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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77화 (77/121)

77화

도망치던 아르한의 앞에 나타난 인물은 놀랍게도 이단 심문관 프란시스였다.

아르한을 벌써 추격해온 것일까?

재빨리 그의 뒤를 살펴봤다.

이상하게도 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일대일로 아르한을 절대 못 이긴다.

물론, 이단 심문관들이 가진 힘을 잘 모르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만, 그들이 그렇게 강한 힘을 가졌다면 요한과 아르한을 할파스 백작령에서 발견했을 때 힘으로 제압하는 것을 시도해보지 않았겠는가?

교황청으로 이동하는 도중 갑자기 튀어나온 바싸고에게 약물로 제압당한 것을 봤을 때도 그들은 요한과 아르한보다 훨씬 아랫줄의 실력자.

혹시,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백기를 든 것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 비무장인데?

그때 프란시스를 노려보던 아르한이 피가 덕지덕지 묻은 해머를 추켜올리며 외쳤다.

[네놈이 죽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로구나!]

[아, 아닙니다! 저는……!]

놀란 프란시스가 양손을 좌우로 흔들며 아니라고 외칠 때.

아르한의 해머가 힘차게 떨어져 내렸다.

콰앙-!

[이런 쥐새끼 같은 놈!]

[항복! 항복!]

[얌전히 뒤져라-앗!]

저거, 생각보다 잘 싸우는데?

물론 작정하고 피하기만 하고 있어서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엄청나게 유연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지구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한 체조선수처럼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을 보니 당장 맞아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뒤쪽에 쫓아오고 있는 성기사들도 있으니 아르한이 저 녀석 하나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을 터.

안젤라가 가져다준 팝콘을 씹으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마리에게 말을 건넸다.

“쟤, 아무래도 투항하러 온 거 같지?”

“에휴~ 너는 딱 보면 몰라? 얼굴에 쓰여있잖아. ‘나 이제 너희 편 하고 싶다!’ 이렇게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꾼 걸까?”

이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프란시스는 요한, 아르한과 큰 접점이 없었다.

게다가 누가 봐도 악당 같아 보이는 모습을 보인 우로스와 같이 온 이단 심문관 아니던가?

어떤 특별한 일을 겪지도 않았다.

교황청으로 가는 길 동안 네 명이 계속 함께 움직였으니까.

그때 나를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본 마리가 조그마한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말을 했다.

“역시, 요즘 것들이란 세상 물정을 이리도 몰라요.”

“뭐래? 고작 2천 살밖에 안 된 게 무슨 세상 물정을 운운하냐? 아직 절반도 살아보지 않은 게.”

살짝 비겁해 보이지만, 마리가 먼저 요즘 것이라고 하며 나이를 들먹였으니 똑같이 나이로 밀어붙였다.

“비겁한 변종 도마뱀.”

“그건 인격 아니, 용격 모독이다.”

“그럼 너도 신성 모독이거든?”

“나도 반은 신성이거든?”

“…….”

어디서 말싸움을 걸어오는 것일까?

이런 쪼잔한 말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는 말싸움 마스터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민 애송이를 참교육해주고 있을 때.

“어린애들처럼 그럴 거예요? 일단 이거 드시면서 앞으로 요한 님을 어떻게 구할지, 또 저 빡빡이가 왜 아르한 님의 앞에 나타난 건지 생각해봐야죠.”

“여기서 안젤라가 제일 어린…….”

“어머? 정신 연령으로 따지면 제가 제일 어른 같은데요.”

“…….”

“…….”

마치 이 구역의 최강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어필하듯 나타난 안젤라의 일침에 유치한 말장난을 하던 마리와 내 입이 동시에 조개처럼 앙다물어졌다.

기다란 소파에 앉은 안젤라는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마치 말썽을 부린 어린아이에게 설교하듯 마리를 불렀다.

“자, 마리. 여기 앉아서 어떻게 할지 말해봐야죠? 이렇게 장난칠 상황이 아니라 심각한 상황이에요.”

말을 마친 안젤라가 손에 쥐고 있던 서류철을 허공에 쭉 펼치더니 말을 다시 이었다.

“그리고 이르카 님 여기 메시지들 한번 확인해보시겠어요?”

“응? 그게 무슨….”

“지금 요한 님 채널 메시지창 닫아놓으셨죠?”

