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사형을 각오할 죄
“국법을 어긴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정말로 뜬금없는 소리였다. 아니 국법을 어기는 자들을 징벌하러 다니는 어사가 그걸 어기자고?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눈만 끔뻑거리고 있던 차였다.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내 병세가 좀 깊은 모양일세.”
“그래도 곧 털고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래. 자네 말대로 언젠가 낫긴 낫겠지. 이렇게 물을 쏟아냈는데도 정신이 또렷한 것을 보면 말일세.”
확실한 배합비를 기억하지 못해 반신반의하며 만들었던 경구수액, 아니 이제 보수탕이라 불러야 할 물건은 어사의 말을 들어보면 성공적으로 이 시대에 재현된 것 같았다.
어사는 곧 멀쩡해질 것이었다. 조그만 기쁨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정신만 그러할 뿐 몸은 만신창이나 다름이 없네. 내가 다친 부위 또한 자네가 잘 알고 있겠지.”
“예.”
깨끗한 것으로 바뀌었으나 여전히 부목과 천이 칭칭 감겨있는 어사의 다리와 호랑이 발톱이 스쳐 갔을 가슴팍으로 눈길이 옮겨갔다. 부상을 말하고 있는 어사의 표정은 오히려 평온했다.
“자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네만, 스승님댁에서 한 번 더 정신을 잃은 이후로 하초(下焦, 허리 아래)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네.”
“나리!”
“그렇게 놀라지 말게. 그전까지도 어떻게 걷는 것까지만 가능했을 뿐, 멀쩡한 상태는 아니지 않았는가.”
너털웃음을 짓다가 사레가 들린 어사는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머리맡에 놓인 자리끼 그릇을 들었다.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니 조 노인이 보수탕을 꾸준히 만들어 채워놓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허나, 유 서리가 따로 보고한 바에 따르면 시간이 없네. 자네도 보고에 그렇게 적었을 것이야. 맞는가?”
“예. 역참의 역졸들이 이미 어사출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유 서리에게 남원 주변 역참을 돌고 오라고 명을 내렸을 적에는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마칠 자신이 있었네만, 이 꼴로는 마패를 들고 남원부 관아를 박차고 들어서기는커녕 스승님 댁 대문조차 벗어나기 힘겹네.”
“곧 차도가 있으실 겁니다.”
애써 어사를 위로하려 했지만 굳게 닫힌 어사의 입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 노인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염병에 걸리면 살아나더라도 최소 삼칠일, 그러니까 삼 주는 몸져눕는다 했다. 그 긴 기간에 비하면 어사가 증상을 보인 후로 지나간 시간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동안 어사가 보인 행보가 도리어 이상할 지경이었다. 이 사람이기에 그나마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내 몸은 내가 더 잘 아네. 아마 단기간에 운신하기는 어려울 걸세.”
“그런 말씀을 제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지금 유 서리를 불러 역참으로 보내 출두를 철회하고 입단속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자네라면 태공망(太公望)의 고사를 알고 있겠지.”
태공망 여상이 주나라의 재상으로 출세한 후 자신을 버렸던 전처가 찾아오자 물그릇을 엎고는 흘린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고 꾸짖었다는 옛 이야기. 굳이 한수의 기억을 꺼내지 않더라도 알고 있는 지식이었다.
그렇다면 어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내가 주막에서 떠올렸던 깃털 이야기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세란 말씀이십니까.”
“그 놈의 범, 지겹긴 한데 맞는 말일세. 자네 말대로 남원부 안에서 어사 출두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더 빠르더군.”
어사가 베개 옆에서 서찰을 한 장 빼서 건넸다. 겉봉에는 양 별감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언제 연락하신 겁니까?”
“어젯밤. 내가 스승님 댁에 묵고 있다는 것을 안 그쪽에서 먼저 서찰을 보내왔네. 스승님과 양 별감이 친척 사이인 것은 알고 있을 것이고, 내 나름대로 판단한 결과 그가 최적의 정보원이라는 판단을 내렸네. 계속 읽게.”
몸에 남은 기억은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읽는 것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편지 초반에 으레 적힐 미사여구를 건너뛰고 읽기 시작한 양 별감의 서찰에는 남원의 현 상황에 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었다.
“유향소 좌수를 비롯한 별감들이 부사와 결탁…… 양 별감은 백성들의 재물을 수탈하는 일을 반대하다 관아와 유향소 출입이 금지…… 그런데 이 마지막 줄에 적혀있는 말은 설마…….”
“운봉현 양 진사 그 사람도 꽤나 능구렁이가 아닌가? 내가 그의 집 별채에서 깨어났을 때 몇 가지를 물으며 사람을 재보는 눈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양반인 줄은 몰랐네.”
양 별감의 서신 끝에는 친척에게 어사일지도 모르는 길손을 만나 보냈으니 협조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적혀있었다.
