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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45화 (45/298)
  • 45화. 불만

    결국 그 자리에서 하연과의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단호하게 거절을 고하려던 다짐은 그녀 앞에서 너무나 쉽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몇 번 더 힘없는 반항을 시도해보았으나 오히려 계속해서 뜻을 밀어붙인 것은 하연이었다. 왜 그녀 앞에만 서면 맥을 못 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거절하기는커녕 마음만 더 잔뜩 흔들리고 와버렸으니.

    ‘짝이 맞는 조개껍데기는 세상에 딱 한 쌍이라는 말이 있지요. 이렇게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분이 또 계실 리 없지 않겠습니까.’

    눈을 맞대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용무를 마치고 좌명의 집에서 물러 나오면서도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꽁해있던 요안이 녀석이 길 한가운데에서 둘이 무슨 일 있었냐며 물어볼 정도였으니.

    정리가 끝난 감정인 줄 알았는데, 다 타버린 재에 불을 붙여버린 하연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불길에 휩싸인 머리를 붙든 채 살아갔다. 어느 날 저녁이 되어서야 하숙방에 틀어박혀 겨우 머리가 식었지 싶었던 차였다.

    성 영감의 집 대문을 누군가가 급박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히익!”

    김류와 김자점에게 붙였던 유 서리나 충신의 수하 둘 중 하나가 온 줄 알고 마당쇠보다 빨리 대문으로 뛰어나간 참이었다. 두 번째 보는 얼굴이었지만 적응이 될 리 없는 사람들이 성 영감 댁 앞을 지키고 있었다.

    대문을 열자마자 보인 것은 웬 꿩 깃털이었다. 곧이어 시야에 들어온 붉은 옷들 때문에 그것이 대전별감의 모자에 꽂힌 장식용 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이렇게 일찍 다시 볼 줄은 몰랐다. 목숨을 붙여준 값을 하는 게냐.”

    그자들에게 납치당하듯 다시 이끌려 또다시 밤 산책을 하게 된 결과가 이것이었다. 이번엔 끌려간 장소가 후원의 정자가 아니라 임금의 집무실인 편전이었던 것이 달랐지만.

    “오늘도 대답이 없는 것이냐. 대사간이 예절을 잘 교육시키고 있다 들었는데.”

    “아니옵니다. 소생, 갑작스러우신 부름에 잠시 얼이 나가 있었사옵니다.”

    계속해서 성 영감 편에 보고서를 올려보내고 있었지만 갑자기 임금이 이렇게 뜬금없이 나를 부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옆에 도와줄 사람도 없이 나 홀로 왕을 마주하고 있던 터였다. 하필 대사간이 입번으로 야근하는 날에 소환된 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날의 서슬 퍼런 칼날을 닮은 눈빛까진 아니었지만 임금의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차가워진 날씨만큼 피부에 와 닿는 임금의 냉혹함이 더 실감이 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올린 서계는 잘 받았다. 아니, 인상 깊을 정도였지.”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기에는 부족한 글월이옵니다.”

    임금이 종잇장 하나를 펼쳐 쥐었다. 전날 대사간 편으로 보낸 최신 보고서였다. 충신의 창고에 가둔 왈자 두목과 김류의 자택에 잠복해 있던 유 서리에게서 나온 정보들을 종합해 올렸었지.

    “아니다. 이렇게 단시간에 세력 구도를 파악하고 수집하기 어려운 정보까지 조달한 것을 보면 네 능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분한 칭찬이시옵니다. 전하.”

    조금씩 김자점과 김류 사이의 끈이 드러나고 있었다.

    성 영감의 어사 출두로 파직당한 영광군수와 남원부사가 저 둘에게 각각 별급, 그러니까 선물을 잔뜩 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임금에게 올린 최신 정보였으니까. 아, 우리가 뒤를 밟던 광흥창 서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정보도.

    아마 나를 부른 이유는 이 둘에게 철퇴를 내리기로 임금이 마음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밖의 승리감에 조금씩 젖어 들어가고 있던 찰나였다.

