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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104화 (104/121)

104화

과거 13지구.

혹한의 추위가 감싸고 있는 높디높은 산에 놓여있는 신전에는 웅장함과 비장함이 감돌고 있었다.

거대한 신전과는 다른 어찌 보면 초라해 보이는 나무 덩굴 의자에 앉은 노인은 챙이 넓은 모자를 써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 날아다니는 검은 까마귀 두 마리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늑대 두 마리가 갑작스레 신전에 찾아온 방문자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나무 덩굴 의자에 앉아있던 노인이 황당한 말을 꺼낸 뜻밖의 방문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대들을 미래의 내가 보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미래의 자신이 자신에게 보냈다는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한 사내를 바라본 노인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크하하하! 재미있군. 아주 재밌어!”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호탕한 웃음을 지어 자신의 신력을 과시한 노인은 언제 웃었냐는 듯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더니 눈앞에 서 있는 두 명의 사내에게 서늘한 목소리로 질문을 건넸다.

“자네들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네.”

“……?”

단호하고도 당돌한 대답에 당황했을까?

노인은 어처구니가 없어져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황당무계한 소리를 내뱉는 사내들을 단숨에 자신의 창으로 이들을 꿰뚫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에 묘한 흥미를 느낀 노인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재차 말을 건넸다.

“그래. 미래의 오딘은 과거의 오딘에게 무슨 말을 전해달라고 하던가?”

“라그나로크는 막을 수 없으니 뻘짓 하지 마시랍니다. 이미 알고 있지 않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

오딘은 그 어느 때보다 경악했다.

아스가르드 최후의 날이자 신들의 황혼인 라그나로크가 온다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 라그나로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물론,

거침없이 라그나로크는 막을 수 없다는 말을 꺼낸 사내는 더욱 오딘의 흥미를 돋웠다.

하지만 오딘은 생각한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지식을 배울 것인가?

아니면, 사내를 이용할 것인가?

여기서 순순히 인정한다면 앞으로 사내에게 주도권을 내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오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건넸다.

“그대가 라그나로크를 아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나…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군, 어째서 라그나로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지?”

딱-!

말을 마친 오딘이 손가락을 허공에 튕기자.

아스가르드의 천국인 발할라(Valhalla)의 하늘이 갈라지며 수많은 발퀴리아(Valkyrja)들과 에인헤랴르(Einherier)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사신(死神) 발퀴리아들이 거대한 늑대를 타고 오딘의 앞에 서고 난 뒤.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한 전사의 혼인 에인헤랴르(Einherier)들이 흉포한 포효를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왔다.

에인헤랴르와 발퀴라아가 길게 늘어선 자신의 신전을 쭉 훑어본 오딘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의기양양하게 사내에게 질문을 건넸다.

“어떤가? 나의 군세가.”

“대단하군요.”

사내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을까?

오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모은 군대를 쭉 훑어보고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사내에게 질문을 건넸다.

“훗, 이런데도 라그나로크를 못 막는다고 했다는 말인가?”

“네, 못 막습니다.”

확신에 찬 사내의 대답에 오딘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이 어떻게 모은 군대인데 라그나로크를 못 막는다는 말인가?

그때 오딘의 앞에 서 있던 사내 중 옷을 거의 헐벗은 사내가 앞으로 나오더니 재밌는 말을 꺼냈다.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나 혼자서도 저자들을 모두 처리할 수 있어.”

“그대는 누구길래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겐가?”

침묵을 지키던 사내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경박스러웠다.

하지만, 오딘은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안에 잠들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

전쟁과 지혜의 신이자 지식의 탐구자 오딘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눈을 떠 헐벗은 사내를 바라봤다.

‘도무지 나이를 예측할 수 없다… 나보다 오래 살아온 존재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닌 것이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 오딘이 사내의 정체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오딘을 힐끔 바라본 사내가 오딘에게 슬며시 다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재밌는 거 알려줄까? 쟤도 혼자서 쟤들을 다 없앨 수 있거든? 저런 애들로 수르트는 어떻게 막을 건데?”

“수르트……!”

“또, 너 미래가 보이잖아? 또, 운명의 세 여신을 통해서 불확실한 미래는 다 확인하잖아?”

“그걸 어떻게 아는 것인가?”

“에이, 쉽게 쉽게 가자고.”

“…….”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내였다.

이제까지 정중한 태도를 보이던 근육질의 사내와는 전혀 다른 경박한 사내를 오딘이 헛웃음을 지으며 바라볼 때.

경박한 미소를 짓고 있던 사내가 웃으며 질문을 건넸다.

“내가 역으로 질문을 하나 할게. 오딘, 당신의 미래는 보이던가?”

“……?!”

“미래의 오딘이 과거의 오딘에게 우릴 왜 보냈냐고 물어봤지? 뭐, 확실한 사실을 다시 한번 말해주자면, 라그나로크는 결국 패배해. 그리고 그때 당신은 죽어. 이런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죽는지 말해줘?”

“알고 있소.”

“훗, 이제 말이 좀 통하네. 우리는 그런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온 사람… 음, 사람인가? 아무튼 그런 사람들이란 말이야.”

자신감이 가득한 사내의 태도를 바라본 오딘은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속으로 삭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한 것은 사내는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아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 사실을 바꾸고 아스가르드의 멸망을 막으려고 일부러 전쟁을 일으켜 용맹한 전사를 죽여 에인헤리(Einheri)로 만들어 왔건만…….

결국은 다른 자들의 손을 빌려야 한다는 사실에 오딘이 침통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가장 물어보고 싶은 말은… 나중에 물어보도록 하지.’

