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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106화 (106/121)

106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이천웅을 바라보자 안에서 복잡미묘한 감정이 나도 모르게 샘솟았다.

그를 처음 봤을 때.

아내와 자식을 잃은 남자의 얼굴에서 분노, 회한 같은 감정보다 더욱 크게 느껴졌던 감정은 바로 참을 수 없는 슬픔과 회한이었다.

그 감정을 겨우겨우 추스르고 나를 만나 과거로 돌아간 그가 칼을 들었을 때.

그를 누구보다 응원했다.

물론, 그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독고구패와 원수와도 같은 다른 무림인들에게 또다시 네 번의 죽음을 겪으면서 마음이 완전히 꺾였을 때는 녀석을 죽도록 두들겨 패기도 했지만…….

그에게 어떠한 방법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에 그에게 여유롭게 대하지 못했던 내 실수였다.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었을까?

적들에게 힘없이 흔들리는 칼을 들고 찾아갔을 때.

그리하여 그의 마음속에 품었던 칼이 완전히 부러졌을 때.

그를 반쯤 포기했었다.

그래서 그를 볼 때 더욱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재차 희망을 주고 그에게 방법을 제시해 그가 목표를 이룬 뒤.

그가 흔들리지 않게 또 다른 삶의 목표로 찾아준 제자 한정룡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며 빈 술잔에 맑디맑은 술을 재차 따라 마시고는, 비틀거리며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자 그가 술에 취한 것이 아닌 슬픔에 취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다.

흔들리는 그의 신형을 바라보며 그가 앉아있던 식탁으로 움직여 술병을 잡았다.

“한 잔 줄까?”

“대협…….”

“오랜만이다. 천웅아.”

가슴속에 쌓인 것이 그리 많을까?

이천웅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내공을 일으켜 내 앞에 있는 의자를 뒤로 쭉 밀어내고는 말했다.

“앉으시지요.”

그가 꺼내 준 의자에 앉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술병을 양손으로 쥐었다.

그래, 오랜만에 같이 한잔하자.

앞에 놓여 있던 술잔을 손에 쥐자 그는 차오르는 슬픔을 감추려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술을 조심히 따르기 시작했다.

표면이 살짝 올라와 찰랑거릴 정도로 술이 가득 찬 술잔을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사랑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니냐?”

“…제가 대협께 따라 드린 술이 사랑은 아니지만… 딱 그 정도까지가 넘치지 않을 한계이지요.”

“그렇지.”

말을 마친 이천웅은 자신의 술잔에 술을 끊임없이 따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이 따랐을까?

술잔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도 계속 술을 따르고 있는 이천웅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때.

그가 흥건히 젖은 식탁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면, 이건 한계를 넘었죠. 때로는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는 것이죠.”

“그렇지.”

“저는 그동안 한쪽 마음이 공허한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처음 회귀. 복수에 미쳐서 살았지요.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제가 그때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복수를 포기하고 아내를 찾으러 갔지.”

“네, 아내를 찾았죠… 그리고 도망쳐 자식을 낳았습니다. 하나…….”

“회귀를 하기 전에는 아들이었고, 그때 낳은 자식은 딸이었지…….”

달라진 과거.

그로 인해 완전히 달라진 미래.

이천웅은 그것에 적응하지 못했다.

과거 정파 무림인들에게 치욕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던 그의 순박했던 아내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허영심에 찌든 여인으로 변한 것.

또한, 그들이 사랑했던 아들은…….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괴로워하던 이천웅은 결국 죽음을 택했고,

그것이 그의 마음이 완전히 부러진 계기가 되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가득 찬 술잔과 술이 넘쳐흘러 젖어 버린 식탁을 바라보던 이천웅이 힘겹게 입술을 떼며 재차 말을 이었다.

“대협. 한낱 술도 이럴진대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간신히 되찾은 기쁨을 빼앗긴…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천웅아. 뜬구름 잡는 소리는 하지 마.”

“네……?”

경지에 오른 무림인들의 고질적인 문제.

말을 빙빙 둘러서 비유하고 어렵게 하려고 한다.

그런 화법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한마디로 자신의 무력함에 화가 났다는 뜻 아니던가?

그가 건네준 술을 단숨에 들이켜자 살짝 씁쓸한 미소가 자연스레 배어 나왔다.

“네 과거와 그 이후의 행동까지 모두 알고 있는 사람… 아, 내가 사람은 아니지. 아무튼, 나한테 그렇게 빙빙 둘러서 말할 필요는 없다.”