    “……허나 이쯤이면 네 능력을 증명하는 데 충분하다. 이제는 그 일에서 손을 떼도록 하라.”

    “예?”

    “건방진 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반문하는 것이냐?”

    하지만 머뭇거리던 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도 못 한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간 단어에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왜? 그 정도면 의금부 도사를 출동시킬 명분으로는 충분하지 않나?

    “송구하옵나이다. 하오나…….”

    “네 가설은 근거 없는 모략에 불과하다. 별급은 중신들도 받아오는 것이 상례니까. 별급 없이 생활하는 대사간 같은 자가 괴짜인 것이다.”

    “정보 하나하나는 의미 없을지 모르오나 그것들을 엮어보았을 때 나오는 결론은…….”

    “수하로 여겨지던 자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도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의심하기엔 부족하다. 어쨌건 부원군 관작을 받고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던 공신을 고작 이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잡아넣으란 말이냐?”

    무언가 이상했다. 임금의 태도가 전과는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

    “하오나 전하, 그것 말고도 더 많은 사실들이 의심스러운 정황을 가리키고 있사옵니다.”

    “도원수까지 지낸 자의 자제의 옷차림이 사치스러운 것이 무어란 말이냐? 갑자기 하급관리들의 녹과가 지나치게 깎였다? 그것은 착오가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조사해서 원상태로 돌려놓으면 될 것이다.”

    피해를 본 관원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고서에 적어 넣었는데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녹봉 떼인 관리들이 한둘이 아닌데 원상태로 돌려놓는다는 말은 또 어떻게 저리 쉽게 한단 말인가.

    게다가 부용당에서 첫 대면할 적의 임금이었다면 내 주장을 단칼에 날려버리고 입을 다물게 시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왕은 오히려 변명하기에 급급한 모양새였다.

    “녹봉은 나라의 근간이옵니다. 그것이 고작 착오로 인해 삼분지 일이 깎이는 것은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일선에서 실수하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닐 터, 나랏일을 맡아본 적도 없으면서 아는 체하지 말라. 그런 말은 네가 대과에 급제하고 나서야 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숫제 경험이 없다고 깔아뭉개는 임금이었다. 참으로 꼰대스러운 짓에 불만이 솟구치고 있었으나 겨우 꾹 눌러냈다. 과거에 합격해야 나랏일을 논할 자격이 생긴다?

    “대과에 급제하라 하시니 말씀드리는 것이온데, 동장의 김식이 꾸미던 알성시 부정 청탁 또한 그렇게 여기시는 것이옵니까?”

    “이미 부원군의 아들이 그 일로 홍역을 치렀을 터,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겠느냐? 정 마음에 걸린다면 내가 따로 조사해보고 조치를 취할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말라.”

    “피해를 본 자가 한둘이 아닌 데다, 이 나라 조선의 근간을 흔들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이번 건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시끄럽다! 정 그럴 것 같으면 확실한 물증을 증좌로 들고 오면 될 것이 아니냐!”

    결국 본인이 알아서 할 터이니 이쯤에서 그만하고 덮으란 말이었다.

    이 정도로 정황들을 파냈는데 하나하나는 의미가 없다니, 맥이 쭉 빠지는 순간이었다. 기대하고 있을 박연에게 할 말이 없었다.

    “하오면 소신은 무엇을 해야 마땅하옵나이까.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하시려거든 다른 지시를 내려주시옵소서.”

    “건방진 놈 같으니. 그래,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세자를 따라갈 준비에 전념하도록 해라.”

    “그것은 이미…….”

    “명국어와 호어를 공부한다는 말은 대사간에게 전해 들었다. 성균관 공부까지 더하면 애초부터 무리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니냐.”

    이상했다. 내가 아는 능양군은 이런 식으로 나를 걱정해줄 사람이 아니었다. 채찍질만 해대다가 갑자기 당근이 던져지면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당근이라도 경계심이 들기 마련이었다.