“그거야, 답답하다고 하도 욕하길래… 아니, 내가 ‘다 계획이 있습니다!’라고 했거든? 그런데도 저러잖아.”

솔직히 나 같아도 욕하긴 했을 것이다.

요즘 저런 고난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신이 어디 있던가?

회귀자, 환생자, 빙의자들 중에 요즘 신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건 회귀자와 빙의자다.

그들이 환생자보다 인기가 좋은 이유는 단 하나.

모든 미래 정보를 알고 있기에 답답한 행동 없이 ‘이자는 적이 될 자니까 죽인다.’, ‘여기선 이렇게 행동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기 때문.

반면 환생자는 미래 정보에 대해서는 조금 불리한 점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요한과 아르한은 정확하게 말해서 성진아와 같은 회귀자라기보다는 환생자 혹은 이계로 전이된 빙의자에 가까웠다.

다만, 그들이 회귀자로 분류되는 이유는 하나.

과거로 돌아간 자신의 몸을 가지고 갔기 때문.

그건 회귀자만 가질 수 있는 특성이었기에 특수한 이계 회귀가 성립될 수 있는 이유였다.

아무튼, 요한과 아르한을 다른 회귀자들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되기에 양해를 구했건만, 신들이 답답하고 난리를 부리기에 닿아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 표정을 유심히 살핀 안젤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건넸다.

“그렇다고 메시지창을 닫아요? 카르나 님 직속 회귀부 사무실에 불만 사항이 접수되었잖아요.”

“엥? 고작 그거 가지고 불만 사항을 접수해?”

“아무튼, 메시지창은 다시 열어두세요. 지금 저한테 메시지 날아오고 장난 아니라니까요?”

“알았어…….”

힘이 쭉 빠진 듯 시무룩하게 대답하자 날 바라보는 안젤라의 표정이 살짝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됐다! 이제 뭐라고 안 하겠지?

안젤라는 불쌍한 척을 하면 잔소리를 멈춘다.

물론, 카르나 님한테 이런 꼼수는 씨알도 안 먹히지만…….

말을 잠시 멈춘 안젤라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재밌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마리에게 말을 건넸다.

“자, 마리. 생각해보셨어요? 이르카 님은 요한 님을 구할 기회를 버렸어요. 바로 마리가 부활시킬 수 있다고 해서요. 맞죠?”

“응! 내가 부활시켜줄 수 있어! 평범한 사람은 안 되는데 요한이라는 아이는 가능해.”

“어떻게 부활시킬 건가요?”

“어? 그냥 내 안에 들어있는 생명력을 전해주면 되는 거거든? 그러면 짠! 하고 무덤에서 일어날 거야!”

“무덤에 없으면요?”

“응? 그… 그건 관에 넣어두지 않겠어? 뱀파이어를 영원히 죽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잖아? 말뚝으로 심장을 파괴하고 나서 관에 담아 두는 거 말이야.”

마리의 말은 정답이었다.

물론, 그렇게 관에 담아두고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뱀파이어의 끈질긴 생명력이 완전히 소멸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럼 요한님이 들어있는 관을 어떻게 꺼내올 생각이었어요?”

“흥! 이 언니의 계획을 무시하지 말라고! 저기 저 오크가 가져오면 되는 거잖아.”

“어떻게요?”

“그냥 저기 교황청에 들어가서…….”

“들어가서요?”

“여기저기 찾다 보면 있겠지? 아! 막 지하실 같은 데 있지 않을까……?”

이거 딱 걸렸다.

물론, 원래 아르한이 요한을 꺼내오는 걸 내가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마리는 그런 정확한 계획이 없이 말을 내뱉었을 가능성이 컸다.

사실, 나 역시 프란시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다른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저자가 나타난 이상 더욱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기에 선회한 것이었다.

뭔가 대책 없는 마리의 대답에 안젤라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뜬 마리가 아르한이 나오고 있는 화면을 가리키며 다급하게 대답했다.

“저 빡빡이를 이용하면 돼!”

“이단 심문관이요?”

“응! 쟤도 회귀시켜 버려! 보통 빡빡이들의 소원은 머리가 다시 자라나는 거잖아!”

“…….”

“…….”

순간 할 말을 잃고 안젤라와 동시에 마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물론, 아르한의 앞에 나타난 빡빡이 프란시스를 이용하는 건 맞았다.

반만 맞아서 문제였지만…….