일단은 라그나로크를 막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 오딘이 고개를 들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며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그대들의 이름은 어떻게 되는가? 이름도 모른 채 협력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음, 나는 로니라고 하고 저쪽에 있는 친구의 이름은… 헤라클레스라고 해.”

“……?!”

방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로니의 말에 오딘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 * *

연회를 준비할 테니 조금 기다려달라는 오딘의 말에 밖으로 나온 헤라클레스와 로니는 머나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니와 오딘의 대화를 듣고는 계속 침묵을 지키던 헤라클레스가 옆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로니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야. 오딘한테 왜 그런 얘기를 한 거냐?”

“내가 뭘?”

“라그나로크와 그의 죽음 말이야.”

“오딘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잖아?”

“알고 있던 것과 미래에서 온 자가 말해주는 것은 다르지. 예언이 운명이 되는 것이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야?”

헤라클레스의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로니가 헤라클레스에게 재차 질문을 건넸다.

헤라클레스의 말은 상당히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사실 예언이나 운명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그때 이맛살을 찌푸린 헤라클레스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가죽 물병을 꺼내 마시고는 로니에게 건네주며 재차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여긴 13지구야. 20개로 나뉜 지구 중에서 가장 발전하지 못했던 지구였고. 운명의 세 여신의 힘을 빌려 가장 머나먼 과거로 돌아올 수 있었었던 곳이지.”

“그건 알고 있어. 그런데 그건 왜?”

“내가 질문을 하나 할 게. 천계에 있는 오딘은 어느 지구 출신일까?”

뜬금없는 질문에 로니가 코웃음을 치며 헤라클레스에게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히 1지구……?”

그때 로니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천계에 있는 오딘은 단 한 명.

1지구 출신의 오딘이 지금 천계에 있는 오딘이라면?

로니가 이상한 표정을 지을 때.

그의 반응을 마치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헤라클레스가 재차 말을 건넸다.

“그래, 그러면 13지구에 있는 오딘은 과연 진짜일까? 허상일까?”

“허, 이런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 나는 네가 이런 걸 다 알고서 말한 줄 알았는데? 오딘도 살짝 눈치챈 것 같았고 말이야.”

“뭐, 나야 이르카라는 관리자가 오딘을 만나면 이렇게 말해주라고 해서 그대로 말한 거지.”

“…이르카가 시키는 대로 한 거냐?”

“응. 이러면 꼼짝 못 할 거라고 하더라고, 키야~ 그놈 참 신기하단 말이지? 어떻게 오딘의 반응을 예상하고 이런 말을 했을까?”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이르카가 시킨 대로 행동했다고 대답한 로니를 멍하니 바라본 헤라클레스가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마저 이었다.

“에휴, 어쩐지 네가 꺼낼 수 있는 말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너처럼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놈이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라고.”

“뭐! 임마? 나이도 어린 자슥이 어디서 형님한테!”

“나이 많아서 좋겠수다? 그런데 나이보다 뇌세포 수가 적은 거 아니냐?”

“내가 몇 살인데! 당연히 뇌세포 수가 더 적겠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으면 이런 표정이 나올까?

헤라클레스의 입이 잠시 헤벌쭉 벌어졌다.

곧 허탈한 웃음을 지은 헤라클레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뇌세포 수는 최소 10조 개다…….’

뇌세포가 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 분명한 로니가 고래고래 화를 내는 장면을 힐끔 바라본 헤라클레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가자, 나이보다 뇌세포 수가 적은 놈아.”

“아니, 그건 당연한 거라니까?”

그때 멀리서 그들이 티격태격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우람한 근육을 가진 노란 머리의 신이 두꺼운 팔 때문에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 팔짱을 끼고는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재밌는 녀석들이네.”

“확실히 한 명이 당신을 똑 닮았네요.”

“헤라클레스?”

“그럴 리가요.”

“…….”

옆에 서 있던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의 말에 거대한 체구의 노란 머리 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 *

한동안 나와 안젤라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도와줄 일이 없나 하고 돌아다니던 마리가 안젤라와 함께 쇼핑을 나간 시간.

혼자 남은 집무실에서 여유롭게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관리하는 회귀자들의 창을 모두 띄워놨다.

이상하게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길가메시가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요한은 잘하고 있고…….

확실히 헤라클레스가 로니를 잘 이끌어 주고 있으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별로 없네.

시선을 돌려 그동안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회귀자들을 바라봤다.

그때 8지구의 회귀자 김윤식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보자…….

저놈은 꽤 포인트를 많이 모아놨네?

그런데 왜 안 쓰고 있지?

저놈 소원이 뭐더라?

재빨리 화면을 조작해 그의 소원을 확인한 순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계약자: 김윤식]

[소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재벌이 되고 싶다. 자신의 회사와 가정을 박살 낸 삼화그룹에 복수하고 싶다.]

그의 소원도 목표도 지극히 평범했다.

성공과 복수.

그러나 그것보다 동기부여가 확실한 목표도 별로 없었다.

평범하다는 것은 대다수가 꿈꾸는 것이라는 말이니까.

이상하게 눈에 밟히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이천웅: 대… 대협!]

[이르카: 어? 천웅이 아니냐?]

계약이 성공적으로 종료된 광마 이천웅의 다급한 메시지가 날아온 것.

녀석은 확실하게 목표를 이루고 이제 편안하게 쉬고 있어야 하는데?

[이천웅: 대협과 비슷한 힘을 가진 자가 이곳에 나타났습니다!]

[이르카: 뭐?]

[이천웅: 도와주십시오! 저는 일초지적도 안 되었습니다!]

이게 또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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