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그 시각 정령계.
성진아의 말을 따라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는 침입자를 살피려 기나긴 동굴을 따라 이동할 때.
성진아를 유심히 살피던 쥬데스가 귓가에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쟤, 회귀자 맞아?”
“응, 얼마 전까지 내가 관리해주던 회귀자.”
“흐음, 그래? 몸에 지니고 있는 힘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닌데?”
의아한 표정을 지은 쥬데스가 앞서 걸어가는 성진아를 유심히 바라봤다.
마치 그녀를 계속 살피는 듯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뤼슈타가 투덜거리듯 말을 툭 내뱉었다.
“쳇, 저런 둔감한 녀석이 저런 힘을 얻은 게 말이 되나?”
“그게 무슨 소리야?”
“있어. 그냥 정령계의 일이야.”
정령계 내부의 일?
하긴, 생각해보면 쥬데스의 능력은 이상했다.
아무리 땅의 기운을 살필 수 있다고 해도 침입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차린 것이나, 성진아의 내부에 잠들어있는 힘을 알아차린 것 말이다.
그렇다면 한번 뤼슈타를 떠볼까?
계속 뭔가를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구시렁거리고 있던 뤼슈타에게 은근슬쩍 떠보듯 질문을 건넸다.
“너도 성진아 씨의 안에 얼마만큼의 힘이 잠들어있는 알 수 있어?”
“응.”
“진짜? 그러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 거 같냐?”
“음, 후작? 아니, 공작급까지는 클걸?”
아니다.
뤼슈타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성진아는 대악마인 바싸고를 흡수하지 않았던가?
현재 능력이 공작급에 가까운데 그 급까지 클 거라고?
아마도 사탄에게 수련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뱉은 말이 분명했다.
그때 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쥬데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건넸다.
“이미 공작급인데 무슨 공작급까지 크냐? 대군주급까지 클 수 있나 없나 궁금할 정도인데. 그런데 쟤 안에 있는 힘이 원래 쟤 힘은 아닌 거 같긴 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네.”
뭐?
그녀의 안에 있는 힘까지 알 수 있다고?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쥬데스에게 말을 건넸다.
“너, 그런 것도 다 알 수 있냐?”
“응, 이제 정령 신께서 은퇴하실 때가 되었잖아. 이거 정령 신의 힘을 조금 빌려오는 거다.”
“설마, 네놈이 차기……?”
“왜 이제 내가 좀 대단해 보이냐?”
“…정령계의 암담한 미래가 보인다.”
“내 말이!”
저런 태평한 녀석이 차기 정령 신이라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령계의 미래를 걱정할 때 성진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한쪽을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여기예요.”
“저 녀석인가요?”
“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가자 기절한 척하며 실눈을 뜨고 있는 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저놈의 배후를 좀 캐볼까?
[이르카: 마리야, 뭐 하니?]
[마리: 응? 나 지금 치킨 먹어! 이거 완전 맛있어! 내가 왜 이제까지 이런 걸 모르고 살았을까? 완전 인생 아니, 성배생 헛살았어.]
[이르카: 그래… 많이 먹어라.]
[마리: 응! 너도 수고해!]
[이르카: 자, 잠깐만! 아직 말 안 끝났다!]
[마리: 응? 또 뭔데.]
[이르카: 화면 공유해줄 테니까 얘 누군지 한번 봐줄래?]
말을 마친 후 마리에게 시야를 공유해줬다.
지잉-!
이내, 시야가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리가 완벽히 시야에 적응한 것을 확인하고는 실눈을 뜨고 있는 정령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쥬데스의 능력으로도 정령체 안에 들어간 영혼의 정체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고 했으니 부득이하게 마리의 힘을 쓸 수밖에.
[마리: 음… 어렵네.]
[이르카: 너는 영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잖아? 그런데도 모르겠어?]
[마리: 흥! 본질을 본다고 해서 누가 보냈는지 아는 건 아니거든?]
[이르카: 뭐, 그건 그렇지. 아! 그리고 얘 말고는 다 제우스가 보냈거든? 근데 얘가 좀 수상해서 그래. 뭔가 좀 떠오르는 거 없어?]
