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루크레시아와 바싸고의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채널의 메시지창이 난리가 났다.
성진아와 강태식을 보러왔다가 갑작스러운 2계 신의 등장에 모두 어리둥절해진 듯 미친 듯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자신들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테니 조금 나서야겠지.
[이르카: 성배를 이용해 반신들을 사냥하던 대악마 바싸고를 기억하실 겁니다.]
[대천사들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면서 대악마들을 노려봅니다.]
[다수의 대악마가 헛기침하며 시선을 회피합니다.]
[지옥의 대군주 루시퍼가 바싸고는 사탄이 추적하고 있지 않았냐고 질문합니다.]
[지옥의 대군주 바알이 그것과 이계의 신이 바싸고를 상대하고 있는 것과는 관계가 없지 않냐며 질문을 건넵니다.]
확실히 대군주쯤 되는 양반들이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느낀 것 같네.
숨을 크게 들이켠 뒤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이르카: 4 지구에서 성진아 씨가 한 계약이 생각나십니까? 제가 성진아 씨를 지옥으로 안내하기 위해 4 지구로 갔을 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바싸고가 2계에서 행한 일을 말하기 시작하자 채널을 지켜보고 있던 신들이 나를 찾아올 만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르카: 저는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회귀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회귀자들과 반신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바싸고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결단을 내렸죠. 바로!]
말을 끊어주며 신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이쯤 되면 포인트도 좀 후원해주고 해야 할 텐데?
[채널을 지켜보던 신들이 답답하니까 말을 끊지 말고 계속하라고 합니다.]
[대군주 바알이 계속 말하지 않으면 성진아를 죽도록 굴릴 거라면서 8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대악마들이 바싸고의 일은 미안하다며 5만 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역시나, 성미가 급한 바알이 먼저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바알이 후원을 하자 나머지 대악마들이 주섬주섬 쌈짓돈을 꺼내듯 후원을 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역효과만 난다.
[이르카: 고민을 하던 그때, 성진아 씨가 제게 제안을 했습니다. 강태식의 영혼을 풀어주면서 바싸고를 끌어들일 무대를 만들자는 것이었죠! 그러면서 확실하게 복수할 기회를 한 번 더 얻고 싶다더군요! 어떻게 보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다수의 대악마가 확실히 한 번으로 끝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대군주 루시퍼가 성진아에게 바라던 모습이 바로 그 악마적인 모습이었다며 흡족한 미소를 짓습니다.]
말을 마치고 소소한 후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메시지창을 훑어볼 때 옆에 있던 안젤라와 마리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르카는 원래 저렇게 입만 열면 구라야? 이거 성진아가 제안한 거 아니잖아.”
“음… 매번 구라만 치는 건 아니긴 해요.”
“어쨌든 구라쟁이라는 거잖아? 그런데도 용케 살아있네?”
“그럴 때마다 맨날 하는 말이 ‘걸리면 구라고 안 걸리면 기술이야.’ 이건데요?”
내 흉내를 내듯 목소리를 내리깔고 대답한 안젤라가 마리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을 건넸다.
“다 들리거든?”
“다 들으라고 한 소리거든?”
“…너 이중인격 같아.”
“이제, 인간은 아니니까 인격은 아니겠지.”
“…….”
순간 할 말을 잃고 태연하게 대답한 마리를 지켜보고 있을 때.
마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을 건넸다.
“이 누님만 믿어. 내가 널 신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얼씨구? 언제는 나보고 아빠라고 하더니?”
“그건 위장술!”
“그 위장술을 같은 편인 성진아 씨한테 하냐? 덕분에 나만 곤란해졌었잖아.”
“칫! 곤란하기는, 성진아랑 새로 계약하라고 일부러 그런 건데. 너는 계약 중인 회귀자가 제대로 된 신격을…….”
제대로 된 신격을?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왜 중간에 멈추는데?
의아한 시선으로 마리를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작스레 말을 멈춘 마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뭔데?”
“하아, 바싸고 이 자식 진짜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네.”
“뭐?”