의기양양하게 자그마한 몸을 쭉 펴며 ‘나 잘했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마리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줬다.

자, 이제 아르한에게 계획을 설명해주러 가볼까?

* * *

감언이설로 요한을 해친 것은 태양교의 이단 심문관들이었다.

그중 한 명인 프란시스가 제 발로 나타나자 아르한은 당장이라도 쳐 죽일 듯이 해머를 휘둘렀다.

물론, 미꾸라지 같은 프란시스의 움직임에 해머가 계속해서 허공을 가르고 있자 아르한의 이마에 깊은 내 천(川) 자가 그려졌다.

“네 이놈! 왜 그렇게 도망만 치는 것이냐! 그러고도 네놈이 남자더냐! 가운데 달린 걸 떼야겠구나!”

“어차피 안 쓰는 거 떼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

스스로 고자라고 밝힌 프란시스의 충격적인 말에 아르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비록 적이지만 남자로서 가장 큰 아픔 중 두 가지 모두를 겪은 자 아니던가?

고자와 대머리는 남자에게 주어진 가장 끔찍한 저주와 같은 것이었으니까.

아르한이 해머를 멈추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프란시스를 바라볼 때였다.

[이르카: 음, 아르한도 눈치챘을 테지만, 쟤 지금 비무장이야. 그리고 저 불쌍한 놈 표정을 봐봐. 이렇게 나타난 이유가 있을 거야 한번 얘기를 들어봐.]

[아르한: 관리자님, 요한 님을 꼬신 건 저자들 아니었습니까? 솔직히 저자가 왜 제 앞에 나타났는지 모르겠군요.]

[이르카: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던 것 같아. 너도 알겠지만, 내가 나이가 좀 많잖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라고 생각해봐. 이게 다 요한을 구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아르한: 후우… 일단, 알겠습니다.]

[이르카: 그래, 그리고 이번 일은 진짜 미안하다. 이번 일 끝나고 내가 잠깐 어디 갔다 오면서 좋은 물건 구해다 줄게. 이건 공짜로 보내줄 거야.]

[아르한: 일단, 요한 님을 구하는 데 집중해주시지요.]

[이르카: 그래, 일단 몸을 좀 피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뒤에 성기사들이 쫓아오고 있으니까.]

[아르한: 네, 알겠습니다.]

이르카와 대화를 마친 아르한이 머리에서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땀을 닦으며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다듬고 있던 프란시스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네놈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 없다. 요한님을 감언이설로 꼬드기고는 사악한 술수를 쓴 악마와 같은 자들이니까.”

“하악- 하악, 당연히 믿을 수 없겠죠. 저 역시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요. 후우- 아마, 제가 아르한님과 똑같은 상황이라면 일단…. 아이고, 죽겠다. 저를 죽이고 볼 겁니다.”

말을 이리저리 돌리지 않고 심정을 헤아린 프란시스의 답변이 마음에 들었을까?

아니면, 숨을 고르면서 겨우겨우 대답하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이 웃겨서일까?

아르한이 살짝 누그러진 표정으로 프란시스에게 질문을 건넸다.

“말은 청산유수구나. 그래, 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냐?”

그제야, 아르한의 해머질을 열심히 피해 다니느라 헐떡이던 숨을 겨우 가라앉힌 프란시스가 눈빛을 빛내며 말을 건넸다.

“저는 태양교가 싫어졌습니다. 추악한 과거를 찬란한 영광으로 치장하는 모습도 싫었지만, 악마의 함정에 빠진 날. 요한 님과 아르한 님의 정체에 대해 모두 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고민하다 결정한 일입니다!”

“……!”

바싸고의 함정에 빠졌을 때 일을 들먹이는 프란시스의 답변에 놀란 아르한이 프란시스에게 질문을 건넸다.

“그날 일을 모두 봤다는 말이더냐?”

“정신이 없어 다 듣지는 못했지만, 미래에서 오신 예언자라는 것은 똑똑히 들었습니다! 이 세계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까지도요!”

“……?”

“미래의 태양교는 더 타락했기에 과거에서 모두 깨부수러 오신 것 아닙니까? 예언자시여! 저 프란시스를 받아주십시오!”

“……?”

머리에 비친 달빛보다 더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프란시스의 눈빛을 바라본 아르한이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이르카와 안젤라, 마리는 배꼽을 잡고 쓰러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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