    이쯤이면 되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 일에서 나를 떼어내려는 것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세자의 귀국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너는 그것에만 몰두하도록 해라.”

    “그 시기가 언제인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곧. 차가워진 바람이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심양으로 향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북방에는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눈이 녹고 길이 평탄해지면 세자가 돌아온다는 이야기였다.

    방금 화를 내며 서늘한 공기를 들이켜서 그런지, 말을 맺은 임금은 콜록거리며 몇 차례 기침을 뱉어냈다. 그러고 보니 성 영감이 임금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 왕의 얼굴은 초췌했다.

    “옥체에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것이옵니까?”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시험은 이쯤이면 통과했지 싶으니 명령한 일이나 잘 따르도록 하라.”

    걱정해 줘도 지랄이네. 겨우 표정을 다잡으며 목구멍까지 넘어왔던 말을 도로 삼켰다.

    시험을 통과했다는 말은 대전별감의 칼에 목이 날아갈 일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못 들었으면 내 입에서 상욕을 섞은 문장이 튀어 나갔을지도.

    하지만 그런 은혜 아닌 은혜를 내려준 능양군의 지시에 그대로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가슴이 꽉 막혀 고구마를 여러 개 삼킨 기분이었으니까.

    임금이 그 둘을 감싸고도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물론 반정공신인 그 둘보다는 내가 훨씬 가벼운 존재이긴 할 것이다.

    그래도 아무리 약해진 임금이라지만 권신이 연루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묻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내게 충성을 요구할 것이면 적어도 임금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왕과의 짧은 면담을 마치고 궁에서 쫓겨나듯 나온 것은 잠시 후였다. 왕에게 겉치레뿐인 충성을 맹세하고 내려받은 물건이 품 안에 고이 잠들어 있었으나 배웅 나온 금군들과 밤거리를 걷는 내내 아무런 감각이 들지 않았다.

    끼이익.

    금군들을 돌려보내고 열어젖힌 성 영감 댁 대문 사이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생각도 못 한 광경이었다.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퇴청한 차림새 그대로 집주인이 마당을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날씨가 찼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궐로 끌려간 사실을 안 이후로 계속해서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쉿.”

    보자마자 입가에 손가락을 하나 갖다 대고는 부리나케 나를 사랑채로 데려가는 성 영감이었다. 감동에 시큰해지는 코를 부여잡고 이끌려간 사랑방에서, 왕과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대사간은 탄식을 뱉어냈다.

    “그러기에 내게 맡기라 하였거늘…….”

    “송구합니다. 나리.”

    “그자들이 저지른 부정의 증거는 나 역시 보고받았지만 아직은 쓸 때가 아니었네. 허나 전하께서 이 일을 묻어버리려 하실 줄은 나도 예상치 못했네.”

    성 영감을 어사로 파견해 부정을 캐내라 한 것도 임금이었다. 그래서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보고서를 올렸던 것인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은 나도 몰랐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정도의 부정이면 당장 단죄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 아닙니까?”

    “그 정도로 지금 전하의 위치가 불안정한 것일세. 아니면…… 정말로 불충한 말이지만…….”

    말꼬리를 흐렸지만 성 영감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했던 생각이었다. 김류와 김자점, 두 반정공신과 임금의 사이가 가까운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아마 성이성을 어사로 내보내며 들어내라고 했던 썩어빠진 것들의 뿌리가 한양까지 뻗쳐있었을 것이라고는 임금도 몰랐을지도 모른다. 성균관의 현재 상황이 두 공신의 부정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생각 또한 어려웠을 것이다.

    뒷말을 줄였음에도 의미가 통한 것을 깨달았는지 잔뜩 굳어있던 대사간의 눈초리가 풀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내 할 말은 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과거와 녹봉에 관한 일입니다. 이걸 그냥 지나치는 나라가 어찌 제대로 된 나라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맞네. 그것이 옳은 길일 것이야.”

