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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96화 (96/121)

96화

최초의 서사 왕 길가메시.

그가 서사 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인류가 태동하고 가장 처음 생긴 왕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왕은 길가메시다.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영웅으로 추앙받던 그가 7 아르카니아로 갔다는 말에 침음성을 삼켰다.

과연 요한과 아르한이 그를 이길 수 있을까?

그의 실체는 반신 아니던가?

그것도 신의 피가 2/3나 섞인… 가만?

방금 베르미우스가 신의 피가 옅게 섞여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말 속에 왠지 모를 모순점이 느껴졌다.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베르미우스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봐, 길가메시가 확실해?”

“허,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네놈의 회귀자와 붙여보든가.”

“아니, 그게 아니라 길가메시는 반신 중에서도 헤라클레스처럼 신의 피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존재 아니던가? 옅게 이어받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크흣, 쓸데없는 말을 하는군. 그리고 짙든 옅든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지?”

이거 봐라?

이놈 이거 말을 돌리는 거 같은데?

일단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면서 물어봐야겠네.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녀석에게 답변했다.

“응?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엄청 쩨쩨하네, 그냥 궁금해서 말이야. 길가메시는 지구 역사에서 최초로 기록된 왕이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녀석이 변명하기 전.

아래턱을 짚은 뒤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녀석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이상하다는 말이야. 분명 기록상으로는 신의 피를 많이 물려받았다고 했는데 네 말은 아니라는 거니까.”

“…….”

“아! 이건 일종의 호기심이야. 이해해달라고 원래 사람이든 신이든 궁금한 거 못 참는 건 똑같잖아? 물론, 아직 우리는 신이 아니지만 말이야.”

말을 마치고 베르미우스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지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내 머리를 긁적인 베르미우스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하긴, 다시 생각해보니까 궁금할 수 있는 문제긴 하네. 그런데 말이야? 지금 다 말해주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 안 그래?”

비릿한 미소를 지은 베르미우스가 마치 궁금해 죽겠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긴, 지금 나도 똑같은 상황이면 바로 이런 식으로 놀릴 테니 당연하겠지.

녀석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그래, 맞아. 네 말대로 지금 여기서 다 알게 된다면 재미가 없겠지.”

“그렇지? 그런데 뭐 하러 쓸데없이 여기까지 쫄래쫄래 찾아온 거야.”

“응? 찾아오면 안 될 곳에 온 것도 아닌데 왜 그래?”

“크흣,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오면서 너무 자신만만하게 오는 거 아냐?”

말을 마친 베르미우스가 살기를 띤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녀석의 말대로 빙의부는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못 올 곳은 아니지.

베르미우스의 갈기 등등한 눈빛을 그대로 흘리고는 차갑게 식은 차를 마시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제일 궁금했던 게 있어.”

“뭐지?”

“빙의자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

길가메시를 죽이겠다고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는 말에 녀석이 벙찐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봤다.

천하의 길가메시를 상대하는 것에 모자라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니 당연히 놀랐겠지.

이제 녀석의 놀람을 조금 풀어줄 차례

손을 좌우로 가로저으며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 오해는 하지 마. 길가메시를 말한 건 아냐. 다만…….”

“다만?”

“빙의자가 죽으면 영멸하는지 아니면 영혼이 이곳으로 되돌아오는지 몰라서 말이야.”

“에둘러 말하지 말지?”

“그래?”

“7 아르카니아에 길가메시의 영혼을 받을 육체가 있던가?”

“…….”

핵심을 짚은 것인가?

베르미우스의 표정이 마치 돌이라도 씹은 표정처럼 변했다.

회귀자, 빙의자, 환생자 모두 약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커다란 약점이 존재한다.

회귀자 같은 경우 힘 조절을 못 하는 것.

회귀자가 과거의 사건을 바꾸면 미래의 사건도 같이 바뀐다.

그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일이 커지게 된다면 속된 말로 ‘이번 생은 망했어.’ 가 되는 것이다.

