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60화 (60/298)

60화. 호포대(虎砲隊)

“이런 미친 놈. 김 갑사가 왜 널 보고 무관타령을 했었는지 이제 알겠더라. 훈련원 무관을 보는 것 같다며 흥분하던 그자를 진정시키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안 그래도 심양에 와서 후회한 적이 아주 없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소과 양시에 이어서 무과까지 전부 섭렵하려는 거냐? 나 참.”

사실 김 갑사의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마추어 선수 이력 때문에 뽑혀나가 군 생활 내내 논산에서 훈련병들을 굴려야 했던 일이 조선 시대에 와서 도움이 될 줄은.

의용군 형식으로 참전시키려 했던 자들의 숙련도가 의용군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이 된 것은 반쯤은 현대식 교습법의 영향일 것이다. 나머지 반은 그들을 키우는데 쏟아 부은 은자와 동족들을 구하겠다는 마음가짐 덕분일 것이고.

“그래도 그 정도로 굴리지 않았으면 지금의 정예병은 없었겠지. 저하의 허락을 받아 작년 겨울부터 계속 훈련시켜온 것이 아니냐.”

“그래봐야 오십 인에 불과합니다. 평시에는 사냥꾼으로 지내다 유사시 호위병으로 쓸 병력이니 어쩔 수 없지요.”

“처음엔 사냥꾼 따위를 키우는데 네 은자를 쏟아붓는다기에 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줄 알았다. 지금은 너도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지만.”

착호갑사처럼 해로운 맹수를 구제한다는 핑계로 세자에게 허락을 받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의 나라 땅에서 대규모 부대를 훈련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냥꾼인 척하고 소수정예를 키우는 수밖에.

게다가 생각도 못했던 걸림돌이 하나 더 있었다. 조선 출신 노예들의 몸값이 말도 안 되게 비쌌던 탓이었다. 조선에서 거래되던 노비 가격의 열 배는 되지 싶었다.

“예친왕의 주선으로 싼 값에 백성들을 더 속환시키고 평안도에서 농부들을 추가로 받은 결과가 이것입니다. 아마 사형이 불려준 재물이 아니었으면 이 인원도 맞추기 어려웠을 겁니다.”

“자식아, 어차피 네가 장사 밑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더라면 한참 고생을 했을 거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충신이 처음부터 순순히 재물을 대준 것은 아니었다. 조선에서 가져올 수 있는 물건은 일인당 홍삼 단 여덟 꾸러미. 은자로 치면 이천 냥에 불과한 물건이었으니 돈을 함부로 쓸 처지가 아니었다.

결국 가져온 홍삼을 밑천삼아 돈을 불려야 했다. 그의 홍삼을 처분해 밑천을 마련해주는 대가로 충신은 내 자금을 불려주기로 약속했던 터였다.

“그저 꿀에 잰 홍삼 몇 뿌리를 땅과 사람을 내려준 답례로 예친왕에게 바쳤을 뿐입니다. 청국 관리들 사이에서 홍삼이 그렇게 빠르게 유행할 줄은 몰랐습니다.”

“시치미 떼지 마라. 심양으로 떠날 때 내게 홍삼을 준비하라고 권한 것은 네가 아니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원래대로라면 홍삼이 인삼 무역의 주인공으로 올라서는 것은 더 나중의 일이었다. 아직 인공적으로 재배한 가삼도 개인의 실험 단계에 머물던 시기.

기존에 거래되던 백삼은 잘 부서지기도 하고 먹었을 때 위통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걸 제거한 것이 홍삼이니 아주 안 팔릴 거라고는 한양을 뜰 때부터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런데, 이 정도로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다니까? 돈이 복사가 된다고!

홍삼의 낯선 형태에 익숙해지고 입소문이 돌 때까지는 팔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조금씩 처분하기 위해서 꿀에 재어 가져온 물건이었다.

단지 황제의 건강 탓에 일을 몰아 받던 도르곤의 안색이 걱정되어 건넨 홍삼 몇 뿌리가 모든 일의 근원이었다. 조정에 같이 갈리는 처지가 공감되어 준 선물이 홍삼 붐을 일으킬 줄은.

도르곤이 홍삼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심양관 문턱이 닳아 없어지는 줄 알았다. 청국 관리들의 하인이 홍삼을 구하러 뻔질나게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용골대가 세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전 같았으면 자기 몫의 홍삼을 바치라 들들 볶았을 자였다

그렇게 세자는 용골대에게 지불받은 은자를 자랑스럽게 내밀며 전부 내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너를 데려온 것은 정말로 천운이지 않느냐. 쌓여있던 속이 내려가는 것 같구나.’