    어사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이대로 일이 어영부영 끝나버린다면 우리가 남원에서 한 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을

    부패한 작자들에게 정의봉을 휘두른 일은 그저 끄나풀 몇을 두들긴 일에 불과해질 것이다. 애초에 그런 것들을 뜯어고치려 상경한 길이고 과거를 치리라 다짐했던 바였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확실한 증거가 필요한 것이네. 전하께서 무시하지 못할 그런 증거 말일세.”

    “평소의 나리와는 다르시지 않습니까. 임금의 뜻을 거스르다니, 이것 또한 불충한 일이 아닙니까?”

    그 말에 대사간이 웃었다.

    하루아침에 어사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하며 지었던, 그 씁쓸한 웃음이었다.

    이 양반이 아무리 참된 선비라도 쌓인 게 없을 리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들어 먹지 않는 임금에 질린 것은 성 영감이 먼저였을 것이다.

    “자네는 정말로 충의 개념을 잘 모르는 모양이구만.”

    “전하께옵서도 나리께서 가르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전하가 바라는 충은 절대복종의 의미가 강해보였습니다.”

    “그래도 주군에게 올바른 것을 간언하는 것이 진정한 충일세. 참된 선비라면 그렇게 살아야만 하고.”

    대사간은 인조의 아버지를 군왕으로 추존하는 것에도 반대했다고 했다.

    법은 만세의 기강이기 때문에 지극히 공평해야 하며, 왕이라도 사사롭게 이용할 수 없다. 임금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 사간원의 수장다운 말이었다.

    그렇게 성 영감의 입술에 올라앉은 씁쓸한 미소는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그럼…….”

    “그래. 이 일을 그대로 묻을 생각은 추호도 없네. 전하의 눈이 가려져 있다면, 우리가 맑게 해드려야지.”

    영감님은 여전히 어떻게든 능양군을 고쳐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생각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었다.

    ***

    그렇게 겨울이 지나갔다. 나는 조선에서 스무 살 해를 맞았고, 예년보다 많이 내린 눈으로 올해의 한양은 몇 번이고 새하얗게 뒤덮였다.

    유 서리와 충신의 수하들을 통해 조사는 계속되고 있었으나 계절 탓인지, 적들이 뒤를 캐는 자들을 감지한 것인지 들어오는 정보의 양은 적었다.

    성균관에서 치러질 예정이던 알성시는 연기되었다. 그리고 김식이 주춤한 사이 서장의의 세력이 부상한 덕분에 성균관 생활은 한결 편해진 참이었다.

    편해진 만큼 그 추운 날씨에 김 갑사에게 시달려야 했으니 도로 원점인 것이 문제였지만.

    좌명에게 인수인계하던 일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박 초관 댁 아이들은 좌명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일이 있어 좌명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낯익은 얼굴을 마주치기 일쑤였다. 특히 요안과 하연은 아예 친자매와 다름없을 정도였고.

    하연은…… 그녀는 좋은 여자였다. 그런 이야기가 오간 후에도 나를 대하는 태도에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기다리겠다는 말이 내게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 오히려 거리를 살짝 두려 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결국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하나가 지날 때까지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겨울이 끝나면 일어날 일에 괜히 기대가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세자의 귀국 행차가 한양에 도달한 것은 겨울이 지나가고 새순이 돋아날 무렵이었다.

    대궐 바로 밖, 봉오리가 움트기 시작한 매화나무 아래에서 성 영감과 함께 세자의 행차를 기다리고 있자, 묘한 기대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조선을 바꿔놓겠다는 마음을 먹고 상경한 것이었는데, 이미 반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임금의 자리에 올라앉아 있는 능양군에게 실망을 있는 대로 한 상태였으니까.

    그렇다면 과연 소현세자는 어떠할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었다.

    깨어있던 비운의 세자인가, 아니면 유약한 볼모 출신 허수아비인가.

    그 사실에 내 미래가 달려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것을 준비했던 차였다. 당연히 두근거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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