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를 관리하는 법-82화 (82/121)
  • 82화

    회귀(回歸)라는 단어는 참 웃긴 단어다.

    물론, 후회스러운 삶을 살았던 영혼이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기회를 얻는 것은 환생이나 일부 빙의와 똑같지만, 오직 회귀만이 유일하게 원래의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었다.

    돌아갈 회(回)

    돌아갈 귀(歸)

    무려 돌아간다는 단어를 두 번이나 쓸 정도로 강렬한 소원이 무엇일까?

    보통의 경우에는 자신의 삶을 망친 자에게 복수하고 싶은 복수심과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제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자리한다.

    그걸 이룬 계약자들은 모두 행복할까?

    오랜 경험으로 말하자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보통 복수행의 끝은 짜릿함과 통쾌함이 아니라 허무와 공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일부 회귀자는 복수를 마치고는 공허함에 폐인처럼 살다가 생을 쓸쓸히 마감하는 예도 있었으니까.

    처음 관리자가 되었을 때.

    복수를 마친 계약자들을 볼 때마다 부러워했지만, 그런 모습을 자꾸 보다 보니 나를 배신했던 자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마음이 변한 것이기도 하고.

    성진아의 목표는 복수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의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그녀와 계약할 때는 자신의 삶을 망친 자에 대한 복수심이라고 생각했건만,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부모님을 살해한 자에 대한 복수심이 그녀의 마음에 더욱 크게 자리를 잡고 있던 것.

    당연히, 그녀의 추가적인 소원인 돌아가신 부모님을 보고 싶다는 그녀의 목적은 이뤄줄 수 있다.

    물론, 나 혼자서 돌려줄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다.

    게다가 이미 환생을 마친 영혼들이라 벌어진 사건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리운 얼굴을 보게 해줄 수는 있다.

    오랜만에 곱게 한 화장이 번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을 흘린 그녀의 검게 번진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소원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어요.”

    “지, 진짜요?”

    “물론, 그때의 사건을 바꿀 수는 없을 거예요.”

    “네?”

    “이건 조금 복잡한 일인데, 시간의 흐름 안에는 기억의 파편이라는 게 있답니다. 그걸 이용해서 성진아 씨의 정신만 과거로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 이번 회귀로 바꾸지 못한 사건은… 그대로 벌어질 겁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 당시 교육을 받는다고 부모님의 얼굴을 뵙지 못했거든요, 제가 면회하러 갈 시간이 없어서…….”

    “음, 그러면 저희 계약서 새로 쓸까요?”

    “네?”

    “아! 이건, 저 혼자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상위 신의 허락도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 집무실로 모실게요. 대신, 십자가의 방패랑 엑스칼리버는 제가 좀 가져가도 될까요? 꼭 필요한 녀석이 있는데 쓰고 돌려달라고 할게요.”

    “그런 건 돌려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네? 십자가의 방패는 몰라도…엑스칼리버도요?”

    “훗, 제 선물이에요.”

    엑스칼리버급 성물을 그냥 선물로 준다는 성진아의 화끈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성진아가 아론다이트를 가리키며 말을 마저 이었다.

    “이걸 선물로 주셨으니까 저도 선물로 그 정도는 드려야죠.”

    “……?”

    “이거를 구하느라 고생하셨다는데, 그것밖에 드릴 게 없어서 죄송해요.”

    “……?”

    아론다이트는 내 건데…….

    현재 사용자는 성진아지만, 아론다이트는 엄연히 내 소유의 물건이다.

    엑스칼리버를 준 그녀에게 쪼잔하게 아론다이트는 내 거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물론, 엑스칼리버와 아론다이트 중 무기로서 가치는 엑스칼리버가 더 높지만, 타락한 성검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아론다이트가 아주 조금 더 비싸게 측정된다.

    이게 선물을 받고도 기분이 애매해진다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어색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물론, 포인트에 연연할 때는 아니지만 워낙 없이 살아서 그런지 이런 안 좋은 버릇이 든 모양.