“그렇죠… 대협은 제 과거를 모두 알고 계시니…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실수까지는 아니야. 그 누구보다 네 심정은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훗, 그렇군요.”

조금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이천웅과 말없이 술잔을 나눴다.

그런데 이 녀석을 제압한 자가 누굴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무공의 경지로 따지면 현경의 경지에 오른 이 녀석을 무림계에서 한 번에 제압할 실력자라면 평범한 하급 신은 아니었을 것이다.

올림포스에 중급 신이 누가 있었지?

아니, 최악의 상황이라면 상급 신이라고 봐야 한다…….

만약 요한의 경우처럼 아폴론과 같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상급 신이 관련된 일이라면 조금 골치가 조금 아픈데.

하계로 내려온 신들은 관리자급의 반신들보다 능력의 제한을 더 많이 받는다.

현장에서 직접 일을 처리할 일이 많은 관리자보다 직접 내려올 일이 거의 없는 그들이 힘의 제약을 더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이적(異蹟)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하나, 그자는 이천웅을 단 한 방에 제압했다고 했다.

물론, 나 역시 진심을 담는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힘을 써야 하는 일이다.

또한, 본신으로 온 것이 맞을 것이다.

헤스티아가 요한에게 나타난 것처럼 화신체로 왔다면 그것은 엄연한 인간의 육체.

화신체에 들어간 상태로는 인간의 육체로 이룰 수 있는 거의 한계까지 성장한 이천웅을 그리 쉽사리 제압할 수 없다.

이거 조금 골치 아픈데?

만약 그자가 상급 신이라면…….

또, 날 부르는 것이 맞다면?

뭐, 카르나 님이 지켜보고 있으니 물리적인 충돌까지는 안가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기에 조금은 조심해야 함이 옳았다.

녀석이 뭔가 알아낸 것은 없을까?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이천웅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천웅아.”

“네, 대협.”

“납치해 간 녀석이 나랑 비슷한 힘을 가진 자라고 했지? 정확하게 어땠니?”

“힘이 엇비슷하다기보다는…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비슷했습니다.”

“무슨 기운?”

“대협의 안에 범접할 수 없는 커다란 기운이 있잖습니까? 기와는 조금 다른… 뭐랄까? 감히 인간이라면 품을 수 없는 기운 말입니다.”

신력을 말하는 것일까?

인간이라면 품을 수 없는 기운이라면 신력이 맞는 것 같은데?

신성력을 그렇게 느꼈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걸 느껴?”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대협에게 자주 얻어맞다 보니… 알게 된 것이지요.”

“너보다 많이 얻어맞은 녀석도 모르던데?”

“제가 이래 봬도 상대의 기감을 느끼는 건 무림인 중에서 가장 잘한다고 자부합니다. 현경의 경지를 마작해서 딴 것은 아니지요.”

하긴, 기에 민감한 무림인이라면 충분히 미묘하게 다른 기운을 느낄 수도 있지…….

“생긴 건 봤냐? 여자라든가 남자라든가 아니면, 내 본모습처럼 머리가 누렇디?”

“아뇨, 회색 머리였습니다.”

“회색?”

“네, 노인은 아닌데 회색 머리를 가지고 있는 남자를 보고는 조금 놀랐지요.”

“남자라…….”

“아, 희한하게도 그는 한쪽 눈에 안대를 끼고 있었습니다.”

“안대를 끼고 있어?”

“네.”

“나랑 같은 기운을 느꼈다고 하지 않았냐?”

“네.”

올림포스 신 중에서 거기다 상급 신 중에 안대를 끼고 있던 신이 있던가?

아니, 내 기억에는 없다.

또한, 오딘과 같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안대를 끼고 있을 리가 없다.

신이 되면서 얻은 신체(神體)는 거의 무한한 변형이 가능하다.

완전히 소실하지 않는 이상.

모습을 바꾸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신력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자신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그런 모습으로 왔을까?

“혹시 무슨 서신이나 말 같은 건 남기지 않았어?”

“그런 게 남아 있다면 제가 대협께 부탁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저 홀연히 나타나 저를 제압하고 눈을 떠 보니 소천이와 함께 사라진 상태이었습니다.”

“아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라…….”

나를 부르는 건 확실한 거 같은데…….

웃긴 녀석이었다.

어디로 와라. 아니면, 언제까지 와라.

이런 말도 없는 건 나를 시험하겠다는 뜻.

그렇다면 그 시험에 응해 줘야지.

[이르카: 할배 바빠?]

[광철: 소일거리나 하는 늙은이가 뭐가 바쁘겠누.]

[이르카: 그래? 그러면 나랑 소일거리 하나 더 할래?]

