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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80화 (80/121)

80화

4 지구에 강림해도 좋다는 카르나 님의 허락을 받은 것은 좋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상전을 모시고 지구에 내려왔다.

옆에 서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미남의 뺨을 열 번 후려쳐도 무죄일 것 같이 생긴 청발의 미남자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건넸다.

“사탄 님, 여기서는 그냥 평범하게 검은 머리로 바꾸시면 안 되겠습니까? 좀 생긴 것도 평상시 모습처럼 바꾸시고요.”

“응? 이게 더 멋있지 않아? 이렇게 이쁜 코발트블루 색 머리는 흔치 않잖아.”

“아니, 너무 눈에 띄잖습니까. 솔직히 인간 세상에 그렇게 잘생긴 남자는 없다고요.”

“뭐라니? 이것도 최대한 추한 모습으로 바꾼 거거든?”

“하아… 조금 평범하게 바꿔주세요. 그냥 평범하게 잘생긴 연예인급으로만 바꿔주시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사실, 사탄의 원래 얼굴을 아는 자는 없다.

지옥에서도 손꼽히는 추남이었는데 힘을 얻고 평생 바꾸고 다닌다는 소문도 있고, 아니면 원래가 저렇게 빼어난 미남이라는 소문도 있다.

내가 추측하기에는 전자에 무게추가 더 많이 실리긴 하지만…….

보통 진짜 잘생긴 놈들은 자신이 어떻게 해도 잘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저렇게 치장하고 다니지 않는다.

물론, 너무 잘생겨서 나르시시즘에 빠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기에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의 앞에서 그런 질문을 꺼냈다가는 목숨이 수백 개라고 해도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테니 꾹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맛살을 찌푸린 사탄이 투덜거리며 연예인들의 사진을 검색하고 있을 때.

고사리 같은 자그마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쥔 마리가 말을 건넸다.

“내버려 둬, 지금 즐겨야지 혹시라도 바싸고가 나오면 정신없이 쫓아가야 하잖아.”

“응?”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그리고 악마가 잘생겨 봤자 얼마나… 읍!”

사탄이 듣기 전 마리의 입을 재빠르게 막았다.

버둥거리는 마리를 진정시키고 있을 때 얼굴 천재라고 불리는 배우의 사진을 본 사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냈다.

“얘 봐봐. 이 정도면 평범하지?”

“흠, 인간 기준으로 치면 아주 많이 잘생겼지만, 사탄님 기준이라면 그냥 평범한 인간으로 위장하는 수준이겠네요.”

“그치? 그럼 이렇게 변한다.”

“넵!”

그나마 평범한(?) 연예인의 얼굴로 변한 사탄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품에서 빠져나온 마리가 사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혹시, 왕자병이야?”

“지옥의 왕이니까 병은 아니겠지.”

“왕병이나 왕자병이나…….”

그때 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던 사탄이 피식 웃으며 중간에 끼어들 듯 말했다.

“난 진짜 잘났으니까 병은 아니지 않을까?”

“하, 하핫, 다 들으셨습니까?”

“들으라고 하는 소리를 못들을 리가 있니?”

“…바쁘실 텐데 빨리 성진아를 만나러 가지요.”

“그래. 뒤지기 싫다면 빨리 안내하렴.”

“넵!”

편안한 기분으로 내려와야 할 지구가 끔찍한 지옥으로 바뀐 기분을 느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4 지구에는 성진아가 내려와달라는 부탁이 있기도 했지만, 몇 가지 성물을 회수하기 위해 온 것이기도 하다.

한진우의 손에 들어가 있는 십자가의 방패를 회수하고 강태식이 가지고 있던 엑스칼리버 또한 회수하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

옆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는 사탄과 먹고 싶은 게 생겼다면서 난데없이 솜사탕을 사 와달라고 조르는 마리 덕분에 나도 모르게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왔다.

“그러면 성진아 씨 집 주소 알려줄 테니까 먼저 가 있으실래요? 마리도 제 옆에 있는 것보다는 사탄 님 옆에 있는 게 더 안전할 테니까 사탄 님 따라갈래?”

“어디 가게?”

“솜사탕 사 와달라면서? 아주 기계를 사서 가려고 한다.”

“헤헷, 진짜?”

“그래, 사실 그것 말고도 성진아 씨한테 선물도 없이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내 지시를 제대로 따라와 강태식과의 승부에서 이긴 성진아에게 말로만 축하한다고 할 게 아니라 선물을 들고 가는 것이 예의.

