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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를 관리하는 법-72화 (72/121)

72화

아스가르드의 최고신.

애꾸눈의 현자 오딘의 표정은 묘했다.

마치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냐고 묻는 것과 같은 궁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네왔다.

“이르카 네가 오만한 올림포스 놈들에게 한 방 먹인 것은 잘 봤다만,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더냐?”

“세상 모든 지식의 탐구자 오딘이시여 당신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위대한 신보다 운명이 더 우위이고, 설사 신이라 할지라도 세계의 운명을 끊어낼 힘은 없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 우리는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지, 먼 옛날 황혼을 맞이할 때 네 옆에 있는 비다르와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확실히 그때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가장 강대한 신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아스가르드 신들의 약점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답이 나왔다.

그들에게 있는 멸망과 패배의 역사.

신들의 황혼 라그나로크는 대부분의 아스가르드 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까.

지금 말을 건네는 오딘 역시 라그나로크에서 한 번의 죽음을 겪고 부활한 신 아니던가?

그것이 올림포스와 가장 다른 부분이었고 아스가르드 신들이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올림포스의 신들과 비교했을 때 한 수 아래로 취급받는 이유였다.

마치 뽑기 게임을 하듯 씨를 뿌리고 다녀 헤라클레스라는 미친 영웅을 만들어 기간토마키아라는 해일을 막아낸 올림포스에게는 패배의 역사가 없었으니까.

침묵하고 있는 비다르를 잠시 바라본 오딘이 기다란 턱수염을 쓸어내리고는 날 똑바로 바라보며 답변을 기다렸다.

이제부터 잘 설득해야 한다.

입에 고인 마른침을 목으로 넘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헤라클레스는 실패할 것입니다.”

“흠? 모두가 절대 막을 수 없다고 예상하던 기간토마키아를 막아낸 헤라클레스가 아니더냐?”

“네. 헤라클레스는 그런 녀석이죠. 사실 기간토마키아를 막아낸 것만으로도 신이 될 자격이 있는 녀석이니까요.”

“그런데 라그나로크를 막는 데 실패한다? 그것도 가장 강인했던 힘을 가졌던 시절로 돌아갔는데도 말이더냐?”

“네. 틀림없이 실패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더냐?”

“기간토마키아는 힘을 빌렸을 때 승리가 예언된 일이었고, 라그나로크는 패배가 예언된 일이었기 때문이죠.”

“흠…….”

기간토마키아와 라그나로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멸망이 예언되었느냐 아니냐다.

기간토마키아는 인간의 힘을 빌리면 승리한다는 예언이 있었고 라그나로크는 피할 수 없는 파멸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물론, 패배의 역사는 바꿀 수 있다.

헤라클레스 역시 라그나로크가 가진 패배의 역사를 바꿔서 새로운 힘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었으니까.

헤라클레스가 내게 말한 계획을 오딘에게 재차 설명하기 시작했다.

“펜리르, 요르문간드와 같은 괴물들은 헤라클레스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아스가르드가 불탈 때 모든 신을 살려서 탈출한 뒤 다시 신계를 세우자는 것이 헤라클레스가 세운 계획이고요. 그건 엄연히 말하자면 패배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건 헤라클레스가 내게도 설명한 일이다. 세상이 워낙 많은 차원으로 나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그 정도는 알고 있고.”

“네, 같은 역사가 다르게 기록된다면 그 힘이 흐려지죠. 아스가르드를 계속 따라다니는 족쇄가 되었던 라그나로크의 역사가 흐릿해지는 것이 헤라클레스와 제가 노리는 것이고요.”

신들의 역사는 조금 복잡하다.

창세의 기록이 끝나고 많은 차원으로 나누어진 역사는 마치 희미하게 연결되어 각각 상호작용을 한다.

가장 많은 행성과 신을 가진 지구의 경우 1 지구부터 28 지구까지 나누어져 있다.

물론, 현재 멸망하지 않고 제대로 돌아가는 지구는 열두 개뿐이지만…….

헤라클레스 녀석이 목표로 한 것은 아스가르드의 권한이 가장 큰 13 지구의 역사를 바꾸는 일이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지구에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에 오딘을 비롯한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포인트의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헤라클레스를 회귀시켜줬다.

지금 내 말은 오딘이 헤라클레스가 가진 힘을 믿고 내린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깊은 고민을 하는 오딘에게 라그나로크가 종료된 이후로도 유일하게 행방이 묘연한 자의 이름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완벽한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고작 패배를 피해갔다는 것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르트에게는 패배의 역사가 없으니까요.”

“흐음, 수르트라…….”

“네, 사실 저도 헤라클레스의 방법에 동의했었습니다만, 이건 좀 아니다 싶더군요. 아스가르드가 큰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시도한 일의 마무리를 고작 패배를 피한 역사를 기록하는 데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닐까요?”

아스가르드는 헤라클레스를 과거로 보내면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가장 커다란 세력 중 하나인 올림포스와 척을 지게 된 것은 둘째 치고 아스가르드의 가장 큰 기둥 중 하나인 운명의 세 여신.

울드, 베르단디, 스쿨드가 깊은 잠에 빠져 천 년 이상을 깨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헤라클레스가 간 것은 운명과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었기에 운명의 힘을 약화해야 한다며 그녀들이 스스로 내린 고육지책이었다.

살짝 입술에 침을 바르며 고민에 빠진 오딘이 정신을 차리기 전 재차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돌렸기에 또다시 시간을 돌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보다 오래전 태어났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죽지 않은 불사의 회귀자를 같이 보낸다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네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수르트의 정체는 태초의 불. 즉, 세상을 불태우는 자다. 이르카 네 녀석은 창세신님이 창조한 자연과 싸워 이길 수 있더냐? 애초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는 자를 어떻게 이긴다는 말이더냐?”

