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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49화 (49/298)
  • 49화. 먹물 향기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냐. 요안아!”

    어느새 부엌으로 뛰어든 아낙은 젖은 헝겊을 들고 아이의 얼굴을 씻기기 바빴다. 여인의 서구적인 마스크에 그늘이 가득 져 있었다.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어미는 울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아이의 표정은 헝겊으로 짓눌리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여전히 주위를 떠도는 묵향은 짙기만 했다.

    “아…… 이 무슨…….”

    “초관 어른. 저에게 맡겨주시지요.”

    박연도 처음 보는 광경에 아연실색해있었다. 넋이 나가 끄덕이는 그의 고개에서는 아주 조금의 이성만이 느껴졌다.

    “요안아……. 말이라도 좀 해보렴……. 응?”

    엄마가 연신 얼굴을 문질러대면서 말을 걸고 있는데도 아이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물을 묻혀내서 흰 얼굴이 얼추 드러난 상태였으나 요안의 눈동자에 드리운 얼룩은 잘 닦이지 않았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제서야 초점이 맞지 않던 아이의 시선이 나를 향해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혼내지 않을 테니 말해 보거라.”

    “…….”

    아이는 먹물을 갈아내고 남은 먹을 품에 꼭 쥐고 있었다. 벼루와 함께 내가 선물한 먹이었다. 그새 하나를 다 쓰고 남은 하나마저 짜리몽땅으로 변한 그 먹이었다.

    ‘선생님, 저는 겉모습은 이래도 조선인이 맞나 봐요.’

    ‘그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고, 남자는 아니지만 글공부하는 것도 좋고, 그리고 먹 향기도 너무 좋아요.’

    ‘아무리 좋다지만 그렇게 끌어안을 물건은 아니지 않느냐. 옷에 얼룩이라도 지면 어쩌려고.’

    충신이 향기의 아이디어를 물어볼 때, 내가 먹 향기가 풍기는 향수를 주문했던 이유는 이 녀석 때문이었다.

    글공부와 관련된 선물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기뻐하던 아이였다. 그때의 기뻐하던 얼굴과 지금의 텅 빈 얼굴이 일치되지 않아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그렇게 글공부를 해서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 이 땅에서 여인의 몸으로 태어난 이는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는데.’

    ‘에이, 선생님도 꽉 막히셨다니까? 제가 남기고 싶은 기억들을 기록할 거예요. 제가 혼자 보든지, 아니면 남한테 보여줄 수도 있고요.’

    ‘좋은 생각이구나. 다음에는 언니에게만 보여주지만 말고 나한테도 보여주겠느냐?’

    그때도 버릇처럼 혀를 내밀고 명랑하게도 거부감을 표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왜.

    “요안. 스승님이 물어보시잖아. 제발 말 좀 해.”

    “……좋겠다. 오빠가 부러워.”

    옆에서 끼어든 제 오래비의 말에 아이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잔뜩 쉰 목소리가 내 마음에도 먹물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요안. 요운이 부럽다니.”

    “전 오빠가 부러워요. 얼굴도 엄마를 더 닮았고, 얼핏 보면 조선인과 큰 차이는 없고. 머리……머리카락도……검은색이고……눈동자도…….”

    멍하니 넋을 놓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왈칵 눈물을 쏟았다.

    머리카락, 먹물, 검은색. 이 아이가 머리에 먹물을 스스로 부은 이유는 설마.

    “선물하신 먹이 너무 싸구련가 봐요. 머리가 안 물들어…….”

    “요안…… 너…….”

    그제서야 입이 열리기 시작한 아이였다. 평소와는 달리 조금 멀리 나들이를 나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핑계가 나였던 모양이었다.

    “성균관으로 선생님 마중 나가서 언니네로 데려다 달라고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기다려도 안 나오시길래 나오는 유생들한테 물어봤을 뿐인데…….”

    걷어 올린 하얀 팔에도 퍼런 멍 자국이 몇 개나 나 있었다.

    눈이 질끈 감겼다. 아이의 한쪽 뺨이 미세하게 부어 있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뒤이어 요안의 입에서 나온 묘사를 듣자마자 입에서 탄식이 터졌다. 하필 이 아이가 말을 건 놈이 그 새끼였다. 김식.

    처음에는 어디 아녀자가 말을 거냐며 꺼지라고 하더니, 요안이 내 이름을 꺼내자 그놈이 아이에게 달려들어 뺨을 올려붙였다 했다.

    “그놈이 그랬느냐? 그놈이 네게 이 짓거리를 한 것이냐!”

    “그 유생님이…… 선생님 이름을 듣자마자 너는 조선 사람도 아니라면서…… 촌뜨기랑 붙어먹는 남만 오랑캐 백정년이라고…….”

