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관리하는 법-92화 (92/121)

92화

신성한 빛의 힘 덕분일까?

프란시스의 불에 타 쪼그라든 피부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갈 때.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요한을 바라본 우로스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 어째서? 뱀파이어 따위가 저런 거대한 신성력에도 불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더냐!”

“우로스. 그대의 눈은 가려져 있군요.”

“뭐, 뭐라고?”

“가려진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삐뚤게 바라볼 수밖에 없지요.”

“이익…! 감히 태양의 사도에게 무슨 망발… 망발을…….”

그러나 우로스의 발악과도 같은 대답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는 요한의 몸에서 태양의 빛보다 뜨겁고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

요한이 기도를 올림과 동시에 마치 자그마한 태양처럼 몸이 빛나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본 태양교의 성기사들 또한 입을 쩍 벌리고는 섣불리 다가서지 못했다.

그때 한 성기사가 요한에게서 나오는 신성력을 보고는 황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 어둠의 족속인 뱀파이어에게 어찌 저런 신성력이……?”

“다들 정신 차려라! 저건 신성력이 아니다! 뱀파이어의 사술이다!”

휘하 성기사 한 명을 다그친 제2 성기사단 3조장 다이슬러는 빛을 뿜어내는 요한과 멍하니 서 있는 우로스를 번갈아 바라보며 잘게 입술을 깨물었다.

‘미친! 저건 진짜 신성력 아냐? 우로스 심문관은 분명 사술을 쓰는 뱀파이어를 잡았다고 했는데… 아니, 그것보다 생기를 빼앗긴 뱀파이어가 저렇게 되살아나는 일도 있나?’

다이슬러는 혼란스러워졌다.

분명 뱀파이어는 사술을 써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존재들이었다.

실제로 이단 심문관들을 따라 몇 번 토벌을 나갔을 때, 뱀파이어들은 신성력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게다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생생한 모습으로 되살아난 요한이었다.

물론, 뱀파이어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가 맞기는 했다.

오래 묵은 뱀파이어들 중에서는 햇빛에 노출되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존재들도 있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그런 뱀파이어를 완전히 죽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특수한 은제 말뚝으로 심장을 꿴 뒤.

흘러나오는 생기를 완전히 빼고 신성한 나무에 가서 불태운다면 그 뱀파이어는 소멸한다.

요한 또한 생기를 완전히 뺀 상태였다.

비록, 신성한 나무에 가지는 못했지만, 생기가 완전히 빠진 뱀파이어가 불길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살아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저렇게 생생한 모습으로 말이다.

어쩌면 요한이 진짜 신성력을 발휘하는 사제의 힘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다이슬러가 마른 침을 삼킬 때였다.

요한의 몸에서 나오던 환한 빛이 줄어들더니 요한이 감았던 눈을 떴다.

칠흑보다 검은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본 요한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피 칠갑을 한 아르한의 모습이었다.

거대한 신성력을 뿜어내는 방패를 든 아르한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아르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요한 님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제가 죽일 놈이지요.”

희미한 미소를 지어 아르한에게 화답한 뒤.

고개를 돌리자 환희에 찬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프란시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불에 탄 상처는 관리자 이르카가 보내준 신성력을 이용해 치유해주기는 했지만, 사라진 눈썹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원래보다 더욱더 험악해진 인상을 자랑하는 그를 지긋이 바라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프란시스 님이시죠? 왜 저를 위해 몸을 던지신 겁니까?”

“타락한 태양교를 응징하기 위해 오신 분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타락한 태양교라는 말을 꺼내는 프란시스를 잠시 바라본 요한이 이내 고개를 들어 주변의 처참한 광경을 훑듯이 바라봤다.

사지가 부서지고 처참하게 꺾여 죽은 성기사들.

신성력에 불타 재만 남기고 사라진 뱀파이어들.

전쟁의 화마에 휩싸여 수많은 생명이 꺼졌음을 확인한 요한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이 부족한 자 때문에 너무 많은 분이 쓸데없는 희생을 치렀군요.”

“요한 님. 이건 저들이 먼저 건 싸움입니다.”

아르한의 거침없는 대답에 살짝 미소를 지어준 요한이 자신의 상처를 신성력으로 치료하고 있는 우로스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저를 왜 함정에 빠트리신 겁니까? 그저 제가 뱀파이어라는 이유만으로 그러신 건가요?”

“크큭, 설마! 네놈이 쓰는 신성력이 거짓된 것이라는 걸 알고서 한 것이다!”

“거짓된 것이라뇨?”

요한의 물음에 우로스가 아르한을 가리키더니 발악하듯 소리쳤다.

“저기 저 미친 오크의 피를 빨아서 쓰는 신성력이 제대로 된 신성력이더냐! 그것은 사술이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군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요한을 바라본 우로스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크큭, 내 목을 취한다고 해서 네놈들이 이겼다고 착각하지 마라. 더욱더 많은 이단 심문관들과! 철저한 신념으로 무장된 성기사들이 네놈들을 찾아갈 테니까!”

“그렇다면, 제가 그분들을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아! 혹시, 피를 마시지 않고 신성력을 쓰게 된다면 그것은 사술이 아니게 되는 건가요?”

“……?”

뜬금없는 요한의 말에 아르한도 우로스도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특히, 아르한은 황당함을 넘어서 어떤 기묘한 표정으로 요한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르한이 처음 요한을 만났을 때 그는 아르한의 피를 마시고 혈마법을 쓰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신성력을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피를 마시고 혈마법을 써야 했기에 결국은 수긍했지만 말이다.

그때 요한이 마치 안개처럼 변하더니 우로스의 등 뒤로 다가갔다.

