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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90화 (90/121)
  • 90화

    입술을 꾹 다문 프란시스가 뱀처럼 눈을 빛내고 있는 우로스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을 건넸다.

    “우로스 선배님 말씀이 조금 이상하군요.”

    “호오? 변명할 거리가 있는 것인가?”

    “제가 머리에 화살을 맞지 않은 이상 이교도들과 함께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차분하게 대답한 프란시스를 살핀 우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질문을 건넸다.

    “프란시스, 자네는 지금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저 이교도들이 보이지 않는가?”

    “아주 잘 보이는군요. 그리고 제 눈에 저들의 운명까지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프란시스는 아르한과 뱀파이어들이 달려드는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말을 마저 이었다.

    “저는 선배님이 할파스 백작령에 다녀오시는 동안 저는 수괴가 사살되었음에도 끈질기게 남은 이교도 잔당을 쫓고 있었습니다.”

    “호오?”

    “아르한이라는 그 멍청한 오크를 기억하십니까?”

    “그 미친 오크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있는가?”

    얼마 전 요한이라는 이교도 뱀파이어를 처형할 때 혈혈단신으로 고위 성기사 이십여 명을 학살한 괴물 같은 오크를 떠올린 우로스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순교한 성기사들의 동료들의 입을 통해 들은 그의 무력은 굉장했다.

    만약 그를 따로 떨어트리지 않았다면 이교도를 처단하기에 굉장한 힘이 들었을 것이 분명했었던 일.

    그때 우로스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프란시스가 재차 말을 이었다.

    “저는 그 아르한이라는 오크를 만났습니다.”

    “흠, 본론만 말하게나. 자네의 대답에 따라 자네의 운명이 달라진다네.”

    우로스는 자신이 할파스 백작령에 가 있는 동안 프란시스가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첩보를 이미 받은 상태였다.

    함께 교황청으로 오는 길에 어딘가 모르게 요한이라는 이교도를 바라보는 눈빛이 수상했기에 그동안 행적이 묘연했던 점을 빌미로 삼아 그를 처단하려고 했던 것.

    하지만 스스로 이렇게 행적을 밝힌다면 조금 더 들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 우로스가 그의 대답을 재촉했다.

    “어서 말하지 않고 뭐 하는 건가?”

    “아, 잠시 제가 알려준 대로 가장 방어가 튼튼한 곳을 공격하고 있는 저 멍청이들을 바라봤습니다.”

    “음?”

    실제로 아르한과 뱀파이어 일행이 공격하고 있는 곳은 교황청에서도 가장 방비가 충실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보고 비웃으며 부나방 같다고 말한 것이었고 말이다.

    우로스는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프란시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설마, 이 모든 것이 프란시스의 계략이었다는 말인가?’

    그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린 프란시스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우로스에게 말을 건넸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이단 심문관이 어떤 존재인데 배신을 하겠습니까? 제가 태양교를 등지고 왔다고 말하자 순진하게 믿고 죽으러 달려드는 꼴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이 그대가 계획한 것이었다는 말인가?”

    “그렇죠.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속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허어.”

    참으로 무서운 심계였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속이라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가장 이행하기 어려운 행동이기도 했다.

    잘못하면 첩자 혹은 변질자로 오인당하여 아군에게 사살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위험한 일을 스스럼없이 해서 요한이라는 이교도를 미끼 삼아 다른 이교도들까지 끌어모은 프란시스의 계략에 우로스가 진심을 담은 감탄성을 내뱉을 때.

    프란시스가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감싸고 있던 두건을 벗어 던지며 태양신에게 보내는 기도를 올리고는 진중한 목소리로 읊듯이 말을 내뱉었다.

    “저는 태양신께서 내려보내 주신 라헬 님의 충실한 종으로 살겠다 맹세한 몸입니다.”

    프란시스의 말이 과연 진실일까?

    우로스는 화광(火光)이 비치는 프란시스의 매끈한 머리를 오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건넸다.

    “그대에게 태양의 축복이 내리길.”

    “태양 만세.”

    가슴을 두 번 두드린 후 두 팔을 하늘로 뻗은 프란시스를 바라본 우로스가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을 건넸다.

    “내 쓸데없는 의심을 해서 미안하군, 정보를 가져다준 자는 정화의식을 해야겠어. 감히 이단 심문관을 의심하다니 말이야.”

    살아있는 이교도의 몸에 말뚝에 꽃아 피를 남김없이 빼고 햇볕에 말려 그 안에 태양의 신성함을 채워 넣는 의식인 정화의식을 태연하게 말한 우로스를 말없이 바라보던 프란시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모든 것은 태양신의 뜻대로.”

    “태양 만세!”

