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7 아르카니아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빙의부가 끼어든 것을 확인한 이르카가 카르나를 찾아간 시각.
갑자기 밝아진 하늘 덕분일까?
새들이 아침이 왔는지 착각하고 지저귀고 있는 숲속 한가운데 환한 빛과 함께 수많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들짝 놀란 새들이 이리저리 날아갈 때.
막대한 마력이 소모되는 광범위 텔레포트를 처음 겪어봐서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지은 뱀파이어 마을 장로 네캄프와 프란시스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여, 여긴? 도대체 어디입니까?”
“허어, 내가 살아생전 이런 광범위 텔레포트를 볼 줄은 몰랐거늘…….”
네캄프는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아르한이 모이라고 했을 때 그가 한점 돌파를 해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고 생각했지만, 혼자서도 쓰기 힘든 텔레포트를 광범위 그것도 제대로 모이지 못했던 뱀파이어들까지 모두 데리고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밝아진 하늘을 바라본 요한이 평소 온화한 표정과는 다르게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 일로 태양신에게 미움을 단단히 받은 모양입니다.”
“네? 태, 태양신이 요한 님을 미워한다고요?”
“네, 그래 보이네요.”
너무 태평하게 대답한 요한을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프란시스가 요한이 쓰던 강력한 신성력을 떠올리고는 더듬으며 말을 건넸다.
“그, 그런데 요한님이 어떻게 신성력을 쓰시는 겁니까? 설마, 방금 텔레포트를 신성력이 아닌 마력으로 쓰신 겁니까?”
“신성력을 쓴 겁니다만?”
“태, 태양신이 미워하는데 신성력을 빌려주나요?”
“네? 아……!”
그제야 프란시스의 질문이 무슨 말인지 깨달은 요한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프란시스는 그가 쓰는 신성력이 태양신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생각한 요한이 그를 어떻게 깨우쳐 줄 수 있을까 방법을 떠올리고 있을 때.
한심한 표정으로 프란시스를 바라본 네캄프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건넸다.
“쯧, 세상에 신이 태양신만 있다면 이교도도 없겠구려. 그들은 뭐 없는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오?”
“하, 하지만 그 신들은 사실 악마 아닙니까? 사실, 요한 님이 이교도로 배척받은 것도 태생이 뱀파이어라는 것… 때문이니까요.”
“후우, 이보시오. 심문관 나리. 세상에 낮과 밤이 있듯 신도 태양과 달의 신이 있잖소. 쯧쯧, 나보다 더 신학을 모르시오?”
“달의 신은 태양 신에게 소멸당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러면 왜 밤이 찾아오고 달이 뜨는 건지 설명할 수 있소?”
“제가 배운 것으로 설명해드리자면, 태양이 이 땅을 계속 비치면 땅이 너무 뜨거워지기 때문에 땅을 식히기 위해 떼어놓은 거울에 빛이 비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쓰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이겠소?”
“그거야 악… 음.”
순간 악마라는 말을 꺼내려다가 다른 수많은 뱀파이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프란시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은 프란시스의 표정과 어떻게 저런 인물이 이단 심문관이 되었을까 고민하던 네캄프의 표정이 뒤섞일 때였다.
딱-!
뭔가 떠오른 듯 손뼉을 마주친 요한이 프란시스가 주저앉고 있던 바위를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프란시스 님.”
“네, 네 요한 님.”
“지금 프란시스 님이 앉아있는 바위에도 신이 있습니다.”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프란시스를 바라본 요한이 몸을 일으켜 풀을 가리키더니 재차 말을 이었다.
“여기 이 풀들에도 신이 있습니다.”
“……?”
바위에 이어서 풀에 신이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고민하던 프란시스와 네캄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
어디선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음미하듯 쐬던 요한이 말을 마저 이었다.
“심지어 흩날리는 이 바람에도 신이 있지요.”
“그게 무슨……?”
“이렇게 말씀드리면 누가 믿을까요?”
“네?”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요한을 바라본 프란시스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멀뚱히 서 있는 아르한을 바라봤다.
그러나 아르한은 그저 묵묵히 요한을 바라보고 있을 뿐.
어떠한 대답이 될 행동을 하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프란시스가 요한이 스스로 깨어날 수 없던 가사상태에 빠져있었기에 생긴 부활의 후유증이 아닐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재차 고개를 들어 밝은 하늘을 바라보던 요한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아리송한 감정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섞인 오묘한 표정을 지은 프란시스와 네캄프에게 재차 말을 건넸다.
“이해하시기에 조금 어려웠나요?”
“사실 조금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신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런 바위, 풀, 나무에도 신이 있는데 태양에 신이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요.”
“네? 그게 무슨……?”
“신은 세상 어느 곳에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 마음에도 신이 있지요.”
“……!”
충격적인 말이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변할까?
세상 어느 곳에든 신이 있다는 요한의 말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원래 창백한 피부를 가진 뱀파이어들 보다 프란시스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했다.
요한의 말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폴론이 어떻게 이곳에 와서 태양교라는 거대한 단체를 세울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간단한 일이었다.
7 아르카니아는 기형적인 행성이었다.
아폴론이 신격을 잃고 이곳으로 유배를 왔을 때는 동물 혹은 물건을 숭배하는 원시적인 종교가 태동하기 전이었다.
분명 기형적인 일이었다.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모여야 하고 그 사람들을 모으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이해할 수 없는 높은 존재가 시켰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이자 정상이었다.
사람들을 통치하는 데 가장 간편한 것.
