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관리하는 법-93화 (93/121)
  • 93화

    화려한 조명을 뒤로한 채 모습을 드러낸 아폴론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생각했거늘…….

    그런데 이건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 간섭 아닌가?

    아니,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겠지.

    이렇게 직접 모습을 드러낼 정도의 간섭력은 발휘해도 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자신 있게 나타난 것일 터.

    그 사건은… 대충 예상이 갔다.

    어느새 옆에 다가와 팝콘을 씹어먹고 있는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화면에 비친 아폴론의 모습을 흥미롭게 쳐다보던 마리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살짝 놀란 표정을 짓고는 말을 더듬었다.

    “뭐, 뭔데?”

    “아냐, 그냥 먹던 거 열심히 먹어라.”

    “싱겁기는…….”

    “너 솔직하게 말해봐.”

    “응? 뭘?”

    “요한을 부활시킨 일 말이야. 그거 간섭력이 조금은 발생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아예 안 생기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서 말이야.”

    아폴론이 이렇게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마리가 만든 생명의 빛줄기.

    그것이 아폴론의 개입을 불러온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부활과 같은 기적은 쉽게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관에 있던 요한의 정확한 상태는 거의 가사상태에 가까웠기에 완벽한 부활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모호했다.

    다만, 그 가사상태라는 것이 혼만 빠져나가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때 마리가 손에 쥔 팝콘을 입에 던지듯 넣고는 열심히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답을 회피해?

    마치 철부지 같은 마리의 행동을 물끄러미 지켜보고는 그녀에게 재차 질문을 건넸다.

    “뭐라고 하려는 거 아냐, 네 덕분에 요한이 피의 저주를 벗어나게 되었잖아? 게다가 부활한 성직자라는 컨셉을 유지하면 빠르게 세력을 늘릴 수도 있거든?”

    “…….”

    끝까지 대답하지 않으려는 듯 이미 입안에서 사라진 팝콘을 열심히 씹는 척을 하는 마리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을 꺼냈다.

    “아! 아파! 이런 폭력 도마뱀!”

    “너는 침을 씹어서 삼키냐? 팝콘이 입에서 다 녹고도 남을 시간까지 우물거리면 누가 믿어. 그리고 지금 말할 때 팝콘 입안에 없는 거 다 보이거든?”

    “헙!”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마리는 다급하게 조그마한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듯 막았다.

    “마리야. 나 화 안 났다. 네가 해준 게 얼만데 이런 일로 화를 내겠냐?”

    “지, 진짜?”

    “응. 그리고 아폴론이 요한을 직접 해치지는 못하잖아.”

    아폴론은 요한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못한다.

    이건 아폴론뿐만 아니라 다른 올림포스의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폴론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고작 상위급 신일 뿐이다.

    다른 최상위급 신들이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멀쩡한 회귀자를 건드리고 무사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다른 신들의 반발은 물론이고 올림포스가 크나큰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는 일.

    간섭력이 있냐 없느냐를 떠나 요한이 신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욱 컸으니까.

    그때 마리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꺼냈다.

    “그치?”

    “응, 그런데 네가 힘을 쓴 게 7 아르카니아에 어느 정도 간섭력을 행사한 거야?”

    “사실, 그게 신이 직접 행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간섭력은 아니거든? 다만…….”

    “다만?”

    “세계급 계시…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

    마리가 꺼낸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세계급 계시?

    그렇다면 지구로 따졌을 때 어느 정도 급이더라?

    그런 사례가 있었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

    마리가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말을 꺼냈다.

    “아오! 제우스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네.”

    “응?”

    “눈치챌 때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그러니까 음, 아폴론이 세계에 자기 뜻을 전파할 수 있을 정도의 간섭력이 발생했…어.”

    “……?”

    이게 무슨 헛소리일까?

    세계에 자기 뜻을 전파할 수 있을 정도의 간섭력이라면 요한을 대놓고 저격할 수 있다는 말 아니던가?

    그때 수박을 잘라온 안젤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리에게 말을 건넸다.

    “그건 그냥 대놓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급아냐?”

    내 말이 그 말이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안젤라의 질문을 들은 마리가 머리를 거칠게 긁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음, 이게 직접 힘을 쓰는 간섭력은 아니거든? 만약에 이르카 네가 직접 요한을 구출해줬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그건 유다가 자신의 영혼을 희생하기로 했잖아.”