원래는 일행을 데리고 백화점에 같이 갈 생각이었지만, 사탄과 마리는 눈에 띄어도 너무 눈에 띈다.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훨씬 속 편할 터.

눈을 반짝이는 마리를 바라보며 신신당부를 하듯 말을 꺼냈다.

“가서 조용히 있어야 해? 그리고 이번에 성진아 씨 일 끝나면 네가 데리고 가달라는 곳까지 데려가 줄 테니까 요한 일 말고도 계속 도와줘야 하고.”

“흐음~ 어차피 이르카가 없으면, 난 아무런 힘도 못 써. 너랑 나는 운명공동체랄까?”

몸을 쭉 펴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마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사탄이 말을 꺼냈다.

“괜찮다. 내가 조용히 시키마.”

“넵, 사탄 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너, 진짜 실수하면 안 된다? 알았지? 사탄 님 말씀 잘 듣고 있고.”

“꼭 아빠가 잔소리하는 거 같네. 알았어! 아빠!”

“뭐래, 난 이제 자식 없거든? 그리고 너 같은 딸이라면 내가 거부하마.”

마리의 철없는 소리를 듣고는 사탄을 바라봤다.

안심하고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사탄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살짝 불안하긴 한데?

* * *

항상 입고 있던 칙칙한 암살자 복장을 벗고 화사한 외출용 복장을 갈아입은 성진아는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지금 만나러 온다는 이르카의 메시지를 받고 난 뒤 그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그분을 다시 만나는 거야, 나를 항상 도와주던 그분을…….’

항상 힘들 때마다 도와주던 이르카를 떠올리자 볼 터치를 하지 않았음에도 홍조를 띤 것처럼 발갛게 변한 볼을 바라본 성진아가 부끄러운 듯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정신 차려 성진아!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잖아! 이제 막 첫걸음을 뗀 것뿐인데 이렇게 들뜰 필요는 없어. 그리고 데이트를 하려고 그분에게 와달라고 한 게 아니잖아.’

한창 들떴던 기분을 가라앉히고 표정을 굳힌 성진아는 이르카를 이곳에 불러온 목적을 다시 떠올렸다.

강태식을 심문하며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어쩌면 그녀의 소원을 이룰 방법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

그때 성진아가 머물고 있던 펜트하우스의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기다리던 이르카가 온 것.

후다닥 뛰어나간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줬다.

“어서 오세…요?”

문을 연 성진아는 고대하던 이르카가 아닌 이상한 인물 두 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사람이 아니니 인물이 아니라 존재라고 불러야 했지만.

문 앞에는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잘생긴 남자 배우의 얼굴과 똑 닮은 남자 하나와 하얀 눈처럼 생긴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때 잘생긴 남자가 성진아를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오! 네가 성진아구나? 실물로 보니까 더 낫네.”

“누구신지…?”

“아! 내 소개를 하지 않았네. 나 사탄이라고 한다.”

“네?”

성진아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사탄을 바라보자 머리를 긁적인 사탄이 재차 말을 이었다.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 너한테 후원도 엄청 많이 해줬는데, 네가 쓴 포인트 중에 거의 절반은 내 포인트였을걸?”

“아! 반갑습니다. 사탄 님, 제가 모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옆에 있는 이 아이는……?”

“안녕! 난 마리라고 해!”

“오, 사탄 님 따님이 참 귀엽게 생겼네요.”

반갑게 인사하는 마리를 바라본 성진아가 사탄에게 말을 건넬 때.

마리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사탄이 아니라 이르카가 내 아빠야.”

“응?”

“날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 이르카야!”

“…….”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굳어버린 성진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탄을 바라보자 사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사탄은 이르카가 아빠라는 뜻이 아니라 마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존재가 이르카라는 뜻이었지만…….

방긋방긋 웃고 있는 마리를 바라본 성진아가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며 처음 이르카와 계약을 할 때 옆에 서 있던 은발의 엘프 안젤라를 떠올렸다.

‘그분의 아내… 그리고 그분의 딸.’

물론 오해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주 자그마한 오해와 장난이 큰 폭풍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 * *

선물을 가져다줬음에도 성진아의 표정은 무뚝뚝했다.

이상하다?

인간 여자들은 보통 이런 가방을 좋아한다는데 뭔가 잘못된 정보였던 것일까?