뭔가 일이 틀어진 것인가?
다급하게 성진아가 나오는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 할 때.
“너도 들어갈 준비 하자.”
“나?”
“응. 원래 모습으로.”
“응? 나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안 그래도 마리를 얻으러 갈 때 봉인을 풀었다가 얼마나 혼이 났나?
그때였다.
“내가 저 화상 때문에 못산다.”
“카, 카르나 님?”
황금빛 찬란한 카르나 님이 한숨을 내쉬며 등장한 것.
오늘 왜 이렇게 스펙타클한데?
“이번에는 내가 모습을 가려줄 테니까 가봐. 저 화상을 믿은 내 잘못이다.”
“화, 화상이요?”
“원래 오빠라는 것들은 쓸모없는 놈들이야.”
“...?”
대놓고 루크레시아를 욕하는 카르나 님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때.
마리의 몸에서 눈부신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다급하게 몸을 피하는 바싸고를 붙잡은 루크레시아가 재차 바싸고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던 찰나.
그림자처럼 변한 바싸고가 루크레시아의 주먹에서 빠져나가더니 주변을 살피며 말을 건넸다.
“끌끌. 이거 재미있구먼.”
“뭐가 재밌다는 소리지?”
“나를 잡으려고 2계의 관리신이 몸소 나선 것 아닌가?”
“그게 뭐가 재밌다는 거지?”
“끌, 이곳에 와보니 확실히 알겠더군, 여긴 4 지구가 아니야.”
바싸고는 성진아를 따라왔을 때부터 계속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다.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
지금 성진아를 놓치면 자신의 호기심을 채워줄 대상이 하나 줄어든다는 다급한 마음에 바로 찾아오기는 했지만, 이곳은 현실 세계가 아니었다.
2계로 도망간 뒤.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매번 사탄과 루크레시아를 살피며 일을 벌이지 않았던가?
물론, 절대적인 힘에 있어서 사탄과 루크레시아는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기에 미래까지는 살피지 못했어도 현재는 충분히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사탄의 추적을 따돌리며 2계를 마음껏 농락했던 바싸고의 눈에 루크레시아의 현재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이 실존하는 세계가 아니라는 소리에 바싸고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있을 때.
“그걸 알아챈다고 해서 네 운명은 변하지 않는다.”
단호하게 대답한 루크레시아의 두 주먹에 눈이 아릴 정도로 하얀빛이 맴돌았다.
“끌, 이건 영 재미가 없구먼.”
재차 달려드는 루크레시아를 막기 위해 바싸고가 방어막을 펼치며 성진아와 대치하고 있는 강태식을 힐끔 쳐다보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 인간은 이 시간대에 존재했던 녀석이지?’
당연한 소리겠지만, 루크레시아는 이 시간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신이었다.
1계와 2계의 차원을 뛰어넘어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신은 단 세 명.
바로, 창세신과 빛과 어둠의 신뿐이었다.
그 셋이야말로 진정한 신이었다.
각 차원별로 있는 평범한 신들이나 대천사와 대악마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들이었으니까.
‘저 녀석의 몸을 빼앗으면 루크레시아가 내게 간섭하는 힘이 확연히 약해진다. 게다가 2계의 신이 1계의 인간인 강태식의 영혼을 소멸시킬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이건 내가 유리해.’
강태식의 영혼을 흡수하고 난 뒤. 루크레시아를 처리하면 남은 것이라고는 신격도 얻지 못한 회귀자 한 명뿐이다.
자신이 왜 미래를 볼 수 없었던지 의문을 풀어줄 바로 그 회귀자 성진아 말이다.
생각을 마친 바싸고는 정신을 집중한 뒤.
순간적으로 보호막을 풀었다.
맹공을 퍼붓던 루크레시아는 갑작스레 보호막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 지금까지 계속 버틴 것도 용한 일.
아무리 1계에서 반신들을 사냥해 힘을 모았다고 해봤자 고작 해봐야 대악마급 아니던가?
