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변화하는 심양관
드르륵.
갑자기 난 문 열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책장을 펼쳐놓은 채 예전 기억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일이 출진인데 뭐 하냐? 인마.”
“일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사형은 술자리에 끼어 있던 것 아니었습니까?”
“다들 내일 먼 길을 가야 한다고 몇 잔 안 마시고는 흩어져 버리지 뭐냐. 안주가 좀 남았길래 산군 생각이 나서 가져왔다.”
충신이 소매에서 육포를 꺼내기 무섭게 머리 위로 노란색 덩어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창틀에 올라앉아 있던 녀석은 어느새 육포 조각을 물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산군 저 놈, 츄르라도 주면 나를 언제든지 배신하지 않을까.
“산군 녀석을 보러 이 늦은 밤중에 저를 찾아오신 것은 아니실 것이고, 사형도 전장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습니까?”
“내가? 그래 보이냐? 오히려 나는 널 걱정해서 찾아온 것인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매에서 술병과 잔을 마저 꺼내는 충신이었다. 술동무를 찾아 나한테까지 온 모양이었다. 다행히 술병에서 나는 냄새를 보아하니 독주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같이 마셔줄 만하지.
“크으……. 심양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이 조선식 탁주를 다시 마실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이게 다 한수 네 덕분이다.”
“제가 뭐 한 것이 있겠습니까. 운이 좋았지요.”
“운? 네가 없었으면 심양관에서 술을 빚기는커녕 양식 걱정을 했지 않았겠냐.”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막걸리는 부드러웠다. 작년에 사하보 농장에서 수확한 밀로 담근 막걸리였다. 쌀로 담근 것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이 또한 맛이 크게 나쁘진 않았다.
“그거야 세자빈 마마의 공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저 자질구레한 걸림돌만 치웠을 뿐입니다.”
“그게 걸림돌이었냐? 바윗돌이었지. 하여튼 너는 너무 겸손을 뺀다니까. 그러다가 주위에서 안 좋게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사형 앞에서나 이러는 것이 아닙니까. 하하.”
강빈, 그 여사님도 원 역사에서 심양관 인원들을 먹여 살리려고 심양관에서 장사까지 했었지. 그런 그녀가 나를 도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양의 곡물 가격이 연일 치솟고 있는 상황이었다. 청이 언젠가는 심양관의 식량 배급을 줄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세자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하긴, 갑자기 낯선 땅에서 농사를 짓자니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을 만도 했다.
그런 세자를 대신 밀어붙인 것은 동석 중이던 강빈이었다. 그녀의 닦달 덕분에 나는 세자가 써준 문서를 들고 도르곤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공급하던 식량 대신 땅과 사람을 내려달라?’
‘심양관에 공급해 주시는 식량만 해도 꽤 값이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쪽의 이익이 되는 일을 가져온다더니, 이것이 그것이냐?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핫핫핫.’
한참을 즐겁게 웃던 도르곤은 즉석에서 답을 내려주었다. 결과는 승낙.
단순한 승낙이 아니었다. 청나라 관청에 소속된 조선인 노예들을 시세보다 훨씬 싸게 속환시켜준 것이다. 유목민 특유의 화끈함이었다. 그날 한 팬서비스의 보람이 있었다.
계획의 첫 단추는 그렇게 제대로 끼워졌다. 청과 조선 양국에 의존 중이던 심양관 재정을 독립시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래도 예친왕에게 찾아가 담판을 지어온 사람은 네가 아니냐. 거기에 심을 곡식을 정한 것도 너고.”
“밀 위주로 농사를 짓자고 한 것은 빈궁 마마께서 재신들 입을 다물게 해 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그 자들 말대로 볍씨만 잔뜩 심었었다가는 아마 지금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었을 거다. 망할 영감들, 농사는 쥐뿔도 모르면서 그놈의 쌀.”
쌀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민족답게 세자와 재신들도, 평안도에서 불러온 농부들도 사하보에 불하받은 넓은 평지에 벼와 콩을 심자고 권했다. 그러나 훨씬 남쪽에서 자라던 볍씨가 이 추운 북쪽 땅에서 정상적으로 자랄 리가.
그렇게 오간 몇 번의 입씨름 끝에 세자는 내 손을 들어주었다. 불하받은 땅 일부를 떼어서 청나라 농부에게 소작을 주고, 그 대신 만주산 봄밀 종자와 농사법을 전수받았다. 결과는 대풍이었다.
농장 자투리에 심었던 조선 벼들은 대다수가 낯선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밀을 수확하던 날, 사하보로 시찰을 나간 세자와 재신들은 누렇게 말라죽은 벼이삭들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올해나 내년쯤에는 다시 쌀밥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살아남은 종자들을 계속 접붙이다보면 이 땅의 기후를 견디는 녀석도 나오겠지요.”
