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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어사, 조선을 뒤흔들다!-40화 (40/298)

40화. 마포나루에서 일어난 일

헌데, 그날 드러난 좌명의 파이터 기질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성균관 일강 시간에 바로 설전(舌戰)을 붙어버린 것이다. 오만한 말을 뱉어내 반박할 거리를 준 상대가 동장의 김식이어서 더 불타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율곡 선생께서 저술하신 성학집요에서도 현명한 신하가 군주에게 성학을 가르쳐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적혀 있다!”

“소생도 그 책에서 선생이 주창하신 창업, 수성, 경장의 단계에서 임금과 신하가 함께 나라의 뼈대를 다시 세우고 묵은 폐단을 고쳐야한다는 점은 공감하외다. 허나!”

학관이 대학을 강의하던 시간이었다. 격물치지를 넘어 수신제가치국평천하까지 도리에 이르는 경로가 실려 있는 대목에서 군신 간의 관계를 논하다가 설전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김식이 학관의 질문에 대답하다 군신공치(君臣共治)를 언급한 때가 좌명의 인내심이 끊어진 순간이지 싶었다. 나와 충신은 김식의 유건 끈에 달린 사치스러운 호박장식에 온통 주의가 쏠려 있던 터였다.

“유학의 기초인 소학에서도 군위신강이라 하여 임금이 신하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일컫고 있거늘 선진께서는 근본조차 잊어버리신 것이외까?”

“하, 그깟 어린애들이나 읽는 책으로 반박하려 드는 것이냐? 괘씸한 놈!”

“어린 아이라니요. 퇴계 선생께서 성학십도에서 가라사대 군주가 스스로 깨달아 성학을 따를 수 있다 하였는데, 그분도 어린 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말려야 할 학관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둘의 설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근왕파와 신권파의 대립이라. 어찌 보면 성균관이 조정의 축소판이라 하더니 지금까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용했다.

고사와 경전을 인용하고 사이사이 디스까지 섞어가며 논쟁이 붙은 모습이 내가 상상하던 선비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능양군이 조금만 더 멀쩡한 군주였다면 저 설전에 나도 한 몫 끼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대를 이은 근왕파인 좌명과는 달리 내 사상은 현대인에 한없이 가까웠다. 조용히 설전을 지켜보면서 종이 한 구석에서 충신과 필담을 나눌 뿐이었다.

「호박(琥珀)장식끈」

「백미 십 두(斗)」

「은장식 요대」

「이십 두 이상」

오가는 필담들이 어제 오갔던 가설에 대한 심증을 굳혀주고 있었다. 충신이 이런 쪽에 빠삭한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저것들이 당상관에게나 허용된 사치품이니 복식금제(服飾禁制)를 어기고 있다는 정보는 덤이었다.

충신은 자신이 기루를 굴려 번 돈이니 그렇다 치고, 고관대작의 몇 달치 월급을 몸에 휘감고 다니는 놈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풍겨오는 구린내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혹여나 태종대왕께 철퇴를 맞은 정도전의 사상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니신지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선진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놈! 감히 나를 역도로 모는 것이냐!”

“자, 자. 그만!”

김식의 옷차림을 뜯어보던 사이 설전은 지나치게 과열된 모양이었다. 저 독설가 놈.

학관의 보직이 정칠품 성균박사라더니, 이 시절에도 강의를 맡은 박사들은 학부생 놀려먹는 걸 좋아했는가. 그제서야 두 사람의 설전을 뜯어말리는 학관이었으나 조금 늦었지 싶었다. 진작 말렸어야지.

도포자락을 챙길 틈도 없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좌명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숨소리가 거친 것이 흥분을 가라앉히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이었다.

한편, 똑같이 달아오른 얼굴을 한 동장의 김식 역시 숨을 몰아쉬며 이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적의가 잔뜩 담긴 눈빛이었다.

단순한 논쟁의 결과물이라기엔 전해지는 적대감의 크기가 너무 컸다.

***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부원군 대감.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남원 부사와 영광 군수, 두 꼬랑지가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대사간 놈, 사간원에서 날뛰는 것을 봐 주고 있었더니 이런 식으로 칼을 들이밀어?”

“무슨 수라도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더 이상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잠시 일을 중단시키게. 그리고 혹시나 문제가 될지 모르는 꼬리들마다 사람을 붙여야 할 것이야.”

“그렇게까지 철저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무슨 소리인가, 성지(成之)? 이것이 나와 자네의 목을 날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물적인 증거만 새어나가지 않으면 문제될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전하의 신뢰도 두터울진대…….”

“시키는 대로 하게. 만일에 만일을 대비해서 나쁠 일은 없지.”

***

“냄새가 지독합니다.”