    아이는 다시 말끝을 잇지 못했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먹물이 눈물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젖살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턱에서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선생님 탓 아니에요……. 제가 괜히 성균관까지 가지만 않았어도…… 갑자기 분 바람에 옷자락을 놓치지만 않았어도…….”

    아이는 자신의 금발벽안을 들킨 탓에 그런 수모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평소에 나들이하면서도 또래 아이들에게도 이질적인 외모로 수모를 몇 번 당한 참이었다.

    아마 요안의 외모가 평범한 조선인의 그것이었다면 어느 집안 여식인지 모를 테니 동장의 놈의 손이 먼저 나가는 일은 없었을지도.

    하지만 아이는 나와 그 새끼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몰랐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성 영감에게 김자점의 문외출송이 풀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 새끼, 애비가 한양에 들어왔다고 간덩이라도 부은 건가.

    그건 요안이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려던 찰나, 날카로운 비명이 내 입을 막았다.

    “세상에. 이 상처는 어떻게 참았니, 아가?”

    비명을 지른 것은 요안의 어미였다. 방금 그녀가 적신 수건으로 닦아낸 요안의 귓바퀴 근처에 상처가 나 있었다. 뺨을 잘못 맞아 손톱이라도 스친 것인지 두 줄, 날카로운 상처가 선명했다.

    작은 상처였지만 흉터가 질지도 몰랐다. 댕기를 땋으면 잔머리 때문에 잘 안 보일 수 있겠으나 머리를 올린다면 티가 날 것 같았다.

    꽤나 아팠을 텐데도 용케도 잘 참아낸 아이였다. 그만큼 상처는 끔찍했다. 다행히 얼굴은 아니라지만 여자애한테 무슨 짓을…….

    “안 되겠다. 지금까지는 이 애비도 너를 놔뒀는데, 이제 너를 위해서라도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될 것 같다.”

    “아버지!”

    “저번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 않았느냐. 이런 일까지 벌어졌는데 너를 어떻게 밖으로 내돌리란 말이냐. 한양 길바닥에서 또 그 유생을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하지만…….”

    “더 이상 너를 다치게 하기 싫다. 그리 알아라.”

    뒤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박연이었다. 그의 목소리도 온통 젖어있었다.

    아끼고 아끼던 딸이 밖에서 저런 봉변을 당하고 왔는데 가만있을 아버지는 없었다. 속에서 가장 뜨거운 불길이 일고 있을 사람은 그였다.

    “싫어요! 그래도 바깥이 궁금하단 말이에요!”

    “요안!”

    “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저 강 너머 바다 너머에는 더 넓은 세상이 있다고. 아버지가 태어나신 곳에 언젠간 데려가 주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때는 네가 어리지 않았느냐. 그리고….”

    박연이 딸에게 그런 약속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의 과거는 나도 대충 알고 있었으니까. 이번에 부탁할 일도 그것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

    “요안아…… 이 애비는…….”

    박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처음 그의 집을 방문했던 날 스튜 냄비 앞에서 잠깐 새어나왔던 표정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 어린 표정이었다.

    “선생님, 선생님도 뭐라 말씀해주세요. 네?”

    요안의 다급한 말이 날아왔으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네 탓이 아니지만, 바깥구경은 삼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머릿속이 하얘졌다. 시간은 떨어지는 먼지가 멈춰 보일 정도로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아버님 말씀을 듣는 게 내가 생각해도 맞다. 나도 네가 더 이상 상처 받는 것을 보기 싫구나.”

    “싫어요! 왜요! 내가 보고 싶은 걸 보겠다는데!”

    아이는 숫제 발버둥을 치며 반항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상한 눈길을 받아가면서도 어떻게든 바깥구경을 하던 터였다. 그렇게 쉽게 뜻이 꺾일 리 없었다.

    급한 마음에 입이 마음대로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뛰쳐나간 말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그럼 당분간 네가 보고 싶은 것들을 내가 대신 겪고 이야기해주마.”

    “……네?”

    “곧 강 건너, 바다 건너 먼 땅에 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내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하지 않느냐. 그렇게 해주면 아버님 말씀 들을 수 있겠느냐.”

    아이의 반항이 멎었다.

    수업이 끝나고 장수, 운봉, 남원을 다니며 겪은 이야기들을 해줄 때 누구보다 눈을 빛내던 아이였다. 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조금만 더요!’를 외치던 아이였다.

    “……싫어요. 선생님, 멀리 가시면 이야기를 듣는 데는 한참 걸리잖아요. 게다가…….”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재밌는 일이 있을 때마다 꼭 편지를 써서 보내주마. 내 글씨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이제 눈물이 말라붙은 요안의 눈가는 흔들리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진 아이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영문도 모르고 내가 내미는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것을 맞대오는 요안의 체온이 따스했다.