[광철: 싫다. 바쁘다. 이놈아.]

[이르카: …방금 안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광철: 껄껄, 지금 바쁜 일이 생겨서 어찌할 수 없구나.]

신선이 바쁜 일이 있어?

맨날 찌 없는 낚싯대로 세월이나 낚는 양반 아니던가?

[광철: 창표 녀석은 안 바쁘니 녀석을 데리고 가면 어떻겠느냐?]

[이르카: 창표? 걔는 아직 어리잖아.]

[광철: 예끼! 이놈아. 창표도 인간으로 치면 환갑이 여덟 번은 한참 지난 나이다. 게다가 그 녀석이 등선하기 전에 얻은 이명을 생각하면… 네가 하려는 일에 도움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겠느냐?]

[이르카: 뭐, 그거야 그렇지만…….]

[광철: 으허허, 창표 녀석이 어련히 잘할 것이다. 그리고 늙은이는 이제 뒷방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지.]

아, 벌써 그렇게 되었나?

광철 할배도 슬슬 원시천존이 부를 때가 되었구나…….

씁쓸하지만 광철 할배가 항상 꿈꾸던 일이니 축하해 줘야 하는 것이 맞겠지.

[이르카: 벌써 그렇게 되었나 보네? 알았어. 그러면 지금 만둣가게로 갈게.]

[광철: 이놈아. 네가 내게 연락을 한 것을 보면 무림계에 일이 생긴 모양인데 평범한 무인을 신선계로 데리고 올 셈이더냐?]

[이르카: 아? 맞다. 인간은 신선계에 가면 빨리 늙지?]

[광철: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만… 아무튼, 기다리거라. 창표 녀석에 채비를 하라고 할 테니.]

[이르카: 알았어. 할배 언제 한번 찾아갈게. 신선주나 한잔 달라고.]

[광철: 말로만 찾아온다 하지 말고 한번 찾아오거라, 네게 줄 것도 있으니 말이다.]

[이르카: 응.]

광철 할배와 대화를 나눈 뒤.

그가 이제 곧 만날 수 없는 곳으로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씁쓸하네.

처음 카르나 님에게 이끌려 관리자 일을 하러 왔을 때 광철 할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카르나야. 이놈이 제 세상을 멸망시키고 후회한다는 그 멍청한 녀석이더냐?’

‘뭐라고?! 어이, 할배 미쳤어? 그 촐싹거리는 주둥이를 다신 나불거리지 못하게 위아래로 찢어줄까?’

‘허허, 노인을 공경하는 게 아닌 노인 공격을 하겠다니 고 녀석 참 맹랑한 녀석이로고. 그렇게 성질이 못돼 먹었으니…….’

‘뒤졌어!’

뭐, 흠씬 두들겨 맞았지만 말이다…….

마치, 어린 손자가 재롱을 부리는 것처럼 허허롭게 웃으며 모든 공격을 받아 내고는 나를 순식간에 때려눕힌 뒤.

그가 했던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이놈아. 네 잘못이 아니다. 불가항력은 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야. 너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힘에 휩쓸린 가여운 혼일뿐.’

‘지랄…….’

‘뭐, 어찌하겠느냐? 이미 지나간 일인 것을. 그러니 이제부터 그 운명을 네 힘으로 개척해 나가거라. 그래도 안 된다면 포기해라.’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포기하면 편하거늘…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겠다면, 내게 도움을 청해라. 내가 너를 도와주마. 내 혼을 걸고 하는 약속이니라.’

재밌는 노인네.

광철 할배를 처음 봤을 때 느낀 내 감정이었다.

그때였다.

똑똑-!

“이르카 님 안에 계신가요?”

창표가 벌써 왔구나?

오랜만에 듣는 어린 티를 아직 벗지 못한 창표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녀석이 도와준다면 한결 수월하지.

“어, 창표 왔니?”

“네, 광철 어르신이 일을 도와드리라고 하셨어요.”

“고맙다.”

“헤헤, 고맙긴요.”

창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이천웅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창표를 위아래로 훑더니 말을 건넸다.

“이 꼬맹이는 누굽니까?”

아뿔싸.

이건 창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인데…….

재빨리 이천웅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창표의 입이 더 빨랐다.

“너 미쳤냐? 어디서 쥐방울만 한 게 날 보고 꼬맹이라고 불러?”

“……?”

“어디서 멍청한 소 새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어? 확! 그 맹한 눈알을 뽑아다가 회 쳐 먹어 버릴라! 눈 안 깔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창표의 거친 욕설에 이천웅의 눈이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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