    그때 내 미소를 보고는 성진아가 방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렇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한테 해주신 것들만 생각하면 아론다이트까지 돌려드려야 하는 게 맞으니까요.”

    “네? 아니, 꼭 그러실 필요까지는…….”

    들켰나?

    사탄과 마리도 보고 있는 곳에서 쪼잔해 보이면 안 되는데 또 표정이 똥 씹은 표정이 된 모양.

    다급하게 변명을 하려고 할 때 성진아가 말을 끊으며 말을 마저 이었다.

    “그런데, 이건 제가 이르카 님께 받은 두 번째 선물이라… 게다가 아론다이트보다 엑스칼리버가 더 유명하잖아요?”

    “…그렇죠.”

    환하게 웃는 성진아를 보니 할 말이 없어져 마지못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나저나 그렇게 좋은가?

    부모와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에 이렇게 표정이 변할 줄 몰랐다.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사탄을 힐끔 쳐다보고는 성진아에게 말을 건넸다.

    성진아의 정신을 과거로 돌려보는 일이 아무래도 사탄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

    “일단 집무실로 가시죠. 사탄님은 지옥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가 성진아 씨를 지옥까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아니. 중간계 입구까지는 같이 가주마. 혹시 모르잖냐? 바싸고가 나타날지도.”

    “호오?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저야 감사하죠.”

    하긴, 이 양반이 원래 온 목적은 이게 아니었지?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어 성진아에게 말을 건넸다.

    “한진우 씨나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는 하지 않으시나요? 그냥 훌쩍 떠나버리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작별인사라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요.”

    “괜찮아요.”

    “음… 많이 서운해할 겁니다.”

    “그러면 절 따르는 사람들도 같이 데려갈까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성진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

    한진우를 필두로 한 통일 한국의 국민.

    원하던 부동항을 얻지는 못했지만, 색다른 것을 얻고 좋아하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그리고 강태식과 전투에서 살아남은 수많은 헌터들.

    모두 인사하고 오기에는 조금 힘들겠구나.

    그래도 제일 따르던 한진우한테는 인사하고 왔겠지?

    십자가의 방패를 가져오면서 말은 했을 테니까.

    그때 사탄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야, 날 봐라. 여기가 무슨 평생 못 오는 것도 아니잖아? 쯧, 악마라고 해서 강림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사탄님. 하급악마가 다른 차원에 함부로 갈 수 있습니까?”

    “응? 내 허락도 없이? 그러면 내가 찢어 죽이지.”

    “...찢어 죽이기 전에 가는 것 자체가 안 되잖습니까?”

    “아, 하급? 그렇지.”

    “인간의 생명은 유한합니다.”

    “응?”

    “성진아 씨가 자유롭게 지구에 드나들 때쯤이면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남아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음…….”

    지옥의 대군주이자 악의 상징과 같은 사탄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내 성진아 채널의 호구… 아니, VVIP 고객이었던 사탄에게 막대할 수는 없는 노릇.

    포인트가 가장 부족할 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것이 사탄이었으니 이 정도 실수는 가볍게 지적해주는 수준에서 끝냈다.

    절대로 더 까불다가 내 입이 찢어질 수도 있어서 멈춘 게 아니다.

    중간계로 통하는 차원 문을 열 수 있는 장소로 이동 중 묵묵히 길을 걷던 사탄이 내게 질문을 건넸다.

    “아, 맞다. 시트리가 언제 지옥 한번 놀러 오라는데 언제 올 거냐?”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성진아 씨를 지옥까지 에스코트한다고요.”

    “아? 맞다. 그랬지.”

    “제가 지옥으로 갔을 때 레이트라 녀석이 마중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네요.”

    레이트라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성진아와 안면도 있으니 녀석이 마중을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니와 오랜만에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어졌기 때문.

    쓸데없는 말을 내뱉은 죄로 만나자마자 묵사발을 내줄 얼굴 아니던가?

    그때 옆에서 뚱한 표정으로 잘 따라오던 마리가 심통 맞은 얼굴로 말을 꺼냈다.

