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소설 속 주인공
김육의 집 사랑방에 대신들과 모였던 날 이후로, 시간은 시위에서 벗어난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그렇게 흐른 시간은 한 명의 애송이를 어엿한 관리로 탈바꿈시키는데 충분했다.
“안 교리, 맡겼던 일은 마쳤나?”
“여기 있습니다. 부제학 영감. 그리고 내일 경연에서 쓸 자료도 검토 부탁드립니다.”
“허어……. 이거 이러면 재미가 없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수제자의 성장에 애써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는 성 영감이었다.
이제 나는 정규 근무시간에 숨 돌릴 틈은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에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다. 물론 방심하다 가끔씩 호통을 얻어맞는 일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네 아내가 내조를 잘 하는 모양이로구나. 심양 시절에 비하면 얼굴이 활짝 피지 않았느냐.”
“그렇습니까, 저하?”
“이젠 피로한 기색도 잘 내비치지 않고, 드디어 한 명의 신료로 거듭난 것이라 봐도 되겠지. 너만 봐도 속이 든든해지는 것 같구나.”
홍문관 일을 마치고 마주한 세자도 내 변화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긴, 출근 첫날 동궁에서 마주했을 때는 책장도 넘기기 어려운 상태였으니 오죽했을까.
허나 지금은 그때와 달리 여유가 있었다. 수업 중간에 세자의 안부를 염려할 정도로 말이지.
“저하께서 동궁에 거의 갇혀 생활하신지 꽤 된 것으로 아는데, 갑갑하지는 않으십니까. 가끔 말을 달리러 출궁하시는 것 외에는 출입을 금하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나쁘지 않다. 아바마마의 칼끝을 피하려면 이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지. 몸이 찌뿌둥하면 네가 알려준 개치구로 땀을 흘리고 나면 견딜 만하더구나.”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제가 다시 상대를 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좋은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저하.”
눈을 빛내며 반기는 세자에게 ‘좋은 소식’을 털어놓았다.
해가 바뀌고 새로이 경기, 충청, 황해 일대에 재배하기 시작한 감자를 드디어 수확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대박이었고.
“내 쪽에도 소식이 들어왔다. 마령서 뿐만 아니라 감저 역시 이번에 재배지역을 확대했는데, 소출이 기대 이상인 모양이더구나. 이제 슬슬 네 뜻을 펼칠 때가 되었다.”
“제 뜻이 아닌, 우리의 뜻입니다. 이번 대동법 확대 건의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세우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그래, 청에서 들여온 작물들이 백성들에게 체력을 붙여줬다면, 거기서 남는 힘을 모아 유용하게 쓰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와 행정을 혁파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 목표는 일조편법(一條鞭法)이다.”
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영향도 있었지만, 분명 볼모 시절의 세자가 심양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그를 이렇게 바꿔놓은 것이 분명했다.
“벌써 거기까지 언급하시는 겁니까, 저하. 허나 명의 방식처럼 동전이나 은으로 세금을 거두는 수준까지 가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알고 있다. 허나 심양관을 운영해보니 알겠더구나. 고작 오십의 정예병을 육성하는데도 천수백 냥의 은이 들어가는데, 부국강병을 이뤄내려면 태산만큼의 은이 필요하지 않겠더냐. 그 경지에 다다르려면 반드시 이뤄야 하는 단계다.”
“호포대가 물 쓰듯이 소모한 초석과 유황은 공짜가 아니었지요. 그것이 저하께 교훈이 되었다니 신하 된 몸으로서 기쁠 뿐입니다.”
핫. 세자가 짧게 웃음을 뱉어냈다. 내 알랑방귀가 통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인이 놓인 상황이 씁쓸해서였을까. 복잡한 웃음이었다.
“진작 혼인을 시킬 걸 그랬구나. 너도 간신처럼 굴 줄 알게 되는 걸 보니.”
“반쯤은 진실이었습니다. 신하가 제아무리 큰 뜻을 품었다 해도, 그것이 군주가 바라보는 방향과 일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법이지 않습니까.”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 나라에서는 다수의 신료가 반대하는 일이라면 임금도 제 뜻을 관철하기 어렵지. 그래서 너를 만나게 된 것이 내 일생일대의 행운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구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은 간신만이 아니었군요.”