화들짝 놀란 우로스가 품에 지니고 있던 녹색 단검을 휘두르려 할 때.

탁-!

우로스의 단검을 붙잡은 요한이 우로스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아직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군요. 단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저를 기습할 때보다 훨씬 느리시네요.”

“이익! 감히 나를 능멸……!”

자신이 능욕당했다고 생각한 우로스가 마치 발악하듯 요한에게 외칠 때였다.

우로스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요한의 손에서 별안간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

이내 공격당했다고 느낀 우로스가 방어 자세를 펼칠 때.

우로스의 상처에 하얀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로스가 전심전력을 다해 치유해도 제대로 고쳐지지 않던 상처가 단숨에 고쳐진 것.

어안이 벙벙해진 우로스가 상처와 요한을 번갈아 바라볼 때 요한이 우로스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이것도 사술인가요?”

“…….”

우로스는 사술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을 떼지 못했다.

그의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제껏 느꼈던 신성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순수한 기운이었으니까.

‘아, 아냐! 이건 사…사술이야. 뱀파이어 따위가 신성력을… 이건 신성력이 아니야!’

거의 완벽하게 아문 상처를 바라본 우로스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요한의 힘을 신성력이 아니라 부정하려고 노력할 때.

그 어느 때보다 무표정한 표정을 지은 요한이 우로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꺼냈다.

“그대가 모시는 대주교들에게 말씀해주세요. 곧 찾아뵙겠다고요.”

“뭐, 뭣?”

“이것이 당신을 살려드리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

말을 마친 요한의 양손에서 하얀 빛무리와 함께 거대한 마법진이 생겼다.

이내, 요한의 주변에 아르한과 프란시스 그리고 네캄프를 비롯한 뱀파이어들이 모여들었다.

요한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우로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때.

하늘로 치솟는 하얀 빛무리에 휩싸인 요한이 우로스를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면 또 뵙죠.”

“아, 안 돼!”

팟-!

이내 하얀 빛무리가 사라지더니 요한이 서 있던 자리에는 그 어떠한 존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교황청을 뒤흔들고는 순식간에 사라진 요한과 그의 일행들을 향한 공허한 우로스의 외침만이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 * *

태양교의 중심지에서 요한이 사라지고 난 뒤.

시끄럽게 울려대는 메시지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졌다.

[메타트론: 확실히 요한에게는 또 다른 자격이 있구나, 혹시 네가 말해준 것이냐?]

아닙니다.

요한에게 메시지를 보낼 시간도 없었어요.

[미카엘: 자신의 목숨을 빼앗은 아니, 빼앗을 뻔한 자에게 복수하지 않는다니… 요한이라는 아이는 너무 착하기만 하군요. 오히려 그 옆에 있는 아르한이라는 아이가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 행보가 궁금하군요.]

아르한은 요한의 곁에 있을 때 빛이 납니다.

아직은 탐내지 마세요.

게다가 왜 이렇게 부담스럽게 존댓말만 합니까?

심판의 대천사 양반께서.

[라파엘: 허, 그런 험한 꼴을 당하고도 복수를 하지 않는다니,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냐? 당장 요한이라는 아이를 만나러 가고 싶을 정도네.]

댁이 거길 왜 갑니까.

아니, 가면 오히려 좋은 일이려나?

[우리엘: 야! 아오! 답답해. 저 빡빡이 왜 안 죽여? 요한이라는 놈은 못 써먹겠네, 대신에 아르한이라는 놈은 꽤 쓸 만해 보이는데… 죽으면 나한테 보내라. 아, 그리고 십자가의 방패는 계속 쟤가 쓰는 거지?]

이게 날로 먹으려고 하네?

십자가의 방패까지 먹겠다는 욕심을 이렇게 티 나게 말하면 내가 보내주겠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셀 수 없이 쏟아지는 대천사들의 메시지의 향연에 빠져있을 때였다.

까악-!

집무실을 울리는 비명과도 같은 안젤라의 외침을 듣고는 옆머리를 긁적였다.

“이, 이르카님! 후, 후원금 보세요! 세상에 이게 다 얼마야?”

“얼마나 들어왔는데?”

“파, 팔십만이요.”

“역대 최고액이네? 확실히 천사들이 모시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포인트가 많아.”

신들이 포인트를 벌어들이는 수단 중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인간들에 대한 영향력이다.

에덴은 확실히 그 영향력이 넓게 퍼져있다.

아니, 가장 넓다고 봐야 옳았다.

덕분에 에덴 소속의 천사들 대부분이 많은 포인트를 가지고 풍족하게 사는 것이었고.

그때 안젤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이르카 님, 왜 기뻐하지 않으세요?”

“응? 내가?”

“네. 계속 심각한 표정만 짓고 계셔서요.”

“아, 뭐… 너무 순조로워서?”

“네? 그게 무슨……?”

“말 그대로 너무 순조로워서 불안해.”

성진아는 바싸고의 힘을 얻어 지옥에 갔다.

물론, 그 일이 그리 순조로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내게 커다란 이득이 된 일이나 마찬가지.

게다가 요한을 부활시키면서 계획했던 것 중 많은 부분이 이뤄졌다.

유다에게 들었던 부작용이 없이 신성력을 사용하는 방법 중 부활이 확실하게 요한에게도 작용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아르한 없이도 막대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요한은 이제 7 아르카니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요한 전용 수혈팩으로 취급당하던 아르한도 이번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니, 모든 것이 좋은 일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불안감은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일까 생각한 뒤.

안젤라에게 대답하려 할 때였다.

7 아르카니아의 밤하늘이 갈라지더니 달이 사라지고 환한 태양을 등 뒤에 둔 아폴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