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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98화 (98/298)

98화. 갈아 만든 조선

그렇게 혼례를 전부 마친지 닷새 후, 고대하던 첫 출근날이 다가왔다.

간밤에 내게 한참이나 괴롭힘을 당했음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하연의 손놀림은 새댁답지 않게 능숙했다. 단 한 순간, 입궐해야하는 내게 관복을 입혀주던 순간만 빼고 말이지.

“당신께 이렇게 제 손으로 풀을 먹인 시복(時服, 관리의 일상복)을 입히는 날이 올 줄이야…….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고개 숙인 내게 사모를 씌워주는 하연의 손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런 맘씨 고운 각시를 두고 창덕궁을 향해 출근길을 나서는 일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정말로.

신혼집은 세자가 약속대로 북촌에 마련해준, 크지 않은 집이었다. 아직 머물 사람이 없는 별채까지 합해도 평범한 크기였다. 어차피 당분간은 부부에 노비 한둘만 거처할 집이기에 집의 크기는 문제가 되지 않을 테지.

다만 잠시 문제가 될 것은, 사이가 조금 껄끄러운 놈과 출근길마다 마주쳐야 한다는 점.

“어어, 매제! 왔는가? 여길세, 여기!”

궐내각사로 통하는 금호문 앞, 궐문 앞에 서 있던 좌명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몇 년이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내가 한양 땅을 뜨기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어차피 이번 증광시 급제자 중 관직을 바로 받은 자는 나와 좌명뿐이니 떼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놈의 환영인사가 이토록 껄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대례를 치른 다음날 놈의 손에 신방에서 끌려 나가 동상례(東床禮)를 호되게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그날 거꾸로 매달려 맞은 발바닥이 아파오는 듯했다.

“일정, 아무리 자네가 내 처남이라지만 이곳은 상하의 구분이 지엄한 대궐일세. 정오품 당하관에게 정칠품 참하관이 말을 함부로 놓기 마련인가?”

“허허, 사내답지 않게 아직도 속을 덜 풀린 모양이구만? 내 누이를 데려갔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 아끼는 누이 일로 나를 속이고, 신방에 들이닥쳐 허튼 소리에 맞장구를 쳐댄 오라비는 누구란 말인가?”

“그거야 선진이 동상례가 끝날 즈음에 실없이 던진 소리에 휘말린 탓이 아닌가. 그 양물 이야기…….”

황급히 좌명의 입을 틀어막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놈의 눈치가 더 없어진 모양이었다. 제일 이른 시각에 입궐한 탓에, 직첩을 받으러 문선사(文選司)로 향하는 동안 근방에 사람이 적어 다행인가.

그날 몽둥이를 들고 신방을 들이닥친 남자는 한 명이 아니었다. 하긴 그 인간이 이런 재미난 이벤트를 넘어갈 리가 있었겠는가. 급제도 겨우 턱걸이로 해 관직도 못 받은 한을 내게 다 풀어냈지 싶었다.

‘첫날밤을 지낸 신부가 멀쩡한 것을 보아하니 신랑의 하초(下焦)가 문제렷다? 종일 말을 달릴 수 있는 자가 체력이 부족할 리는 없고, 이 명의께서 못난 신랑의 발바닥 혈을 자극해 후사를 잇게 해 주겠노라!’

아니, 연약한 신부를 염려해 거사를 미뤘을 뿐인데, 이 개소리의 향연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평소처럼 어디 가서 여자나 꼬시고 있을 것이지. 벗의 혼인을 축하하겠답시고 들이닥친 충신은 아마 청나라에서 내게 쌓였던 것을 몽둥이질로 갚을 생각이었지 싶었다.

그 인간은 그렇다 치고, 그 옆에서 신부의 오라비라는 자가 말리기는커녕 거들어댔으니 속이 상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눈치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좌명이었다.

“역시 자네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었네. 안사람 얼굴을 봐서 없던 일로 하려 했는데, 사형과 손을 잡고 그 중요한 날에 내 뒤통수를 쳐?”

