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빙의부의 관리신 우즈라토의 집무실은 화려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의외로 조금은 수수한 내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건 카르나 님의 집무실이 온통 황금색으로 치장되어있기에 보기만 그런 것이지 주변에 전시되어있는 온갖 희귀한 골동품 같은 물건들과 고풍스러운 갑주들이 늘어선 것을 보아하니 꽤 티 나지 않게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는 모양.
그런데 우즈라토는 어디 있지?
아무도 없는 집무실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볼 때였다.
집무실 옆에 있는 작은 방의 문이 열리더니 모습을 드러낸 빙의부의 관리신 우즈라토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카르나 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거 오랜만이오? 카르나티우스 님.”
“뭐, 선발대전 이후로 만난 거니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지요.”
“음? 그 이후로도 한번 뵙지 않았소?”
“……?”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린 우즈라토의 말에 카르나 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발대전 이후로 만났다고?
아, 마리를 찾으러 갔을 때 말하는 건가?
헤라클레스와 함께 성배 탐색을 하러 갈 때 게이트를 열어준 신이 이자였지?
하긴, 그때 본 것도 본 거로 친다면 우즈라토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카르나 님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아무래도 카르나 님은 그때 정신이 나와 헤라클레스에게 집중되어있었기에 우즈라토가 꺼낸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봤다고 기억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겠지.
그때 고민하는 카르나 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즈라토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말을 꺼냈다.
“이거~이거 실망이요. 저번에 그 옆에 있는 이르카라는 아이를 성배 탐색 보낼 때 뵙지 않았소?”
“아? 하긴, 그때 문을 열어준 게 당신이었죠?”
“흠, 이거 그런 것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역시 그대도 나이를 먹는 모양이오?”
“뭐라고욧?!”
갑작스러운 나이 공격에 날카로운 음성으로 카르나 님이 응수하자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린 우즈라토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하핫, 농이었소.”
“호홋, 빙의부는 그런 재미없는 말도 농담으로 취급하나 보죠? 그러니 요즘 실적이 바닥을 기는 것이겠죠?”
“…….”
카르나 님의 역공에 우즈라토가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애초에 말발로는 카르나 님한테 상대가 안 되었을 텐데 왜 시비를 건 것일까?
잔소리가 주특기인 카르나 님이 얼마나 관리자들을 달달 볶는지 우즈라토는 모르는 모양.
카르나 님에게 역공을 당한 우즈라토가 이내, 마치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재차 말을 꺼냈다.
“허허허, 사담은 여기까지 나누는 게 좋겠구려.”
“제 생각도 마찬가지네요.”
서로 말없이 노려보는 두 최상위 신의 신경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딱-!
우즈라토가 엄지와 중지를 사용해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카르나 님과 내 앞에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이 생겨났다.
탁자 위에 놓은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우즈라토를 힐끔 올려다봤다.
확실히 최상위 신이다. 이거냐?
선과 악 성향 신들이 여럿 뭉쳐 사는 중간계에서는 신력을 쓰는 것에 제약이 꽤 많다.
천계나 지옥이라면 쉽게 할 수 있는 이런 간단한 물건을 창조하는 마법도 여러 가지 제약에 있어서 일반적인 신이라면 쓸 수 없었으니까.
그때 향긋한 냄새가 올라오는 차를 음미한 우즈라토가 찻잔에서 입술을 떼고는 우리 앞에 놓인 찻잔을 가리키며 들기를 권했다.
“드시지요.”
“…….”
“음? 이거 비싼 거요. 요즘 실적이 바닥을 치는 거렁뱅이 주제에 꽤 무리한 거라오.”
재차 권유하는 우즈라토의 말을 무시하듯 계속 그를 노려보고만 있는 카르나 님을 힐끔 바라보고는 그녀 대신 대답을 했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그가 내준 차를 마시고 난 뒤.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해서 말없이 우즈라토를 노려보는 카르나 님을 바라본 우즈라토가 능글맞은 미소를 짓더니 말을 건넸다.
“내가 그리 잘생겼소?”
“……?”
“이거, 내 얼굴이 뚫어지겠소이다. 그대가 원한다면 평생 옆에서 보고 살 수도 있는데 말이오.”
