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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41화 (41/298)
  • 41화. 사상 최초의 빈볼

    “거리를 조금 벌리는 것이 낫지 않겠냐?”

    “저놈이 자꾸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니 미행을 들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형”

    쥐새끼처럼 생긴 자의 뒤를 밟는 길이었다. 유 서리가 서신에서 지목한 광흥창 서리의 퇴근길을 추적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다니?’

    ‘광흥창에 김식의 끄나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살펴보고 가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럼 뒤를 밟아 보자는 소리냐?’

    유 서리의 서신에는 그 자의 신상과 외모가 특정되어 있었다. 먼 동네까지 나온 김에 살펴보면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니 좌명과 충신도 금방 동의한 일이었다.

    광흥창에서 하루 일을 끝마치고 나오는 서리 중에 비슷한 자를 발견했을 때는 일이 쉽게 풀리나 싶었다. 그러나 그자의 뒤를 밟아갈수록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성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셋이 너무 눈에 띄지 않는가.”

    “성저십리에 양반 셋이라. 흔히 돌아다닐 친구들은 아니긴 하지.”

    도성 내부였으면 그나마 집이나 담벼락 사이로 몸을 숨기고 미행할 방법이 많았을 것이다. 서소문을 나와 애오개를 넘어오면서 집들이 듬성듬성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했어야 했다.

    게다가 지나치는 행인들도 거의 평범한 백성들이다보니 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 셋은 눈에 띄어도 너무 띄고 있었다. 아마 앞을 걸어가는 서리가 계속해서 걸음을 멈추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겠지.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들켜봐야 둘러대면 그만이다. 무슨 일이야 있으려고.”

    그 말을 하는 충신의 얼굴은 묘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장난질과 일탈을 좋아하는 양반답게 이번 일도 즐기고 있는가.

    “하긴 도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 서리 행색을 한 자를 따라갔다고 변명하면 그만이겠군요.”

    “한수 너는 그쪽으로 머리가 빨리 돌아서 참 좋다니까.”

    “선진, 그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방향은 도성 방향은 아닐진대…….”

    좌명의 말대로 앞서가는 서리의 발걸음이 낯선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왔던 애오개 방향이 아니라 방향을 틀어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리재 방향이 아니냐. 저쪽 고개는 험해서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집이 저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충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머릿속에서 조각이 맞춰지지 않고 있는 듯했다.

    “일정, 저자가 우리 가설대로 녹봉을 빼돌리는 끄나풀이라면 손에 묻은 떡고물도 많을 터, 이런 빈촌에 살 일이 없지 않은가.”

    “긁어 들이는 만큼 나가는 것도 많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렇다 해도 이쪽 약고개는 말 그대로 이 근처 험한 산세에서 나오는 약초를 캐는 자들이나 사는 동네다. 내의원 의관이면 몰라도 광흥창 서리가 이쪽에 거주할 이유가 없어.”

    직장과 가까운 곳에 살 거면 이 근처에는 더 적합한 장소가 수두룩할 것이었다. 충신의 말대로라면 도성으로 넘어가는 것이 수월한 동네도 아니었으니 굳이 이곳에 살 이유도 없었다.

    “성근, 느낌이 안 좋은데.”

    “나도 뒤가 구린 것이 느껴지는 판일세. 이쯤에서 발을 빼는 것이 나을지도?”

    “젠장, 당했다!”

    문득 뒤를 돌아본 충신이 외치는 말이었다. 그 말에 놀라 돌아본 시야에는 웬 왈패 여럿이 어기적거리며 우리 뒤를 따르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뒤를 잡은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사형, 아무래도 저는 글러먹은 놈인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 갑자기?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냐?”

    “뭔가 잘못된 것이 맞긴 하지 싶은데, 또 가설이 맞았다는 생각도 들어 기분이 묘합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특이한 놈이지 싶었긴 한데……. 그래서, 이 상황을 어찌할 거냐?”

    옷차림에 힘을 주고 나온 것은 아니었으니 단순히 돈 몇 푼 털려고 접근하는 도적놈들도 아닐 것이었다. 다가오는 왈패 놈들의 시선이 우리 셋의 얼굴에 꽂혀있는 것을 보면 목표가 우리인 것이 확실했다.

    입막음이거나, 경고거나. 목적은 둘 중 하나겠지.

    나도 모르게 꽉 쥐어진 주먹 사이로 식은땀이 이제야 흐르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웬 놈들이냐! 양반 뒤를 함부로 밟다니! 경을 칠 놈들!”

    “어이구, 우리 친구 뒤를 함부로 밟으신 분들은 그쪽이 아닙니까요? 무슨 용건이신지?”

    “네놈들, 평범한 왈패는 아니구나? 양반의 행색을 보고도 버릇없게 나오는 걸 보니 뒷배가 든든한 모양이지?”