    “약속하마. 내가 네 눈이 되어주고, 네 귀가 되어주마.”

    “정말요?”

    요안의 눈은 똑바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눈을 맞댈 수밖에 없었다. 눈길을 돌렸다가는 아이는 내게 신뢰를 잃을 것이기에.

    “내가 너와 했던 약속, 어긴 적이 있었더냐. 그리고…….”

    손바닥을 들어 아이의 눈가에 가까이 대었다. 마음 같아서는 방금까지 펑펑 울고 있던 녀석을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조선 시대였다.

    “머리칼과 눈동자, 아름다우니 망가뜨릴 생각하지 말거라.”

    아이의 표정이 멈췄다. 투명한 아이의 피부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안의 피부와 종이 한 장 거리만을 남겨주고 다가간 내 손끝에는 묘한 따스함이 전해지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로 시작하는 효경 구절을 읊어주자 요안의 얼굴에는 다시 혈색이 돌아온 듯했으나, 방금보다 조금 더 붉어져 보이는 것은 내 착각일까.

    그냥, 네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노력해 볼게요.”

    그제서야 본인이 크게 양보했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돌리는 요안이었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야 내가 아는 녀석으로 돌아와 있었다.

    “요안이 너, 글공부 배우는 조건으로 집안일 열심히 한다고 했던 거 요새 까먹고 있는 모양인데, 선생님한테도 일러바쳐야겠네?”

    “엄마!”

    “시끄럽다. 선생님 말씀이면 꼼짝도 못 하는 기집애가.”

    머릿결 틈 사이사이로 스며든 먹물을 꼼꼼히 닦아내는 요안의 어머니였다. 익숙하게 반항하는 딸의 등짝을 스매싱하는 것이 역시 친모다웠다.

    “요 녀석. 천방지축이라 고삐는 달고 다니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구나?”

    “무슨 소리야. 그게! 어려운 말 하지 말라니까!”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는 요안의 얼굴은 예전과 같았다. 아마 이제 등짝 몇 대 더 맞고 남은 먹물을 씻으러 가겠지.

    그 와중에도 내가 준 먹을 손에 꼭 쥐고 있어 손바닥이 온통 새까만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일이 일단락된 모양이었다. 요안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뒤에 서 있던 박연도 크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고맙소. 선생을 만난 것은 정말 하늘이 점지해 준 일 같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무얼 했다고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선생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으니.”

    박연의 얼굴도 요안처럼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얼굴이 쉽게 달아오르는 것은 유전인가.

    “참,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다고 하지 않았소?”

    “아, 맞습니다. 헌데 긴 이야기가 될 텐데, 시간이 조금…….”

    “얼마나 긴 이야기를 하려고? 인정이 울리기 전에 돌아갈 수 있겠소?”

    박연의 집에 온 목적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요안이 그 녀석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네. 시간도 꽤나 많이 흘러 통행금지까지 남은 시간이 애매했다.

    “꽤나 무거운 이야기인 듯하구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녁까지 들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는 것은 어떻소?”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감사하긴 한데, 제가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폐라니! 안 선생이 요운이 요안이에게 해준 것이 얼만데! 오늘 일까지 해결해줘 놓고 이러면 섭섭하오, 선생.”

    말을 마치자마자 박연이 달려나갔다. 아내는 딸을 씻기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본인이 직접 저녁을 준비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마음이 고마워 다시 한 번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지만 뭉클해진 마음 사이로, 딱딱하게 굳은 무언가가 떠올랐다. 눈물을 흘리던 아이의 얼굴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 새끼, 결국 조져버리지도 못하고 심양으로 가는 거면 도망가는 거랑 다를 게 뭐야.’

    결국 김자점과 김류, 간신들과 그 자제들을 쳐내지 못했다.

    지난겨울에도 소득이 없었으니 심양으로 떠나게 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큰 진전이 없을 것이 뻔했다. 진전은커녕 김자점의 한양 출입이 허락된 것이 떠올라 속이 더 뒤집혔다.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 더 확실한 증거를 찾거나, 능양군으로 하여금 그 간신배들을 조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거나.

    그랬다면 적어도 요안이 얼굴에 상처가 날 일은 없었겠지. 아이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지도 모르는 흉터가 남게 생겼는데. 이가 와드득 갈렸다.

    하숙방에 놓여있을 정의봉이 그리웠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허공에 대고 빠따를 휘둘러대 봐야 아무런 위로도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엌문 옆에 쌓인 장작개비 하나에 손이 뻗쳤다. 나 때문에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제자가 눈앞에 있었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뿐이었다.

    빡!

    하루 종일 쌓여온 울화였다. 딱딱하게 다져진 마당에 내리쳐진 장작개비가 두 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그 소리에 놀라 달려온 박연은 내 마음을 이해하기라도 하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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