“이 샌님아. 방구석에 앉아서 책만 읽고 다니니 이 냄새가 지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양에 올라온 이래로 가장 멀리 나온 길이었다. 애오개라 불린 고개를 넘어오느라 운동을 안 했던 다리가 욱신거리는 와중에 새우젓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그럼 선진은 이 냄새가 아무렇지 않단 말씀이십니까?”

“이게 전부 얼마에 팔리는 줄 아냐? 향기롭기만 하구만. 그리고 젓갈은 백성들이 일용할 양식이거늘, 장차 나랏일을 맡을 놈이 할 소리냐?”

반박할 말이 없어 돌아본 시야에 황포 돛을 매달고 오가는 나룻배들이 비치고 있었다.

마포였다. 지금은 삼개나루라고 불리던가.

마지막 기억에서는 저 멀리 보이는 밤섬과 나 사이에 대교가 두 개는 가로지르고 있었으나 조선 시대인 지금은 존재할 리가 없었다. 억새밭만 가득하던 밤섬에 집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여기까지 끌고 오신 이유가 뭡니까? 목적지가 여기는 아니었을 텐데요.”

“어차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광흥창이 있지 않냐. 조금 시간이 있으니 멀리 나온 김에 둘러볼 겸해서 온 거지.”

그럴 거면 혼자 일찍 올 것이지. 나와 좌명까지 이 냄새나고 진창인 나루터로 끌고 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목적지는 아까 말한 대로 관리들의 녹봉을 관리하는 광흥창이었으니까.

독한 냄새 탓에 차오른 콧물이 코를 막아 버릴 것 같았다. 얼굴이 자연스레 구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와 비슷할 줄 알았던 좌명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했다. 농사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던 아버지 탓에 이런 것에도 익숙할지도.

“선진, 그래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오신 이유가 분명 따로 있을 텐데요.”

“좌명아, 인마. 거기까지 짐작했으면 말 안 해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

대충 현대식으로 추정해봐도 마포역에서 광흥창역까지는 걸어서 삼십 분은 걸릴 터였다. 그리고 충신은 단순히 짐을 싣고 내리는 나루를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지를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사형, 혹시 여기에도 저번 기루처럼 투자한 상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상점? 재밌는 얘기구만. 이곳에 육조거리 시전처럼 하역품을 다루는 점포들이 늘어서 있으면 좋겠지만 이 나라로서는 아직 먼 얘기다.”

“자금을 댄 곳이 있긴 있단 얘기군요.”

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충신은 조용히 턱짓으로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그의 날카로운 턱 끝이 가리킨 곳에는 웬 커다란 창고 여럿이 서 있었다. 옷가지를 홀딱 벗고 배에서 가마니를 옮기는 일꾼들이 주변에 바글바글한 것을 보면 꽤나 사업이 흥하는 모양이었다.

“저게 사형의 것이란 말입니까? 기루에 이어서 놀랄 일을 또 던져주시는군요.”

“정확히 말하면 반만 내 거지, 반은 아버지 것이고.”

“그래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창고의 규모는 주변에 서 있는 것들과 확연히 비교되고 있었다. 지금 배에서 내리는 화물들의 대다수가 충신의 창고로 들어가는 중이었으니까.

입을 딱 벌린 좌명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듯했다.

“아버지도 슬슬 이걸 보시고 반대하셨던 뜻을 접으실 때도 되었는데 말이지. 육의전만 쥐고 있는다고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계실 것이다. 핫핫.”

“창고에 가마니들이 들어가는 걸 보니 쌀장사라도 하시는 겁니까?”

“쌀장사? 고작? 남아로 태어났으면 포부를 크게 가져야지.”

말은 그렇게 하는 충신이었으나 저 정도 규모면 운송료만 받아먹는다고 하여도 이미 남는 이문이 한두 푼이 아닐 것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멀리 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나 멀리서 우리를 보고 달려오는 낯선 자의 모습이 내 입을 막고 있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여기서는 도아(都兒) 어른이라 부르라 했을 텐데.”

패랭이를 쓴 차림새와 말투를 보니 충신의 아랫사람이지 싶었다. 어디에선가 유 서리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경박스러운 말투만 빼고.

“송구합니다요. 소인이 또 깜빡했습죠. 참, 말씀대로 그 사람이 이걸 놓고 갔습니다요.”

“유 서리가 왔다 갔는가? 어떻게 잘 꾀어 보래도.”

“아이고, 그 이야기만 해도 정색을 하고 덤벼드는데 어찌하겠습니까요. 도아 어른이 직접 말씀해보시는 건?”

“내가 안 되니 자네에게 맡긴 것이 아니겠는가. 참 탐나는 자인데…….”

건네받은 봉서를 북 뜯어 눈을 거기에 고정하면서도 충신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유 서리라니?

“유 서리는 기루에서 소문을 모으라고 잠시 붙여드린 것 아니었습니까? 오늘도 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소문의 연장선에 있는 일이니 그자가 움직여 준 것이다. 내 밑에 두면 참 좋을 자인데…….”