세상에. 과할 지경이었던 운봉현에서의 친절이 그제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침 문안을 여쭈러 간 자리에서 이글거리던 양 별감의 눈빛에도 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제게도 묻지도 않은 남원부 사정을 계속 말해주길래 그저 입이 가벼운 양반인 줄만 알았습니다.”
“완전히 알아챈 것 같지는 않고 확률에 걸어본 것에 불과하겠지만 말일세. 향반들을 무시하면 안 되네. 낙향해있다고는 하나 품은 발톱은 여전히 날카로운 자들이야.”
어사가 이것은 방금 들어온 서신이며 아직 답장을 하지 않은 것이라 덧붙이며 서찰 한 장을 더 건네주었다. 한 번 더 보수탕이 어사의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은…… 관아에도 소문이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지금은 부사가 서쪽 길목에 포졸을 배치하고 안심하고 있으나 언제 경계가 강화될지 모른다…… 벼르던 생일잔치가 끝나면 경계가 강화되리라 사료된다…… 정말 시간이 없군요.”
“그래. 이해가 빠른 자네라면 금방 결론을 낼 거라 생각했네. 자, 이제 내가 양 별감에게 어떤 답장을 쓰리라 생각하나?”
“예?”
뜬금없는 질문에 씽씽 돌아가던 생각이 멈췄다. 어사의 시선이 다시 한번 내 얼굴 구석구석을 훑고 있었다.
“아까 내가 국법을 어겨줘야겠다고 했던 말, 아직 잊지는 않았겠지?”
“예. 아직 어떤 말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자네 조선 땅에서 사형을 언도받는 죄 중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가?”
어사는 계속해서 선문답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치 짙은 안개 속을 걸으며 한 줄기 길을 찾고 있는 느낌이었다.
“살인, 반역…… 그리고 또 있습니까?”
“사칭했을 때 참형(斬刑)에 처해지는 죄도 있다네. 어떤 관직을 말일세.”
“예?”
답을 찾아 기억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날아왔다. 빙긋 웃으며 긴장을 애써 풀어주고 있는 어사의 표정이 얄미웠다.
뭔가 의미가 이어질 듯 말 듯 깜빡거리고 있는 머리 탓에 그 와중에 턱이 내려가는 것도 잊고 있었다. 어쩐지, 아까 내가 한 몫 거들 수도 있다고 했을 때 웃음이 새어 나온 이유가 있었네.
“설마, 지금 그 말씀은…….”
“지금까지 내가 봐온 자네라면 할 수 있을 걸세. 내가 정신을 잃었을 때도 자네가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못 합니다.”
“서계를 읽어보면 알 수 있네. 자네 속 역시 남원의 상황을 보고 부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이 일을 맡지 않으면 불행해지는 것은 남원 백성들일세. 그래도 맡지 않겠다는 말인가?”
어사 나리, 당신은 모르겠지만, 겉으론 멀쩡한 선비로 보일지 몰라도 저는 평범한 대학생이라니까요.
***
‘하, 씨X…… 내가 왜 여기에?’
사또의 생일날, 결국 남원부 관아 앞에 서 있는 것은 어사가 아니라 나다.
심장은 터질 듯이 두근거린다. 오른쪽 소매 속에서 조 노인이 얼굴을 가리라며 빌려준 부채가 느껴진다.
‘물론 내가 내린 명을 따르는 것이니 들켰을 때 책임은 내가 질 거네. 자네도 유배형 정도는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어사는 공포스러운 소리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말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간곡한 부탁을 무 자르듯 씹어버릴 수가 도저히 없었다.
현대에 살고 있던 나였으면 당연히 거절했겠지. 내 한 몸도 못 구하는 주제에 누굴 구한다고? 코웃음을 치며 나 혼자 잘 살기에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깃들어 있는 몸 탓일지도 몰랐다.
어사의 명을 두 번째로 거절하려던 때였다. 막 입을 열려는 내 눈앞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다.
광한루에서 애기씨들이 그네 뛰는 모습을 신나게 묘사하다 올해는 부사 탓에 아무도 그네를 뛰지 않았다며 시무룩하던 비쩍 마른 행인.
사또가 바뀐 이후로 장사는 하나도 안 되고 뜯어가는 놈만 늘어났다며 울상이던 주모.
아전들 등쌀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던, 대장간 불에 반쯤 눈 먼 대장장이.
여유로운 시절이었으면 유쾌했을 것이 분명했던, 퉁명스러운 말투로 방망이를 깎던 노인.
그들의 얼굴이 내 등 뒤를 밀어주고 있었다.
내가 어사였으면 좋았을 것이라던 노인의 말이 머릿속을 왕왕 울리고 있었다. 그 얼굴들 앞에서 차마 고개를 도리질 칠 수가 없었다.