    감격한 우로스가 팔을 하늘로 뻗으며 기도문을 외우고 있을 때 아르한이 있는 방향을 슬쩍 바라본 프란시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요한의 관이 있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 * *

    4 지구에서 일어난 일은 카르나 님께 보고를 드려야 하는 일이었지만 루크레시아가 오랜만에 누이를 볼 겸 자신이 말하겠다고 하고 떠났다.

    성진아 역시 지옥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어달라고 하고는 사탄을 만나고 오겠다고 말하고 난 뒤.

    홀로 중간계로 발걸음을 옮기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사다난한 일이 있었지만, 어찌어찌 바싸고와 얽힌 사건은 잘 해결되었다.

    문제는 갑작스레 빛나기 시작한 천부령이었다.

    성진아에게서 엑스칼리버(대여)와 십자가의 방패(구매)를 건네받고 난 뒤.

    집무실에 도착할 때쯤 천부령 주변에 이상한 처음 보는 문양이 떠오르더니 녹색과 적색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허탈한 웃음을 내뱉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누런색만 있으면 딱 신호등이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이러다 진짜 노란색으로도 빛나는 거 아냐?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천부령을 유심히 쳐다봤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천부령을 노려보며 걸음을 옮기자 어느새 포근한 아니, 포근했던 집무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방진 꼬맹이 마리와 눈에 쌍심지를 켜고 기다리고 있을 안젤라를 떠올리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며 조심히 인사를 건넸다.

    “나 왔……?”

    “어머 어머, 그래서 어떻게 했어?”

    “흐흫,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내가 딱 이렇게 말했지! ‘이것만 기억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다.’ 크으! 대사 좋지 않아?”

    “흠, 확실히 뭔가 느낌이 있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응? 그거야 당연히…….”

    마리가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듯 입술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있을 때.

    그녀의 입을 대신해 말을 꺼냈다.

    “바싸고한테 복수하고 싶어서지.”

    “……!”

    “아냐? 널 타락시킨 존재가 바싸고잖아. 그렇다고 해서 그 위험한 영혼흡수를 시키다니 네가 지금 제정신인 거냐?”

    “내가 도와주려고 했거든? 그리고 어차피 성진아의 기억 파편으로 구현한 공간이잖아. 거기서는 성진아가 이기거든?”

    “얼씨구? 만약에 바싸고가 일찍 눈치챘으면 소멸당하는 건 성진아였어. 녀석이 강태식의 영혼을 흡수하고 난 뒤에 눈치채서 다행이지…….”

    “어, 어쨌든 제대로 성공했잖아! 지, 지나간 일로 말하는 건 치사하다!”

    “…그래, 뭐 모로 가나 기어가나 목적지에만 가면 되는 거니까. 그 말은 그만하마.”

    사실, 성진아가 한 행동은 상당히 위험했던 도박이었다.

    그게 주사위가 잘 터지듯 결과가 좋아서 그렇지, 잘못되었으면 성진아의 영혼이 소멸할 뻔했던 일 아니던가?

    그때 마리가 자그마한 몸을 쭉 펴며 자신이 잘했다는 양 자신만만하게 말을 내뱉었다.

    “엣헴! 어쨌든, 바싸고도 처리하고 성진아의 소원도 이뤄주고 일거양득 아냐?”

    “소원을 이뤄줘?”

    “응? 아냐?”

    “아직 제대로 소원을 이뤄주지는 못했잖아. 그녀가 부모님께 제대로 인사는 해야지.”

    “기억 파편을 구현하는 건 한 번밖에 못 하는 거잖아…….”

    “그렇지. 뭐, 방법은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고… 안젤라?”

    “네?”

    안젤라를 부르자 그녀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두 눈을 열심히 깜빡이며 날 바라봤다.

    나한테 뭐 원하는 거 있나?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안젤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질문을 건넸다.

    “마리랑은 말 놓기로 한 거야?”

    “흐흫, 아무래도 계속 존대하기에도 모호해서요.”

    “어… 음… 뭐, 보기 좋네. 친자매 같아.”

    “진짜요?”

    “응, 마리가 동생 같아. 말 안 듣는 철부지 막냇동생 느낌이랄까?”

    “뭐라?!”

    “나 이르카시우스 엔카나시온이 명하노니 철없는 꼬맹이 마리는 저기 구석에 가서 반성하고 있어라~”

    “이익! 이런 멍청한… 헙!”

    “그 시끄러운 입도 다물고 있어라~”

    “우웁! 우우웁!”

    누누이 말하지만, 집무실에서는 내가 왕이다.

    마리가 아무리 본연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여기서는 내 명을 거역할 수 없는 법.

    눈에 쌍심지를 켜고는 떼를 쓰려 달려드는 마리를 한쪽으로 밀어두고는 안젤라에게 질문을 건넸다.