‘저자가 갑자기 공손해진 연유라도 있습니까?’

‘아마 예친왕의 관심이 심양관에 뻗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그래, 너 덕분에 말이다.’

서툴게 만주어를 구사하는 수준까지 올라오고 나서도 세자는 청나라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를 대동했다. 그것은 나를 역관 대신으로 쓰려 했던 것이 아니라, 도르곤과의 연줄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뭐, 어쨌거나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냐. 이제 네가 계획했던 대로 전장에 나가 큰 공이라도 세우면 이제 모든 것이 잘 풀릴 텐데.”

“잘 될 것입니다. 그들만큼 사격에 능한 자들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벌판에 세워놓은 허수아비들을 벌집으로 만들고 나서는 실전과 같은 훈련을 받으며 심양 근방을 누벼왔던 자들이었다. 밥값을 벌어올 겸 실행하는 훈련이었지만 효과는 뛰어났다.

어제 막 마지막 출동을 마치고 김 갑사와 귀환한 병사들을 맞으며 마신 술 탓에 아직도 머리가 아팠다. 그것 때문에 핑계를 대고 오늘 연회에 불참했던 것이다.

그때였다. 닫혀있던 방문이 다시 한번 드르륵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문 방향을 향해 돌아간 시선 뒤로 방구석에서 충신이 던져준 육포를 뜯고 있던 산군이 하악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감,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방금 술자리를 파하고 침소에 드신 줄 알았는데요.”

“숙소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곳이 있기에 찾아와봤다. 그랬는데 또 너희들이구나.”

방문을 연 자는 젊었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와 나와 충신 사이에 앉았다. 자주색 공복을 입은 채인 그의 가슴을 기린(麒麟)이 박힌 흉배가 장식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지금 이 심양관에서 잠자리에 들지 않은 자들은 너희뿐이다.”

“하하. 대감께서도 아직 깨어 계시지 않습니까.”

“나야 내일 먼 길을 갈 관원들이 똑바로 휴식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 감독할 의무가 있지 않겠냐. 얼른 이불을 펴지 못할까.”

본인도 안 자는 주제에.

기분파인 이 양반은 친해지고 나서는 늘 이런 식으로 나를 귀찮게 하곤 했다. 처음 봤던 자리에서도 다짜고짜 저 굵은 팔로 내 목부터 감았던 양반이었다.

그러나 부루퉁했던 마음은 곧 풀렸다. 내 마음을 곧바로 대변해 준 사람이 문밖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봉림 너도 잠자리에 안 든 것은 매한가지가 아니냐. 안 자의를 그만 괴롭히거라. 지난번에도 그러지 말라고 일렀을 텐데.”

“형님!”

검은 공복을 걸친 세자가 문지방 너머에 나타난 것을 보고 나와 충신은 화들짝 엎드렸다.

둘 다 오늘 명군을 치러 금주로 떠나는 홍타이지를 성 밖까지 배웅하고 심양관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였다. 피곤했을 터라 진작 잠자리에 든 줄만 알았는데.

“방이 좁구나. 너희를 고생시키고 있는 것 같아 할 말이 없느니라.”

“아닙니다, 저하. 헌데 여긴 어인 일이시옵니까?”

“간단한 주연 자리가 금방 파해 대군이 몸을 근질거려하는 것 같기에 사고를 치지 않나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자가 봉림대군을 향해 눈빛을 쏘아 보냈다. 방금까지 의기양양하던 대군의 기가 잔뜩 죽은 모습에 속이 조금 시원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형님도 잠시 담소를 나누시지요. 어차피 형님께서도 심사가 복잡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그럴까. 네가 쓸데없는 짓을 못하게 감시할 필요도 있겠다. 좋다.”

세자에게 상석을 양보하느라 잠시 동안 좁은 방 안을 네 남자가 꾸물거리며 옮겨 다녀야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자리는 정돈되었지만 방 안은 고요했다.

“왜들 말이 없는 것이냐. 안 자의는 내가 불편하기라도 한 것이냐?”

“매일같이 얼굴을 뵙는 전하가 어찌 불편하겠나이까. 다만,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할지 떠오르는 것이 없어 주저가 되는 것이옵니다.”

“하긴 그렇겠구나. 아, 내 강 진사에게 할 말이 있다.”

“무엇입니까? 혹시 강 진사가 심양 성내에서 또 사고를 친 것입니까?”

충신의 얼굴이 얼어붙는 것이 보였다.

심양에서도 멈추지 않은 그의 난봉꾼 기질이 문제였다. 언제였던가, 그와 사통한 여자의 가족들이 심양관으로 몰려와 항의를 한 적도 있었다. 도대체 이런 양반을 보내면서 그 기생은 왜 눈물을 보인 것인지.