‘그때 못한다고 확실하게 말했어야 했어.’
긍정도 부정도 않고 말없이 눈을 감고 버티고 있자 어사는 먼저 붓을 들더니 일필휘지로 서찰을 완성했다. 옆방에서 대기하고 있을 유 서리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생전 본 한자 중 가장 잘 쓴 글씨가 백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유 서리는 왜……?’
‘답장을 부쳐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라도 있는가?’
여전히 어사의 얼굴에는 빙글거리는 미소가 가득 돌고 있었다. 봉투 안에 적힌 편지의 내용이 짐작이 갔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장난기 가득한 어사의 얼굴에서 이팔청춘 시절 몽룡의 얼굴이 슬며시 스쳐지나갔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많은 걸 바라지 않네. 내가 오늘 알려주는 것만 머릿속에 확실히 새기고 가면, 내가 아는 자네라면 훌륭히 해낼 수 있을 것일세.’
‘……라고 말해놓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행동지침과 조정 대신들 명단을 스파르타식으로 달달 암기시켰지.’
그동안 굴렸던 학생들에게 죄책감이 조금 들 정도로 어사의 강습은 엄했다. 수백 년 후 같은 땅에서 암기식 교육이 주가 되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을 정도로.
‘어허, 내가 복시(覆試) 공부를 할 때는 안 그랬다니까. 이 바늘 맛을 보기 전에 눈꺼풀을 올리지 못할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 안 잡니다.’
꼰대. 틀딱.
온갖 욕설이 머릿속을 흔들고 지나갔지만 입 밖으로 나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이 정상이 아닌데도 함께 꼴딱 밤을 새고 있는 어사 앞에서 불만을 내비치는 건 사람새끼가 할 짓이 아니었다. 졸면 허벅지를 찌르겠다는 바늘이 무섭기도 했고.
덕분에 옆구리를 쿡 찌르면 외운 내용이 좔좔좔 흐를 정도가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연습과 실제는 달랐다.
‘타석에서도 이 느낌이면 삼진 아니면 홈런이었는데.’
홈런이어야 했다. 긴장으로 손끝이 차가워진 것 같아 무심코 소매를 찾아 들어간 오른손에 마패와 유척, 사목(事目), 그리고 임금의 어찰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을 내주었다는 것은 어사 역시 목숨을 걸었다는 뜻과 같았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소매 안에서 머리를 비우고 움켜쥔 손안에는 연습대로 마패가 제 모습을 한 채 꽉 잡혀 있었다.
동강 난 마패를 티 안 내게 조각을 맞춘 채로 소매에서 꺼내는 연습을 수없이 한 결과였다. 김 갑사처럼 대장간에서 그걸 고쳐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글러브를 안 보고 그립을 잡고 공 빼는 것과 다를 것도 없었지.’
이 와중에도 야구 생각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려 고개를 도리질 치는데, 어느 골목 사이로 김 갑사와 유 서리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역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 서리가 소집해온 역졸들은 사복을 입고 신호를 기다리며 골목 곳곳에 흩어져 있을 것이었다. 사또 놈의 생일이라 붐비는 관아 앞이 그들의 기척을 지워주고 있었다.
어사의 지시를 받은 양 별감은 내 바로 앞에서 줄을 서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에 신뢰가 생기도록 맞장구를 쳐 주고 증언을 해 주도록 말을 맞춰놓은 상태였지만 쿵쾅대는 심장은 멈출 줄을 몰랐다.
김 갑사는 내가 관아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재빨리 양 별감의 집으로 뛰어가 어사를 지게에 태워 올 계획이었다. 혹시나 예상외의 사고가 터졌을 때 수습하려면 어사가 필요했다. 사고가 터졌을 때를 생각하니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하지만 그 분위기를 깨버린 것도 김 갑사였다. 그 큰 덩치가 눈치 없게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으니까. 그의 머리에 달랑 얹혀있는 초립은 오늘따라 더 우스꽝스러웠다.
풉. 새어나간 웃음과 함께 긴장도 날아가 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유 서리가 그의 옆구리를 꾹 찌르는 것이 보이더니 둘의 모습은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다음 손님은 성명을 말씀허씨오.”
“앞에 들어가신 별감 어른의 친척, 안한수라 하오.”
양 별감이 미리 준비한 초대장을 건네주는 손은 떨리지 않았다. 입구를 지키는 포졸의 손에 들린 손때 탄 육모방망이가 볕을 반사해 빛나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관아의 문을 지나자마자 오랜만에 맡아보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그에 반응하듯 내 뱃가죽도 울리기 시작했다.
※ 작가의 말
실제로 숙종 시기, 평안도에서 어사를 사칭했던 이천재라는 자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당연히 잡혔고, 가산은 적몰당하고 가짜어사 이천재는 참형에 처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