[마리: 제우스? 이상하다? 쟤는 음… 불의 기운이 너무 강한데? 제우스 쪽 애가 아닌 거 같아.]
불?
불의 힘을 쓰는 올림포스의 신이 누구더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자는 불과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였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헤파이스토스는 절대 제우스를 거역 못 한다.
그러면 누굴까?
제우스가 하는 일에 끼어든다는 것은 대등한 힘을 가졌거나, 거의 동급의 신이라는 소리인데…….
포세이돈, 하데스 등이 떠올랐지만 그들은 불과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어? 불과 관련된 신이 하나 더 있잖아?
그것도 제우스가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의…….
* * *
처음 7 아르카니아에 가서 연을 맺은 인물인 할파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요한이 침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요한이 앞에 서 있는 파히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파히르 님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지요.”
“사실, 여쭤보기 조심스럽습니다만… 할파스 백작님이 어떻게 전사하신 겁니까?”
할파스가 요한과 처음 만난 계기가 무엇인가?
바로, 뱀파이어 성직자가 영지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베아트리체의 퇴마를 부탁하면서 아니던가?
이 세계에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받는 처우를 생각한다면 할파스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힘을 꽁꽁 숨겨왔을 것이다.
프란시스 역시 그가 늑대인간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고, 말이다.
그랬던 그가 철저하게 숨겨왔던 늑대인간의 힘을 쓰고도 전사했다는 말은 곧, 태양교의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말 아니던가?
그 당시 벌어졌던 일을 상기시키는 요한의 질문을 들은 파히르가 어찌 보면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일지 모를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말을 꺼냈다.
“사실, 태양교의 공격을 받고 처음부터 휩쓸린 건 아닙니다. 저희가 아무리 일개 영지의 경비병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왔기 때문이죠.”
파히르의 말을 들은 요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처음 할파스 영지에 도착했을 때.
요한이 호아킨을 뱀파이어의 수족으로 만들었다는 사소한(?) 오해를 한 다른 경비병들이 이기지 못할 존재라는 것을 알고도 불나방처럼 달려들지 않았던가?
동료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내버릴 각오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끈끈한 동료애를 가진 그들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그때 파히르가 고개를 시선을 내리깔더니 좌우로 가로저으며 말을 마저 이었다.
“저희도 그때까지는 이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황금색 갑주를 입은 자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요…….”
“황금색 갑주요?”
“네… 그들에게는 어떠한 공격도 통하지 않더군요. 웃으면서 맨몸으로 투석기 공격을 막아내는 괴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파히르의 말에 요한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투석기의 공격을 맨몸으로 막아낸다는 것은 인간의 육체를 아득히 초월한 자들이나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신선이 되기 위해 오랜 시간 수행을 쌓은 도사들이나 펼칠 수 있는 신기를 보여줬다는 황금색 갑옷을 입은 자라는 말에 요한의 얼굴에 깊은 근심이 서렸다.
생각지도 못한 강적의 등장이 아니던가?
“처음 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수많은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봤지만, 결코 그런 인물들을 본 적은 없습니다. 할파스 영지 아니, 이제는 전 할파스 영지 같은 경우 그저 그런 변방의 영지가 아니었으니까요.”
“하긴, 아페리온 왕국과 킬리스 왕국에서 제국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기에 꽤 많은 유동인구가 있었죠?”
“네. 그렇습니다. 후우…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샜군요.”
“괜찮습니다.”
괜찮다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준 요한의 미소를 바라본 파히르가 이내, 할파스의 최후를 떠올리고는 재차 말을 꺼냈다.
“아무튼, 저희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 황금색 갑옷을 입은 자의 등장에 저희는 다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원 옥쇄를 각오했죠.”
“그때 할파스 백작님이 나서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도망치라고 하시더군요. 시간을 벌겠다고 하시면서요.”
말을 마친 파히르의 기억은 치열했던 전장으로 잠식되듯 되돌아갔다.
그가 경비대장으로 십수 년을 근무하는 동안 처음 보는 험악한 표정으로 나타난 할파스가 이를 바드득 갈더니 후퇴 명령을 내린 것.