“가끔은 쌀밥이 그립기는 한데,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다. 네가 만든 이상한 떡도 먹다보니 익숙해져서 말이지.”
밀이 남아돌아 팔 정도였던 것은 좋았는데, 쌀밥을 먹던 조선인의 입에 매일 만두나 국수, 부침만 넣으니 질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음식이었다. 마침 유제품이 흔한 동네기도 했고.
“저하께서도 몸소 소맥병(小麥餠, 밀떡)을 주식으로 삼고 계신데, 신하된 몸으로서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노구에 고생하시는 시강원 영감들께는 조금 죄송스럽긴 합니다만.”
“남의 땅에 왔으면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왔어야지. 네가 만들어낸 음식들이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남만시(南蠻枾)로 만든 양념을 낙(酪)으로 덮은 것이 그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다.”
“아, 그 음식은…….”
이놈의 입.
시장에서 남만시라 불리던 토마토를 발견하고 어설프게 만들어본 피자가 생각보다 맛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나눠먹어본 자들에게도 호평이었던 것을 보면 토마토에 들어있는 MSG가 통하는 것은 시대 공통이지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내가 요상한 음식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그렇게 세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것. 피자를 맛있게 먹은 세자가 음식의 이름을 물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뱉었던 말을 수습하기는 정말로 어려웠었다.
차라리 남만시로 만든 부침이니 남만전이라고 할 걸 그랬다. 파인애플이 이 시기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다행인가.
“덮을 피(被)에 붉을 자(紫)라. 붉은 양념을 덮다, 좋은 이름이 아니냐. 이름만 봐도 음식이 떠오르니 여기 놈들도 ‘뻬이즈’라고 부르면서 사 가더라.”
“아, 그러고 보니 피자 장사는 잘 됩니까?”
“한족 만주족 가릴 것 없이 매일매일이 문전성시지. 관리들이 자주 찾는 음식이라는 입소문이 퍼져서 아주 난리가 났다.”
심양관에 남아도는 밀을 처분하는 일로 청나라 관리들이 심양관을 들락거릴 때마다 햇밀을 맛보라며 피자를 대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날 이후로 심양관에 방문하면 요상한 음식을 대접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라도 퍼진 모양이었다.
남만시라 불리는 토마토가 심양에 흔하게 들어오는 물건은 아니었지만, 토마토가 없을 때 내놓은 조선식 불고기 피자의 반응은 더 뜨거워 심양의 피자 열풍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양관의 간장 재고가 걱정될 정도였으니.
그 낌새를 돈 냄새 맡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충신이 못 읽을 리가 없었다. 아예 농장 일이 없는 겨울에는 놀고 있는 사람을 부려 집까지 배달도 해 주는 모양이었다. 사실 배달은 내 아이디어였지만.
“역시 네놈도 상재(商材)가 있어. 그런 발상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참.”
“어차피 저희 사재를 털어 속환한 자들이 노느니 뭐라도 하겠다고 먼저 나서지 않았습니까. 일하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 것뿐입니다.”
조금 후대로 가면 냉면이나 해장국을 배달시켜 먹는 일화가 등장하기 시작할 테니, 크게 이상한 발상도 아니었다. 지금은 인력이 남아도는 겨울 한정 배달이었지만, 음식 장사가 더 대박을 치면 일상이 될 수도 있겠지.
“이미 겨울에 따로 시키던 일이 있지 않냐. 그자들이 음식 배달하는 일을 하겠다고 앞다투어 나선 것은 단순히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 텐데?”
“어…… 음…… 그건…….”
충신의 눈초리가 방구석에 세워져 있는 긴 방망이에 닿았다. 심양에 와서 급격하게 사용 빈도가 늘어난 물건이었다. 한양에 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새것 같았는데, 지금은 배트헤드 곳곳에 흠집이 새겨져 있었다.
“인마, 저번에 구경 갔을 때는 무슨 악귀가 내려온 줄 알았다. 김 갑사보다 한술 더 뜨는 놈이 있을 줄이야.”
“그럴 리가요. 훈련은 김 갑사가 시키지 않았습니까?”
“훈련받던 놈들이 다른 조선 백성들 구하겠다고 자원한 놈들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반은 도망쳤을 거다.”
무관도 아닌 내가 전장에서 지휘할 병력이 어디서 툭 튀어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시행해야 했던 두 번째 계획이었다.
병사들을 굴려본 경험이 풍부한 자가 심양관에 둘이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
“총가(銃歌), 시, 작!”
“총 닦고, 화약 내리고, 삭장으로 화약 넣어 채우고…….”