“진심이다, 안 교리. 원래 너를 시강원 자의로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네가 친족 없는 끈 떨어진 양반이었기 때문이었다. 성 부제학의 영향만으로는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야.”
짐작은 하고 있었다. 리스크가 적고 부리기 쉬운 장기말이었으니 나를 쉽게 수하에 넣을 수 있었겠지.
허나 그 이후로 긴 시간을 어울리는 동안 세자는 천천히 내게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세자가 내게 보여준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진실한 것이었다.
“큰 싸움을 앞둔 제 어깨에서 너무 기운을 빼내시는 것 아닙니까? 하하.”
“단순한 농담에서 끝날 이야기는 아니다. 허나, 나는 그런 네게 내 조정의 선봉을 맡기려 하는 것이다. 네가 늘 기대 이상만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지. 이제 빠졌던 기운이 도로 드느냐?”
“호조판서와 함께 대동법 확대 건으로 한창 싸워나갈 일이 까마득한데, 참으로 힘이 되는 덕담이었사옵니다.”
“그 건으로 산림과 아버님에게 절대 지지 말거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게 된다면 그것을 도로 돌리는 데 시간이 배는 걸릴 것이 자명하니.”
세자의 눈빛 또한 방금 뱉어낸 웃음처럼 복잡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저 눈빛이 염려하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한 미래인가, 아니면 총애하는 신하인 나인가.
“언제든지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릴 도끼 한 자루쯤은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저하.”
“……네 의지가 굳은 것은 알겠다. 그러나 국사를 논하는 자리마다 상소를 받지 않으면 목을 쳐달라며 도끼를 품고 갈 생각이냐? 그렇게 비장한 각오를 다지지는 말거라. 결국 그 일은 우리 뜻대로 될 것이니.”
반쯤은 농담이었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인 세자에게는 그렇지도 않았나보다.
그렇게 잠깐 얼굴을 굳혔던 세자는 곧 긴장을 풀어내더니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이번에도 책이었다. 전번보다 몇 권 많긴 했지만.
“너무 그렇게 부담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민심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이토록 역력히 드러나고 있지 않으냐.”
“<임진록>, <박씨부인전>, 다른 것들은…….”
“네 장인도 꽤나 야심가였던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느냐?”
왠지 익숙한 이름이 표지에 빛나고 있는 책이었다. 그 책장을 좌르륵 넘기자 민심 이야기를 꺼낸 세자의 속내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능양군은 우매한 백성들의 뜻이라며 민심을 경시하고 있었지만, 글쎄.
민심이 천심이란 말을 잊다니, 전제군주정의 군주라지만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닌가.
***
다음날은 대동법의 삼남 지방 확대가 조회에서 논해지는 결전의 날이었다. 허나 여느 때처럼 하연의 배웅을 받고 대문을 나선 내 발걸음은 궁궐이 아닌 처가로 향하고 있었다. 장인인 김육에게 따질 일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딸아이 소식은 그쯤이면 됐고. 갑작스레 입궐 길을 함께하자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사위?”
바퀴달린 초헌(軺軒)에 올라앉아 솟을대문을 나선 김육의 앞을 막아서자, 장인어른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 차올랐다.
허나 그것도 잠시, 김육은 아무렇지 않게 출근길 내내 딸의 안부를 물어왔다. 검은 가마의 옆을 따르며, 내가 범인을 잘못 짚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잡기(雜記) 몇 가지가 장인어른의 세책점에서 돈다더군요. 혹시 실체를 확인해주실 수 있을지…….”
“아, 혹시 범의 탈을 쓴 사내의 영웅담들 말인가? 인기가 하도 좋아서 필사하는 아랫것들이 고생이 많다네. 자네도 그걸 읽고 싶은 겐가? 친인척이라 해도 특혜를 주긴 좀 그런데.”
“아니 장인어른,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게 아니란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자 김육이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범인은 이 양반이 맞았다.
하지만 하마비에 도착해 노비의 힘을 빌려 가마에서 내리기 시작한 노인네를 더는 타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답이 나올 때까지 꾹 참을 수밖에.
