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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119화 (119/121)

119화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압도적인 힘을 이용해 난타전으로 끌고 갔을 때까지만 해도 상대는 빈사 상태였다.

그러나 그저 피라미라고 생각했을 뿐인 회귀자 두 명에게 붙잡혀 움직임을 봉인 당한 것은 그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심장을 내게 줘? 불로불사의 힘을……?’

자신의 심장을 뽑은 거구의 사내가 쓰러지고 난 뒤.

몸 안에 들어온 심장은 용솟음치는 힘을 선사해줬다.

넘치는 힘.

그러나, 불안한 힘.

왜 사내는 봉인까지 시켜 놓고 자신에게 불사의 힘을 준 것일까?

아니, 이렇게 쉽게 줄 수 있던가?

수많은 의문이 길가메시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파앗-!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빛이 그의 눈을 가렸다.

이내 눈을 뜬 그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경악했다.

푸르른 기운이 물씬 풍기는 숲이 모습을 드러낸 것.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나무는 어찌나 거대한지 마치 바벨탑과 같았고, 처음 보는 동물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그때였다.

“어때? 신기하지?”

“……!”

“왜 그렇게 놀라? 불사의 힘을 가지고 싶다면서?”

“무슨 꿍꿍이지? 이곳은 또 어디고?”

“이야~생각보다 빨리 차분해지네, 역시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닌가 봐?”

비꼬는 것일까?

아니, 거구의 사내 로니의 말은 비꼰다고 볼 수 없었다.

정말 순수한 놀람을 표현할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길가메시는 그런 로니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재차 질문을 건넸다.

“이곳은 어디지? 그리고 넌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응?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 강제로 계약을 했거든. 내가 내주는 시련을 네가 극복한다면 내 모든 힘을 온전히 주기로.”

“그래서 이게 시련이다?”

“그래.”

“우습군, 이런 곳으로 이동을 시키면 내가 못 버틸 것으로 생각했나?”

“응.”

“…뭐?”

너무 당연하게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 대답한 사내의 말에 길가메시는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어찌나 황당했는지 화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로니는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여긴 지구거든. 네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있었던 곳.”

“……?!”

“네가 최초의 왕이라고 했지? 그런데 기록되지 않은 최초의 왕이 있었다고 하면 너는 믿을 수 있을까?”

“그, 그게 무슨.”

“죽지도 잘 늙지도 않는 왕을 바라본 인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들은 너무나 쉽사리 병들고 늙어 가는데 말이야.”

길가메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기록도 없는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살아왔다는 뜻.

그때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 로니는 길가메시가 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묵묵히 내뱉을 뿐이었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아니, 신은 더욱 완벽한 존재일 것이다. 저자는 신의 아들일 수는 있지만 신은 아니다.”

“그러면 가짜 신들이 창조된 것이…….”

길가메시의 질문에 로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닐 거야. 내가 아니었더라도 인간들은 믿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기에 신이라는 존재를 상상하고 만들어 냈겠지.”

“그 말을 내게 믿으라는 것이더냐!”

“그래서 데리고 왔잖아? 내 기억 속으로 말이야.”

“…….”

“이제부터 아주 기나긴 시간이 흐를 거야. 너도 혼자 있는 고통이 어떤지 한번 느껴 봐.”

로니는 마지막 말을 아꼈다.

사실, 혼자 있는 고통은 어느 정도 참을 만했다.

가장 참기 힘들었던 고통은 그 긴 시간을 인내하고 참아 내어 찾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과 그 후예들이 모두 늙어 죽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잔혹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늙고 병들어 가는 육체는 죽음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세상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그 멸망까지 모두 지켜봐도 죽음은 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불사는 축복이 아닌 하나의 저주와도 같았다.

그저, 환생한 가족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과 평범하게 살다 늙어 죽고 싶은 것이 로니의 꿈이었다.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렸지만…….

기억을 전해 주는 것은 그 감정까지 전해 주는 것.

로니가 느꼈던 그 고통은 길가메시도 똑같이 받는다.