뭐지?
이 도끼병 아니, 왕자병 말기 환자 같은 발언은?
그때 카르나 님이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댁 면상은 관심 없네요.”
“며, 면상?”
“네, 그런 느끼한 면상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요. 세상에 모든 신이 다 죽어서 우리 둘만 남는다고 하면 그냥 인간을 만들어서 그 인간하고 결혼할 거예요.”
“…….”
이건 뭔가 예시가 틀린 것 같은데?
인간을 만들 수 있다면 완벽한 이상형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싸늘해진 분위기가 맴도는 최상위 신들의 유치한 말싸움에 말없이 쭈그리고 있을 때였다.
“왜 왔는지는 알고 계시죠? 우즈라토 님. 회귀부의 일에 왜 끼어드신 거죠?”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오.”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더라도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죠.”
“음? 왜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오?”
“그러면 회귀자가 있는 세계에 빙의자를 보낸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안 될 게 뭐요?”
“……?”
뻔뻔하게 아니, 어쩌면 당당한 태도를 보인 우즈라토의 답변에 카르나 님이 뭐라고 반박을 하기 전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말을 이었다.
“회귀는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고 환생 역시 현재 이후가 아닌, 회귀자가 있는 세계 선에 과거로 환생을 시킨다면 시간을 역행하는 일이기에 서로 협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가던 우즈라토가 갑자기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카르나 님과 나를 바라보며 말을 마저 이었다.
“그런데, 빙의부는 시간과 관련된 부서가 아니지 않소? 또한, 빙의자가 그곳에 가고 싶다는데 어떻게 하겠소? 보내줘야지.”
“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지요? 7 아르카니아에 가겠다는 빙의자가 있었다는 소린가요? 그것도 이런 타이밍에요?”
“그렇소. 그건 베르미우스 녀석이 알고 있다오.”
“그러면 베르미우스를 불러주시죠.”
“안 그래도 부를 생각이었소. 옆에 오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저 아이의 뜨거운 시선이 이제 슬슬 부담스럽구려.”
미꾸라지 같은 놈.
하긴, 저런 상황 대응력이 있으니까 관리신 일을 하는 것이겠지.
관리신은 최상위 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나 다름없는 일이라 의외로 경쟁이 치열하니까.
끼익-!
그때 우즈라토의 집무실 문이 열리더니 근육질의 거한 베르미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녀석을 바라본 카르나 님이 몸을 돌려 녀석에게 질문하려는 순간.
“관리자들의 일은 녀석들이 나누게 하시지요.”
“흥! 이게 관리자들끼리의 일인가요?”
“그럼 아니오? 그리고 저 둘은 차세대 신이 될 녀석들이잖소? 회귀부의 에이스와 빙의부의 에이스가 서로의 역량을 나누는 기회인데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끼어들면 안 되는 일 아니겠소?”
여우 같은 작자다.
은근슬쩍 이쪽이 페이스를 찾을 기회를 계속해서 커트하는 우즈라토 덕분에 자연스레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때 코웃음을 친 카르나 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요. 뭐 한번 처발린 녀석이 복수전이다 뭐다 찌질하게 질척대는 건 아니겠죠. 빙의부 최고의 에이스라는 녀석이 설마 그런 찌질이겠어요?”
“…….”
“그런 놈이면 덩칫값도 못 하는 그냥 어린애죠, 그렇죠? 우즈라토 님.”
“…하핫, 맞소이다.”
어딘가 모르게 자신 없게 대답한 우즈라토를 바라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은 카르나 님이 나를 강렬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이거, 지면 죽이겠다.
혹시 이런 뜻인가?
그때 빙의부의 헤라클레스라 불리는 근육 덩어리 베르미우스가 우즈라토와 카르나 님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뒤.
비릿한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더니 말을 건넸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창조신의 신물을 빌려와서 비겁하게 나를 이기고 올라간 회귀부의 이르카 아니신가?”
“이제는 이름 잘 기억하나 보네?”
“크큭,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를 아느냐? 그날의 치욕스러운 패배를 기억한다면 네 지저분한 이름 따위는 기억하는 게 정상이겠지.”
얘 질척거리네.