“턱걸이로 겨우 급제해 실직도 못 받은 선진일세. 그 정도 분풀이는 벗으로써 받아줘야지. 게다가 귀여운 누이를 빼앗은 자에 대한 응징이 그 정도면 가볍지 않은가. 그리고…….”

“그리고?”

“사실 내 자네에게 누이 일로 멱살을 잡히고 주먹을 맞은 이후로 우리 사이가 예전 같지 않을까 염려했다네. 그래도 그런 장난질에 반응하는 것을 보니 자네 속은 변치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하기도 했고.”

결코 네놈에게 쌓인 것을 털어버려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

하연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사형이고 처남이고 상관없이 죄다 엎어버렸을 것이다.

에휴, 그렇다 해도 그 이상 어쩔 도리가 있었겠는가.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고.

색시가 고우면 처가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는데 내가 참아야지.

그래도 오랜만에 벗과 티격태격해가며 궐내를 걷다보니 성균관 시절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그렇게 우리 둘의 발걸음이 목적지에 다다른 것은 잠시 후였다.

“정칠품 성균관 박사에 임한다……. 그럼 성균관에서 권지(權知, 견습)와 실직을 동시에 수행하라는 말이지 싶네.”

“안면이 있는 유생들 중에 아직 급제 못 한 놈들이 성균관에 수두룩할 텐데, 일정 자네가 학관으로 가면 표정들이 볼만하겠구만.”

입번(入番, 숙직) 중이던 이조좌랑이 눈을 비비며 건네준 직첩 봉투였다. 먼저 봉투를 뜯어본 좌명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스쳐갔다.

성균관을 극도로 싫어하던 좌명이 인턴 생활과 첫 관직을 성균관에서 수행하게 되다니. 성균관에 조만간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물론 예전처럼 설사 바람은 일으키지 못하겠지만.

뭐, 그래도 좌명은 그동안 요운이를 비롯해 제자 여럿을 두고 가르친 경험이 충실할 테니 꽤 알맞은 자리에 발령을 받은 듯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만져본 봉투는 불길하게 묵직했다.

“직첩이 네 장?”

“당하관부터는 겸직이 흔하다고는 하나 직책 네 개를 맡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니, 아무리 신하를 갈아 돌아가는 조선 조정이라지만, 몸이 네 개도 아니고 직책 네 가지를 수행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지 않은가.

왠지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접혀있던 종이를 펼쳤다. 그곳에 적힌 관청의 이름을 보는 순간, 왜 직첩이 네 장이 내려왔는지 납득이 감과 동시에 X됐다는 생각이 온몸을 덮쳤다.

내 첫 발령지는 홍문관이었다.

***

홍문관.

임금을 견제하는 언권을 가진 삼사(三司)의 일원이자, 정승 판서에 이르려면 한 번쯤은 거쳐 가야 한다는 청요직.

갓 입직한 관료라면 누구나 꿈꾼다는 그 자리.

다른 사람이었다면 천세를 부르며 임금이 계신 인정전 방향으로 큰절이라도 올렸겠지만 나는 경우가 달랐다. 지금 앞에서 잔뜩 웃음을 띤 채 나를 맞이하는 내 상관 때문이었다.

“어서 오게. 안 자의. 아, 이제 안 교리(校理)라고 불러야 하나?”

“자, 잘 부탁드립니다. 영감.”

홍문관의 실질적인 수장, 정삼품 부제학 자리에서 나를 맞이한 사람은 사람 갈기로는 조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 분이셨으니까.

이제 하숙방에서 벗어나 얼굴 볼 일이 좀 줄었다 싶었더니 직장 상사로 마주하게 될 줄이야.

“내 홍문관에 부임한 이래로 하루라도 일손이 부족하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자네같이 유능한 관료를 아래에 두게 되어 기쁘기가 그지없네.”

“저, 적어도 권지의 위치에서 천천히 일을 배울 시간 정도는…….”