    내 말에 나오는 반응을 보니 확실해졌다.

    아무리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지만 한양 근처에서 살고 싶으면 웬만한 일로는 양반을 건드릴 수도 없을 것이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건 아실 것 없고. 어쩌시겠수? 저 친구한테서 손 뗀다고 약속해주시면 무사히 보내드립죠.”

    “뭐? 네놈,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것이냐?”

    “나리 같으면 그걸 알려드릴 리가 있겠수?”

    “그런 거 물어볼 필요 없다, 한수야. 아쉽게도 내가 이 바닥에서 많이 굴러먹어서 왈패란 놈들 습성을 아주 잘 알거든.”

    갑작스레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온 충신이었다. 왈패 두목으로 보이는 자의 건방진 말투에 솟아오르던 혈압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왈패란 놈들에게 신의를 기대하기는 시궁창에서 진주 찾는 일과 다를 바가 없지. 입은 억지로 열면 되는 법. 그딴 개수작에는 안 넘어간다, 이 새끼들아.”

    “이 양반이……. 좋은 말로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안 되겠구만?”

    “처음부터 좋게 보내 줄 생각은 없었잖아? 이 자식아.”

    기세 좋게 으르렁거리는 충신이었으나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싸움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승산이 없어 보였다. 하나, 둘, 셋…… 적의 머릿수는 여섯이었으니까.

    “야, 한수, 너. 몸은 좋아 보이는데 싸워본 경험은 있냐?”

    “거의 없다고 보시는 게…….”

    “좌명이 너는?”

    “저 역시.”

    공을 던지고 방망이로 치는 것을 열심히 연습한 적은 있어도 사람 패는 것을 연습한 적은 없었다. 힘과 덩치야 이 몸이 남들보다 뛰어나지만 그렇다고 싸움을 잘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 않겠는가.

    좌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거운 활시위를 순식간에 속사로 당겨대는 놈이니 등 근육 하나는 훌륭할 것이나, 선비 된 자가 주먹질을 해봤을 가능성은 낮았다.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에 불안감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패악질로 먹고사는 사람 여섯과 싸움 경험 없는 둘을 낀 셋의 싸움이라.

    “염병할. X됐네.”

    “활을 들고 나올 걸 그랬습니다. 활만 있었어도…….”

    “이미 없는 상황인데 후회해서 뭣 하겠는가, 일정. 부딪혀보는 수밖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이 없었다. 이미 상대 여섯은 조금씩 포위망을 벌려 들어오고 있었다. 입이 바짝 말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네놈들, 양반을 건드리고도 이 조선 땅에서 무사할 것 같으냐?”

    “예, 예. 무사하지 못하겠지요. 허나 저희는 약속받은 것만 챙기고 한양 땅을 뜨면 그만인지라.”

    익숙하게 침을 칵 뱉으며 비꼬는 놈의 얼굴에는 칼자국으로 보이는 흉터가 몇 개는 나 있었다. 이런 짓거리를 하며 잔뼈가 굵은 놈인가. 소름이 쫙 끼쳐왔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지금 사라지면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겠다.”

    “저희도 마지막으로 말씀드립죠. 높으신 분께서 혼만 내라고 하셨지 목숨까지 거두라고는 하지 않으셨으니 얌전히 계시라고요. 예?”

    이제는 적 여섯 명이 우리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을 던지는 에이스 상대의 타석에 들어선 꼴이었다.

    그렇다고 날아오는 공에 속수무책으로 삼진을 당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맞기만 할 바에야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달려드는 놈의 뚝배기라도 깨 놔야지.

    머리가 싸늘하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아드레날린이 몸에 돌기 시작한 것이 분명했다. 내게 달려들 놈은 앞에 선 두 명일 것이다. 그 중에 먼저 달려드는 놈을 작살낸다.

    와악!

    얼굴에 칼자국이 난 놈이 기괴한 소리를 냄과 동시에 왈패들이 달려들었다.

    날아오는 주먹은 투수가 던지던 강속구보다는 훨씬 느리게 보였다. 덕분에 생각보다 첫 공격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몸을 살짝 비틀어 그놈의 얼굴에 카운터를 꽂은 주먹에도 반응이 있었다.

    “커헉……. 이놈이!”

    “이 양반, 얕보면 안 되겠수. 한꺼번에 덮치는 게 낫지.”

    한 방 제대로 얻어맞고 비틀거리던 상대는 달려들 생각을 버린 모양이었다. 나라도 주먹 한 방을 제대로 꽂을 수 있는 상대에게 무작정 덤벼들지는 못할 것 같았다.

    대신 왈패 두 놈은 거리를 둔 채 내 주위를 빙빙 도는 것을 택했다. 호시탐탐 내 뒤를 잡으려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손자병법에서 적의 수가 많으면 도망치라 했는데 친구들을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좌명이 크게 한 방을 맞고 쓰러진 것이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윽…….”