‘파히르, 영주민들과 함께 도망쳐라. 베아트리체라면 너희를 능히 숨겨줄 수 있을 테니.’
‘배, 백작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어도 같이 죽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이곳에 남아있어 봤자 개죽음일 뿐이다.’
‘개죽음이 아닙니다! 태양교가 갑작스레 쳐들어왔을 때부터 전원 옥쇄를 각오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저들의 표정을 보라는 말입니다! 길거리의 불량배에 불과했던 녀석들을 개과천선시켜주신 게 바로 백작님 아닙니까?’
파히르의 말에 중상자는 나왔지만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은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하던 경비대가 동조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백작님이 구해주신 이까짓 목숨, 이제 갚는다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크큭, 조금 전까지 죽겠다고 투덜거리던 놈이 입만 살았네.’
‘내, 내가 언제 그랬냐? 네놈이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나보다 먼저 뒈지면 국물도 없다?’
그때 손을 들어 왁자지껄 떠들던 경비대를 제지한 할파스가 진노한 표정으로 경비대를 노려보고는 호통을 쳤다.
‘멍청한 놈들.’
‘네? 그게 무슨…….’
‘사람은 말이다. 뒈지면 다 끝나는 거야. 내 목숨도 하나 네놈들 목숨도 하나란 말이다.’
‘그, 그래도 목숨의 가치는 백작님이 훨씬….’
‘끌, 네놈들은 목숨에 가치를 매길 수 있더냐? 나는 감히 매길 수 없다. 그러니까 말이다. 목숨 하나로 다른 이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다면 그게 맞는 거 아니겠느냐?’
‘……!’
말을 마친 할파스 백작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파히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말을 건넸다.
‘부탁한다. 단, 한 명도 빠트리지 말고 가거라.’
‘배, 백작님.’
‘내 마지막 부탁을 거역할 셈이냐?’
‘…아닙니다.’
‘부탁하마. 모두를 데리고 떠나다오.’
목숨을 건 사내의 부탁이었다.
모두를 구하라는 할파스의 부탁을 들은 파히르가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길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하얀 털을 가진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 할파스의 가슴을 꿰뚫는 황금색 갑옷을 입은 자의 뱀 같은 비릿한 미소였다.
이내, 회상을 끝낸 파히르가 잡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저었을 때 요한이 씁쓸한 말투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할파스 백작을 많은 시간 알고 지낸 것은 아니지만, 실로 그다운 최후였군요.”
“네? 그게 무슨?”
“방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영주민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던졌다고 말입니다…….”
“그렇죠…….”
파히르가 수긍을 하고 있을 때 몸을 돌린 요한이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살펴본 기억을 곱씹었다.
‘파히르의 기억을 살폈을 때 나온 황금색 갑옷을 입은 자의 능력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할파스가 전력을 기울였음에도 그리 쉽게 제압하다니…….’
파히르가 할파스의 최후를 떠올릴 때.
요한은 그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기억을 살펴봤다.
파히르가 말한 황금색 갑옷을 입은 자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
할파스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인물이라는 것과 괴물 같은 실력을 지녔다는 것은 그의 말에서 알 수 있었지만 제대로 된 그의 실력은 모르지 않던가?
할파스 백작이라면 그의 본 실력을 전부 드러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일부러 파히르에게 그날의 일을 떠올리게 하고는 기억을 살펴봤지만, 오히려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헤에? 고민이 많은가 봐? 내가 누군지 알려줄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갑작스레 등장해 요한에게 말을 건넨 바다보다 푸르른 청발을 가진 여인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듯 요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건넸다.
“응? 뭐야, 너 왜 안 놀라?”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요.”
“헤에? 그래? 생각보다 민감한 녀석이네, 그건 그렇다 치고…….”
말을 잠시 멈춘 청발의 여인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요한을 바라보며 재차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만약에 적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랬어?”
그녀의 의문은 타당했다.
만약 그녀가 적이라면 요한은 적이 염탐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거니까.
그때 요한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당신이 제 적이었다면, 저희는 모두 여기서 죽었겠죠.”
“응?”
“안 그렇습니까? 불과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 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