“무슨 말인가? 실무는 심양에서 시강원 업무를 하면서 충분히 배우지 않았는가? 자네가 정오품직에 임명받은 이유는 현직 관리의 신분으로 과거에 응시했기 때문일 텐데?”

“그건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원래 장원은 백면서생일지라도 권지 없이 실직에 바로 투입되는 것이 상례네. 오히려 그동안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나.”

성 영감은 내가 어디로 발령 날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책상이 성 영감의 자리 옆으로 배치되어 있을 리가 없었다.

내 위로, 성 영감 아래로 직제학, 전한, 응교, 부응교까지 네 명이나 끼어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골목 끝에서 고양이에게 몰린 쥐의 심정이 되어 얼어붙을 수밖에. 허나 그런 나를 이끌어 책상에 주저앉힌 성 영감은 곧이어 두꺼운 책 몇 권을 연달아 내 책상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무엇하는가? 어서 업무를 처리하지 않고?”

“영, 영감. 이것은?”

“시강원에서 저하의 강학(講學)을 위한 서연을 준비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은가? 그것이 전하를 위한 경연으로 바뀌었을 뿐이네. 자네같이 준비된 인재가 떨어져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구만.”

그랬다. 홍문관의 관원 전원은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經筵)의 관직을 겸임했다. 그것이 네 장의 직첩 중 한 장, 시독관(侍讀官)의 정체였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이번에 전하께서 내리실 교서의 초안 또한 자네가 작성해야 하네. 그것 외에는 지금은 딱히 작성할 문건이 없으니 오늘 업무는 첫날에 알맞게 수월할 것일세.”

종이 뭉치 하나가 또 책상에 올라왔다. 외교문서와 제문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며 성 영감이 덕담처럼 얹어준 말과 함께.

이것 역시 홍문관 관원이면 겸임해야하는 지제교(知製敎)의 업무다.

“아, 그리고 전하께서 하교하시길, 그동안 심양에서 해왔던 임무는 계속해서 수행하라 하셨네. 하루에 한 번 동궁으로 가 저하를 강습하라는 어명일세.”

마지막 직첩, 세자시강원 겸사서.

전처럼 세자를 가르치며 감시하고 보고를 올리라는 이야기였다.

아니, 지금 주어진 업무만 처리해도 퇴근 시간인 유시(酉時)에 칼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세자까지 가르치라고?

정신 나갈 것 같아! 턱이 떨어진 것도 잊은 채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데, 성 영감이 덧붙인 말은 더 걸작이었다.

“오늘은 업무가 적은 편이라네. 마치 자네가 업무에 익숙해지기라도 하라는 것처럼 말일세.”

“영감…….”

“아, 그리고 아까 자네 빙장을 마주쳤는데, 인쇄 일로 할 말이 있다며 조만간 집에 잠깐 들르라 전해 달라 했네. 딸아이가 보고 싶다니 처도 동반해야 할 것일세.”

우리 부제학 영감님은 내 말을 귓등으로라도 듣고 있는 건지. 시선은 자기 일거리에 고정한 채 계속해서 내게 일감을 밀어놓기에 바빴다. 벌써부터 팔꿈치가 아파왔다.

그러고 보니 김육이 호조판서로 근무 중인 전각은 홍문관에서 멀지 않았다.

나를 굴리는데 거리낌이 없는 스승이 직장 상사에, 그 스승과 장인은 업무상 자주 마주치는 자리에 올라있는 절친이라.

저 너머 어디메에 지옥 불의 환영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럴 거면 청요직이고 뭐고 지방으로 발령 나 놀고먹는 것이 더 상팔자가 아니었을까.

지금쯤 궐 밖을 자유롭게 누비고 있을 충신이 진심으로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아, 이게 관료인지 관노비인지.

***

당연히 그 무수한 일거리를 시간 내에 다 처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첫날부터 야근이었다.

“흠. 다른 병아리들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지만 아직 한참 멀었네. 내 자네에게 기대가 컸거늘.”

“영감……. 손에 감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허, 고작 그 정도 일로 어디서 앓는 소리를 내는가?”