    “야, 좌명아. 괜찮…… 이 새끼가?”

    비교적 체구가 작고 운동 경험이 적은 탓인지 좌명 녀석은 복부를 맞고 한번 나뒹굴더니 무릎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 날아드는 왈패 놈들의 발길질을 보고 충신은 눈이 뒤집힌 모양이었으나 왈패 두목을 포함해 두 놈이 붙은 터라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장면에 정신을 팔려서는 안 됐었다.

    “어이구, 나으리. 방심하시면 안 되지요.”

    “이게……!”

    “덩치 값을 하시는지 주먹도 제법 맵고 피하는 뽄새도 훌륭하신데, 아쉬우시겠습니다요?”

    아차.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시선을 돌린 것은 정말 잠깐 사이였는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등 뒤로 접근한 왈패 한 놈이 내 양팔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었다.

    “놔라, 이놈!”

    발버둥을 쳐 봤으나 약점을 쉽게 놔줄 놈들이 아니었다. 방금 내게 얼굴을 맞은 놈이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주먹을 내뻗어왔다.

    “커헉!”

    눈앞이 노래졌다. 명치를 맞았는지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거 몇 대만 더 맞으시지요. 저희도 원한이 있어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흐흐.”

    이번엔 배로 한 방 들어온 충격이 온몸으로 퍼졌다.

    고통으로 꺾인 고개 너머로 충신이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말소리에 거친 숨소리가 섞이기 시작한 것이 그쪽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였다.

    젠장. 김식 놈. 죽여 버리겠어.

    어디서 정보가 샌 것일까. 서장의인가. 아니면 그놈에게도 한양에 붙인 눈과 귀가 있었던 것인가.

    이제 적도 행동에 들어갔음이 분명했다. 적대감을 잔뜩 품은 동장의 놈의 눈빛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다니.

    이번엔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였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갔다.

    언제까지 이렇게 맞고만 있어야 하나. 이제 충신 쪽에서 들리는 소리는 간간이 들려오는 얕은 비명과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는 소리밖에 남지 않았다.

    젠장. 무력한 상황에 이가 저절로 갈릴 지경이었다. 그 때였다.

    “이 새끼들! 그 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는 목소리기도 했다.

    내가 헛것이라도 듣고 있는 건가.

    순간, 뒤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한번 나더니 내 양팔을 붙들고 있던 힘이 사라졌다.

    몇 대 맞아서 그런지 빠져버린 다릿심 탓에 볼썽사납게 주저앉을 뻔했지만, 겨우 무릎을 짚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선비님! 괜찮으십니까요!”

    무섭게 생긴 텁석부리 얼굴이 이렇게 눈물 나게 반가워질 줄은 몰랐다. 김 갑사였다.

    괜찮냐는 말을 남긴 그는 좌명을 걷어차고 있던 놈들 쪽으로 곧바로 몸을 날렸다.

    “이 새끼! 어딜 보고 한눈을 팔아!”

    충신 쪽에서도 무엇이 박살 나는 소리가 한 번 들려온 후에야 내 뒤를 잡았던 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격을 맞은 모양인지 놈은 사지를 쭉 뻗은 채 기절해 있었다. 관자놀이에 시뻘건 자국이 난 것을 보니 그 짧은 사이에 김 갑사에게 얻어맞은 모양이었다.

    “이…… 이놈은 뭐야?”

    “어딜 봐? 이 자식아!”

    겨우 고개를 들자 그제서야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바닥을 구르는 왈패는 셋.

    김 갑사가 내 뒤를 잡고 있던 놈의 관자놀이를 박살 내고, 좌명을 패고 있던 놈들 중 하나의 등짝에 막 발길질을 꽂아 넣은 차였다.

    김 갑사 쪽으로 시선이 쏠린 사이 충신이 턱을 박살 낸 모양인지 그쪽에 누워있는 왈패 하나는 입 아래가 온통 피투성이였다.

    “김 갑사! 좌명은, 좌명은 괜찮은가?”

    “잠시 정신을 잃은 것에 불과합니다요! 조심하십쇼!”

    김 갑사의 경고를 조금만 늦게 들었다면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을지도.

    피부에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은 머리 바로 옆으로 주먹이 스쳐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방금까지 날 붙잡아 놓고 패던 놈의 얼굴을 다시 보자 피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내 솜씨가 쓸 만하다고 했던가? 어쩌냐, 이제 네 주먹은 맞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이…… 이익!”

    “야비하게 이 대 일로 양반 좀 패보니까 속이 후련하냐?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방금까지 당한 것 때문에 짜증이 잔뜩 오른 탓도 있었지만 주먹을 못 놀리면 혀라도 잘 놀릴 필요가 분명 있었다.