바로, 이 모든 것이 인간을 보살피는 신의 뜻이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7 아르카니아는 꽤 발전한 문명의 발전 속도와는 다르게 신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다.
아폴론은 그 점을 파고들어 신격을 잃어버린 신이 신격을 되찾는 데 가장 빠른 방법인 추종자들을 만들어 냈다.
바로, 인간들과 잘 지내고 있었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을 학살한 것.
자신의 원래 위상이었던 태양을 빗댄 태양 신을 표방하면서 말이다.
씁쓸한 미소를 지은 요한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는 완전히 깨어난 자신의 선조 바오로(?)에게 말을 건넸다.
‘선조님 덕분에 많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 내가 관리자 이르카 덕분에 이런 미친 세상을 다 보는구나.
요한과 바오로는 교황청 내부에서 본 수많은 악행의 기록들을 떠올리며 분노에 치를 떨었다.
죽음에 이르렀던 요한이 어떻게 이런 것을 봤을까?
실상은 이러했다.
바오로가 요한의 몸을 통제하고 있을 때
요한은 이르카에게 몇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당신은 죽습니다. 하지만, 다시 회귀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이곳에서 부활시킬 겁니다. 왜 그런지는 물어보지 말아 주세요. 이건 그대의 선조가 말해준 겁니다. 바로, 피의 저주를 벗어나는 방법이니까요.]
영체 상태에서 죽음을 예고한 이르카의 메시지를 확인한 요한이 답장을 못 하고 있었을 때 재차 메시지가 날아들었었다.
[마침 딱 좋네요. 며칠의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는 마세요. 아르한은 제가 통제할게요. 그러니… 지금 요한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바오로랑 같이 이곳을 둘러보세요. 사실, 예전에 회귀자를 보냈을 때 제대로 깨닫지 못했지만, 요한 님 덕분에 저도 시야가 좀 펴지고 난 뒤에 보니까 이곳은 이상하리만치 이상합니다. 태양 신을 제외하고 언급되는 건 태양 신에게 패했다는 달의 신밖에 없어요. 이건 조금 이상한 일 아닌가요?]
듣고 보니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요한이 살던 지구만 해도 신이 몇십 아니, 몇백을 넘었다.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하급 신까지 포함하면 기천에 달하는 수많은 신이 존재했고, 이것은 지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차피 죽은 거 영체 상태에서 자유롭게 한번 돌아다니면서 뭔가 이상한 점이 없는지 찾아봐 주세요.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이르카의 메시지를 받은 뒤.
요한은 바오로와 함께 영체상태로 교황청을 열심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구의 교회들과는 다르게 영체를 감지하는 신성력이 아예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덕분에 교황청의 심처까지 들어갔던 것.
그때 그들은 악의 기록을 보고야 말았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인간들을 사육했다는 날조된 기억을 보고는 허탈해했으며.
평화롭게 지내던 이들을 학살하고는 자랑스럽게 신의 뜻이라고 말한 라헬이라는 존재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 모든 것을 떠올린 요한은 타오르는 분노를 차분하게 삭이고는 미소를 지으며 프란시스에게 말을 건넸다.
“죽었을 때 신을 만났습니다.”
“네?”
“그 신이 제게 말하더군요.”
갑작스레 표정을 굳히고는 말을 멈춘 요한의 입술을 프란시스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과연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는 것일까?
의아한 표정을 지은 프란시스가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요한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저 이었다.
“거짓된 태양교를 부숴버려라.”
“……?!”
“이게 제가 들은 말입니다.”
그동안 유한 모습만 보이던 요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힘든 말이었다.
아니, 사실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고 죽음에 이르게 했던 우로스마저 살리고 온 사람 아니, 뱀파이어가 하는 말이 맞나 프란시스가 고민할 때.
말을 마친 요한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이것이 제가 관리자 이르카를 만나고 이 세계로 온 이유였나이까. 그렇다면, 저도 변하겠나이다. 당신을 위한 기도만 올리는 성직자가 아닌, 타락한 자들을 심판하는 성직자가 되겠나이다. 그리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겠나이다.’
기도를 마친 요한은 이내 손수건을 꺼내들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기도를 올리며 흘릴 피가 없었다.
* * *
요한이 7 아르카니아를 잠식한 태양교를 단죄할 다짐을 하고 있을 때.
카르나님과 함께 사방이 화려한 불빛으로 뒤덮인 빙의부 관리신 우즈라토의 집무실에 찾아갔다.
화려한 집무실 주변을 쭉 둘러본 뒤.
그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에 혀를 내두르며 카르나 님에게 말을 건넸다.
“여긴 참 화려하네요.”
“그렇지, 예전에는 빙의부가 회귀부보다 훨씬 실적이 좋았으니까.”
“그래요?”
“응. 회귀부가 빙의부보다 실적이 더 좋아진 건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일이란다.”
“오? 그래요?”
“응. 이제는 또 밀리겠지만…….”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지은 카르나 님을 슬그머니 바라보고는 질문을 건넸다.
“왜요?”
“에휴, 지금은 헤라클레스도 없고… 쓸 만한 애들이 없잖아.”
“……?”
헤라클레스가 사라진 건 이해하겠는데,
쓸만한 애가 없다는 건 나를 욕하는 거 아닌가?
의아한 표정으로 카르나 님을 멀뚱히 쳐다볼 때였다.
끼익-!
우즈라토의 집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마치 복마전과 같은 곳을 향해 마른침을 삼킬 때.
카르나 님이 내 손을 붙잡으며 말을 건넸다.
“가자. 저것들 조지러.”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