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안 그렇습니까? 불과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 님.]
[어……?]
청발의 여인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역시 사기와 모략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여신이라 그렇겠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 자칫 잘못하면 몰라볼 뻔했잖습니까?
헤스티아 여신님.
당황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빤히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커피를 내온 안젤라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그런데요. 이르카 님. 저분이 헤스티아 님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화신체라 누군지 모르는 게 정상 아니에요?”
“음… 사실 정령계에서 말이야…….”
궁금해하고 있는 안젤라에게 정령계에서 겪은 일을 모두 말해줬다.
정령체에 들어간 이상한 감시자들을 발견한 것부터 그들을 보낸 자가 제우스와 헤스티아라는 것을 알아낸 것 전부.
그러자 안젤라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헤스티아 님이 왜 요한 님에게 관심을 가질까요? 그리고 지금처럼 화신체를 보낼 거라면 왜 이스마엘 씨를 감시했는지 모르겠어요. 이것도 고도의 수작이 아닐까요?”
“글쎄,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그리고 헤라클레스 녀석한테 듣기로 헤스티아 님은 그나마 정상적이라고 들었어.”
“하긴, 다른 올림포스 분들이 좀 이상하긴 하죠.”
“그렇지. 솔직히, 아폴론이 지금 이렇게 끼어드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니까? 아주 올림포스라면 이제 치가 떨려.”
“에휴, 어쩌겠어요. 이르카 님이 먼저 도발하셨는데요.”
“응? 그래?”
“네! 마리를 찾으러 가기 전에 제우스 님한테 하신 말씀 기억 안 나세요?”
똑똑히 기억한다.
대회의실에서 제우스에게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려봤다.
‘저는 제우스 님 자체가 위대한 신인지 저는 솔직히 모르겠군요.’
이건 그냥 평범한 도발이었고…….
‘두려우셨습니까? 끊임없이 발전하는 존재인 인간을 보니 두려워지신 겁니까? 언젠가 신의 자리에서 쫓겨날까 봐요. 그래서 4번째 주신이 그렇게 궁금하셨던 거겠죠.’
하긴,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죽자고 달려들겠지.
그를 인간보다 못한 존재라고 말했으니까 말이다.
아니지, 이미 지나간 일.
먼저 그들이 싸움을 걸어왔고 이미 두 번을 이겨냈다.
성배의 힘을 가진 마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한 번.
성진아와 강태식의 싸움에서 또 한 번.
두 번의 승리에 나도 모르게 올림포스를 만만하게 봤을지도 몰랐다.
이제, 확실하게 날 밟을 생각을 하는 것인지 정령계에까지 손을 뻗치지 않았던가?
물론, 두 눈 뜨고 당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심기일전을 위해 고개를 좌우로 꺾은 뒤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요한: 관리자님. 확실히 제 눈앞에 계신 분의 정체는 헤스티아 님이 맞는 것 같군요. 그런데 이분이 헤스티아 님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사실, 관리자님이 언질을 주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대응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자 고개가 자동으로 끄덕여졌다.
확실히 아무리 화신체라고 해도 그 정도 힘을 가진 존재가 나타났다면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태연하게 헤스티아 님이냐고 물어보라고 한 것이 주효한 것.
[이르카: 요한과 관련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야죠. 그리고 할파스의 일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요한: 그렇게 가면 안 될 인물이었습니다.]
[이르카: 음… 한번 명계에 확인해 볼까요?]
[요한: 설마, 그를 회귀시키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르카: 음, 그건 조금 곤란하려나요?]
[요한: 그의 의사가 중요하겠죠. 그런데 그렇게 되면 시간이 꼬이지 않겠습니까? 제가 자세하게는 몰라도… 뭔가 굉장히 복잡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르카: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최적의 방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 네, 알겠습니다. 저는 일단 헤스티아 님과 얘기를 나눠봐야겠군요.]
[이르카: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군인지 적인지는 모릅니다. 일단 중립으로 생각하세요.]
[요한: 네, 알겠습니다.]
요한과 대화를 끝낸 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올림포스의 12 주신 중 한 명이자 불과 화로의 신 헤스티아가 7 아르카니아로 직접 화신체를 보낼 거로 생각하지는 못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녀는 이제까지 전면에 나선 적이 거의 없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기나긴 올림포스의 역사에서 헤스티아가 언급되는 일을 극히 드물었으니까 말이다.
반대로, 이 말은 그녀가 가장 평범한 정신상태를 가졌다는 말도 된다.
올림포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신은 제우스였고, 그가 연관된 일을 떠올리면 바로 그 해답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때 요한이 헤스티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그런데, 헤스티아 님이 이 누추한 곳까지 어떻게 오신 겁니까?]
[어… 음… 내, 내 이름은 헤스티아가 아닌데?]
저런 구차한 변명을 하다니…….
이마를 짚으며 요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헤스티아가 누군지 아십니까? 라고 물어봐 주시겠어요? 그러면 요한은 이해할 겁니다.]
지금 그녀는 엄청나게 당황하고 있는 상황.
당황하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도 한다.
바로, 지금처럼.
[헤스티아가 누군지 아십니까?]
[그거야 올림포스의 여신이잖아. 나를 신으로 착각하다니 너 바보니?]
[헤스티아 님. 여긴 올림포스를 모르는 세계입니다만…….]
[허억!]
헤스티아에게 저런 귀여운 면이 있었나?
황급하게 입을 가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토끼 같았다.
온몸과 얼굴로 나 지금 당황하고 있어요! 라고 광고하고 있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르카: 요한 님. 헤스티아 여신에게 관리자 이르카가 한번 뵙기를 청한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요한: 네, 알겠습니다.]
