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최초의 인간은 누구인가?
혹자는 아담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원숭이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진화종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흙으로 빚었건 다른 물질을 이용해 창조했건 어찌 되었든 최초가 누구인가?
이것은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이 없다.
서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신들조차도.
‘과연 누가 최초로 인간을 탄생시켰을까?’
라는 질문에 확답은 내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러한 상황을 여러 번 지켜본 헤라클레스는 자신을 최초의 인간이라 말한 로니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로니가 최초의 인간이라고? 그러면 로니를 창조한 신은 누구지?’
그에겐 물어볼 것이 너무나 많았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떨쳐 내기 전에 연달아 뇌를 강타하는 충격에 헤라클레스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니,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헤라클레스였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당신… 아니, 네가 최초의 인간이라면 어떻게 생겨난 거지?”
“글쎄? 세상을 창조한 신이 우연의 신이라면 그가 나를 창조한 것이겠지?”
너무 태연하게 대답하는 로니를 바라본 헤라클레스는 더욱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우연의 신이 누구일까?
헤라클레스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신이 하는 일에 우연은 없다.
신은 전지전능하다.
그리고 전지전능이 의미하는 것은 모든 세상일을 자기 뜻대로 관장할 수 있다는 뜻.
즉, 어떠한 일이 잘될 수 있게 축복을 내려 주는 행운의 신과도 달랐다.
그가 아는 세상 어느 곳에도 우연의 신이라는 존재는 없다.
로니의 말은 인간은 우연히 생겨났다는 뜻과 일맥상통하기에 그 어떠한 신도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다는 말과 똑같았다.
헤라클레스는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 어떤 존재도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겨났을 뿐.
그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모든 신화는 그 시작부터 거짓으로 점철된 이야기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였으니까.
제우스를 왜 가짜 신이라 불렀는지 그제야 깨달은 헤라클레스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재차 말을 건넸다.
“그렇다면 넌 신의 손에 창조된 게 아니라는 건가?”
“그건 나도 모르지.”
“우연히 생겨났다면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아무도 없었으니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
“……?”
“생각해 봐. ‘내가 너를 창조했느니라 이제부터 너는 내 말에 따라 세상을 번영시켜라.’ 등등 신화에서 나오는 신이 인간에게 하는 말을 하잖아? 그런 데 나는 그런 걸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그래서 우연의 신이라는 말을 꺼낸 거군.”
“그렇지!”
“근데, 네가 최초의 인간이라면 네 부인과 자신이라는 말은? 어떻게 된 거지?”
“아, 그건 나도 몰라. 얼마나 살았을까? 세상의 종말이 오던 날 갑자기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지더니 내가 살던 세계는 그대로 지옥이 되었지.”
“흠…….”
“그 유성이 떨어진 자리엔 불타는 새가 쓰러져 있었고 너무 배가 고팠던 나는 육체가 정신을 지배했는지 나도 모르게 다가가 그 새를 뜯어 먹었어. 이거 진짜 내가 다시 생각해도 미친놈이었네.”
최상위 신이라고 해도 쉽사리 넘보지 못하는 존재인 불사조의 힘을 비록 일부분이지만, 그가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알게 된 헤라클레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헤라클레스를 지긋이 쳐다본 로니는 재차 말을 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누군지조차 잊을 정도의 세월이 지났을 무렵 세상에 다시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정처 없이 거닐던 내 앞에 나와 똑같이 생긴 자들이 있는 거 아니겠어? 그제야 ‘아, 난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일이 있었군… 그렇다면 최초의 인간은 네가 맞는 것 같네.”
“흐흐, 정확하게 최초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죽음의 별에서 살아남은 자는 나밖에 없었으니 최초라고 주장해도 반박할 자는 이젠 없지.”
로니의 말에 헤라클레스는 절로 헛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금의 대화로 그가 죽음을 바라는 이유를 어느 정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때, 로니가 살짝 표정을 굳히고는 새로운 얘기를 꺼냈다.
“이제부터가 재밌어. 지금은 기록으로도 남지 않은 세상의 왕과 같은 존재가 된 이후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은 갑자기 신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기 시작했어.”
“신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그래,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으며 다른 말 못 하는 짐승들과는 다르게 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건…….”
평소의 헤라클레스는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이 인간이기에 신의 모습을 따라 한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 차마 그런 얘기를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
말문이 막힌 헤라클레스를 지긋이 바라본 로니는 빙긋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런데 열정을 쏟는 인간들에게 그런 허튼 생각을 할 시간이 있다면 가서 사람들이 먹을 식량을 더 구해 오라고 했지.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의문을 풀어 주지 않는 나를 버리고 떠났어.”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로니의 말을 듣고 있던 헤라클레스는 품에 넣어 두고 있던 술을 꺼내 들었다.
쪼르륵-
조금 전 자신들이 먹어치운 이름을 알 수 없는 동물의 두개골을 술잔 삼아 가지고 있던 술을 가득 따른 헤라클레스는 로니에게 건넸다.
술을 벌컥벌컥 들이켠 로니는 재차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상에 그들이 생각한 신이라는 존재들이 생겨났지. 신이라면 전지전능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조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뭉쳐지고 난 오랜 세월이 흘렀을 때 갑자기 펑…! 세상에 신이라는 존재들이 나타났어. 인간들이 상상한 모습 그대로 말이야. 신이 인간을 본떠서 만들어진 거지.”