겨울 삭풍이 몰아치는 사하보 평원, 곡식을 베어낸 밑동이 드문드문 보이는 것을 보면 본래는 농토로 쓰이던 땅일 것이다. 헌데 그곳에 있을 리 없는 물건들이 여럿 서 있었다.
이제 잡새들로부터 낱알을 지킬 일도 없을 텐데, 웬 허수아비들이 줄을 지어 벌판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허수아비들은 한 무리의 남정네들이 조금 멀리에서 악을 쓰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닝기리, 솜 넣은 옷 준다길래 나왔는데 찬바람이 그 옷마저 뚫는구먼.”
“조금만 참아, 김 서방. 이것만 버티면 뜨끈한 고깃국도 준다잖아”
“그래, 어차피 개만도 못한 노비 인생, 풀어주신 양반님네들이 시키는 것인데 은혜를 아는 사람 새끼면 참아야지.”
사내들은 앞에 선 커다란 덩치가 불러주는 노래를 한 소절씩 따라 부르고 있었다. 추위를 잊기 위함인지, 사내들은 오들오들 떨면서도 사이사이마다 입이 쉬는 꼴을 보지 못했다.
“거기 떠드는 세 놈, 나왓!”
따라 불러야 할 소절이 끝나자마자 덩치 옆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몽둥이를 치켜들고 외쳤다.
모범을 보이겠다는 듯이 훈련받는 사내들과 복장은 같았으나 얼굴에는 웬 털가죽이 덮여있었다. 명을 따라 앞으로 나서면서도 사내들은 그 털가죽 덕에 얼굴은 안 시리겠다며 남자를 부러워했다.
“네놈들, 지금 한 시가 급한데 입을 놀릴 시간이 있는 것이냐!”
“아이고, 나으리. 너무 추워서 그랬습죠! 한 번만 용서해주십쇼!”
“너무 춥다?”
남자는 몽둥이로 반대쪽 손을 철썩거리며 사내들 쪽을 꿰뚫어보았다. 나무에 언 살이 감기는 소리가 사내들 귀를 불길하게 울렸다.
“너희들이 입고 있는 옷, 신, 먹고 마시는 것 어느 것 하나 조선 백성들의 피와 땀이 아닌 게 없다! 겨우 이 정도 추위가 힘들다면 다시 청나라의 노예가 되는 삶을 택해야 하지 않겠느냐!”
“나으리, 하오나 너무 춥습…….”
“네놈들이 운 좋게 풀려난 동안, 다른 수십만의 조선 백성들은 이 시간에도 찬바람을 맞으며 노비 노릇 중이라는 사실을 잊었느냐!”
몽둥이가 얼어있는 땅에 쾅 소리와 함께 내려찍혔다. 바람 부는 소리도 잦아들게 할 만큼 강한 힘이었다.
저 몽둥이에 맞으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김 서방은 깨달았다. 삼시세끼 맛있는 밥을 준다기에 함부로 지원할 정도의 말랑말랑한 일이 절대 아니었다.
보통 군역이라 함은 소금 친 주먹밥도 감지덕지하며 먹어야 하는 일인데, 무슨 바람인지 속환인들을 모은 양반은 병사는 늘 잘 먹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식사를 내려준 덕분에 이렇게 많은 사내가 몰린 것이었다. 그 양반 말로는 ‘참밥’이라고 하던가.
“맨 왼쪽, 너, 나와.”
“예?”
“예? 예에? 내가 대답을 그렇게 하라고 했나? 전원 엎드려 뻗쳣!”
벼락같이 꽂힌 외침에 사내들은 순식간에 명령을 따랐다. 명령하는 것은 털가죽 뒤집어쓴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사내들 안의 수컷의 본능 또한 명령하고 있었다.
‘개기면 죽는다.’
“너희는 한 몸이다! 똘똘 뭉쳐 전과를 낸 만큼 청나라에 붙잡혀 있는 다른 백성들이 풀려날 수 있다! 그런 고귀한 임무를 맡은 놈들이, 한 시가 귀한 훈련 시간에 한눈을 팔아?”
“아닙니다!”
“아니야? 아니면 훈련이 끝나나? 네놈들이 그러고도 사내냐? 그토록 가볍게 굴 거면 가랑이 사이에 있는 것들을 몽땅 떼서 사하에 물고기 밥으로 던져라!”
김 서방은 뒤통수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저 옷 주고 밥 준다기에 가볍게 나온 것이었는데, 이 남자에게 본보기로 잘못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맨 왼쪽에 엎드린 놈.”
“옛!”
“아까 부른 총가에서 화기 아가리 열고, 화약심지 내리고, 그다음에는 뭘 해야 하지?”