    “칫! 오랜만에 놀러 왔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가?”

    “놀러 온 건 너 하나밖에 없으니까.”

    “아니, 왜? 이르카 너는 맨날 일만 하고 살아?”

    “얼씨구? 너 성진아 씨한테 내가 아빠라고 했다면서? 아빠 말 듣지 않는 딸도 있나?”

    “원래 자식은 부모 말 안 듣거든?”

    순간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마땅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

    그때 한쪽 입꼬리를 올린 마리가 말을 마저 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너로 정해졌지만, 엄마는 누가 엄마가 될지 모르거든?”

    “……?”

    음흉한 미소를 지은 마리가 옆에서 웃으며 따라오던 성진아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가령 쟤가 내 엄마가…….”

    딱-!

    수박 깨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짐과 동시에 마리의 이마에 커다란 혹이 솟아올랐다.

    눈가에 눈물을 글썽인 마리가 입을 열기 전 재빨리 말을 꺼냈다.

    “이게 어디서 헛소리를 하고 있어? 나 아직 싱글이거든? 그리고 네가 성진아 씨 보다 몇 살이 더 많은 줄 알아? 너 정도면 까마득한 선조님급이거든?”

    “이씨! 수명이 사라지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

    “수명은 어차피 무한에 가까운데 몇 년이든 몇천 년이든 오래 산 게 무슨 상관이냐? 이 돌대가리야!”

    하긴?

    특별한 사고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신이 늙어 죽었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순간 아무런 대답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

    “어차피 성진아는 악마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라고! 어둠의 신하고 직접 계약할 텐데 수명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만.”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마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건넸다.

    “진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너는 몰라, 진짜 너는 아무것도…….”

    “알아. 그러니까 뒤로 물러나 있어.”

    “응?”

    “불청객이 찾아왔으니까.”

    중간계로 향하는 차원 문에 도달하기 전.

    우리의 앞에 처음 보는 존재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쟤들은 누구지?

    처음 보는 일곱 존재를 바라보며 아리송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표정은 잔뜩 시비를 걸려고 찾아온 표정인데 의외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마도 목표는 내가 아니라 마리 혹은 성진아일 터.

    왜 이곳에 온 것일까?

    일단 모르면 물어봐야지.

    “실례지만, 어떤 이유로 길을 막고 계시는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응, 실례니까 물어보지 말렴.”

    “허허, 이거 잘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만? 이곳에는…….”

    위풍당당한 지옥의 대군주 사탄을 가리키며 당장 사라지라는 말을 꺼냈다.

    아니, 꺼내려 했다.

    고개를 돌리자 이맛살을 찌푸린 표정을 지은 사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뭐지?

    아는 놈들인가?

    그때 사탄이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말했다.

    “오랜만이군, 그대들이 왜 이곳에 찾아온 것이지?”

    “찾아오면 안 되는 곳에 온 것도 아니잖나.”

    “그대들이 함부로 이곳에 오면 안 되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

    “알아.”

    뭐지?

    서로 아는 사이인가?

    지금 길을 막고 있는 자들은 분명 처음 보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어 사탄과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을 때.

    사탄과 대화를 나누던 짙은 청발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네가 관리자 이르카인가?”

    “절 아십니까?”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가 모르는 신이 있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2계의 관리신 루크레시아다. 네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다.”

    “네? 이계요?”

    “그 이계가 아니라 2계다. 설마, 1계부터 7계까지 나뉜 것을 모르는 것이냐?”

    이계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니었나?

    의아한 기분에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루크레시아를 지켜보던 사탄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이르카는 아직 반신이다. 당연히 차원이 몇 개로 나뉘어있는지는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아닌가?”

    “아, 하긴 1계는 반신이 관리자를 하고 있지. 내 실수로군.”

    “……?”

    2계는 아니라는 소리인가?

    어색한 표정으로 2계에서 온 관리신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혹시, 1계에서 온 대악마 바싸고라는 놈을 아느냐?”

    아니, 그놈의 이름이 왜 또 여기서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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