요한은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헤스티아에게 정중하게 내가 뵙기를 청한다는 말을 전달했다.
요한의 말을 들은 헤스티아는 이내 자신의 정체가 완벽하게 탄로 났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땅을 발로 툭툭 차더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이르카한테 직접 연락하는 건 제우스가 모두 감시하고 있단 말이야.]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말입니까?]
[응… 지금은 제우스가 주신이잖아. 올림포스에 소속되어있으면 다 걸려.]
아, 그래서 화신체로 온 거였구나.
유일하게 제우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는 수단이니까.
그때 헤스티아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요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는 재차 말을 건넸다.
[내 말 똑바로 들어. 나는 너와 이르카 그리고 내 조카를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내가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힘을 썼는지 알아? 그리고 너한테 말하는 거 지금 이르카가 다 듣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도 잘 들어. 지금, 제우스가 이스마엘이라는 아이를 감시하고 있어. 한낱 반신이라고 생각했던 너에게 두 번이나 당하니까 이번에는 확실하게 준비하고 가는 거 같아. 나는 경고했다?]
그건 알고 있는데요?
비록 한발 늦었지만 나와 요한을 걱정하는 마음이 잔뜩 묻어나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은연중 긴장했던 마음이 살짝 풀어졌다.
그때 헤스티아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맛살을 사정없이 구기며 재차 당부하듯 말을 건넸다.
[노파심에 그냥 단순히 너희를 걱정에서 하는 말이 아니야. 특히, 이건, 이르카 네게 더 중요한 말이야. 제우스를 우습게 보지 마. 절대로.]
확실히 제우스가 뭔가를 꾸미고 있는 건가?
헤스티아의 표정을 살피니 확실히 제우스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과연 그가 뭘 꾸미고 있는 걸까?
기왕 도움을 주는 거 여기서 힌트를 조금 더 주면 안 되나?
확실한 정보가 없으니 더욱 혼란스러운 기분만 가중되는 느낌을 받았다.
제우스가 꾸미는 일 중 알아낸 것은 두 가지.
빙의부와 손을 잡고 길가메시를 이곳에 보낸 것과 정령계로 감시자를 보내 이스마엘을 감시하던 것…….
둘 중에 뭐가 더 연관성이 있을까?
그때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 둘을 합쳐서 연구해 놓은 놈들이 바로 그놈들이더라고요.’
이스마엘이 말한 태양기사단의 실체.
내가 왜 이제까지 이걸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것일까?
다급하게 요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요한 님! 할파스 백작도 늑대인간 아니었습니까?]
[요한: 맞습니다.]
[이르카: 그는 황금색 갑옷을 입은 자들과 싸우다 전사했다고 들었는데, 파히르에게 뭐 하나만 물어봐 주실 수 있으십니까?]
[요한: 어떤 걸 물어봐야 하나요?]
[이르카: 혹시, 할파스가 그들을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았는지 물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할파스가 그들을 알아봤다면?
제우스가 꾸미는 계획을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염라 님께 부탁해서 그의 영혼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그때 고개를 갸웃거린 요한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요한: 파히르의 기억을 살펴봤을 때. 할파스 백작이 확실히 이상한 모습을 보이긴 했습니다. 마치 그들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이르카: 확실합니까?]
[요한: 네, 그들이 전면에 나서자마자 할파스가 패배를 직감한 것인지 모두를 피신하게 했으니까요. 이건 파히르의 기억을 살펴봐서…….]
[이르카: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헤스티아 님이 당장 떠나실 거 같지는 않으니까 대화를 조금 더 나눠서 도움을 받으면 될 거 같습니다.]
[요한: 네, 알겠습니다.]
됐다.
할파스는 그들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 모양.
이제 그의 영혼을 소환해서 몇 가지 질문을 건네면 될 것이다.
“안젤라! 염라 님 연락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줄래?”
“네~ 알았어요. 이번에는 명계예요?”
“뭐, 직접 갈 일은 없을 거야. 할파스에게 물어볼 게 몇 가지 있어서 말이야.”
과연 할파스는 그들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고 있을까?
안젤라가 염라의 연락번호를 알아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요한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
오히려 긴장한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이겠지.
“끙! 이르카 님! 여, 여기 좀 잡아주세요!”
“응? 알았어.”
먼지가 쌓인 서류를 서류 더미를 낑낑거리며 내려놓은 안젤라가 손을 펼치자 녹색 빛이 흘러나왔다.
이내, 먼지가 말끔하게 제거된 책 구석에 적혀있는 염라의 연락번호를 찾자마자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염라님. 회귀부의 관리자 반신 이르카라고 합니다. 여쭤볼 게 있어서 그런데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염라: 호오? 그대가 내게 연락하다니 어인 일이고?]
[이르카: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연락드린 이유는 7 아르카니아에서 얼마 전 사망한 할파스라는 늑대인간의 영혼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염라: 응? 그를 회귀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그들의 영혼을 분류하는 것은 우리의 소관. 그대가 참견할 것이 아닐세.]
[이르카: 아, 아닙니다! 지금 물어볼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몇 가지만 물어보고 바로 돌려보내겠습니다!]
[염라: 흠, 일단 그의 영혼을 찾아보고 말해주겠네.]
[이르카: 감사합니다!]
휴.
십년감수했네.
염라는 꽤 고지식한 인물.
그에게 업무를 침해한다는 인상을 주면 절대 안 된다.
그가 할파스의 영혼을 불러와 주길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가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염라: 흠, 7 아르카니아의 할파스가 맞는가? 그런 자는 이곳에 없다네.]
[이르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