“아니다. 그날 이후로 강 진사도 엄히 반성을 했을 터, 그렇지 않느냐?”

“예…… 그렇사옵니다…….”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면 심양에서 다시는 상행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니, 생각이 있는 자라면 알아들었을 것이다.”

“형님, 강 진사가 벌어들이는 은자가 없어지면 심양관에도 큰 타격이 아닙니까. 하하.”

눈치 없게 끼어든 대군이었으나 세자가 다시 내쏜 눈빛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대군의 말은 틀림없이 사실이었다. 충신이 세금조로 바치는 재물은 심양관 재정에서 이미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충신의 사업은 음식장사가 끝이 아니었다. 그가 자잘한 피자 배달 정도로 만족할 그릇이었다면 심양까지 따라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충신은 원래부터 장사에 관심이 있던 세자빈까지 뒷배로 삼아 심양관의 재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강 진사가 아무리 조선에서 오는 홍삼과 방납품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나, 그것은 다른 상단에게 맡겨도 충분한 일이다. 그런 일로 조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형님, 그가 맡고 있는 향피(香皮) 공급이 중단되면 난감할 것은 심양관 하나로 끝나지 않을 텐데요.”

“저하, 이미 주문이 반년 치나 밀려있나이다. 소생을 벌하신다면 물건을 원하는 청국 고위층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가 없게 될 것이옵니다.”

“뭣이?”

향피는 말 그대로 향기 나는 가죽을 일컫는 말이었다. 존경각 그 먼지구덩이에서 충신에게 향수 아이디어를 알려줄 때만 해도 그렇게 응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곳 사람들은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개의치 않아하기에 세자빈과 대군부인이 쓸 물건이나 만들겠다 싶었는데, 그렇게나 잘 팔려나간단 말이냐?”

“주문하는 청인들 대다수는 고위층인 것이 사실이오나, 민간에서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사옵니다.”

충신은 심양에 와서 냄새로 꽤 고생을 했었다. 조선에 떨어지고도 쉽사리 적응한 내게도 유목민 특유의 구릿한 냄새는 가끔 속을 넘어오게 만들곤 했으니까.

오목도의 집을 방문했던 날, 연회실 문을 열자마자 무장들에게서 풍겨온 비린내는 아직도 기억에서 선명했다. 현대에서도 그 냄새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맡은 기억이 있었다. 훈련소에서 늘 진동하던 익숙한 냄새, 더플백을 멘 신병에게서 나던 그 냄새였다.

“하긴, 사람이라면 악취보다는 향기를 좋아하는 것이 순리렷다. 안 자의가 쓰고 다니는 탈에서는 향기가 나기에 원래 가죽에서는 향기가 나는 줄 알았었지.”

“그것도 소생이 심양에 들어와서 손질해 준 물건이나이다. 가죽이 썩지 않게 무두질하는데 온갖 더러운 재료가 들어가는지라…….”

어쩐지 남원에서 처음 호피 복면을 뒤집어 쓸 때부터 노린내가 진동했었다. 무두질에 오줌, 닭똥, 그리고 이상한 식물들이 잔뜩 쓰인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호피 복면을 다시 쓰기 싫어질 정도였으니까.

이 만주 땅에서 무두질하는 방법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특히 옷감이 부족하고 추위가 몰아치는 동네라 털가죽은 더더욱 흔했는데, 그것이 잘 씻지 않는 유목민 특유의 습관과 더불어 악취의 근원이 되고 있었다.

충신은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했다. 어차피 조선에서 쓰던 대로 도자기 병에 담아 쓰기에는 그걸 구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으니, 아예 가죽에 향수를 배게 해 팔아먹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그 계산은 정확히 적중했다. 윗사람들부터 시작된 유행은 이제 여염까지 퍼져 있었고, 가죽옷 자주 입는 사람 치고 충신의 향피를 찾지 않는 자가 드물었다.

충신의 코는 돈 냄새 맡는 것에 있어서는 조선 제일이라는 사실을 심양에서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내 홍삼을 판 돈을 그에게 그대로 투자했던 덕분에 정예병 오십 명을 사비로 키워낼 수 있었다.

“아, 세자빈이 새로운 향피 장갑을 구해 달라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렇다면 반년 후에나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빈궁을 실망시키기는 싫은데.”

“장갑이라니, 이 여름에 형수님이 장갑을 낄 일이 있습니까?”

“오늘도 서행(西行)에 필요한 행장을 꾸리는 일을 감독하다가 장갑이 찢어졌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양식을 실어 보낼 수레를 만져보다 그 틈에 장갑이 말려들어갔다고 들었다.”