김육의 입이 열린 것은 금호문을 지나 인정전으로 향하는 길 도중이었다.
건네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장난스러운 것이, 역시 씨는 못 속이지 싶었다.
“그래, 내가 한 일이 맞네. 항의라도 하러 온 것인가?”
“아니…… 아닙니다. 헌데 <열녀김씨전>으로 벌어진 소란이 가라앉은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마당에, 또 그런 일을 겪으면…….”
“나랏일도 처음 한 번이 어렵듯이, 이번에도 그렇지 않겠는가? 게다가 귀여운 딸아이를 내게서 떨어뜨려놨으면 그 정도는 감내해야지.”
“장인어른…….”
“허나 그런 농담은 우리 딸아이의 아비 된 입장에서 저지른 장난일 때의 이야기고, 조선의 신하 된 몸으로 계획한 사업을 논할 것이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
어느새 김육의 목소리는 매우 낮게 변해 있었다.
아, 우리 장인어른은 다 계획이 있으셨던가?
“어차피 자네의 경험이 서책으로 기록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남원에서 올라온 춘향전이라는 책도 후반부는 자네 이야기였지 아마??”
“아니, 그것을 어떻게……? 부제학 영감께 들으셨습니까?”
“당연하지. 나는 자네가 성균관에 들어갔을 적부터 대리 어사 건을 알고 있었다네. 여습이 그 일을 내게 숨길 리가 없지 않은가.”
“아…….”
“자네 반응을 보니 <산군저동전>은 아직 못 읽은 모양이군?”
산군… 호랑이와, 저동… 돼지 동자의 이야기?
아, 설마.
“그게 박 초관의 여식이 쓴 첫 글이라네. 자네가 심양에 가 있던 사이 좌명이 녀석이 해준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을 내가 조금 각색을 해준 덕에 꽤 잘 팔리는 책이 되었지. 그 아이는 재능이 있어.”
“예?”
“무얼 그리 놀라는가? 아, 걱정 말게.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바꿔놓았으니까.”
“아니, 그래도 그 일은 추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김자점쯤 되는 자의 집에 침입해 몽둥이질을 한 일을…….”
아니, 내가 조선 땅을 비운 사이 그런 일이? 그리고 그런 일을 편지에 언급도 안 하고 숨겨? 뒷목이 뻐근해지려는 것이 느껴졌지만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소설이 되었건 어쨌건 그 일은 국법을 어기고 담장을 넘은 일이었다. 걸리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제가 되다니? 자네 조정에서 돈시(敦詩)를 보지 않았나? 그가 세책점의 일로 곤욕을 치르는 것을 보았는가?”
“그분이 어느 분이십니까?”
“아, 자를 말하면 자네는 모르겠군. 지금 병판 자리에 올라있는 사람 말일세. 몇 년 전 작고한 묵재(默齋) 대감의 자제 말일세.”
웬 모르는 자와 호가 대화 사이를 마구 날아다니고 있었으나 지금 병조판서 자리에 있는 신하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귀의 아들 이시백. 학맥으로 산림들과 연관이 있는 중신이었으나 김육이나 성이성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주로 두 파벌 사이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 일이 잦았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그 사람과 이번 일이 무슨 상관이라도?
“<박씨전>은 안 읽어본 것인가? 웬 양반댁 아녀자가 청국을 혼내주는 이야기인데, 이게 참 또 인기가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그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남편이 돈시와 아주 똑 닮았다네. 이름도 한자만 다르지 같은 이시백이고.”
“그러니까, 어차피 허구라 여겨지는 이야기니 본(本)이 된 자에게 해가 될 일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장인어른의 일이 아니라고 너무하신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 이야기, 없앨 생각은 하지 말게. 자네 안방에 들어앉은 애독자 한 명이 슬퍼할 게야.”
“안사람이요?”
어쩐지, 하연이 너무나 범인을 손쉽게 빨리도 잡아내더라. 애독자 입장에서 그쪽 돌아가는 사정에 빠삭해서 짚이는 곳이 한정되었으니 가능했던 이야기였구만.