“벗의 사람을 탐내시는 겁니까?”

“어차피 포기한 지는 좀 됐다. 너와 대사간 나리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더구만. 그래도 너와 벗이 된 이후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으니 이젠 상관이 없나.”

생각해보니 속곳을 사 갔을 때도 유 서리를 통해 내게 접촉했던 충신이었다. 내가 도움을 청하기 전부터 유 서리는 뒤에서 몰래 나를 돕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유 서리와는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네가 한양 올라오기 몇 달 전, 유 서리가 세곡 운반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며 먼저 찾아왔었다.”

“예?”

“그때는 건방진 중인 놈이라 생각했는데, 쫓아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 될 줄이야. 핫핫.”

남도로 어사 파견을 가기 전 정보를 모으러 찾아간 사람이 충신인 모양이었다. 남원에 오기 전 영광에서 세곡을 빼돌리던 수령을 어찌 알고 벌했다 싶었는데 그런 연결고리가 있었을 줄이야.

너털웃음을 짓던 충신이 그제서야 유 서리의 문서에서 눈을 떼고 그것을 내게 들이밀었다. 작은 종이에 세필로 빼곡하게 적어 내려간 보고서에는 새로운 정보가 여럿 드러나 있었다. 그중에서 눈을 특히 사로잡았던 것은…….

“끄나풀?”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 정도의 정보를 긁어냈단 말인가?”

어느새 옆에 바싹 붙어 보고서를 함께 읽고 있는 좌명이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녀석이었으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방금 충신에게 들은 정보 탓일 것이다.

아마 영광이나 남원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관련이 있지 싶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줄기라면 한양에 묻혀있는 뿌리가 있을 터. 대사간이 마패를 반납하고도 따로 유 서리를 시켜 일을 캐고 있었다면 앞뒤가 맞았다.

머리를 굴려보면 곡식이 줄줄 샐 수 있는 자리가 많았다. 세곡을 거둘 때 빼돌리고, 한양으로 올려보내는 포구에서 빼돌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거두는 장소에서도 빼돌릴 수 있을 것이었다.

유 서리가 감록 사건의 끄나풀로 광흥창의 다른 서리를 지목한 것은 그렇게 미리 틀어쥐고 있던 정보가 있어서겠지. 이런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나와 어사 나리뿐이겠지만.

“……좋아. 이쯤이면 됐다. 돌아가 봐라.”

그런 짐작이 끝났을 무렵, 어느새 우리와 거리를 두고 수하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충신이 손을 흔들어 그를 돌려보냈다. 이야기가 끝난 듯했다.

“행수 말로도 지나친 감록 처분을 받았다고 투덜거린 하급 관리들이 한둘이 아니라 한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광흥창에서 녹을 받아 갈 손이 모자란 처지의 잡관들에게 인력을 빌려주는 것도 여기 일이거든. 상업을 천대하면서도 양반이 운영하는 상관(商館)이라고 믿고 맡기는 꼴이라니 우습지만.”

수수료를 받고 녹봉을 대리 수령, 배달을 해주거나 가끔은 단기대출 비슷한 짓도 해주는 모양이었다.

가까운 자리에 위치한 광흥창으로 세곡을 운송하면서도, 소작료 같은 다른 명목의 쌀 역시 지방에서 한양으로 옮겨주고 품삯을 받고 있었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일은 이문이 헐한 대신 관리들에게서 들어오는 정보가 훨씬 고급이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충신이었다.

“행수가 대충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혜민서, 도화서, 사역원…… 끗발 떨어지는 관청만 가득이구만.”

“세운 가설이 점점 뚜렷해집니다.”

“어쩔 테냐. 원래대로라면 광흥창에서 늦은 녹봉을 수령해가는 관원들에게 정보를 캘 셈이었는데.”

생각보다 녹봉을 깎인 자가 많았던 탓에 여기서 수집한 정보만으로도 가설을 굳히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이렇게 먼 길을 나온 마당에 그냥 돌아가기도 아쉬웠다. 사대문이 닫히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을 터였다.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 보는 건 어떻습니까?”

※ 작가의 말

1. 이날 안 선생과 좌명, 충신 셋이 걸은 거리는 종로 근방에 위치한 북촌에서 출발해 덕수궁 아래 서소문을 통과, 아현동(애오개)을 넘어 현재 마포대교 자리인 마포나루까지 다다르는 긴 거리입니다.

다리가 아플 만하죠.

2. 광흥창은 관리의 녹봉으로 쓰일 세곡을 저장하던 창고입니다.

현재 쓰이는 광흥창역과 그 주변 창전동(倉前洞)이라는 지명은 이 광흥창에서 유래했습니다. 창전동은 창고 앞의 마을이라는 뜻이죠. 근방에 가면 광흥창 터를 표시하는 비석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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