“그런 위험한 일까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일국의 세자빈께서.”

“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도 빈궁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막을 수가 없느니라. 너는 대군부인을 보면서 그런 적이 없느냐?”

슬슬 나와 충신이 끼어들기 어려운 유부남들의 대화로 흘러가고 있었다. 금슬이 좋은 모양인지 서로 와이프 자랑에 열이 오른 대화 내용에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자와 충신, 그리고 대군과 나는 나이가 비슷했다. 그런데 왜 저들은 장가들어 자식도 여럿 낳았는데 나와 충신은 왜 아직도 이 모양인지.

하연과 혼례라도 올리고 왔으면 유부남 대화에 끼어서 그리움이라도 삭힐 텐데.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나니 남의 땅에서 독수공방은 점점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저…… 세자 저하. 몇 가지만 괜찮으시다면 반년을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는 물건이 있긴 하나이다.”

아내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두 사람의 대화를 갑자기 무례하게 끊은 것은 그저 그동안 신세져온 세자빈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절대 와이프 자랑이 듣기 싫어서가 아니고.

“분명 주문이 반년 밀려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사형, 요 근래 시험하던 물건이 있지 않습니까. 저하께 고하십시오.”

“아, 안 자의의 호포수들이 사냥해온 들짐승 가죽 중에 향피로 만들기 적당한 것을 골라 시험하고 있던 물건이 있나이다. 헌데 그 가죽들이 귀부인들이 쓰기에는 조금…….”

호피처럼 공을 들이지 않아도 잘 팔리는 가죽들이 있는 반면, 이리나 들개같이 선호되지 않는 가죽들은 농장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걸 팔아보려고 향피로 만드는 것을 시험하는 중이었다.

충신이 입을 열기 전 우물쭈물하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세자의 답변은 의외로 명쾌했다. 세자빈이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이었다면 여름에 장갑을 껴 가면서까지 심양관 살림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헌데 호포수들이 사냥으로 훈련을 겸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가죽도 조달하고 있었느냐.”

“예, 아무래도 훈련으로 소모되는 화약과 탄 가격만 해도 적지 않은지라…….”

호포수(虎砲手).

따로 이름을 지어준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주위에서는 내가 길러낸 조총수들을 저렇게 부르고 있었다. 내가 이름을 붙였으면 ‘유격대’라고 붙였을 텐데.

호랑이 가면 쓴 교관이 그렇게 인상 깊었나? 오장(伍長)으로 임명된 자 하나가 나무로 깎은 호랑이 탈을 쓰고 다니던 모습을 김 갑사가 본 것이 문제였다.

‘사냥 나가기 전에 벌써 그런 발상을 하다니 훌륭하구만! 좋아, 전원 옷에 줄무늬를 그려 넣는다. 실시!’

사실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호랑이로 위장하면 오히려 사냥감들이 도망갈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김 갑사는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사실 호랑이의 줄무늬 자체가 눈에 띄지 않으려는 목적이긴 하니까.

그 줄무늬가 효과가 있었는지, 바로 어제까지도 주변의 해수와 산짐승들을 쓸어다 사하보 농장에 쌓아놓은 호포수들이었다. 아니다. 쥐여준 신형 소총의 효과일지도.

“나는 그자들이 사격할 때 부싯돌에서 튀는 불꽃이 호랑이 안광 같아서 호포라 부르는 줄 알았었다. 하하.”

“봉림, 총구에 달려있는 검도 호랑이 송곳니 같지 않으냐. 누가 붙인 이름인지 몰라도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다. 허나 내 입장에서는 그것을 웃고 즐길 수만은 없는 것이야.”

대군의 말에 살짝 미소를 흘렸던 세자의 입꼬리가 다시 굳었다. 그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고 있었다.

※ 작가의 말

1. 홍삼

홍삼의 기원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홍삼이 인삼무역의 주력으로 올라선 것은 작중 시점보다 백 년 정도 뒤인 18세기의 일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단순히 말려 보존한 백삼이 주거래품이었지요. 홍삼 무역이 공인된 것도 1797년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과 충신이 소지할 수 있었던 인삼의 양도 고증입니다. 이것을 가리키는 말을 팔포(八包)라고 합니다.

2. 향피

원래 향수는 무두질한 가죽의 냄새를 없애려는 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16세기 프랑스의 무두질 장인이 부드러움을 주기 위해 가죽 속에 기름을 포함시키는 공정에 향유를 쓸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지요.

당시 왕비 카트린 드 메디치에게 보내진 향기나는 장갑은 곧 왕족과 상류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데, 그 일화를 참고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