환생자도 마찬가지지만, 이쪽은 미래는 알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지 자신도 모른다.

천재로 환생했을 수도 있고 둔재로 환생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요즘에는 환생도 살짝 회귀를 섞어서 하지 않던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오되 자신이 아는 사람으로 환생하는 경우가 매우 많아졌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빙의자의 약점은 무엇일까?

바로, 빙의할 대상이 가지고 있는 육체가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다.

성배 아니, 마리를 찾으러 갈 때 들어갔던 갤러해드의 육체와 느낌을 떠올렸다.

굉장한 제약을 받은 것 같은 불편한 움직임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마리와 싸울 때도 크게 당할 뻔하고, 머르딘에게도 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길가메시의 힘은 분명히 강하다.

하지만 그가 들어간 육체가 그렇게 강할까?

그가 강한 것은 어디까지나 영혼.

인간을 기준으로 모든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전해지던 갤러해드와 비교하면.

오랜 시간 이곳저곳 빙의를 하며 수련을 했기에 그 당시의 길가메시보다는 훨씬 강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육체 기준 아니던가?

길가메시가 한 것은 어디까지나 빙의다.

과연 그가 100% 힘을 쓸 수 있을까?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는 베르미우스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며 정령 계에서 열심히 놀고 있을 껄떡쇠 이스마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이스마엘아.]

[상대방이 수신 거부 상태입니다.]

어라?

그냥 탱자탱자 놀고 있을 녀석이 수신 거부라니?

그때 베르미우스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징그럽게 처웃지 말고 말을 하지 그래? 그리고 빙의부의 힘을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그 정도 육체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거든?”

“휘유~ 대단하네.”

휘파람을 불어주며 녀석에게 놀랍다는 듯 대답해주고는 이내 몸을 앞으로 숙이며 표정을 굳히고 입꼬리를 말아 올린 뒤마저 말을 이었다.

“구라는 치지 말자.”

“크흣, 못 믿겠다는 거냐?”

“응.”

“……?”

“너 빙의해본 적 있냐?”

“……?!”

당연히 없겠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말을 건넸다.

“난 있거든? 사실 갤러해드라고 하면 인간의 육체 중에서는 최상급이야. 맞지?”

“그래.”

“그런데 길가메시는 최소한 그와 동급 아냐?”

“…….”

불리할 때는 말을 안 한다 이거냐?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녀석에게 재차 질문을 건넸다.

“길가메시의 영혼이 제대로 힘을 쓰려면 최소한 그 정도의 육체는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말을 길게 늘이며 고민하듯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한참 뒤 말을 마저 이었다.

“내 기억에 7 아르카니아에는 그 정도 급 육체를 가진 놈은 없거든?”

“그 정도 육체는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을 텐데?”

“그렇지. 그런데 그건 실존하지 않는 세상 한정이잖아? 누굴 바보로 알아?”

“……?!”

어디서 구라를 치려고 들어?

사실, 빙의부에서 빙의자에게 그 정도 육체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아니, 더 강한 육체도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다.

다만, 그건 난도가 심각하게 높은 책, 게임 혹은 영화에 빙의할 때 이야기.

7 아르카니아처럼 실존하는 세계에 빙의자를 보낼 때 그런 육체를 마구잡이로 만들어 보내줄 수는 없다.

그건 그야말로 균형을 무너트리는 행동이었으니까.

재차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코웃음을 치고는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7 아르카니아가 무슨 책이나 게임 혹은 영화 같은 곳에 빙의하는 건 아니잖아. 엄연히 실존하는 세상인데 말이야.”

“뭐, 나중에 붙어보면 알 테지.”

“그래.”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 베르미우스를 바라보며 재빨리 뤼슈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뤼슈타야. 이스마엘 어디 갔니?]

[상대방이 수신 거부 상태입니다.]

…이거 정령계에 가봐야겠네.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과의 대화를 끝냈다.