바싸고는 아직, 대군주급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준비해온 속박의 사슬을 풀어 바싸고의 몸을 묶은 루크레시아가 마무리 일격을 날렸다.
퍼억-!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슬에 묶인 바싸고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진 것.
“이런!”
화들짝 놀란 루크레시아가 바싸고가 도망친 방향을 살피고는 얼굴이 샛노랗게 변했다.
바로 성진아와 강태식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 * *
강태식은 과연 강태식이었다.
성진아는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손목으로 훔치며 말을 건넸다.
“아직 그렇게 녹슬지 않았네?”
“퉤! 넌 꽤 늘었네?”
“어머, 그렇게 말하니까 마치 내가 복수전 하는 거 같잖아?”
“…….”
말을 마친 성진아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재차 말을 건넸다.
“얼마 전에 처맞고 진 게 누군지 기억 안 나는 거야?”
“큭, 이제 그럴 일은 없어.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그건 이기고 말하렴.”
으드득-!
성진아의 도발에 강태식이 이가 바스러져라. 갈아댈 때였다.
갑자기 강태식의 등 뒤에 검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온 것.
“……!”
갑작스레 나타난 노인의 모습에 놀란 성진아가 뒤를 돌아보자 황급히 날아오는 루크레시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싸고!’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바싸고가 모습을 드러낸 것.
성진아의 표정을 보고는 다급하게 고개를 돌린 강태식이 처음 보는 노인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건네려 했다.
“누구… 끄악!”
기묘한 광경이었다.
어린 강태식의 몸에서 성인 강태식의 영혼이 빨려 나오기 시작한 것.
강태식의 영혼을 입에 넣고는 오물거리며 씹은 바싸고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중얼거렸다.
“끌끌, 이놈은 별로 맛이 없구나. 항상 먹던 맛이야.”
“바, 바싸고!”
“호오? 나를 알아보는 건가? 하긴, 나를 위해 이런 발칙한 함정을 파뒀으니 아는 것도 당연하겠지.”
“강태식은 어떻게 했지?”
“음, 강태식 말인가? 이렇게 했지.”
재밌다는 표정을 지은 바싸고의 몸이 이내 찰흙처럼 변하더니 성진아가 회귀하기 전 강태식의 모습으로 변했다.
바로, 성진아가 그에게 살해당했을 시절의 모습 말이다.
그 모습을 살핀 성진아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바싸고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나를…….”
“호오? 이거 재밌구먼. 그대는 강태식이 왜 그대의 부모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
“끌끌, 이거 강태식의 영혼을 빼앗으니 뜻밖의 이득도 있구먼, 이걸 불로소득이라고 하던가?”
과연 바싸고가 본 강태식의 기억이 뭘까 성진아가 궁금해할 때. 다급하게 다가온 루크레시아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바싸고에게 말을 건넸다.
“감히,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끌끌, 이미 벗어나지 않았소?”
“…….”
순간 할 말을 잃은 루크레시아가 이를 갈며 손에 쥔 속박의 사슬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오늘 네놈을 이 자리에서 소멸시켜주마!”
“호오? 강태식의 영혼까지 소멸시킬 것이오? 그대에게 그런 권한까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만?”
“이, 이놈이!”
“함정을 판 것은 좋았소. 나 역시 이곳이 4 지구라고 착각을 했을 정도니까. 허나, 이곳은 성배의 힘을 이용해 만든 장소 아니오?”
“…….”
“끌끌, 성진아의 기억이 파괴될까 봐 이 시간대에 간섭이 없던 그대가 나를 잡으려 한 것일 테지만… 이건 그대와 이르카의 실수요.”
바싸고의 말에 루크레시아는 침묵을 지켰다.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탄 정도의 대군주가 성진아의 기억에 들어오게 되면 시간의 간섭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성진아의 기억이 견딜 수 없기에 최상위 신이지만, 차원이 달라 시간의 간섭이 없던 루크레시아가 들어오게 된 것.
루크레시아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있자 바싸고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그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오.”
그때였다.
“아니, 네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
하늘에서 거대한 날개를 가진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