“즉,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신이다?”
“내가 본 건 그랬지.”
“그러면 진짜 신이라는 건? 관리자는 진짜 신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서? 네 주장대로라면 나는 가짜 신과 인간 사이에서 나온 존재잖아. 또… 나 역시 어쩌면 상상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고…….”
로니의 말이 사실이라면 제우스는 인간들에 의해 창조된 신이며, 올림포스의 신화는 결국 인간들이 상상해서 만들어진 역사에 불과하다.
하나, 그는 불안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
창조된 신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은 결국 인간들의 상상에서 나온 인물일 수 있다는 생각에 어딘가 모르게 침울해하는 헤라클레스의 질문을 건넸고,
그 질문에 로니는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너 자신을 믿어. 이 세상에 나와 함께 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자격이 있으니까.”
“자격?”
“이제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헤라클레스의 질문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로니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이르카: 로니! 긴급 호출이다! 잠깐 이쪽으로 와 줄 수 있어? 어쩌면 네 소원을 훨씬 빨리…….]
[헤라클레스: 야이 미친놈아! 너 여기 상황 아예 몰라? 며칠 뒤에는 라그나로크가 진행되는데! 그 전에 펜리르를 처리하러 가는 길 아냐! 일단 오딘을 살려 놔야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이르카: 아니… 야, 그건 이해하는데 지금 여기는 아주 난리가 났다니까?]
[헤라클레스: 너, 진짜 자격이 있는 놈 맞냐?]
[이르카: ……관리자의 자격이라면… 지금은 내 주둥이가 열 개라고 해도 할 말이 없네.]
[로니: 헤라클레스 혼자서는 힘들 거야.]
[이르카: 역시 힘들겠지?]
이제까지 거의 방치 플레이를 한 것에 화를 낸 헤라클레스도 처음 들어 보는 잔뜩 풀이 죽은 이르카의 목소리에 궁금증이 생겼는지 질문을 건넸다.
[헤라클레스: 무슨 일인데?]
[이르카: 아니… 길가메시라고 알지?]
[헤라클레스: 길가메시? 그놈이 왜?]
[이르카: 지금 난리가 났다. 그놈 덕분에 아르카디아의 관리신이 소멸했다고 하더라고.]
[헤라클레스: 관리신이? 아니 인간이 어떻게……?!]
화들짝 놀란 헤라클레스는 이내 로니의 말을 떠올렸다.
‘신은 인간에 의해 창조된 존재다.’
길가메시가 만약 창조된 신의 진실을 알아냈다면, 그걸 무(無)로 돌리는 힘을 발견했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헤라클레스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 대답은 하나였다.
[헤라클레스: 좀 심각한 상황 같다만… 조금 서운하기도 하네, 넌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하는 거냐?]
[이르카: 미안하다…….]
[로니: 날 그 세계로 보내라.]
[이르카, 헤라클레스: ……?!!]
로니의 거침없는 답변에 이르카와 헤라클레스는 동시에 동공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헤라클레스가 그를 만류하려던 그때.
로니는 이르카에세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로니: 대신 이곳에는 대타를 하나 보내 줘.]
[이르카: 대타?]
[로니: 당연히 대타를 보내줘야지. 헤라클레스가 아무리 강해도 인간의 몸 혼자서는 무리야. 그… 네가 관리하던 회귀자 중에 이미 회귀의 법칙을 벗어났으면서, 지금 한가롭게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하나 있을 거 아냐.]
[이르카: 어?]
[로니: 어? 라니, 그렇게 얼빠져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았지라면서 중얼거리던 이르카가 서둘러 일을 처리하러 간 사이.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던 로니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던 헤라클레스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들겨 주면서 말을 건넸다.
“내가 본 미래는 여기까지.”
“뭐……?!”
“말했잖아.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왔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헤라클레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로니는 죽음을 바라고 있다.
그가 죽음을 바라는 이유를 들은 헤라클레스는 그가 어떻게 미래를 봤는지, 또 그 미래 뒤에는 어떠한 결말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저 그의 결정을 존중해 줘야 할 뿐.
그런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 로니는 웃으며 말했다.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운해하는 거야? 너랑 나랑 만난 시간이 네가 살아왔던 시간에 비하면, 오랜 시간은 아니잖아?”
“후… 지금 농담이 나오냐?”
“호오? 농담이라니? 아무튼, 가기 전에 조언 하나 해 줄게, 과거에 인간이 바라볼 때 자연은 신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는 거였어. 하늘에서 내리는 번개도, 천둥도, 땅과 바다도. 그리고… 불까지도.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
헤라클레스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은 결국 불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불길에 휩싸여 사라졌다.
그것이 아스가르드 신화의 마지막인 라그나로크.
하지만, 그 멸망한 역사에도 끝내 그 불길에서 살아남은 존재들이 있었다.
몇몇 생존한 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 불길이 지나가고 난 후 주역이 된 것은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은 끝내 불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극복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불.
그리고 세상의 멸망을 알린 불.
그 두 개는 결국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의미하는 봉화였다.
이르카가 열어 준 포탈을 타고 사라진 로니가 있던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헤라클레스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감정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잘 가라, 벗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