절망하는 길가메시를 바라본 로니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뭐, 완벽한 죽음은 아니더라도 녀석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이렇게 사라지는 것도 나름 좋은 죽음이겠지.’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갈라지며 피 칠갑을 한 사내가 서서히 내려왔다.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가 외부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조금 전까지 좌절하고 있던 길가메시가 하늘로 뛰어올랐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내는 마치 그를 맞이하듯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이런 미친!”

“크큭, 역시! 내가 운이 더 좋았던 모양이군!”

회색 머리의 사내가 분명했다.

그가 정신 공간에도 침입할 수 있다는 사실과 저런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자신을 구원하러 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공간에서 나가면 불사의 힘이 자신의 몸에 반겨 줄 것이다.

그렇게 염원하던 최초의 왕이자 마지막 왕이 되는 꿈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렇게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하늘로 뛰어오른 길가메시를 향해 피 칠갑을 한 사내가 다가가더니 마치 그동안 고생했다는 듯, 그를 꼭 끌어안았다.

‘이자가 이런 성격은 아닐 텐데……?’

의문과 함께 제야 사내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 유다?”

“요한이라고 합니다.”

“……!”

이내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하는 둘.

날개를 잃은 새가 땅으로 떨어지듯 순식간에 그들이 내려오자, 하늘에 열렸던 틈이 사라졌다.

로니는 요한을 보고는 꾸짖었다.

“네놈 역시 꿈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 왜 이곳에 온 것이야! 또 어떻게 온 거고!”

“제 생명을 바쳤습니다.”

“이, 이런… 미친놈이!”

“제가 시작한 일은 제가 끝마쳐야 맞지 않겠습니까?”

“이런 우라질 놈아…….”

이런 곳에 쓰기에는 너무 아까운 목숨이었다.

그것도 로니 혼자서 희생하면 되는 시련이었기에 자신을 희생해 이곳에 떨어진 요한을 바라보는 로니는 씁쓸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한은 사람 좋은 미소로 로니에게 말을 건넸다.

“돌아가시지요.”

“뭐?”

“원하시던 죽음이 이런 것은 아니잖습니까?”

“아니, 죽는 건 그냥 죽는 거야! 죽음에 원하는 방식이 어디 있다는 말이야!”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 그분께서 찾으십니다.”

요한은 그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보이며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새하얀 문이 나타나 로니의 영혼을 집어삼켰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길가메시는 서둘러 그 문을 향해 걸어가려 했지만, 마치 바닥에 발이 붙은 것처럼, 그 강대한 힘으로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윽고 로니의 모습이 하얀 문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 빙긋 웃은 요한이 그의 손을 붙잡고는 말을 건넸다.

“제가 함께 있어 드리지요.”

“이, 이런 미친 새끼야!”

길가메시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 * *

격렬한 싸움이었다.

태초의 불의 거인은 너무나 강력했고, 꺼지지 않는 불은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과거와 다른 것은 승리의 검이 그들의 곁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움직여 거인을 베는 승리의 검은 훌륭하게 수르트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다가가지 못하면 다가가지 않으면 되는 것.

성진아가 승리의 검을 이용해 수르트의 시선을 돌린 사이 원래의 역사라면 토르와 동귀어진을 해야 했을 요르문간드를 헤라클레스와 함께 처치한 것.

죽은 요르문간드의 시체를 토르와 함께 하늘로 들어 올린 뒤 오딘의 궁니르를 이용해 몸을 반으로 찢어 버리자.

승리의 검과의 전투에 정신이 팔린 수르트의 머리로 바다를 삼킬 수 있는 뱀 요르문간드의 피와 살점이 떨어져 내렸다.

그 충격으로 승리의 검이 부서지고 아스가르드 역시 반파되었지만, 라그나로크의 최종 승리자이자 신들을 멸망시킨 수르트 역시 쓰러져 내렸다.

바다를 통째로 뒤집어 놓은 것처럼 쏟아지던 피는 거의 말라 있었다.

수르트가 거센 불을 내뿜어 떨어지는 요르문간드의 살점과 피를 그대로 태워 버렸던 것.

그러나 결국 주변에 태울 것이 없어진 수르트는 자신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불은 불이란 것인가… 자기 자신마저 태워 버렸군.’

