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범 내려온다
“암행어사 출또야!”
“어사 나으리 출또랍신다!”
내 뒤에 서서 문 앞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역졸들이 신나게 뛰쳐나갔다. 맨 앞에 앉아있던 양반놈의 젓가락에서 지짐 하나가 툭 떨어졌다. 마치 동헌마당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마패다!”
“으아아아! 범이다! 범이 내려왔다!”
“정신 나갈 것 같네!”
“대낮에 호환이라니 이게 무슨 일이냐!”
시간은 오래 멈춰있지 않았다. 풍악이 울리던 동헌마당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상상도 못 했을 연출에 다들 혼이 나간 모양이었다.
호피를 뒤집어쓴 채 김 갑사와 선두를 달리는 내 모습을 보고 몇몇은 헛소리를 해대며 거품을 물었다. 얼굴을 온통 뒤덮은 호피에서 나는 노린내가 코를 찌르고 있었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옷이 찢어지는 소리, 상이 엎어지는 소리, 쇠붙이가 떨어지는 소리, 사기그릇이 깨지는 소리. 온갖 것이 뒤섞여 나는 소리만으로도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다들 들어라! 얌전히 투항하는 자는 건드리지 마라! 저항하는 자는 뜨거운 맛을 보여줘도 좋다!”
“어사 나으리의 명이다! 철저히 시행해라!”
“옛!”
고개를 떨구고 체념하는 자도 있었지만 살길을 찾아 달려 나가는 자가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몽둥이를 든 역졸들이었다. 역졸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가득한 것이 쌓인 감정이 어지간했나 싶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기생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울렸다. 난장판인 와중에도 유 서리는 기생들을 모아 한쪽으로 몰아넣고는 나머지 아녀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치우는 중이었다.
‘정의의 타이거 마스크 등장이다. 그지 깽깽이들아!’
마음 같아서는 양반 놈들의 면상마다 죽창대신 호쾌한 드랍킥 한방씩을 꽂아 넣고 싶었지만 겨우겨우 참고 있던 차였다. 대리지만 어사의 위신이 걸려있었다.
양반들을 두들겨 패는 역졸들 사이를 홍해처럼 가르면서도 몸이 근질거렸다. 빠따로 손바닥에 척 척 소리를 내며 간을 보기만 하는 것도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불이 붙은 내 눈에 들어오는 놈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자랑하던 비단옷이 꽁지 빠지게 뛰는 자의 꽁무니에서 펄럭거리고 있었다.
“자네, 어딜 가나?”
“사…… 살려주십쇼…… 끼엑!”
애원하는 척 하다 빈틈을 찾아 헐레벌떡 등짝을 내보이며 도망치는 익숙한 놈의 어깻죽지에 정의봉이 내려꽂혔다.
“아이고! 나으리! 살려줍쇼!”
“이렇게! 빌! 거면! 애초에! 그러지! 말았어야지!”
뒤이어 허벅지에 꽂힌 풀스윙에 우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은 놈은 단어 하나마다 몰아쳐지는 연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게 흙수저의 역린(逆鱗)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손잡이로 전해져오는 손맛이 훌륭했다.
‘이래서 조폭들이 빠따를 드는 건가?’
자빠진 비단옷을 역졸들이 질질 끌고 가더니 시뻘건 오랏줄로 꽁꽁 묶었다. 군데군데 빠따질에 옷이 찢겨 드러난 맨살에 들기 시작한 피멍과 오랏줄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쓰자마자 눈뜬 폭력성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숨겨진 본성을 감추고 산다고 하던가. 나도 모르던 하이드 박사의 존재에 소름이 돋았다.
“생명이 위험해지는 부위는 때리지 마라!”
“어사 나으리께서 위험한 부분은 치지 말랍신다!”
“으하하! 살려만 놓으면 된답신다!”
빠악
뻑
도망가려는 자의 입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부러진 이가 하늘을 날았다.
얌전히 오라를 받는 자는 적었다. 비교적 한산해 보이던 문으로 도망치려던 놈들은 마침 문을 지키고 있던 자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렀다. 샌드백을 두들길 때 나는 시원한 소리가 몇 번이고 울려 퍼졌다.
아직도 관아의 문이란 문마다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역졸들은 다시 한번 ‘암행어사 출또야!’를 외치며 도망치려는 자들에게 연신 방망이질을 해댔다.
방금까지 향락이 가득하던 동헌마당에는 맞고 깨지고 비틀리고 부러진 자들의 비명과 신음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이고! 사또 나리! 어떻게든 해주십쇼!”
“나졸들은 어딨느냐! 으악!”
“아이고, 나으리! 암행어사 소리를 듣고 대항할 나졸이 어딨겠습니까요? 하하하!”
김 갑사는 내 앞길을 막는 양반마다 팔을 비틀어 꺾고는 허리춤의 새끼줄로 제압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 솜씨가 귀신과도 같았다. 삿대질하던 손이 뒤로 꺾인 양반이란 작자들이 자존심도 모르고 무릎을 꿇는 모습에 속이 시원했다.