“성진아 씨? 이거 별로 마음에 안 드세요? 지구 돈으로 엄청 비싼 거라던데…….”

“아뇨,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표정이 좀… 혹시 마리가 사고를 쳤나요?”

“그 아이의 이름이 마리였나요?”

“넵, 얼마 전에 깨어났는데 좀 골치가 아픈 아이예요. 지금은 또 사탄 님이랑 같이 나갔나 보네요?”

“네, 사탄 님도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했다고 하시더니 같이 놀러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네? 설마 지옥에 가기로 하신 건가요?”

“네. 사탄 님의 제자가 되기로 했답니다.”

“……!”

사탄이 어떻게 꼬드긴 거지?

그녀는 아직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꽤 남아있던 거로 기억하는데?

당혹스러운 기분을 감추며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한테 이곳에 강림해달라고 부탁하신 이유가 있지 않으십니까?”

“아, 이거 보시겠어요?”

성진아가 품에서 봉인된 붉은색 영혼석을 꺼내 들고는 말을 꺼냈다.

“이거 강태식이에요.”

“흠, 확실히 강태식이 지은 죄가 커서 그런지 에너지가 많이 나오고 있네요.”

“네, 강태식이 자신의 부모를 죽이면서 저희 부모님을 죽인 이유도 알아냈고요. 거기서 힌트를 얻어서 말할 게 있었던 거랍니다.”

“어떤 힌트죠?”

“게이트는 폭주시킬 수도 있지만, 지정한 위치에서만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요.”

이건 나도 몰랐던 건데?

강태식이 이런 정보를 알고 있었던 건가.

그때 성진아가 표정을 굳히며 말을 꺼냈다.

“사실은 강태식을 처리하고 자살하려고 했어요.”

“네?”

“그러면 또 회귀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제 목적을 다 이룬 게 아니었잖아요.”

황당하지만 사실이다.

회귀자의 영혼은 요한같이 누군가에게 붙잡아 달라고 부탁한 경우가 아니라면 죽었을 때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으니까.

원래 그렇게 해서 괴물들을 없애겠다는 목적을 이루려고 했던 거였구나.

그녀의 말에 살짝 소름이 끼쳐 온몸에 솜털이 오소소 돋아났다.

강태식이 없는 지구에서 그녀가 목적을 이루기란 굉장히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왜 마음을 바꿨을까?

“그, 그렇죠…지금은 마음을 바꾸셨고요?”

“아뇨. 목적이 바뀌었어요.”

“네?”

갑자기 품에서 아론다이트를 꺼내든 성진아가 자신의 목에 아론다이트를 살짝 찔러 넣으며 말을 꺼냈다.

“후훗, 지옥에 가기로 해놓고 회귀를 해버리면, 사탄 님도 황당하시겠죠?”

“서, 성진아 씨 일단 진정하시고…….”

이거 또라이 아냐?

사탄에게 지옥에 가서 제자가 되겠다고 해놓고 자살을 해서 회귀를 해버린다면 내 입장이 난처해진다.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성진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건넸다.

“이미 지옥행을 아,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것을 결정한 이상 회귀는 조금 어렵습니다! 사탄 님이 분노하실 거예요!”

“상관없어요. 저랑 계약해주세요. 안 그러면 죽어버릴 거예요.”

“아, 제발… 후우, 어떤 계약을 하고 싶으신 건데요. 말씀하세요.”

“저와 했던 계약이 오 대 오였죠? 원래 정상 계약이라면 칠 대 삼이고요.”

레이트라 이 망할 놈.

괜스레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간 레이트라를 원망하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 그건 제가 그만큼 더 도와드렸…….”

“괜찮아요. 이번 계약도 오 대 오로 해요. 일단은 약속해주세요. 똑같이 오 대 오로 해주겠다고. 창세신에게 맹세해요.”

“후우,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창세신께 맹세합니다. 똑같이 오 대 오로 해주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계약 조건은 뭡니까?”

그때 환한 미소를 지은 성진아가 말을 꺼냈다.

“당신의 마음이요.”

“네?”

“당신의 마음을 반만 달라고요.”

“……?”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한참을 고민할 때 문을 열고 들어온 사탄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성진아에게 말을 건넸다.

“아주 좋아. 내 가르침을 이렇게 빨리 써먹다니 훌륭하군.”

“감사합니다. 스승님.”

“……?”

이거 설마 둘이 짜고 친 거였어?

황당한 기분에 입을 쩍 벌리고는 사탄과 성진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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