    “아오, 그러니까 만약에 유다가 없다고 생각해봐.”

    “에이, 바보냐? 그랬으면 그냥 요한을 죽게 놔두고 말지 내가 왜 간섭을 해.”

    “아오! 이 돌대가리야. 아무튼, 내가 하는 간섭은…그래! 어떻게 보면 ‘계시’에 가까운 힘을 쓰는 거야. 계시는 어떻게 보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가깝지만, 또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잖아?”

    마리의 열성적인 항변을 듣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계시라는 것은 강한 힘이다.

    어떤 이에게 강한 동기부여를 주는 힘이자 혹은 목표를 제시해주는 힘이었으니까.

    하지만, 계시를 듣는 대상자가 그 계시를 믿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면?

    계시는 아무런 힘이 없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았다.

    때에 따라 가장 강한 힘이 되기도 하지만,

    가장 무의미한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이 계시였으니까.

    그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은 마리가 아폴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어떻게 내 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눈치가 빠르다고 해서 이렇게 순식간에 알 수는 없는데…….”

    어라?

    하긴, 옆에서 지켜본 나도 마리가 쓰는 힘의 본질이 계시라는 걸 몰랐는데?

    아폴론이 저렇게 빨리 알아채고 행동에 나섰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한데?

    이건 올림포스에 마리의 정체를 말해준 조언자가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마리, 네 힘의 정체가 계시라는 걸 아는 신이 누구누구야?”

    “음… 하나만 말해주자면 가장 끗발 떨어지는 신이 메타트론 아저씨야.”

    “뭐?”

    메타트론은 에덴의 수장.

    창조신의 권한은 없지만, 그가 가진 힘을 따졌을 때 제우스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취급을 받는다.

    괜히 그분의 대리자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빛의 신이 가장 처음 만든 대천사였으니 당연한 말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메타트론이 가장 끗발이 떨어져?

    황당한 마리의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을 때.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곰곰이 듣던 안젤라가 조심히 말을 꺼냈다.

    “그런데, 마리야. 얼마 전에 소멸한 바싸고도 네 힘의 정체를 알고 있지 않았어?”

    “응? 아,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개자식…도 알고 있기는 했지.”

    어?

    잠깐만…….

    “그렇다면 바싸고가 제우스에게 말해준 게 아닐까?”

    “응? 에이, 제우스가 아무리 그래도 바싸고랑 같이 놀 급은 아니지 않아?”

    “그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긴 안젤라와 이맛살을 찌푸리며 아폴론을 노려보고는 ‘어떻게 안 거지?’라고 중얼거리는 마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녀들은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정답에 가까운 추론을 끌어냈다.

    바로 바싸고와 제우스가 같이 놀 ‘급’ 말이다.

    하긴, 얼마 전에 7 아르카니아에 바싸고가 나타난 것 자체도 이상한 일이었지.

    뻔히 관리자가 채널을 운영 중인 회귀자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도 위험부담이 큰일 아니던가?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바싸고 뒤에 누군가 있었구나?

    그때 완벽히 모습을 드러낸 아폴론이 엎드려 경배하고 있는 태양교의 성기사들과 사제들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일어나라 나의 자식들이여! 사악한 어둠의 존재가 이 땅을 더럽히고 있다! 그가 쓰는 사악한 힘은 태양의 신성한 빛이 아니다! 그의 사술에 속지 말지어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너희들의 녹슨 검을 갈고, 갑옷에 기름을 칠하라!

    이거 너무 노골적으로 요한을 저격하는데?

    너무 대놓고 요한을 적대하는 아폴론의 메시지에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와 동시에 채널의 메시지창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었다.

    [태양신 아폴론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대해도 괜찮은 것인지 많은 신이 질문을 건넵니다.]

    [일부 신이 이런 일방적인 계시를 내려도 간섭력에 영향이 없는지 궁금해합니다.]

    [요한이 부활한 힘도 간섭력을 줬을 테니 상관은 없지 않겠냐는 답변을 내놓는 신이 있습니다.]

    [하늘의 대리자 대천사 메타트론이 불편한 표정으로 아폴론을 바라봅니다.]

    [심판의 대천사 미카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올림포스 쪽 방향을 쳐다봅니다.]