    내 싸움 실력으로 이놈을 때려눕히지 못하더라도, 흥분시켜서 헛방이라도 치게 만들어야 김 갑사가 제압하고 올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너같이 머릿수만 믿고 까부는 놈들이 제일 역겹거든. 평소에 나 같은 양반을 질투라도 했냐? 붙잡아 놓고 패는 주제에 이빨 터는 꼬라지하고는.”

    “이런 썅!”

    꽤 효과가 있어 보였다.

    쓰러진 동료 탓에 화가 난 건지, 내 비꼼에 멘탈이 깨진 것인지 몰라도, 놈은 숫제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몇 대는 피할 수 없었지만 거의 스친 것에 불과해 타격은 별로 없었고, 나머지는 붕붕거리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되어 내 귓가를 울렸다.

    고작 내 동체시력 정도로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제구 안 된 공을 배터 박스에서 피해야만 했던 그라운드에서의 경험들이 도움이 됐을지도.

    아니면 나를 상대하는 왈패놈의 실력이 시원치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유효타를 먹이기는커녕 공격을 마구잡이로 날린 탓에 허점이 여럿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그 틈을 타 반격을 여러 방 날리니 놈의 얼굴은 금방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꼴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 새끼, 감히 우리 선비님한테!”

    빡.

    멀리서 좌명에게 붙었던 놈들을 처리한 김 갑사가 다시 내지른 호령에 한 눈이 팔린 놈의 턱에 내 펀치가 정통으로 작렬했다.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왈자 놈은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무너져내렸다.

    “어…… 어어?”

    동시에 주먹에도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주먹조차 상하게 할 정도의 위력인가. 그걸 위험한 급소에 맞았으니 맞은 놈이 기절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제가 봤던 대로 타고난 힘 하나는 장사십니다요. 역시 선비님은 무관이 천직이라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요.”

    갑자기 말소리가 들려 돌아본 자리에는 김 갑사가 어느새 내 옆에 서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였다. 놈들 중 김 갑사 정도의 실력자가 끼어있었다면 뼈도 못 추렸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쓰러져 있는 좌명 옆에는 왈패 두 놈이 등과 다리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모습에 소름이 끼쳤을 것이나 지금은 속이 시원할 지경이었다.

    “한심한 새끼.”

    걸음을 옮기면서 기절해 축 늘어진 놈의 아랫도리를 체중을 싣고 한번 밟아주었다. 미안, 조선 시대에 백병원은 없을 텐데. 이상한 파열음이 났으니 앞으로 사내구실은 못 할지도.

    마음 같아서는 참교육을 더 꼼꼼하게 가하고 싶었으나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김 갑사가 다급한 목소리를 던져왔기 때문이었다.

    “저놈, 칼을!”

    이제 머릿수에서도 밀리는 걸 깨달았는지, 충신과 대치중이던 두목 놈이 품에서 천천히 단도 한 자루를 뽑아들고 있었다. 몇 방을 맞았는지 퉁퉁 부은 얼굴을 한 그놈의 손에서 흔들거리는 칼날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걸 보고 황급히 등짐을 풀어헤친 김 갑사의 손에는 어느새 낯선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는 비교적 짧은 칼인 모양이었다.

    “김 갑사! 베어선 안 되네!”

    검집에서 칼날을 뽑아내려는 김 갑사를 다급하게 막아 세웠다. 아무리 한낱 왈패 상대라지만 나 때문에 그의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었다.

    “야, 이제 안 되니까 칼을 뽑아? 치사한 새끼. 자존심도 없는 모양이구만?”

    “사형! 일단 몸을 피하십시오!”

    아무리 성격이 그렇다지만 칼날 앞에서도 입을 놀리는 충신이었다. 내 말을 듣고도 꿈쩍하지 않는 것을 보니 치고받은 여파 때문에 귀에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눈에 적당한 것이 들어왔다.

    “선비님?”

    주먹만 한 돌멩이였다. 어차피 칼 든 놈이 이쪽을 보고 있지도 않겠다, 던져서 맞추면 좋고 주의라도 끌면 집 나간 충신의 정신머리도 돌아올 것이었다.

    퍽.

    “엥?”

    깜짝 놀란 충신이 고개를 이쪽을 향해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럴 만했다.

    급한 마음에 던진 돌덩이가 그대로 왈패 두목의 머리에 명중하고는 둘로 쪼개졌기 때문이었다. 완벽한 빈볼이었다.

    “야, 죽은 거 아냐?”

    어지간히도 당황했는지, 엎어져 움찔거리던 놈의 손을 즈려밟고 쥐여있던 칼을 차 내자마자 숨결을 확인한 충신이었다. 다행히 바로 짧은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니 사람을 골로 보낸 것은 아니었지 싶었다.

    “고향에서 석전이라도 즐겼었냐? 이 정확도에 빠르기는 뭔데? 이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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