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마치 땅을 접어서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앞에서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쥬데스에게 참아왔던 질문을 건넸다.
“어떤 놈들인지 알 것 같아?”
“글쎄, 가서 봐야지 알 거 같아.”
쥬데스의 답변에 내심 불안해졌다.
뤼슈타는 말썽꾸러기에 정욕의 대마왕급이라 골치 아프게 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정령계에서 가장 친한 정령왕 중 한 명이다.
혹시 그녀가 위험에 빠지진 않았을까?
“혹시 놈들이 그녀에게 해를 끼치려거나…….”
“엥? 여기 정령계다.”
“아, 하긴… 그러면 감시 목적이려나?”
“글쎄? 나야 모르지. 아까도 말했지만 일단 가서 봐야 알 수 있어.”
“그래?”
“아 진짜! 뛰는데 자꾸 말 시키지 마! 혀 깨문 똬홟!”
“…….”
아, 자기가 혀를 깨문다는 소리였나?
혀를 깨물고는 괴상한 소리를 낸 쥬데스를 힐끔 바라보자 녀석은 민망했는지 투덜거리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누굴까?
확실히 쥬데스의 말처럼 정령계에서 정령왕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그런 존재가 왔다면 정령계가 발칵 뒤집히고 쥬데스보다 더 세상만사에 관심이 없던 정령 신이 깨어나 간섭을 할 테니까.
그렇다면 감시의 목적일 가능성이 큰데…….
그녀를 왜 감시하는 거지?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그녀가 아닌 이스마엘.
그녀를 감시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왜 감시를 하는 걸까?
또 쥬데스 이놈은 그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고?
수많은 의문이 고개를 들어 앞서 달리는 쥬데스의 널찍한 등을 바라보곤 고민했다.
또 말 걸면 화내겠지?
방금도 혀 깨물고 엄청 민망해하던 거 같은데.
지금 녀석이 앞에서 달리고 있는 이유도 길을 안내하는 것도 있지만 민망함에 붉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한 것도 있으니까…….
미움받을 짓을 사서 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조금만 참자.
얼마나 뛰어갔을까?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숲에 들어선 쥬데스가 다급하게 발걸음을 멈췄다.
녀석을 따라 재빠르게 걸음을 멈추자 쥬데스가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는 다가와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쉿, 일단 도착하기는 했는데, 여기서부터 조금 뒤져봐야 할 거 같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뒤져본다니?”
“뤼슈타 주변에 있는 놈들이 전부 그녀의 근처에 있는 건 아니야. 조금 떨어져서 감시하고 있는 놈들부터 잡아놔야지.”
“흠, 녀석들의 목적을 알아내려는 모양인가 보네?”
“그렇지. 너도 협조해라.”
“그러지 뭐.”
어차피 말하지 않아도 도와줄 생각이었다.
용무가 있어서 찾아온 건 나니까.
그때 쥬데스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너, 성격 많이 변했다?”
“응?”
“예전 같으면 내가 왜? 라고 먼저 말했을 거잖아.”
“내가 언제? 난 기억 안 나는데?”
“뭐, 잡아떼는 건 여전하네. 아무튼, 녀석들이 눈치채기 전에 잡아놓자고.”
“그런데… 갔네.”
순식간에 땅으로 꺼졌는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쥬데스의 흔적을 찾아보고는 미처 말하지 못한 말을 중얼거렸다.
“걔들이 누군지 알려주고 가야지…….”
쥬데스 이 멍청한 녀석이 녀석들이 숨어있는 위치나 생김새를 말해주지 않고 그냥 간 것.
이런 건 알아서 하라는 거냐?
한숨을 내쉬고는 눈에 마력을 집중해 쥬데스가 말한 수상한 녀석들을 찾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쉽사리 보이지 않았다.
쥬데스 녀석은 어떻게 녀석들을 쉽게 찾은 거지?
그때였다.
앞쪽에 있는 나무 위에서 희미한 붉은 빛이 일렁이기 시작한 것.
나무 위에 숨어있었구나.
저기까지 들키지 않고 어떻게 간다?
만약에 녀석들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놈들이라면 문제가 커진다.
혹시 모르니까 조금 은밀하게 가볼까?
생각을 마치고 마치 혼자 중얼거리듯 말을 꺼냈다.
“나 이르카시우스 엔카나시온이 명하노니 이 공간에서 모습을 감추리라.”
스르륵-
흔들리던 몸이 이내 모습을 감춘 것을 확인하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역시, 제대로 작동하는지 밟은 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쓰는 유령화마법이라 걱정했는데 아무런 이상 없이 써진 모양.
이제 어떤 놈들인지 얼굴을 한 번 보러 가볼까?
이렇게 대담한 짓을 하는 놈들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나무 위로 날렸다.