쓰러진 수르트의 목을 벤 헤라클레스는 요르문간드의 피를 뒤집어써 피 칠갑이 된 자신의 몸을 걸레처럼 변한 헝겊으로 닦으며 말을 건넸다.

“후우… 꼴이 말도 아니군.”

“뭐…그래도 처리는 했네요.”

“이제 하나를 넘었을 뿐이야.”

“이미 라그나로크는 끝난 거 아닌가요?”

“나는 포기를 몰라.”

“네.”

“그런데, 내 성격이 누구를 닮았을 거 같아?”

“그건… 아.”

성진아는 말을 아꼈다.

그의 말은 제우스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늘을 올려다보자 사탄과 기묘한 대치를 이어 나가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제우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진짜 시련은 저쪽이었나 보네.’

성진아와 헤라클레스가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힘겨운 싸움을 마친 애꾸눈의 현자 오딘을 필두로 이미 죽었어야 할 신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저기 그을리고 베이고 심지어 사지가 멀쩡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들은 승리했다.

예언된 멸망을 비켜 나간 것.

환호할 법도 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사뭇 어두웠다.

그때 오딘이 앞으로 나서며 헤라클레스와 성진아에게 말을 건넸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네, 오딘 님.”

“하지만, 진짜 싸움은 저쪽이겠지.”

“…….”

헤라클레스는 차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아스가르드에 올림포스의 신들이 나타나는 것은 처음이었고, 뒤바뀐 과거로 인해 어떤 미래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때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린 오딘이 그에게 말을 건넸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리고, 네게 이것이 필요하겠지.”

“이건…….”

오딘이 건네준 것은 거대한 망치였다.

천둥과 번개를 부르는 토르의 신물 묠니르.

아스가르드가 위험에 빠졌을 때 몇 번이고 구해 냈던 그의 힘을 상징하는 물건을 헤라클레스에게 건네준 오딘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패배할 것이다.”

“…….”

맥 빠지는 소리였다.

싸움을 하러 가는 장수에게 패배할 것이라 말하는 군주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성진아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오딘에게 따지러 들려고 할 때였다.

“하지만, 우리의 하늘은 패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우리의 하늘은 그냥 다루기엔 너무 거칠거든.”

말을 마친 오딘은 허허로운 웃음을 지었고,

묠니르를 손에 쥔 헤라클레스는 이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묠니르에 담긴 것은 번개를 뿜어내는 힘이 아닌 아스가르드의 하늘에서 날뛰는 번개를 제어하는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았지만, 그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상대는 제우스.

자신의 아버지이자 최고의 신 중에 한 명이 아니던가?

크게 숨을 내쉬어 준비를 마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다가가 외쳤다.

“제우스! 당신의 아들 헤라클레스가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헤라클레스의 도전.

그 도전장을 받은 제우스는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더니 대답했다.

“묠니르라… 고작 그런 쇳덩이 하나 들었다고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느냐? 멍청한 아들아.”

“아니, 이걸 들기 전에도 당신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재미있군.”

제우스가 거대한 몸을 일으키자 그 위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압도적인 존재감.

괜히 자신이 올림포스 최고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엄청난 위압감을 뽐낸 제우스를 바라보던 헤라클레스는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역시나, 역사는 반복되나 봐.”

“네놈이 내게 패하고 아스가르드 역시 진정한 라그나로크를 맞이할 것이라는 역사 말이더냐?”

“아니, 아버지를 죽이고 최고신의 자리를 차지한 아들이 있는 패륜의 역사 말이야.”

“……네놈이 감히.”

“나는 당신을 뛰어넘어서 그 저주받은 역사를 끊을 거야. 마지막 패륜아로 남지 뭐.”

크로노스와의 일화를 능청스럽게 말한 헤라클레스의 도발에 제우스의 몸이 번개로 변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르릉-!

대지를 진동시키는 거대한 전류가 헤라클레스를 향함과 동시에 묠니르에 휘감긴 거대한 뇌운이 제우스를 덮쳤다.

쾅-!

한 명의 신과 한 명의 인간의 마지막 싸움이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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