맨손으로 어른 남자들을 저토록 쉽고 빠르게 자빠뜨리는 것을 보니 김 갑사가 몇백 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도망갈 도둑 따윈 없을 것이었다.
“끄으윽…….”
양반 하나가 유난히 거세게 저항하자, 번개처럼 등 뒤로 돌아간 김 갑사는 재빨리 전완근을 목에 대고 팔을 십자로 걸었다. 목을 압박당한 양반은 금세 입에서 침방울을 부글거리며 쓰러졌다.
‘리어 네이키드 초크!’
방금 발언 취소다. 김 갑사가 몇백 년만 늦게 태어났으면 이종격투기 무제한급을 휩쓸어버릴 위대한 그래플러가 됐을 것이 분명했다.
***
그동안 양반들에게 당한 것이 많았던 모양인지 역졸들은 군기 대신 광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그동안 쌓였던 것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양반 놈들을 악귀처럼 윽박지르는 모습은 마치 지옥을 방불케했다.
역졸들은 다행히도 때리고 묶으면서도 저항하지 않는 자는 건드리지 말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었지만.
그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소리 지르고 있는 김 갑사와 유 서리 덕분일지도 몰랐다. 양반 몇몇은 이미 터진 머리통에서 흐르는 피를 뒤집어쓴 채 기절해 있었으나 별일은 없을 것이었다.
‘설마 남의 눈에는 나도 저렇게 보이는 건가?’
그러나 상황 판단을 위해 잠시 돌아온 이성은 금방 날아가 버렸다. 양 별감이 멀쩡한지 찾아보다가 동헌 구석에 앉아있는 그 옆으로 싸가지 없는 놈이 살금살금 자리를 벗어나려는 것이 딱 걸렸기 때문이었다. 다음 타겟이었다.
“이 새끼!”
“아이고! 어사 나으리! 제가 죽을죄를 지었시유!”
“그럼 죽어야지!”
내 지시로 역졸들에게 끌려나온 뻐드렁니는 손이 발이 되게 빌고 있었다. 주위를 가득 채우는 매타작 소리에 정신이 반쯤 나간 듯했다.
불쌍해 보이려 애를 쓰고 있었으나 이미 화로 가득 차 있는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레그 킥까지 섞어 임팩트 파워를 한계까지 끌어올린 어퍼 스윙이 빌고 있던 형방의 팔뚝에 작렬했다.
“아이고! 나 죽네!”
“그거 한 방 맞는다고 안 죽어!”
“아이고! 나으리! 달라시는 건 다 드릴 테니 살려만 주십쇼!”
“그래? 그럼 내놔 보든가.”
팔뚝을 잡고 뒹굴던 놈은 숫제 내 발목을 붙잡고 매달리며 빌어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거래를 시도하는 꼬라지가 추하다 못해 역겨웠다.
빠따에 맞아 일그러졌던 놈이 평소의 간사한 얼굴을 다시 드러내며 소매를 뒤지는 모습을 보는 이마에 핏줄이 불뚝 섰다.
“드……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뻐드렁니의 손에 들려있던 불룩한 주머니를 걷어찼다. 주머니에서 은자와 엽전 몇 개가 빠져나와 하늘을 날았다.
어사도 노잣돈을 은 조각으로 들고 다니는데, 그 커다란 은덩이를 평소에도 들고 다녔단 말이지. 평소에 해먹은 것이 증거로 드러나니 이가 바드득 갈렸다. 괘씸죄 추가다.
“아이고! 아이고!”
“이거! 모으느라! 몇 명을! 빨아! 먹었냐!”
발로 걷어차인 뻐드렁니의 등짝에 정의봉이 수차례 내리꽂히자 놈은 하늘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엄살인 게 분명했으나 시끄러워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눈물 콧물이 흙과 뒤범벅이 된 것으로 얼굴이 뒤덮인 뻐드렁니는 동헌마당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야, 형방.”
“예! 예!”
“대가리 땅에 박아.”
“예?”
“상투가 땅에 짓이겨지게 박고 팔은 뒷짐, 엉덩이는 하늘을 향해 든다. 무릎 땅에 닿으면 그날이 네놈 제삿날일 줄 알아.”
조선 최초의 원산폭격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남원폭격이 되려나.
그 와중에도 지시를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던 뻐드렁니는 배트가 바람 찢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자 재빠르게 대가리를 땅에 박았다.
“니 엉덩이 자랑하고 싶냐?”
“아닙니다!”
어느새 흘러내린 허리춤을 뒷짐을 진 채로 필사적으로 올리려 몸부림치며 뻐드렁니가 대답했다. 매타작을 당하고 군기가 바짝 들었는지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말은 훌륭한 서울말이었다.
“결정해라. 딱 세 대만 맞고 사또 새끼 어디로 튀었는지 불고 얌전히 묶일 것인지, 사또 새끼 튄 자리 불 때까지 개처럼 맞을 건지.”