나무 위에 올라가자마자 실소를 내뱉을 뻔했다.
확실히 이러니까 찾기 힘들었지.
나무 위에는 반투명한 바람의 정령의 모습을 한 녀석이 생명의 연못을 감시하고 있었다.
생명의 연못에는…….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잠들어 있는 뤼슈타와 이스마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말이다.
저 자식들 설마 잔다고 수신 거부해놓았던 거야?
순간적으로 녀석들을 두들겨 패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화를 속으로 삼켰다.
일단, 이놈을 잡고 나서 두들겨 패주든가 해야지.
일단 메시지 차단 마법을 걸어놓을까?
아냐, 일단 쥬데스 녀석한테 메시지를 보내야지.
[이르카: 야, 여기 한 놈 있는데 이거 잡는다?]
[쥬데스: 아, 나무 위에 있는 놈? 내가 갈 필요는 없겠네.]
[이르카: 너, 설마 다 잡은 거야?]
[쥬데스: 미쳤냐? 내가 아무리 위대한 땅의 정령 왕 쥬데… 꿰휇!]
[이르카: …….]
쥬데스는 또 혀를 깨물었는지 잠잠해졌다.
이럴 때는 굳이 말을 시킬 필요는 없겠지.
[이르카: 그러면 난 얘 잡는다? 이 주변에 메시지 차단 마법 걸고 잡을 테니까 괜찮으면 말해… 아니, 말하지 마.]
[쥬데스: …….]
[이르카: 그러면 잡는다.]
메시지를 종료한 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지 꿈에도 모를 녀석의 머리를 향해 메시지를 차단하는 마법을 시전했다.
팟-!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보라색 막.
그리고 그 막을 보고는 흠칫 놀란 녀석이 다급하게 몸을 피하려고 할 때.
바람의 정령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의 목을 붙잡고는 투명화 마법을 풀었다.
“……!”
그러자 녀석의 눈이 순식간에 화등잔만큼 커졌다.
내가 누군지 아는 모양.
이건 놀란 반응보다는 왜 이자가 여기 있나? 하는 반응에 가까웠다.
녀석의 목을 끌어당기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건넸다.
“너, 내가 누군지 아는가 보다?”
“…….”
“말하지 않으려고? 그래도 상관없어.”
“…….”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고민이 들었다.
정령도 자살할 수 있던가?
보통 이런 애들은 잡히면 자살하던데…….
예전에 나한테 찾아왔던 녀석들도 실패하자 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던가?
일단, 녀석의 몸을 마비시켜야겠네.
붙잡은 녀석을 바라보며 언령 마법을 발동시켰다.
“내가 명하노니, 돌처럼 굳을지다.”
“……!”
“아, 혀까지 굳었지? 괜찮아. 나중에 다른 정령왕이 오면 풀어줄게. 그래도 명색이 반신인데 때리기야 하겠니?”
“……?”
그때 다른 녀석들을 잡은 쥬데스가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깔끔하게 잡아놨네.”
“내가 일할 때는 확실하게 하잖아?”
“하긴, 네가 일 처리는 깔끔한 편이지.”
말을 마치고 쥬데스의 손에 무슨 굴비 엮듯 묶여서 질질 끌려온 다른 침입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그런데, 얘들 정령 아니지?”
“흠… 정령은 아닌데, 정령체를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겠어.”
“정령체?”
“응, 가짜긴 한데 정령체를 구해서 뒤집어쓰고 있네?”
“빙의나 그런 건 아냐?”
“응, 그건 아냐.”
“그래?”
그렇다면 빙의부가 아니라는 소리인가?
그런데 이런 정령체를 만들 수 있는 자들이 있던가?
그때 쥬데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건넸다.
“흠… 그런데, 이것들 입을 어떻게 열게 하지?”
“그게 무슨 소리야?”
“눈빛을 봐.”
쥬데스의 말을 따라 놈들의 눈빛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버린 자의 눈빛이 바로 저러하지 않던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 생각이 하나 있었다.
“쥬데스, 얘들 정령체라고 했지?”
“응.”
“그러면 정령의 몸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소리네?”
“그렇지.”
“그러면 정령계에서 정령이 죽어?”
“엥? 뭐, 한 번에 너무 강한 충격을 받으면 죽기도 하는데… 자연 회복력이 더 빨라서 대부분 안 죽지?”
“그래?”
오호라 그렇다 이거지?
순간적으로 음흉한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그때 쥬데스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다가오더니 질문을 건넸다.
“너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내가 얘들 입 열게 해줄까?”
“어떻게?”
“내가 누구냐?”
“중간계의…….”
녀석의 말을 들으며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 현재 직책은 바로 중간계에서 회귀자를 관리하는 관리자 아니던가?
이런 일을 제대로 맡아줄 회귀자를 얼마든지 알고 있다는 소리.