하연의 이름이 나오자 반항할 의지가 사라진 것이냐며 너털웃음을 지어대는 김육을 보니 힘이 쭉 빠졌다. 이러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는데.
“헌데, 왜 그런 사소한 이야기로 굳이 목소리를 낮추시는 겁니까. 어사 일이나 김자점 집의 담을 넘은 이야기 말고는 들려도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까?”
“들려서 좋을 것이 없는 일이네. 자네는 장원급제까지 한 사람이 딸아이만큼도 생각이 따르지 못하는 건가?”
“아, 설마 제 안사람의 발상에서 그 <안선비전>이라는 책을 유통시킬 생각을 하신 겁니까? 한양 백성들 사이에서 난 소문이 마령서 보급에 큰 도움이 되었으니 이번에도?”
처음에는 나와 하연의 로맨스가 적혔던 본편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으니 프리퀄로 속편을 하나 낸 것이겠거니 했다. 헌데 단순한 소설이라기에는 본문에 수록된 이야기들이 묘하게 디테일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터였다.
안 선비가 청나라 황제의 눈에 들어 성공하고, 청나라 황녀와 조선에 두고 온 정혼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용 정도만 담겨도 소설로써 성공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선비전>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왜 주인공이 무역과 상거래를 통해 성장하는 내용에 분량이 꽤 할애되어 있나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특히 조선처럼 농자를 근본으로 삼는 의식이 바닥까지 깔려있는 나라라면 더욱이 말이야.”
“제가 심양에서 한 적 없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장인어른.”
오리지날 스토리라 해야 하나, 소설적 창작이라고 해야 하나.
만주에 정착한 조선인들에게 무거운 조세를 매기려던 청나라 관리가 있었는데, 그놈에게 안 선비가 은자가 담긴 주머니를 집어 던져 코뼈를 부러뜨린 이야기가 소설의 꽤 중요한 부분으로 실려 있었던 기억이 이제야 났다.
“이 이야기를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전세(田稅)나 공납을 동전이나 은으로 걷더라도 거부감이 덜하겠군요. 왜 불편하게 조세를 쌀가마니로 준비했냐며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는 이유를 이제 알았습니다.”
“자네가 은자 주머니를 집어 던졌던 적이 아주 없진 않았을 텐데? 그건 그렇다 치고, 자네가 말한 것들이 내가 노렸던 전부는 아닐세. 더 중요한 것이 남아있다네.”
요안이 녀석이 글을 잘 쓰긴 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데, 그것에 신경 써가며 읽지 않으면 딱히 거슬리지 않을 지경이었으니까.
그 생각이 전해졌는지, 내 말을 들으며 내심 뿌듯한 기색을 숨기지 않던 김육이 마저 입을 열었을 때였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한껏 진지해져 있었다.
“자네는 위로는 임금께 신뢰받고,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네. 그것이 자네가 앞으로 계획한 일을 뒷받침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이야.”
※ 작가의 말
임진왜란을 다룬 군담소설 중 가장 유명한 <임진록>은 실제로 지금 이 시기, 17세기 중반에 쓰였다 추정됩니다. 비슷한 류의 소설로 <박씨전>, <임경업전> 등이 창작되어 아픈 민중의 마음을 달랬습니다.
바로 이 시기 직전에는 허균의 <홍길동전>이 창작되고, 직후에는 김만중의 <구운몽>,<사씨남정기>가 창작됩니다. <한국문학통사>에서는 이 시기를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이행기 문학의 시기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전에는 일부 양반층만 향유하던 문학이, 17세기를 기점으로 서민과 여성층으로까지 퍼져나갔다 추정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소설을 낭독하던 전기수, 책을 빌려주던 세책가, 안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어주던 책비, 책을 들고 다니며 파는 책장수인 책쾌 등이 아마 이 시기 이후에 등장했을 것입니다.
조금 후대의 사람인 홍희복은 그가 지은 책 서문에서 “일없는 선비와 재주 있는 여자가 소설을 지어 작품이 아주 많아졌다.”고 적고 있습니다. 적어도 17세기 중후반에는 이러한 문화의 씨앗이 심어졌다 추정해도 무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