    [파괴의 대천사 우리엘이 싸울 거면 화끈하게 싸우라고 말합니다]

    [하늘의 대리자 대천사 메타트론이 혀를 끌끌 차며 우리엘의 입을 막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꺼낸 우리엘이 끌려간 것까지 확인할 때 아폴론이 재차 계시를 내렸다.

    -먼 옛날! 사악한 어둠 속에 살아가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에게 고통받던 나의 아이들이여! 내 너희를 불쌍히 여겨 내 자식 라헬을 보내준 일을 기억할 것이다!

    뻔뻔한 아폴론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라헬은 본인이 신격을 잃었을 때 쓰던 이름 아니던가?

    지금 아폴론은 본인 입으로 본인을 자식이라고 칭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7 아르카니아에서는 그 사실을 모를 테니 큰 상관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사실을 기억하는 신들이 꽤 있을 텐데 나중에 조금 쪽팔리지 않을까?

    그때 내 표정을 살핀 마리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갑자기 왜 웃는 거야?”

    “지금, 이 상황이 조금 재밌는 거 같아서.”

    “응? 뭐가 재밌는데?”

    “라헬은 아폴론의 또 다른 이름이야.”

    “응?”

    “뭐, 나도 들은 얘기지만, 아폴론이 신격을 잃었을 때 7 아르카니아로 갔거든? 거기서 태양교를 세우고 자신을 찬양하게 만들었어. 그래서 신격을 회복했지.”

    카르나님에게 들은 아폴론에 얽힌 비화였다.

    태양교 자체가 태양신으로 불리던 신이 신격을 잃고 내려와서 자신을 찬양하라고 만든 거라는 사실을 설명해주자 마리의 얼굴이 벙찐 표정으로 변했다.

    “뭐, 한마디로, 자기가 자신을 자식이라고 말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거지.”

    “헐…….”

    “그리고…….”

    그때였다.

    아폴론이 손에 쥐고 있던 활에 시위를 재더니 하늘로 쏘아 보냈다.

    곧 길게 뻗은 빛의 길이 어딘가를 가리킬 때.

    그 모습을 가리킨 아폴론이 재차 크게 외쳤다.

    -태양의 아이들이여! 사악한 이교도들과의 성전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때를 대비하여! 태양의 아들을 보냈으니! 내가 쏘아 보낸 빛의 길을 따라올 자를 경배하며 기다려라!

    뭐? 이게 무슨 소리지?

    태양의 아들을 보냈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충격적인 아폴론의 말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고민에 빠졌을 때.

    태양교의 성직자들과 사제들이 하늘을 향해 경배하며 소리치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려 퍼졌다.

    [우아아아! 태양 만세!]

    [태양신 만세!]

    [태양의 아들이 온다!]

    [이교도를 몰아내자!]

    [성전을 준비하라!]

    마치 광기에 물든 것 같은 태양교도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다급하게 카르나 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카르나 님? 지금 보셨죠? 설마 또 다른 회귀자가 끼어든 건가요? 이게 무슨…….]

    [카르나티우스: 나도 지금 머리 아프니까 천천히 물어보렴.]

    [이르카: 어떻게 된 일이죠? 태양의 아들이라뇨? 제가 관리하는 세계에 어떻게 다른 존재가 끼어들 수 있다는 건가요?]

    [카르나티우스: 후우, 빙의부가 올림포스와 손을 잡은 거 같아.]

    [이르카: 네?]

    [카르나티우스: 이게 조금, 골치 아프단다. 올림포스에서는 지금, 네가 아스가르드랑 거래를 한 걸 들먹이고 있거든?]

    [이르카: 그래도 그렇지… 저한테 아무런 통보도 없이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예요?]

    [카르나티우스: 정당한 계약을 맺었다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단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는걸?

    올림포스 녀석들이 아스가르드와의 거래를 들먹이다니.

    이맛살을 찌푸린 채 카르나 님에게 재차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관리자가 어떤 놈이랍니까?]

    [카르나티우스: 너도 아는 놈이야.]

    [이르카: ……?]

    [카르나티우스: 선발대전에서 너한테 깨진 놈.]

    선발대전이라면 설마 베르미우스?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녀석을 한번 만나보러 가야겠는걸?

    입술에 침을 잔뜩 바르면서 말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