* * *

이스마엘을 찾으러 정령계에 가는 길에 베르미우스와 나눈 대화를 곰곰이 떠올렸다.

베르미우스의 말에서 찾은 모순점 아니, 이상한 점은 두 개.

길가메시에게 신의 피가 옅게 섞여 있다는 것과 그에게 최상의 육체를 만들어줬다는 말이었다.

자연의 기운이 충만한 정령계를 천천히 걷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여, 이르카.”

“어? 쥬데스, 네가 웬일이냐.”

평상시라면 항상 잠만 자고 있어야 할 땅의 정령 왕 쥬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잠꾸러기 녀석을 보는 게 몇 년 만이더라?

그때 쥬데스가 피식 웃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저 자식이 왜 먼저 다가오지?

이거 설마…….

“오랜만이다!! 으랴-!”

퍽-!

이런 무식한 힘이 다 있나?

기습적으로 내지른 녀석의 주먹을 막아내고는 찌릿한 손바닥을 여러 번 털어낸 뒤.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도 이 짓거리냐?”

“쳇! 언젠가는 꼭 한 대 때리고 만다.”

“…내가 얻어맞는 것보다 늙어 죽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미친놈. 신이 무슨 늙어 죽어.”

“벌써 천 년 전 일이잖아.”

“응? 나한테는 십 년도 안 지났거든?”

“…….”

태연하게 대답하는 쥬데스 녀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하긴, 백 년 중 단 일 년만 활동하는 녀석이니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고 해도 천 년 전에 한 대 얻어맞은 일로 이렇게 집착을 보이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허탈하게 웃으며 녀석에게 이스마엘의 행방을 물어봤다.

“뭐, 언젠가는 꼭 한 방 먹여보라고.”

“흐흐흐, 그렇게 잘난 체하는 것도 얼마 못 갈 거야.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냐?”

“응, 사실은 내가 관리하던 회귀자 중에 이스마엘이라고 있거든? 걔 찾으러 왔어.”

“회귀자? 인간?”

“아니, 엘프.”

“여, 여자?”

“아니, 남자.”

“더럽군. 얼른 정령계에서 쫓아내야겠어.”

“…….”

아, 맞다.

이 자식 여자 정령사 말에만 응하는 녀석이었지?

그것도 엘프 정령사라고 하면 깜박 죽는 녀석이었으니… 왠지 모르게 이스마엘하고 잘 어울릴 것 같은 쥬데스의 돌로 된 어깨를 두들겨주며 말을 건넸다.

“너는 걔랑 의형제를 맺을 거다.”

“더러운 소리는 하지 마. 가운데 뭐 달린 놈들은 필요 없어.”

“응. 아냐. 지금 걔 만나볼래?”

“절대 싫어.”

“그래? 알았어. 그런데 뤼슈타 무슨 일 있냐?”

“뤼슈타? 걔는 맨날 놀러 다닐 텐데? 잠깐만 기다려봐.”

말을 마친 쥬데스는 손을 땅에 강하게 내리쳤다.

쾅-!

얼마나 지났을까?

땅의 기운을 살피던 쥬데스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내게 말을 건넸다.

“얘 생명의 연못에 있는데? 그런데…….”

“그런데?”

“얘는 주변에 뭔 날파리들이 이렇게 많냐?”

날파리?

설마 뤼슈타의 남편들을 말하는 걸까?

이상하다. 쥬데스도 녀석의 남성 편력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텐데?

의아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한숨을 내쉰 녀석이 재차 말을 건넸다.

“뤼슈타 주변에 있는 놈들의 몸에 이상한 놈들의 영혼이 들어가 있어. 이거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다른 이상한 녀석들의 영혼이라고?

설마, 빙의부에서 손을 써놨다고?

“흠, 이르카 너도 같이 가자.”

“그래.”

말을 마친 후 쥬데스를 따라서 쏜살같이 정령계를 뛰어갔다.

과연 어떤 이상한 놈들의 영혼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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