그리고 자신을 이긴 것이 천부령의 힘 즉, 신물의 최대 출력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쩌나?
천부령의 힘은 그때 하나도 쓰지 않은 건데?
고개를 돌려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고 있는 카르나 님과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가로젓고 있는 우즈라토의 상반된 표정을 바라본 뒤.
소파에 앉은 자세 그대로 서 있는 베르미우스를 올려다보며 말을 건넸다.
“꼬우면 한 판 더?”
“뭐?”
“아니다. 힘으로 붙으면 내가 이길 텐데 뭐하러 붙냐. 난 어린애 손가락 꺾는 취미 없다.”
“이, 이런 미친놈이?”
“관리신 분들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다. 체통은 지키시지? 우즈라토 님의 표정을 한 번이라도 살펴보고 말을 꺼내.”
“……!”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는 듯 숨을 고르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여줬다.
“이 붕어 새끼야.”
“이, 이런 개새끼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베르미우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린 뒤 입술을 최대한 벌리지 않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웃어. 분위기 망치지 말고. 설마, 분노 조절도 제대로 못 하는 멍청한 반신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익!”
“너도 신이 되고 싶잖아. 그래서 나를 방해하려 드는 거고, 아냐?”
“…….”
“그런데 말이야. 네가 신이 되어서 세상을 창조한다면… 그 세계는 참 불쌍할 거 같아. 지적 수준이 너무 떨어지잖아? 창조신이라는 놈이.”
이내 부들부들 떨어대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에 앉았다.
“앉아. 이제부터 일 얘기 해야지?”
“…….”
우즈라토는 아마 뭔가 주인이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지.
빙의자가 7 아르카니아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구차한 변명을 하기는 했지만, 이건 분명히 올림포스와 얽힌 일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아폴론과 새로운 빙의자.
요한을 아니, 정확하게는 나를 방해하려는 녀석들의 공작이 분명했으니까.
이제 알아볼 것은 우즈라토와 베르미우스가 그냥 나를 찌르기 위한 칼인지 아니면, 녀석들이 원래부터 꾸민 일이었는지 알아봐야지.
화를 겨우 삭이며 자리에 앉은 베르미우스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 뒤 말을 건넸다.
“그래, 이번에 7 아르카니아에 보낸 빙의자가 누구냐?”
“넌 알 것 없다.”
“아니, 궁금하잖아? 어떻게 그렇게 좋은 타이밍에 나타나? 그것도 아폴론 님이 딱! 지원을 해주는 환상적인 타이밍이었잖아?”
“우연히 겹친 것뿐이다.”
“에이, 세상에 그런 우연이 겹칠 리가 없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일이잖아? 그런 우연을 만들어 내는 게 관리자가 조절하는 일 아냐? 그리고 네놈이 그 관리자고.”
세상에 우연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회귀자, 빙의자, 환생자가 겪는 우연은 관리자가 만들어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하며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중요한 물품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거나, 갑자기 떨어진 동굴 속에 있는 해골과 무공비급 같은 어처구니없지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기연 같은 거 말이다.
게다가 아폴론이 지원 사격을 한 빙의자다.
분명 평범한 녀석은 아닐 터.
그때 베르미우스가 입가에 진득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넸다.
“아마 너는 좌절하게 될 것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니지? 뭐, 올림포스에서 영웅이라도 지원해줬냐?”
성진아와 강태식의 최종대결을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그때도 의지를 잃기는 했지만, 헥토르와 같은 걸출한 영웅들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때 피식 웃은 베르미우스가 나를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초의 서사왕.”
“……?”
“신의 피를 이었지만, 너무 옅게 이어받아 신도 반신도 되지 못한 자가 최상위 신이 되기 위한 수행을 계속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게 무슨… 설마?”
이건 좀 아닌데?
베르미우스의 말을 듣고는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올림포스랑은 관계가 없잖아?
그때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베르미우스가 재차 말을 건넸다.
“그래. 그곳에 간 빙의자는 올림포스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바로 빙의부를 가장 위대하게 만들어준 그 길가메시니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더니.
최초의 서사왕이자 인류 최초의 영웅 길가메시의 이름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거, 너무 센 놈이 온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