    “안젤라, 오늘 그 날 아냐?”

    “네? 그 날이요?”

    “요한 부활시키는 날.”

    “……!”

    화들짝 놀라서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있는 안젤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흠… 아냐.”

    “죄, 죄송해요! 지금 바로 준비할게요!”

    “괜찮아. 뭐, 늦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안젤라?”

    “네, 네넵!”

    “내가 없을 때는 안젤라가 관리자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우리는 운명공동체나 마찬가지잖아. 그동안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건 이해하는데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줘.”

    고개를 푹 숙이고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안젤라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며 말을 마저 이었다.

    “관리하는 회귀자 숫자도 더 줄일까? 많이 줄이긴 했는데 아직 조금 많지? 이제 요한하고 아르한이랑 헤라클레스, 로니만 관리하면 더 편하겠…….”

    그때 갑자기 안젤라가 품에 달려들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다행이다.”

    “응?”

    “내가 아는 이르카 님이라서. 다행이다.”

    “저기 안젤라? 일단, 지금은 일할 시간이거든?”

    “흐흫, 알고 있어요. 일하자, 일!”

    안젤라가 요한과 아르한이 나오는 채널을 확인하기 위해 시스템을 조작하러 간 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어느새 입에 걸린 봉인을 푼 마리가 다가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꺼냈다.

    “꼴값들은…….”

    “너 또 주둥이 묵념하고 싶냐?”

    “그러면 요한 못 살리거든?”

    “…넌 천벌 받을 거야.”

    “흥! 안 받거든?”

    그때 투덜거리던 마리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런데 결혼하면 좋아?”

    “음, 나 같은 경우엔 별로였어.”

    “……?”

    “아, 내가 말 안 했나? 내가 관리자 일을 하기 전에…….”

    턱을 손가락으로 긁적이며 마리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한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이, 이르카 님!”

    “응?”

    “빡, 빡빡이가 배신했어요!”

    “뭐?”

    그럴 리가 없는데?

    아르한이 구매한 스킬인 진실의 눈으로 확인한 결과는 내게도 보인다.

    아무리 거짓말이 능숙한 자라고 하더라도 진실의 눈으로 확인하면 결과가 모조리 드러난다.

    가령, 신의 가호로 보호를 받지 않는 이상에야……!

    설마?

    아폴론의 마수가 거기까지 뻗친 건가?

    다급하게 달려가 아르한의 채널을 바라봤다.

    그 앞에는 수많은 성기사에게 포위를 당한 채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부짖는 아르한이 있었다.

    [크큭, 문어 네놈이 배신한 것이냐?]

    [배신이라니? 말이 심하구려. 나는 처음부터 태양신의 종이었소.]

    [크하하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상처를 입은 짐승의 울부짖음이 저러할까?

    아니면 새끼를 잃은 어미의 울부짖음이 저럴까?

    귓가를 아리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아르한의 광소를 들은 우로스가 요한이 들어있는 관을 가리키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건넸다.

    손에는 거대한 말뚝을 준비해둔 상태로 말이다.

    [호오? 뭐가 그리 재밌소?]

    [재밌지 않더냐? 신을 믿는다는 자들이 그리 신용이 없어서야 누가 믿겠는가? 크큭, 최소한 요한 님과 내가 알고 있는 신은 거짓말 따위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르한의 외침에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안젤라와 마리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소리를 내지 않고 중얼거리는 프란시스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때 아르한이 최후의 전투를 예감한 듯 입술을 강하게 깨물더니 해머를 들어 올리며 외쳤다.

    [나는 구라쟁이가 가장 싫어!]

    분노에 몸을 맡긴 아르한의 샛노란 눈동자에 야성이 물들어갈 때.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가 조용히 안젤라에게 속삭였다.

    “저거 얘보고 하는 말…….”

    “쉿, 아냐. 아르한 님은 이르카 님이 구라쟁이인 거 몰라.”

    “조용히. 지금 저 빡빡이가 뭐라고 하는지 보이는 사람?”

    “저희 사람 아닌데…….”

    “어쨌든. 프란시스의 입 모양이 뭔가 이상해.”

    말을 마친 후.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고는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프란시스의 입 모양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뭔가 이상하다.

    그는 지금 기도문을 외우는 게 아니다.

    그때.

    프란시스의 입 모양을 따라 하던 안젤라가 소리 내 말하는 내용을 듣고는 다급하게 아르한에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프란시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런 멍청한 자식이! 쓸데없이 목숨을 걸어!”

    그 내용은 바로.

    ‘적을 속이려면 아군을 속여야 합니다. 제 목숨을 바쳐 요한 님을 구하겠습니다.’ 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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