“제가 말씀드린 그자 역시 태초의 불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태초의 생명이자 불인 불사조의 힘을 받았고 그것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흐음…….”

오딘은 로니가 가진 힘을 듣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역시 똑똑하면 이게 문제다.

일어날 수 있는 수만 가지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오딘을 또다시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침묵하던 비다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버지, 이르카와 헤라클레스는 제가 관리자가 된 이후로 가장 믿고 지낸 친우들입니다. 헤라클레스 녀석의 힘을 가장 잘 아는 것도 저희 둘이겠지요.”

“그래, 많이 싸워봤으니까 당연히 알겠지.”

“네, 저도 라그나로크를 겪어봤던 몸 아닙니까? 제 생각에도 헤라클레스 혼자서는 수르트를 이기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니, 이르카의 말대로 같은 불의 힘을 지닌 자를 같이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녀석이 저렇게 길게 말하는 건 처음 보는 일.

오딘 역시 비다르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말하자 살짝 놀란 눈치였다.

든든한 지원사격을 해준 녀석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줬다.

나중에 술이나 듬뿍 사줘야겠네.

라그나로크를 직접 겪은 비다르의 조언에 오딘은 생각의 정리를 마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쌓아온 신력을 또 한 번 써서 로니를 회귀시켜주겠지.

사실 죽음을 원하는 로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떠오른 생각이었다.

불을 끄는 방법 중 하나는 맞불을 놓는 것이었고 수르트와 로니는 가장 강력한 불의 힘을 지닌 자들이었으니까.

뭐, 로니도 헤라클레스랑 같은 근육 덩어리니까 서로 친하게 지내겠지?

그때 고민을 마친 오딘이 품에서 황금빛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 * *

7 아르카니아.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던 태양이 지고 달이 뜬 밤.

흐릿한 달빛과 흔들리는 횃불을 길잡이 삼은 네 명의 사내가 어둠에 잠긴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요한은 몇 번이나 야영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성자로 임명할 분을 불편한 잠자리에서 재울 수 없다는 우로스의 강력한 주장에 쉴 새 없이 움직여 할파스 백작령을 벗어난 것.

한참을 이동하던 중.

자그마한 마을을 발견한 프란시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건넸다.

“저쪽에 마을이 있군요. 오늘은 저곳에서 묵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오, 마침 잘되었군요. 여러분이 쉴 곳을 찾았으니 다행입니다.”

“네?”

“사실 보셨다시피 저는 뱀파이어, 아르한 님 같은 경우 오…크 아닙니까? ”

요한은 어차피 오크가 아닌 트리오스라고 말해도 이해하지 못할 그들이기에 외향이 비슷한 오크라고 말을 건네고는 아르한의 눈치를 살폈다.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아르한을 바라본 요한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프란시스에게 재차 말을 건넸다.

“저희는 야영이 익숙하답니다. 그래서 괜찮다고 한 것이고요.”

“혹시라도 흉포한 괴물이 나타난다면…….”

“네?”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요한을 바라본 프란시스는 이내 자신이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뱀파이어와 오크가 어떤 존재들이던가?

오히려 지능이 높기에 그저 본능만 있는 괴물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괴물들이었다.

아르카니아에서 오크는 이종족으로 인정하기보다는 괴물로 취급을 했고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말해봤자 입만 아팠기 때문.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프란시스가 어색한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헛기침하며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마을이기 때문일까?

의례 잡무를 담당하던 프란시스가 우로스의 눈총을 받고 마을로 뛰어갔지만, 여관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민가에서 신세를 조금 져야겠네.’

태양교의 성직자라고 하면 박대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 프란시스가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던 근처 민가의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뉘슈?”

안쪽에서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프란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문 뒤에 있는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아,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저는 임무를 수행 중인 태양교의 성직자입니다. 밤이슬을 피할 곳을 찾고 있는데 혹시 신세를 조금 질 수 있을까요?”

“…….”

“보상은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들어오슈.”

프란시스가 내뱉은 보상이라는 말이 노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우로스의 질책은 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프란시스가 일행을 불러왔다.

프란시스의 안내를 받아 노인의 집안에 들어간 일행 중 우로스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때마침 음식을 하고 있었는지 집안에는 구수한 음식 냄새가 가득했기 때문.

쉬지 않고 움직이느라 한창 허기가 졌던 우로스가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음식을 조금 나눠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허허, 이게 뭐 대단한 음식이라고, 얼마든지 드시오. 내 준비해서 내드리리다.”

“감사합니다. 태양의 축복이 있으시길.”

“…끌.”

살짝 혀를 차며 주방에 들어가는 노인과 굶주린 배를 채울 생각에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우로스와 프란시스였다.

곧 노인이 고기가 들어간 향긋한 스프 네 그릇을 내왔다.

프란시스와 우로스가 스프를 마시듯 삼키고 있을 때.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던 요한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이거 말씀을 안 드렸네요.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던 거 같은데 기왕 가지고 오신 거 같이 드시지요.”

“나 같은 촌부지렁이가 무슨 성직자 양반들하고 같이 식사를 한다는 거요? 나는 괜찮으니 성직자 양반들이나 많이 드슈.”

완곡히 거절하는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본 요한이 스프를 쭉 들이키고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을 건넸다.

“스프가 참 맛있습니다.”

모두 스프를 마시고 그릇이 비었음을 확인한 노인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릴 때.

요한이 표정을 굳히며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에 약은 왜 타신 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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