“그기! 그기! 부사가 방금 동헌 안으로 뛰어 들가는 걸 봤쥬! 담장이 높아 그 돼지는 넘지 못할거구만유!”
“이 상황에서도 대가리는 빨리 도는구나? 기특하구만.”
사또놈이 동헌 안에 있다면 이미 독 안에 든 쥐였으니 천천히 요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대가리를 박은 채 부들거리며 내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뻐드렁니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 세 대로는 턱도 없지만 약속한대로 딱 세 대만 친다. 나머지는 국법대로 처리한다. 달게 받아라.”
“예! 예!”
몇 번을 후려친 탓에 손에 밴 땀을 호피에 문질러 닦았다. 지금까지 까먹고 있었는데, 도포 위에 호피까지 걸친 탓에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송진이 발린 손잡이를 다시 한번 지그시 쥐고 타격 자세를 고쳐잡았다.
“이건 네 놈이 신분도 잊고 양 별감 어른에게 깝죽댄 몫.”
“아이고!”
“이건 네 놈이 사또와 붙어먹은 덕분에 고통받은 자들의 몫.”
“아악!”
“이건 네 놈이 골수까지 빨아먹은 남원 백성들의 몫!”
“그건 당연한 관행……. 아아아악!”
인생 최대의 파워로 휘두른 빠따가 뻐드렁니의 엉덩이에 꽂혔다. 놈은 앞의 두 대는 버텨냈으나 마지막 한 대는 견디지 못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기절한 뻐드렁니의 궁둥짝에서는 피가 터져 흐르고 있었다. 똥이라도 지린 모양이었는지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지막까지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아직 정신을 다 차리진 못했던 것 같지만.
숨 쉬는 것이라도 확인해 볼까 했더니 뻐드렁니의 이빨 사이로 흘러나온 얕은 신음은 그럴 수고마저 덜어주고 있었다. 내 의도라도 알아챘는지 뻐드렁니의 가슴에 귀를 들이댄 역졸 하나가 나를 보고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김 갑사.”
“예. 나으리.”
“여기 마당에 남아있는 양반들, 자네가 책임지고 처리하게. 난 할 일이 있으니.”
손바닥이 쓰라렸다. 도구라고는 잡아본 적이 없었는지 두껍지 않은 손바닥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멀쩡한 손끝으로만 잡고 있어 긴 배트는 땅에 질질 끌렸다.
“알겠습니다요. 남원 부사는 나으리가 직접……?”
“그럴 셈이네. 역졸 반은 나를 따라 동헌을 포위하고 나머지는 뒷수습을 하라고 명하게.”
“역시 나으리는 무관이 어울립니다요.”
“……또 그 소리. 유 서리는 내 뒤를 바짝 따르게.”
“예.”
동헌마루에 오르자 떨겅, 떨겅, 땅에 끌리던 배트가 계단과 마루에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소리가 청명했다. 잘 마른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더니 노인장이 장사를 정직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술상들이 발아래에 뒹굴고 있었다. 미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 높으신 양반님네들도 발아래에 머리를 조아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방금 형방의 궁둥짝이 곤죽이 된 것을 보았을 터였다. 언제 몽둥이가 자신의 머리에 떨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길래 진작에 잘하시지 그러셨소들.”
사또의 상에서 지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닭다리살이었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전처럼 부친 모양인지 기름의 맛이 진했다. 아까 메주와 돼지 성기를 씹을 때부터 눈여겨보던 음식이었다. 한이 풀리는 듯했다.
“다들 얌전히 오라를 받으시게. 처분은 국법에 따라 정할 것이니.”
뒤를 따라 마루에 오른 역졸들이 넋이 나간 양반들을 하나씩 새끼줄로 묶고는 마당으로 끌어내렸다. 어찌나 사람이 많았던지 오랏줄의 수도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들을 뒤로 하고 마루와 연결된 장지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쾅.
김 갑사의 흉내를 내어 걷어찬 문짝은 쉽게도 날아갔다. 드러난 동헌 내부에는 두꺼비처럼 생긴 남원 부사가 관기의 허리를 틀어쥐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계집질이었다.
떨그렁. 던져버린 정의봉이 바닥을 굴렀다. 부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를 따르던 유 서리에게 서찰 하나를 소매에서 건넸다. 임금의 친필이 담긴 사목(事目)이었다. 유 서리는 서찰을 향해 큰절을 천천히 올리더니 두 손으로 서찰을 받들고는 내용을 천천히 읊어내려 갔다.
“……하여 경을 호남 암행어사로 명하니 그 소임을 다하여라.”
두꺼비의 면상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느새 소매 틈에서 꺼내어진 마패가 내 손아귀에서 빛나고 있었다.
한편, 어사가 호랑이로 변해 휘두르면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길이 석 자 서 푼의 도깨비 방망이를 틀어쥐고 백성들을 괴롭히던 양반과 못된 아전들에게 물리치료를 행했다는 황당무계한 소설은 그날 이후로 남도 땅에 널리 퍼졌다. 그날 관아에 있던 자가 기록해 퍼뜨린 것이 분명했으나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