게다가 최적의 적임자가 있지 않던가?
그때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듯 턱을 손으로 짚은 쥬데스가 말을 건넸다.
“아주 유명한…….”
“너도 이제 이 형님…….”
“또라이?”
“…뒤진다?”
“도전이냐?”
“도전은 네가 도전이지.”
생뚱맞은 녀석의 대답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건넸다.
“회귀자를 관리하는 관리자 아니냐? 여기도 회귀자 녀석을 만나러 온 거고.”
“아! 맞다. 너 그런 일도 했지?”
“…아무튼, 내가 알고 있는 회귀자 한 명 불러도 괜찮겠냐?”
말을 마치자마자 의문의 침입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어댔다.
오호라? 이것 봐라?
이거 내가 누구를 불러올지 예상을 하는 거 같은데?
그때 머리를 긁적인 쥬데스가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아! 빨리 말해. 누군데?”
“있어. 성진아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내가 돌처럼 만들어 마비시켜놓은 놈을 제외한 모든 침입자가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내가 잡은 놈이 대장인가 보구나.
정신력이 가장 강한 걸 보니까 확실히 대장…이 아니라 그냥 굳은 채로 기절한 거였네.
허탈한 미소를 지은 뒤 성진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 *
마침 생명의 호수 근처라 더욱 고문하기 좋다고 대답한 성진아가 의문의 침입자들을 고문하고 있던 시각.
두 눈이 시퍼렇게 물든 이스마엘이 내 앞에서 투덜거리듯 말을 건넸다.
“쳇! 그때 괜히 감동했어. 또 와서 두들겨 패다니…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나 요즘 바쁘다.”
“그렇게 바쁘신 양반이 여기까진 뭐 한다고 왔답니까? 설마 저런 이상한 놈들 잡으러 오신 건 아닐 테고.”
“…너한테 메시지를 보냈는데 수신 거부 상태더라.”
“…그, 그러면 뤼슈타한테…….”
“마찬가지고.”
“…….”
그제야 위쪽을 슬쩍 올려다본 이스마엘이 메시지를 수신 거부해놨다는 걸 깨달았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널 두들겨 팬 이유는 이제 합당한 거냐?”
“에헤헤헤.”
“으으, 징그럽게 웃지 마. 정들어.”
“그런데, 진짜 무슨 일로 오셨어요?”
“너 요즘 내 채널 안보냐?”
“일하기도 바빠서…….”
“일? 아…….”
옆에서 쥬데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뤼슈타를 슬쩍 바라보고는 이스마엘을 딱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황급하게 양손을 가로저은 이스마엘이 그게 아니라는 듯 항변하기 시작했다.
“아! 그 일이 아니라 요즘 정령 관리를 배우고 있어요! 요즘엔 뤼슈타도 많이 피곤하다면서 하루에 한 번 밖에…….”
“쟤가 피곤해? 정령왕이 아니라 정력왕이라고 불리는 애가?”
“뭐,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몸 상태가 항상 좋은 건 아니까요.”
“흠…그래? 뭐, 그건 일단 그렇다 치고. 내가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네?”
“아뇨. 저 눈칫밥이 얼만데요. 여기까지 오신 걸 보면 7 아르카니아에 무슨 일 생겨서 아닙니까?”
이놈 봐라?
하긴, 내가 녀석을 잡으러 가자마자 눈치채고는 텔레포트로 도망갔지?
광마 녀석은 도망가지 못하고 그대로 두들겨 맞았지만 말이야.
가기 전에 좋은 자양강장제 좀 선물해주고 가야겠네.
녀석의 말이 바르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맞아. 7 아르카니아에 문제가 생겼어.”
“뭐, 그때 요한이라는 분을 보니까 뻔하네요. 태양교랑 관련된 일이죠? 거기 어지간해서는 안 건드리는 게 좋은데…….”
“그럼 나한테 미리 말해주지 그랬냐?”
“에헤헤헤.”
또 징그럽게 웃어대는 이스마엘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자 녀석이 머리를 긁으며 말을 건넸다.
“아무튼, 그 태양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서 오신 거죠?”
“어, 이스마엘아. 태양교에 너보다 센 놈 있었냐?”
그때 곰곰이 고민하던 이스마엘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건넸다.
“아뇨. 제가 그 세계 있을 때는 제가 최강자였죠.”
“그래? 그러면 너 한 번 더 가지 않을……?”
“미친 새끼.”
“……?”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이스마엘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녀석이 처량한 미소를 짓고는 손에 마력을 넣고 있었다.
이놈 봐라?
한번 당한 걸 또 당할까봐?
“마법 무효화!”
“엌! 살려주세요!”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 놈을 신명 나게 매타작하고 난 뒤.
녀석에게 7 아르카니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듣고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