“이것 보십시오, 손끝이 떨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도 붓을 쥔 탓에 오른팔 전체에 경련이 올라오고 있었다. 과거 공부 하던 시절보다 오늘 써내려가야 했던 글씨가 더 많았던 듯했다.

“좋아, 그럼 잠시 휴식을 주지.”

“정말이십니까, 영감?”

지금은 퇴근시간인 유시를 훌쩍 지난 시각, 부서마다 비상시를 대비해 두 명씩 세우는 당직인 입번(入番)을 이용해 잔업을 처리하던 도중이었다. 헌데 당직을 서는 나머지 한 명이 하필 성 영감인 게 문제지.

“오늘 홍문관의 일을 처리하느라 동궁에 들르지 못한 걸로 아는데, 시강원 업무를 하며 팔을 잠시 쉬는 것이 어떤가?”

“아주 쉬고 오라는 말씀이 아니라…… 가서 또 일을 하라고요?”

“어차피 밤은 길지 않은가. 저하를 일대일로 강습하는 도중에는 팔을 쓸 일도 적을 것이고. 자네 덕에 입번해야 하는 내 생각도 좀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일세.”

휴식을 준다기에 반색했던 내가 머저리였다. 이 아저씨가 나를 순순히 쉬게 할 리가 없지.

그래도 지금 이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그 코딱지만 한 휴식의 기회도 사라질 것이기에. 나는 잽싸게 의관을 챙겨 들고 동궁으로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안 사서, 얼굴이 완전히 반쪽나지 않았나. 신혼이 그리 좋은 것이더냐?”

“저하까지 제게 이러시깁니까?”

“하하, 농담이다. 첫 등청이 꽤나 고됐던 모양이로구나.”

사실 간밤에 힘을 써댄 것을 후회한 게 사실이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랏일이라는 것이 체력을 갉아먹은 것이 사실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이 떨리는 것을 본 세자는 다시 한번 너털웃음을 짓더니 휴식을 권했다.

“성 부제학이 어지간히도 혹사시킨 모양이로구나. 네가 심양에서 사하보까지 수백 리 길을 매일같이 왕복하던 적에도 이렇게 힘에 겨워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역시 저를 알아주시는 분은 저하뿐이십니다. 사실 홍문관으로 돌아가기가 싫어질 지경입니다.”

“심양관에 국한된 작은 일을 할 때와는 다를 수밖에. 헌데 부제학이 너를 가혹하게 다루는 이유는 따로 있지 싶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긴, 벌서(罰書)로 한지 수십 장을 검게 물들이며 소과와 대과를 준비시킬 때보다 오늘이 더 빡셌던 것은 사실이었다. 헌데 성 영감의 속내에 다른 것이 있다는 세자의 말은 언뜻 이해가 쉽게 가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거라. 너는 지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훨씬 거대한 존재가 되었느니.”

※ 작가의 말

조선에서는 신하를 갈았다는 명제가 대역물의 웃음 클리셰로 굳어져 가는 요즘이지만, 조선의 신하들이 갈린 것은 팩트입니다, 팩트.

홍문관의 관원들이 저렇게 많은 관직을 겸해야 했던 것은 고증입니다. 어찌 보면 홍문관의 관직이 청요직으로 불린 이유는, 저렇게 갈리고도 멀쩡하다는 점이 검증된 이들만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그런 빡센 자리에 더해, 세자를 감시하라고 시강원의 자리를 승진만 해서 겸직으로 받은 주인공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물론 시강원 겸사서도 실제로 겸직으로 있던 자리입니다.

얼마나 녹봉을 아끼고 싶었으면 과거급제자를 한 번에 딱 33명 뽑으면서, 실직을 주는 건 갑과 3인에 그치면서, 그 갑과를 매번 3명 꽉꽉 채워 뽑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겸직을 시켜가며 신하들의 골을 뽑아먹었던 것일까요.

그 시절에 신하들의 열정 페이로 그 수준의 중앙집권이 굴러간 것을 생각해보면 조선도 참 대단한 나라였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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