선에 내줄 여유는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조선과 남경 사이를 오갈 교역선도 필요하니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허나 유구국에 관해 내리신 황명을 다시 재고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어차피 바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섬, 오랑캐들만 물리친다면 언제든지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아니냐. 이번만은 충효백이 뜻을 물리라. 이번에 조선과의 교역으로 얻게 된 이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더냐.”

    “그렇긴 합니다만……. 알겠습니다. 폐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제서야 정성공의 눈에 서렸던 욕망이 잦아드는 것이 보였다.

    숭정제에게 더 반항해 신임을 잃는 것보다는 류큐에 잠재되어 있는 작은 이득을 버리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하긴 그가 조선에 일시적으로 꽂은 빨대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좀스러운 인간이라도 그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는 법이다.

    물론 나는 그 빨대에 스스로 먹이를 밀어 넣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언젠가 지금의 처지가 역전되는 날, 대륙에는 조선의 빨대가 역으로 꽂힐 것이다.

    아주 크고 우람한 놈이.

    ***

    그렇게 짧지 않았던 내 남경 출장은 마무리되었다.

    무역에서 기대했던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적어도 밀무역이라는 우회로를 발견했다. 무엇보다 숭정제의 커다란 선물 두 개를 실은 채, 배는 조선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타고 있는 배 역시 황제가 당분간 조선에 임대해주기로 결정한 배였다.

    그 선물을 이용해 앞으로의 역사를 어떻게 뒤틀어 볼 것인가. 흔들리는 뱃전에 앉아 바다에 비치는 달빛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 작가의 말

    여담이지만 사실 충무공께 만력제가 내리고 부도독 진린이 전달한 도독인(都督印), 즉 명나라 도독의 도장은 가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록에도 충무공이 명나라 도독에 임명받았다는 기록이 없을 뿐더러, 충렬사에 보관 중인 도독인의 외형은 작중에 묘사한 대로 원기둥 모양의 손잡이에 판이 달린 형태가 아닌, 둥근 손잡이가 달린 모양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명나라에서 관직을 내렸던 내리지 않았든, 충무공께서 세우신 전공은 역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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