김 서방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추위를 불평하던 사이 덩치가 불러주던 노래 가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이 새끼…… 전원 상투 땅에 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들엇! 팔은 뒷짐!”
남자의 옆에 있던 덩치가 ‘남원폭격이구만.’이라고 중얼거렸으나 김 서방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난생처음 당해보는 꼴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땅에 짓이겨지기 시작한 상투가 머리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남자가 휘두르는 방망이가 언제라도 엉덩이에 내리 꽂힐까 두려워 다들 꿈쩍도 하지 못했다.
“본 교관은 금일 네놈들에게 정말로 실망했다! 사소한 것마저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네놈들 앞에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적이 앞에 나타났는데 총 쏘는 법을 잊는다면 어찌하겠단 말이냐! 그대로 목숨을 내줄 셈이냐!”
“아닙니다!”
“네놈들이 지금 흘리는 땀방울 한 방울이 전장에 나가서 흐를 피 한 방울을 줄여줄 것이다! 네놈들이 쏘게 될 총탄이 조선 백성들의 족쇄를 깨뜨릴 것이다!”
“옛!”
“아직도 훈련에 매진할 생각이 없는 자, 앞으로 나와라! 내가 직접 그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뜯어고쳐주겠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벌판에 상투를 뿌리처럼 박은 남정네들의 엉덩짝들만 하늘을 향해 부들거리고 있었다.
“좋아. 다들 그래도 도리는 아는 자들인가 보군. 전원 일어섯!”
안도의 한숨들이 들판을 뒤덮었다. 다들 생전 처음 당해보는 얼차려에 허리와 허벅지가 부들거리던 터였다. 허나 안도는 잠시뿐, 불벼락이 다시 사내들의 머리 위에 내리꽂혔다.
“춥다고 했지? 그렇다면 몸을 덥히면서 군가한다! 전원 뒤로 취침!”
그날 사내들은 깨달았다. 남자가 얼굴에 뒤집어쓴 범 가죽은 멋을 내려고 쓴 것이 아니었음을.
정신없이 구르며 부르는 노래와 함께 조총의 장전 과정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와 함께 남자에 대한 공포 역시 뼈에 새겨지고 있었고.
그렇게 며칠 되지 않아, 심양의 조선인들 사이에서 사하보의 호랑이 교관을 모르는 자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그자가 세자의 심복이며 자신들을 사들여 속환해 준 양반과 동일인물이라는 소문 또한 퍼진 후에는 훈련에 열중하지 않는 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 작가의 말
1. 사하보 농장
조선의 볼모들에게 식량 공급을 끊고 빈 땅에 직접 농사를 지어 식량을 스스로 조달하게 한 일은 고증입니다. 작중의 시점보다 일 년쯤 뒤에 청에서 명령해서 일어난 일이지요.
첫해 농사를 망쳐서 조선에서 긴급하게 곡식을 실어다줘야 했던 일이 실록에도 적혀 있습니다.
2. 토마토
토마토가 이 시기에 만주에? 라는 의문을 가지신 분도 있는데, 훨씬 이전에 중국을 통해 조선에도 들어와 있던 물건이었습니다.
1614년에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의 19권 식물부에도 일 년 만에 열리는 감이라 일년시라 불린 토마토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에서는 식용보다는 관상용으로 쓴 것 같지만요.
3. 배달
백여 년 쯤 뒤의 이야기긴 하나, 남한산성에서 끓이는 효종갱이라는 해장국을 서울에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던 일화나, 순조 시기 야근하던 임금이 병사들을 시켜 야식으로 냉면과 수육을 사다 먹은 이야기를 참고했습니다.
직접 가보시면 알겠지만 심양성은 꽤 규모가 작고 황궁이었던 선양 고궁도 규모가 아담한 편입니다. 경복궁보다 작죠. 그 시절에도 인력으로 귀족 지역에 배달하는데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4. 총가(銃歌)
‘총 닦고, 화약 내리고, 삭장(꽂을대)으로 화약 넣어 채우고, 납 탄알 내리고, 삭장으로 납 탄알 누르고, 복지(마개종이) 내리고, 복지 누르고, 화기 아가리 열고, 화약심지 내리고, 화기 아가리 흔들어 아가리 화약이 내려가 몸통 화약과 섞이도록 하고, 곧바로 화포 아가리 닫고, 용두(조총의 갈고리 쇠)로 화승 누르고, 명에 따라 화포 아가리 열고, 적을 조준해 발사.’
1603년에 지어진 <신기비결이라는 병서에 나오는 노래인데, 병사들로 하여금 외우게 하여 10여 단계에 이르는 화승총 장전 과정을 체득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뒤에 서술될 조선군의 병법과 병력운용도 당시 병서를 많이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